억울한 누명 쓴 군인의 복수, 뻔해도 재밌네
[리뷰] 영화 <더블 타겟>
*영화의 전개와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전형적인 듯 아닌 듯한 액션 서사
▲ 더블 타겟 ⓒ CJ엔터테인머트
<더블 타겟>은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일반적인 틀을 따르면서 미국 정치권과 민간군사기업(PMC, Private Military Company) 간의 유착 관계를 고발한다. 서사 구조에서 얼핏 기존 액션 영화의 문법을 따른다고 볼 수 있다.
주인공 밥 리 스웨거(마크 월버그)는 뛰어난 저격 능력을 갖춘 군인이다. 사격 능력으로는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것으로 돼 있다. 영화 시작과 함께 탁월한 사격 실력을 선보이지만, 군인지 정부인지 정체불명의 상대로부터 배신당해 파트너를 잃고 군을 떠난다. 여기까지가 사전 설정이다. 커다란 음모에 말려들면서 두 번째 배신을 당해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정체불명의 적으로부터 쫓긴다는 게 영화의 얼개다. 이후 스토리는 눈 감고도 짐작할 수 있다.
관건은 배신과 음모에 휘말린 특출한 남자의 복수와 신원(伸冤)을 '어떻게' 그리느냐이다. 밥 리 스웨거는 당연히 곤경과 좌절을 겪지만 당연히 위기를 극복하며 진실을 밝힌다.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고 악당을 처벌하는 것은 물론 사랑을 성취하는 영화적 영웅 서사를 완성한다. 이런 유의 영화엔 스포일러라는 게 없다. 결말과 전개를 다 안다. 어떻게 그렸느냐만이 관심사이다.
영화에서 추격이 역전되는 것 또한 특별한 일은 아니다. 초반에 주인공이 쫓기지만 나중에는 반대로 쫓는다. 계획적이고 철저한 복수를 통해 적을 강하게 몰아붙여 철저히 응징한다. 두 명의 핵심 조력자가 등장해 각각 복수와 사랑의 영역에서 도움을 준다. 이것도 '어떻게'의 영역이다. 휴머니티와 아드레날린의 배합 비율과 긴장과 재미의 적정 균형점 감각은 일류 요리사의 비밀 레시피처럼 감독의 연출 능력에 달렸을 뿐이다.
<더블 타겟>의 영웅은 전통적 할리우드 영웅 서사와 맥을 같이 하지만 방법론에 있어 주인공이 도덕적 회색 지대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결을 달리한다. 일단 선과 악의 구도는 명확하다. 그러나 주인공 밥 리 스웨거가 선을 실현하는 과정에 폭력과 살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른다. 적의 부도덕과 부패를 징벌하기 위해 기꺼이 도덕을 무시한다. 그에게 도덕보다 정의가 더 큰 개념이고, 악에 맞설 때는 수단이 악해도 된다고 본다.
또한 국가 시스템을 불신한다. 시스템이 부패했기에 시스템을 통한 정화를 기대하지 못하고 영웅이 시스템 밖에서 부패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믿는다. 민주주의 국가의 권력 구조가 탐욕에 얼마나 쉽게 망가지는지를 보여주며 구조와 체계에 의한 자정이 아니라 외부의 힘을 빌린 외과적 수술만이 해법이라는 관점을 견지한다. 액션과 복수, 응징이 결합한 강한 오락성이 이러한 문제의식을 전면화하는 것을 방지한다.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국가 권력의 부패, 도덕적 방법론에 관한 성찰을, 의욕이 있는 관객이라면 영화 관람 후에 해볼 수는 있다. 안톤 후쿠아(Antoine Fuqua) 감독이 어쩐지 그것까지 권하는 것 같지는 않다.
민간군사기업의 실체
▲ 더블 타겟 ⓒ CJ엔터테인머트
적이 기존 액션 영화에서 잘 다루지 않는 민간군사기업(PMC)이다. 거악에 맞선 영웅적 개인의 싸움을 그릴 때 보통 거악이 자본, 군대, 경찰, 마피아 등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린 익숙한 조직이기 마련이다. <더블 타겟>은 실체가 숨겨진 조직을 적으로 설정했다. 미국 정치권과 군부가 자본과 기묘한 방식으로 합체한 PMC의 폐해와 부패를 폭로한다. 주인공이 맞서 싸우는 대상은 군사적 능력을 갖춘 실재하는 집단이다. 이들은 정치 권력 및 자본과 결탁해 부도덕한 방식으로 선하지 않는 목적을 달성하려 든다. 다큐멘터리가 아니고 사회성이 강한 영화가 아닌 만큼 폭로가 목적인지는 불확실하다.
현실과 영화 사이의 괴리는 있다. 영화가 묘사한 유착 관계는 극화의 과정에서 비교적 선명한 실체로 표현됐지만, 현실에서 이러한 관계나 음모는 더 은밀하고 복잡한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상대적으로 명확하고 직설적으로 표현된 영화 속의 악당이,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지목하기 힘들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복수가 어려워지고 영화화도 물 건너 간다. 적당한 타협이 필요하다. 영화에서처럼 개인의 악의가 주요 동인이 되기보다는, 현실에선 인체 면역시스템의 고장처럼 시스템 자체가 문제일 공산이 크다.
다만 우려스러운 지점은, 철저하게 정치적 선택이어야 하고 민주주의 통치 아래서 작동해야 할 군사 행위가 공식적인 시스템 바깥에서 결정돼 이행된다는 사실이다. 본 시스템 바깥에서 본 시스템을 보조하는 또 다른 시스템이 독자적으로 본 시스템처럼 기능하며 민주주의를 무력화할 수 있다. 영화는 시스템 바깥의 개인이 시스템 바깥의 별개 시스템을 바로잡는 식으로 스토리라인을 짰다.
비즈니스 리서치 인사이츠에 따르면 2024년 세계 PMC 시장 규모는 약 2210억 달러로, 2032년이면 약 326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영화의 무대인 북미 지역이 가장 큰 시장 점유율을 보이는데, 미국의 천문학적 국방비 지출과 민간군사기업의 기술적 우수성 때문으로 분석된다.
액션과 로맨스
<더블 타겟>에서 로맨스는 중심 요소가 아니다. 주인공 밥 리 스웨거와 여주인공 사라(케이트 마라) 사이에 미묘한 감정의 섞임이 존재하지만, 플롯을 지배하지 않는다. 로맨스가 액션과 긴밀하게 연결되기보다는, 주로 주인공의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거나, 캐릭터의 동기를 보강하는 역할에 머문다.
사라와 밥 리의 관계를 로맨스 이상으로 볼 수도 있다. 복수와 정의를 추구하며 도덕적 기준을 무시하는 밥 리의 행위를 일견 인간적으로 보이게 만든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사라의 존재는 밥 리의 외로운 싸움에 정서적 깊이를 더하며, 행동의 정당성을 강화한다. 밥 리의 복수 서사에 부수적인 역할을 하는 로맨스가 종국에 결실을 보는 장면에서 남녀의 세계관이 합체한다.
저격수란 설정
▲ 더블 타겟 ⓒ CJ엔터테인머트
<더블 타겟>의 큰 재미의 하나는 밥 리가 펼치는 전략적이고 치밀한 액션 장면이다. 총격전이나 육탄전을 마다하지 않지만, 뛰어난 저격수의 능력을 활용해 철저히 계획된 복수극을 전개한다.
영화는 현실성에 기반하다가도 할리우드식의 과장된 액션을 과감히 들여온다. 무협지 스타일의 황당한 액션은 영화 전개상 필요한 클리셰로 판단해야 하지 싶다. 밥 리의 저격 장면들이 사실적으로 보이면서도, 전반적으로 악당들을 처단하는 방법은 극적인 과장을 결합해 영화적 쾌감을 극대화한다. 이러한 일종의 균형은 액션 영화 팬을 의식한 필수 아이템인 셈이다. 전략적 액션, 음모와 반전, 캐릭터의 입체성, 그리고 사회적 메시지 등이 영화의 재미 요소로 작용한다.
원제 'Shooter'는 주인공 밥 리 스웨거에게 초점을 맞추어 그의 저격수로서의 정체성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다. 한국어 제목 '더블 타겟'은 주인공뿐 아니라 그가 속한 상황과 그를 둘러싼 음모에 더 유의한다. 또한 주인공이 단순히 사격자에 머물지 않고 타깃이 되는 이중적 존재임을 강조한다. 원제를 그대로 쓰기 어려운 상황에서 원제의 의미를 살리며 영화 내용을 담아내는 두 가지 목적을 겨냥한 작명이다.
안치용 영화평론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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