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다른 매력의 두 남자 사이에서 흔들리는 철학 교수
[넘버링 무비 388] 영화 <사랑의 탐구>
▲ 영화 <사랑의 탐구> 스틸컷 ⓒ 티캐스트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배우 모니아 초크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역시 영화 <하트비트>(2010)다. 자비에 돌란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에서 그는 결코 깨지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우정의 한 축 마리 역을 연기했다. 이 작품으로 스타덤에 오른 것은 분명 자비에 돌란이었지만, 다른 나머지 두 인물이 내러티브 위에서 그의 존재를 단단히 지지하지 못했다면 불가능했을 결과다. 다음 작품인 <로렌스 애니웨이>(2013)에서도 함께했던 모니아 초크리는 이후 주,조연을 오가는 연기 생활을 이어가다 2019년 <브라더스 러브>를 통해 첫 장편을 연출하게 된다. 감독으로서의 커리어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영화 <사랑의 탐구>는 그의 세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두 사람이 마련한 시골 외곽 지역의 별장 수리를 위해 만나게 되는 인물이다. 육감적이고 동물적인 면모를 가진, 자신은 물론 파트너인 자비에와도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람인 그에게 소피아는 순식간에 빠져들고 만다. 관계의 측면에서 보자면 위태로운 행동이지만, 사랑의 측면에서는 완벽한 선택처럼 보인다.
02.
"사랑이 유일한 보편적 가치죠."
위의 설명만으로는 이 작품의 이야기가 흔히 볼 수 있는 불륜 드라마의 속성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피아와 자비에 두 사람의 관계가 법적, 사회적 제도로 구속되지 않고 '파트너'로 이루어져 있다는 설정을 생각하면 그런 진부한 내러티브를 비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 분명 오래 쌓아온 시간과 서사, 서로에 대한 믿음이나 감정과 같은 요소들이 존재하기에 무게의 추가 이미 기울어져 있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다만, 두 사람이 상징하는 사랑의 모양은 분명히 다르다.
소피아에게 실뱅은 거부할 수 없는,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그동안 감춰져 있던 사랑의 또 다른 면모와도 같다. 서로 다른 침대를 쓰고, 육체적 관계로부터 더 이상 고양된 감정을 획득할 수 없지만 결코 불행하지는 않았던 자비에와의 오랜 관계 속에서는 '결핍'이라고조차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아득히 떨어져 있던 조각이던 것에 가깝다. 하지만 분명히 실재하는 사랑의 육체적 속성은 실뱅과의 만남을 통해 (플라톤이 이야기했던) 결핍을 일으키고, 욕망을 터뜨리며 또 하나의 관계를 시작하게 만든다. 사랑을 나누는 일에 있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을 정도로 격렬하고 뜨거운 관계. 소피아에게는 기존의 안정적이고 안전한 관계를 포기하는 정도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선택이다.
이제 이 영화를 움직이는 동력은 다음 두 가지 질문으로부터 얻어진다. 하나는 소피아가 양쪽의 상반된 속성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다시 말하면, 기존에 구축된 자비에와의 안정된 관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다른 하나는 실뱅과 소피아가 서로 완전히 다른 배경과 매력에도 불구하고 이 사랑을 망가뜨리지 않고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 영화 <사랑의 탐구> 스틸컷 ⓒ 티캐스트
03.
그런 점에서 볼 때, 성적, 지적 매력을 완전히 양분하고 있는 두 인물 사이에서 소피아는 스스로를 '사랑의 본질'을 탐구하는 도구처럼 활용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실제로 영화는 해당 인물이 철학 교수라는 설정에 기대어 플라톤을 시작으로 쇼펜하우어와 스피노자를 지나 벨 훅스로 이어지는 사랑에 대한 각각의 관점을 제시하기도 한다. 극의 특정 지점마다 배치된 철학자 및 작가들이 바라보는 사랑에 대한 관점은 그가 처한 상황과 사랑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오버랩되며 영화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레이어를 완성해 낸다.
가령, 가장 먼저 등장하는 플라톤의 욕망과 결핍에 대한 관점은 실뱅의 등장과 함께 소피아의 내면에 발현되는 욕망과 연결되고, 후반부에 등장하는 벨 훅스의 '사랑은 사랑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다'라는 관점은 마지막 선택과 연결된다. 다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들의 사랑에 대한 관점이 극 중 인물들의 내러티브를 매듭짓기 위한 용도는 아니라는 점이다. 사랑이라는 하나의 가치를 두고 완전히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하고, 어느 한 개인의 서사 속에서도 그 사랑의 가치가 완전히 뒤집어질 수 있다는 것을 영화가 보여주는 이유는 전복에 있다.
영화의 처음에서 주장되던 '사랑이 유일한 보편적 가치'라던 문구를 해체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사랑의 한쪽에만 기대어 안정된 삶을 이어왔던 인물이 또 다른 사랑의 면모를 만나게 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대상을 탐구하는 일이 해체하고 분해하여 면밀히 관찰한 뒤에 다시 재조립해 가는 과정임을 상기할 때, 이 영화가 말하는 '사랑을 탐구하는 과정'에 있어 해체란 반드시 필요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해체 이후의 재조립을 완성적으로 해내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별개의 것이지만 말이다.
04.
철학 교수로 위대한 인물들의 사랑에 대한 관점과 논의를 강의하는 소피아가 이 문제에 휘말리게 되는 것에는 학문으로서의 지성과 실제 경험 사이의 간극에 대한 성찰도 내포되어 있다. 소피아는 교수로서 자신의 위치와 지성에 대해 자부심을 가진 인물이다. 처음 자비에와의 관계에서 육체적 사랑을 일부 포기하면서도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까닭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뱅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지성과 욕망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일치하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해 점차 깨닫게 된다. 자비에를 외면하는 과정과 실뱅과의 유대감이 증가하는 과정 사이에서 욕망이 이성을 압도하는 일의 결과를 직접 경험하게 되는 일이다.
특히, 인물의 숏으로 빠르게 접근하는 주밍과 프레임의 분절, 반영 등을 통해 소피아라는 인물이 욕망 속으로 휩쓸려가는 과정을 묘사하는 감독의 연출은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인물도 예측할 수 없는 감정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지성의 영역에서는 '진정한 사랑과 사랑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하면서도 현실에서는 '선택으로 인한 관계의 균열'을 경험하는 과정이다. 다시 말하면, 사랑의 현실이라는 것이 이성적 추론의 영역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으며, 이론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인간 내면의 복잡한 감정은 그런 쉽고 간단한 방법에도 저항하고자 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이 영화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달하고 있다.
▲ 영화 <사랑의 탐구> 스틸컷 ⓒ 티캐스트
05.
사실 앞서 이야기했던 영화의 동력에 대한 문제는 이야기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이 작품 <사랑의 탐구>는 어떤 관계가 살아남는지에 대한 이야기보다 그 과정에서 무엇을 경험하게 되는가의 이야기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후반부에서 실뱅과 소피아의 관계가 잠시 어긋나는 시점에서 다시 한번 강조되는 서로 다른 매력의 확인에는 결국 '이성적인 판단과 선택'이라는 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것인지, 인간이란 또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가 확언처럼 새겨진다. 사랑의 본질 전체에 비하면 개인이 갖는 속성은 단일하기만 하고, 하나의 관계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 위의 사랑을 완성해 내는 일에는 어려움만이 가득하다.
사랑만큼 아름답게 그려지면서도 모순적이고 복잡한 감정이 또 있을까. 사랑의 본질을 들여다보겠다던 이 작품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다. 예측할 수 없는 불완전한 생과 충동적인 감정 아래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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