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박영근 작품상 반납한 조성웅 "조혜영 시인의 '미투', 외면할 수 없었다"

고 박영근 시인 사후, 시 '미투' 발표로 사건 알려져... 조성웅 시인, 지난 10일 상 반납 입장문

등록|2024.09.24 07:00 수정|2024.09.24 07:00
"석바위 사거리 수(水)다방에서/하룻밤만 자주면 문단에 데뷔시켜주겠다며/성 상납을 요구하던 사람/유명한 문예지에 작품을 실어주고/등단시켜 시인으로 만들어주겠다며/돈 2백만 원을 요구한 유명했던 노동 시인//그 유명했던 시인은 세상을 떠난 지 오래/여전히 그를 기억하고/그의 문학을 연구하고/그의 문학상을 만들어 후배를 양성하고/양지바른 공원에 시비를 세워/해마다 그를 기념하는 행사가 진행된다/꽃다발을 들고 시비 앞에 줄지어 서서/활짝 웃는 많은 문인을 본다//그를 알았거나 알지 못했거나 가리지 않고/그의 시비 앞에 모여 묵념하고/시대의 진정한 노동자 시인을 칭하며/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다/그의 시로 만든 노동가를 목청껏 부른다/그의 시와 문학을 연구하는/새파란 젊은 대학원생도/그의 시비 앞에 머리를 숙인다//나는 그의 시비 앞에 차마 침을 뱉을 수 없어/나는 그의 사후 미투를 한다/나는 그의 기일마다 유별나게 흥분을 감추지 못해/나는 해마다 그를 고발한다"
- 조혜영 시 '미투', 시집 <그 길이 불편하다>, 푸른사상

지난 5월 조혜영 시인은 시 <미투>를 발표했다.

한 달 후인 6월 27일, 박영근시인기념사업회(아래 박영근기념사업회)는 시를 통해 사후 미투를 제기한 조혜영 시인의 문제제기를 받아들여 기념사업을 중단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 박영근 시인 기념사업 중단을 밝힌 기념사업회 입장문 ⓒ 박영근기념사업회


이어 지난 10일, 박영근작품상 5회 수상자인 조성웅 시인이 수상자 최초로 작품상을 반납하겠다는 입장문을 페이스북에 게시했다.

▲ 조성웅 시인의 페이스북 입장문 ⓒ 조성웅


박영근 시인 기념사업을 중단했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는 입장과 좀더 사려 깊고 섬세하게 조혜영 시인의 치유를 위해 노력하자는 의견들이 이 사건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고가고 있지만, 현실은 조용한 것 같다. 이와 관련해 지난 13일, 조성웅 시인과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조 시인과 나눈 짧은 문답이다.

▲ 조성웅 시인은 조혜영 시인의 '미투' 고발을 접하고, 박영근 작품상을 반납했다. ⓒ 조성웅


- 페이스북에 반납글을 올리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조혜영 시인의 시 <미투>를 보고 오랫동안 고민했어요. 박영근 작품상을 받은 사람으로서, 시비 앞에서 꽃다발을 들고 환히 웃는 제 모습을 보고 조혜영 시인이 얼마나 억장이 무너져내렸을까 생각했어요. 괜찮냐고 안부를 묻고 싶었지만 저도 이러저러한 관계에 묶여 있는 사람이기에 침묵하는 것이 오히려 제게 이롭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당연히 부담도 되었지요. 하지만 조혜영 시인의 외침을 외면하고서는 잘 살 자신이 없었어요.

박영근 시인이 사망한 이후 작품상이 제정되어 진행한 것이 벌써 10년이거든요. 매년 기일이 다가오고 기념 행사가 진행되면서 아마 조혜영 시인은 내려지지 않는 마음의 깊은 체기를 느꼈을 거라 생각해요. 또 시 '미투' 발표 전에 함께 오랜 세월 지지고 볶으며 노동해방을 꿈꿔오던 동지들이 위로라며 건넨 충고들이 어쩌면 조혜영 시인에게는 압력이 아니었을까. 거기에서 비애감도 느껴지고...

제가 소위 말하는 시인이라는 놈 아닙니까? 인간의 섬세한 마음의 결을 다루는 놈이잖아요. 그렇게 용기를 내어 아프다고 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어떻게 외면합니까? 이것이 제 망설임을 넘어서게 하더라고요."

- 이미 박영근기념사업회에서 입장문을 올린 것으로 사건이 일단락 된 것 아닌가?

"박영근기념사업회에서 진위 파악한다며 진흙탕이 될 수 있었던 시간을 피하게 해준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기념사업을 중단함으로써 조혜영 시인의 바닥없이 깊어지던 고통에 쉼표를 찍어줬잖아요. (기념사업 중단이) 고통이 더 깊어지지 않도록 지지대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박영근 시인 사망 이후 기념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누적된 억장 무너지는 마음과 고통이 치유되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박영근기념사업회 입장문을 봤어요. 기념사업을 중단할 정도로 중대한 사안인데 사건에 대한 규정이나 평가도 없을 뿐더러 무엇보다 조혜영 시인의 고통을 헤아려보려 하고 사려 깊게 배려하는 마음을 찾아 볼 수 없어 무척 아쉽습니다."

- 페이스북에 박영근작품상 반납글을 올린 이후 어떤 반응을 접하게 되었는지?

"박영근 시인 지우기를 하려고 하냐, 부관참시 아니냐고 비난하는 의견도 있어요. 하지만 박영근 시인의 문학적 회복은 피해 생존자인 조혜영 시인의 치유의 길을 따라서 유일하게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피해 생존자의 시간입니다. 한때 좋아했던 박영근 시인을 마음속에서 떠나보냄으로써, 혹은 박영근 시인에 대한 추억을 다시 소환함으로써 이 사안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자기 분노, 자기 처벌, 그리고 추억을 소환하는 자리에 조혜영 시인을 들여 조혜영 시인의 고통과 용기를 한 번쯤 헤아려봤으면 좋겠어요.

더 이상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묻기 이전에 이 사람이 치유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말을 건네줄지, 어떤 몸짓이 필요할지 생각해보자는 거예요. 문학적 상상력에 의지해서 그리고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가장 긍정적인 에너지에 기대서 누구도 가 보려 하지 않았던 길, 어떤 조직에서도 가려 하지 않았던 길을 함께 가 봤으면 좋겠다는 것, 피해 생존자의 치유법을 함께 배워보자는 것, 이것이 제가 제안하고자 하는 핵심입니다."

조성웅 시인은 오랜 고민으로 입장문을 작성하는 데 꼬박 2주가 걸렸다며 <미투> 가 '양심과 정의, 성찰'로 성숙하고 한층 더 성장한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다음은 조성웅시인의 입장문 전문이다. 시인의 허락 후에 게재한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치유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요?
―박영근 작품상을 반납합니다
조성웅 시인

최근 조혜영 시인은 자신의 시 「미투」를 통해 고 박영근 시인이 행한 성폭력 사건을 폭로했습니다. 저는 제5회 박영근 작품상을 받은 사람으로서, 이제 알았으므로 조혜영 시인에게 미안하고 몰랐으므로 18년이 넘도록 홀로 고통을 견뎌왔을 조혜영 시인에게 더욱 미안합니다.

지금 제가 시인으로서 지켜야 할 명예가 있다면 피해 생존자 조혜영 시인의 외침을 경청하고 그녀의 손을 잡아주고 함께 삶의 체온을 느끼는 것입니다.

"박영근 작품상 반납을 고민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글은 조혜영 시인의 요청에 대한 제 화답입니다. 일생일대의 결단, 놀라운 용기를 보여준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저의 지지와 격려입니다. 문단 내에서 그녀의 삶이 안전하게 보장되고 노동자 시인으로서의 긍지가 지켜지기를, 상처가 아물어 치유가 시작되기를 바라는 기원입니다.

1. 박영근 작품상을 반납합니다

조혜영 시인이 시집 발간 이후 정말 오랜만에 연락을 했습니다. 시집을 보내줄 주소를 요청하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얼마나 조마조마했을까요?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해줄 '이 한 사람'이 얼마나 절박했을까요? 저는 조혜영 시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줄 수 있는 '이 한 사람'이 되고 싶고, 우리가 조혜영 시인의 '이 한 사람'이 되자고 제안하기 위해 박영근 작품상을 반납하고자 합니다.

2. '고 박영근 시인 성폭력 사건'
―조혜영 시인이 고발한 미투 사건 성격 규정

"석바위 사거리 수(水)다방에서/하룻밤만 자주면 문단에 데뷔시켜주겠다며/성 상납을 요구하던 사람/유명한 문예지에 작품을 실어주고/등단시켜 시인으로 만들어주겠다며/돈 2백만 원을 요구한 유명했던 노동 시인//그 유명했던 시인은 세상을 떠난 지 오래/여전히 그를 기억하고/그의 문학을 연구하고/그의 문학상을 만들어 후배를 양성하고/양지바른 공원에 시비를 세워/해마다 그를 기념하는 행사가 진행된다/꽃다발을 들고 시비 앞에 줄지어 서서/활짝 웃는 많은 문인을 본다//그를 알았거나 알지 못했거나 가리지 않고/그의 시비 앞에 모여 묵념하고/시대의 진정한 노동자 시인을 칭하며/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다/그의 시로 만든 노동가를 목청껏 부른다/그의 시와 문학을 연구하는/새파란 젊은 대학원생도/그의 시비 앞에 머리를 숙인다//나는 그의 시비 앞에 차마 침을 뱉을 수 없어/나는 그의 사후 미투를 한다/나는 그의 기일마다 유별나게 흥분을 감추지 못해/나는 해마다 그를 고발한다"(조혜영, 「미투」, 『그 길이 불편하다』, 푸른사상, pp. 66-67)

아프고 아픈 시입니다. 시인은 시에 자신의 운명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박영근 시인은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사건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지만, 자신이 겪은 피해 사실을 '시'로 기록한 조혜영 시인의 이야기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피해 생존자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이야말로 진실에 다가가는 열린 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 「미투」를 읽은 저녁, 마음이 아파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뒤척이며 조혜영 시인이 겪었을 고통의 뿌리를 명료하게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성폭력이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지는 성적 언동으로 상대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여성가족부,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 처리 매뉴얼」, 2021. 7.)

"성폭력이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한 불쾌한 성적인 언사, 몸짓, 신체적 접촉, 추행, 강간 등 성적 자율권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를 말하며, 법적으로 예시된 이외에 다음의 내용도 포함된다. 1. 개인의 성적 자율권 및 성정체성을 침해하는 모든 언어적, 정신적, 물리적, 환경적 폭력행위. 2. 성적 호의를 조건으로 타인의 경력, 급여, 보직, 고용 등에 영향을 미치거나, 기타 일방적으로 만남이나 교제를 강요하는 행위."(「민주노총 성폭력, 폭언, 폭행 금지 및 처벌 규정」)

문단에 데뷔시켜준다고 하룻밤 잠자리를 요구하다니요. 유명 문예지에 등단시켜준다고 금품을 요구하다니요. 고 박영근 시인은 문단 내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조혜영 시인의 의사에 반하는 하룻밤 잠자리를 요구함으로써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습니다.

국가기구인 여성가족부에서도, 제가 속한 민주노총에서도 박영근 시인이 행한 행위를 '상대방의 의사에 반한 성적 자율권을 침해하는 행위, 즉 성폭력'이라고 명료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작가회의 회원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작가회의의 성폭력 규정은 모르지만, 한국작가회의가 시민사회의 일부라면, 국가기구도 인정하는 성폭력 개념을 부정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저는 조혜영 시인이 시 「미투」에서 고발한 사건의 성격을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성폭력'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고 박영근 시인 성폭력 사건'으로 부르고자 합니다. 이러한 호명은 피해 생존자의 삶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성폭력 가해자가 오해의 여지 없이[!] 우리가 아는 박영근 시인임을 명확히 하기 위한 것입니다.

박영근 시인을 아는 사람들 중 누구는 "그게 무슨 성폭력이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고 성폭력은 인정하나 사건명에서 박영근 시인의 이름은 빼자고, 시끄럽게 하지 말고 문단 내에서 조용히 마무리하자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부정하고 싶거나 머뭇거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죽은 박영근 시인이 저지른 잘못을 살아 있는 우리가 바로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면 안 되겠습니까? 박영근 시인이 살아 있는 우리에게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떠넘겼듯이 우리도 다음 세대의 후배들에게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떠넘겨서야 되겠습니까? 사건의 성격을 명료하게 규정하고 구체적으로 평가하며 피해 생존자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사려 깊게 함으로써, 기만과 허위의 우상을 걷어내고 있는 그대로의 박영근 시인을 문학 앞에 바로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몰랐고 앞으로도 알고 싶지 않은 사람들 앞에, 고발 이전의 고통보다 고발 이후에 더 큰 고통을 맞이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조혜영 시인은 '고 박영근 시인 성폭력 사건'을 고발하기로 결단했습니다. 저는 그 마음을 먼저 헤아립니다. 자신에게 성폭력을 행한 자가 "시대의 진정한 노동자 시인"으로 칭송되는 그 기만과 허위가 그녀를 더 고통스럽게 하고 있음을 직시합니다.

어떤 일이든 이름을 바로 세우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미봉책이 아니라 해결의 수단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공론의 무대에 서는 출발점. 조혜영 시인의 용기 있는 결단을 지지할 뿐만 아니라 그 고통의 심연을 드러내주어야 합니다. '고 박영근 시인 성폭력 사건'이라는 명료한 규정으로부터 문제 해결의 수단을 내와야 합니다.

3. 더듬더듬 해답을 찾아가는 몸짓들을 보고 싶습니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치유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요?

저는 여성들이 자신의 상처와 피해를 표현할 언어를 갖지 못했던 시기, 이 땅에 성폭력 개념 자체가 없었던 시대를 알고 있습니다. 또한 피해 생존자와 작은 공동체들의 고통스럽고 끈질긴 투쟁으로 이 땅에 성폭력 개념이 구성되고 확장되어온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저도 이 반성폭력 운동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살고 투쟁하며 시를 써오는 동안 가장 소중하고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피해 생존자의 고통을 제 안에 들여 앓음으로써 제 삶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있었습니다. 입으로는 혁명을 이야기하면서 일상은 반혁명이었던, 정치적 기형의 삶을 겨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조금은 더 인간다워질 수 있었습니다.

'고 박영근 시인 성폭력 사건'은 과거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이 뒤엉켜 있습니다. 박영근 시인이 사망했기 때문에 원 사건은 해결되지 않은 성폭력 사건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조혜영 시인도 살기 위해서 잊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상처가 덧나고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시 「미투」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그의 문학을 연구하고 그의 문학상을 만들어 후배들을 양성하고 양지바른 공원에 시비를 세워 해마다 그를 기념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꽃다발을 들고 시비 앞에 줄지어 서서 활짝 웃고 그의 시비 앞에 묵념하고 그의 시로 만든 노동가를 목청껏 부르며 시대의 진정한 노동자 시인으로" 박영근 시인을 칭송하는 것이 그녀가 보기엔 기만과 허위였기 때문입니다. 그 기만과 허위를 매년 목격하는 것이 그녀의 일상을 파괴하는 고통의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고통을 헤아리는 자리에 문학은 있었고, 덧난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이 여전히 문학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해야 하는 일은 덧난 상처가 아물 수 있도록 그녀의 고통을 헤아리고 사려 깊게 배려하는 것입니다. 시인인 제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박영근 작품상을 반납함으로써 그녀의 용기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혜영 시인의 시집 『그 길이 불편하다』를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이 있습니다. 모든 일에, 세상을 보는 시선이, 참 순정한 사람이구나. 박영근 시인이 훼손한 "시대의 진정한 노동자 시인"으로 살아내기 위해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전투를 치르고 있구나. 그리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인데, 조혜영 시인이 자신의 고통을 드러냄으로써 시인 조성웅의 명예도 회복시키려 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참 고맙고 고마운 일입니다.

조혜영 시인에게 곁을 내주면서 맞이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 있습니다. 제가 반성폭력 운동에서 경험했던, 피해 생존자를 향한 가혹하고 잔인한 말과 행동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미 부끄러움조차 사라진 시대에 어떤 말과 행동이 비수로 날아올까 긴장됩니다.

성폭력 사건이 고발되었을 때, 누구나 당황하고 안절부절못했습니다. 가해자들이 믿고 신뢰하던 대표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충격이 가라앉기 시작하면 피해 생존자의 상처보다 자기 이해관계가 먼저이고 피해 생존자의 고통보다 조직의 안위가 먼저였습니다. 예외 없이 가해자 살리기 호위무사들이 등장하고 피해 생존자에 대한 체계적인 비난이 시작되었습니다.

비난의 목적은 단 하나, 피해 생존자를 고립시키고 지쳐 쓰러져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노동자 투쟁 앞에 피해 생존자의 고통은 침묵하고 참아야 하는 것으로 강제되었고, 조직 방어 논리 앞에 피해 생존자의 외침은 빠르게 축출되어야 했습니다.

예상하건대, "윤석열을 탄핵해야 하는 엄중한 정세에 조중동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짐짓 문단을 걱정하는 듯한 자들의 말을 경계합니다. 피해 생존자의 목소리를 삭제하려는 의도가 뻔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문단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정녕, 우리 스스로 잘못을 드러내고 성찰하여 극복하는 수단을 함께 찾음으로써 적들의 공격과 조롱에 맞설 수는 없는 것입니까? 그리하여 이 자본주의와 다르게 살기 시작함으로써 적들을 부끄럽게 하고 두렵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까?

아, 정말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치유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요?

30년이 넘는 지난 반성폭력 운동의 성과로 '성폭력 사건 처리 규정'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매뉴얼을 과신하거나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규정은 만능키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의 경험을 종합해 피해 생존자의 치유를 지원할 뿐만 아니라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한, 미완의 규정이기 때문입니다.

피해 생존자의 시간에 밀착해 섬세하게 돌보지 않으면 정무적이고 사무적인 사건 처리 과정, 치워야 할 물건처럼 서둘러 치워버리는 형식적인 과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피해 생존자의 시간과 분리되어 그녀의 일렁이는 다층적인 감각으로부터 멀어지고 피해 생존자의 고립감은 깊어집니다. 집행 단위와 피해 생존자 사이에 균열이 발생하고 서로 상처를 더하기도 합니다. 저는 '성폭력 사건 처리 규정'에 따라 피해자의 요구를 반영하고 사건 처리 과정을 다 밟았다고, "자 이제 다 치유됐습니까?"라고 물을까봐 겁이 납니다. 치유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피해 생존자가 관계망 내에서 더 이상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안전지대, 정서적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공동체가 구성되어야만 치유는 지속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치유의 공동체는 관계의 바닥을 뒤집어엎는 집단적 성찰을 통해서만 오겠지요. 훈육된 습성을 끊어내기 위한 고통스런 투쟁의 단계를 거쳐야만 도달할 수 있는 드물고 귀한 관계론이겠지요. 쉽지 않겠지요. 그렇다고 포기하겠습니까? 조혜영 시인의 치유를 바란다면 우리 스스로가 먼저 변해야 합니다.

'고 박영근 시인 성폭력 사건' 공론화 이후 문단 내에서 작지만 귀한 공동체가 구성될 수 있을까요? 저는 함께 가보자고 제안하고 있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소위 문단이라는 곳에 속해본 적이 없고, 또 조혜영 시인이 거주하는 인천 지역에서의 관계망을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묻고 싶습니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치유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요?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치유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가요?

저도 정답을 모릅니다. 다만 피해 생존자의 곁에서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더듬더듬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더듬더듬 해답을 찾아가는 몸짓들을 보고 싶습니다. 알았으니 미안하고 몰라서 더 미안하다고 조혜영 시인을 안아주고 싶습니다. 문자가 아닌 우리가 촉감하는 '시'가 되고 싶습니다.

올해는 김남주 시인 30주기입니다. 김남주 시인은 제게 "혁명하는 사람, 그가 시인"(김남주,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창작과비평사, 1995, p. 204)이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젊은 날, 이 가르침을 따라 살았습니다. 나이 들어 낡아가고 있지만 조혜영 시인의 곁을 지키는 것이 제가 지금 행하고 있는 하나의 혁명입니다.

우리들의 치유 보고대회

"언제 시골 가면 제가 사찰요리 잘하고 좋아하니 저희 집에서 밥 한번 대접할게요."

조혜영 시인이 말하는 '시골'은 우리 집과 지척이지요. 한 8년 전인가요? 조혜영 시인을 처음 만났습니다. 처음 만났는데 집으로 초대해 강원도식 막장[된장찌개]으로 차려진 밥상을 내주었어요. 제게 조혜영 시인은 따뜻한 시골밥상 같은 분입니다.

조혜영 시인이 밥 한번 대접하는 자리, 전 치유 보고대회라고 부르고 싶어요. 사찰음식으로 정갈하게 차려진 치유 보고대회, 두런두런 맛나는 대화로 기쁘게 맞이하고 싶습니다.

'고 박영근 시인 성폭력 사건' 공론화 과정에서 조혜영 시인과 더 많은 이들이 우정으로 맺어져 초대장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