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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이 느끼는 '통증의 비밀' 밝혀졌다

IBS,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기반으로 '뇌의 통증 정보 통합 메커니즘' 규명

등록|2024.09.23 15:08 수정|2024.09.23 16:25
우리 몸이 '통증'을 느낄 때, 뇌의 어느 영역이 활성화되는지를 넘어서 통증 요인들이 어떻게 통합돼 우리가 통증을 경험하는지 그 비밀이 밝혀졌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 노도영)은 23일 "뇌과학 이미징 연구단 우충완 부단장(성균관대 글로벌바이오메디컬공학과 부교수)과 유승범 참여교수(성균관대 글로벌바이오메디컬공학과 조교수) 공동연구팀이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unctional MRI, fMRI)'으로 측정한 뇌 활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뇌가 통증 정도에 대한 기대치와 실제 자극의 세기를 어떻게 통합하는지 규명했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통증'이란 외부 자극에 대한 단순한 신체적 반응이 아니라 생물학적·심리학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험이다. 통증의 강도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자극의 세기뿐만 아니라 자극이 얼마나 아플 것인가에 대한 기대치에도 영향을 받는다.

기존 연구에서는 통증 요인들이 각각 뇌의 어느 영역을 활성화하는지를 밝혔지만, 이 요인들이 어떻게 하나의 통증 경험으로 통합되는지는 연구를 통해 알려진 바가 없었다.

뇌의 활성화 정도를 표상하는 공간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통증 정보의 보존과 통합A는 뇌의 활성화 정도와 이것이 어떻게 공간상에서 표상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A의 왼쪽은 fMRI 복셀(fMRI로 촬영된 뇌 영역의 단위) 3개의 시간에 따른 활성화 정도를 나타내고, 오른쪽은 각 복셀들의 활성화 정도가 축이 되어 3차원 공간상에서 표시된 결과이다. 왼쪽의 숫자는 오른쪽 공간상에서 같은 색의 점으로 표현했다. B의 왼쪽에서 기대 하위 공간은 통증에 대한 기대치 정보를, 자극 하위 공간은 통증에 대한 자극의 세기 정보를 보존하는 하위 공간을 나타낸다. 네트워크 복셀들의 활성화 정도를 각각의 하위 공간에 투사시키고, 그 정보들을 기반으로 각 네트워크가 두 정보를 보존 또는 통합하는지를 연구했다. 결과적으로 낮은 피질계층 영역에서는 두 정보가 모두 보존됐지만 피험자들의 통증 보고가 재구성(통합)되지 않았고, 높은 피질 계층 영역에서는 두 정보에 대한 보존과 통합이 모두 일어났다. ⓒ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이에 공동연구팀은 우선 '통증 요인'들이 통합되는지를 확인하고자, 피험자들에게 앞으로 주어질 열 자극(통증 자극)이 얼마나 아플지 예측하게 했다. 이후 피험자의 팔뚝에 열 자극 기기를 부착해 다른 강도의 자극을 전달하며 fMRI로 뇌 신호를 측정했다.

그 결과, 같은 자극의 세기에도 '통증이 클 것'이라고 예상한 피험자가 그렇지 않은 피험자보다 더 아프다고 보고했고, 통증에 대한 기대치와 자극의 세기가 통합돼 통증을 느낀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통증 예측'과 '외부 자극'이 통합돼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연구팀은 통증 정보가 뇌에서는 어떻게 통합되는지 밝히기 위한 가설을 세웠다. '통증 정보가 통합되려면 일단 예측과 자극 정보가 보존돼야 한다'는 전제하에, 보존과 통합이라는 과정에 중점을 뒀다.

하위 공간 내 패턴을 기반으로 재구성한 통증 보고와 실제 피험자 통증 보고의 비교시각 네트워크(낮은 층위의 피질계층)와 변연계(높은 층위의 피질계층) 네트워크에서의 결과. 각 행 왼쪽부터 기대 하위 공간에서의 시간에 따른 뇌 패턴, 자극 하위 공간에서의 시간에 따른 뇌 패턴, 그리고 재구성된 통증 보고와 실제 통증 보고를 비교한 결과를 나타낸다. 기대 하위 공간과 자극 하위 공간에서는 각 기대치와 자극의 세기에 대한 정보를 보존하고 있었다. 마지막 열을 살펴보면 시각 네트워크에서는 기대치에 대한 차이가 있지만, 변연계 네트워크에서는 기대치와 자극 세기 정보 모두 성공적으로 재구성됨을 보여준다. ⓒ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또한, 뇌를 '피질계층(cortical hierarchy)'별로 나눠 접근했다. 연구팀의 가설은 감각 영역과 같은 낮은 층위의 영역에서는 두 정보 중 하나만 보존돼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지만, 연합 영역과 같은 높은 층위의 영역에서는 모두 온전히 보존 및 통합된다는 것이었다.

연구팀은 "뇌는 단순한 감각 자극에서부터 복잡한 인지 과정에 이르기까지 정보를 단계적으로 처리하며, 각 단계를 처리하는 뇌의 조직 구조를 '피질계층'이라고 한다"며 "낮은 층위의 뇌 기능 네트워크(감각 및 운동 영역)에서는 감각 정보를 처리하고, 높은 층위의 네트워크(연합 영역)로 갈수록 여러 정보를 통합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고 여겨진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뇌의 피질계층별로 나누어 fMRI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가설과 달리 모든 피질계층의 뇌 영역에서 예측과 자극 정보를 모두 보존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다만, 통증 정보의 통합은 오직 높은 층위의 영역에서만 이루어졌다.

특히 연구팀은 "피질계층 영역별로 각 통증 정보를 보존하는 하위 공간이 존재했고, 높은 층위의 영역에서는 각 하위 공간에서 나오는 정보 패턴들의 합과 실제로 피험자들이 보고한 통증의 양상이 일치했다"며 "이로써 통증 정보가 단순히 뇌의 특정 영역에서 처리되는 것이 아니라 높은 층위의 영역에서 통합돼 통증 경험을 형성함을 규명했다"고 강조했다.

기초과학연구원은 이번 연구성과에 대해 전기생리학 방법론과 뇌 전체 촬영이 가능한 fMRI를 결합해 뇌 전체 수준에서의 통증 정보 처리 메커니즘을 규명했다고 평가했다. 나아가 기존 연구는 주로 특정 뇌 영역과 통증 정보의 연관성을 밝히는 데 그쳤다면, 이번 연구는 통증 정보들이 어떻게 통합되는지에 대한 수학적 원리를 밝혔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 사진 왼쪽부터 우충완 IBS 뇌과학 이미징 연구단 부단장(교신저자), 유승범 IBS 뇌과학 이미징 연구단 참여교수(교신저자), 김정우 IBS 뇌과학 이미징 연구단 연구원(제1저자). ⓒ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우충완 부단장은 "이번 발견은 통증의 신경과학적 이해를 확장하는 중요한 기틀을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만성 통증 치료의 새로운 전략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고 강조했다.

또 유승범 교수는 "뇌 활성화 패턴의 기하학적 정보를 이용해 각기 다른 정보의 통합 메커니즘을 밝힌 혁신적 연구"라고 자평했다.

나아가 연구팀은 향후 연구 계획에 대해 "AI(인공지능)의 시대다. 이미지를 구별하는 것은 이미 옛이야기가 됐고, 코딩은 물론 사람과 대화까지도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면서 "계산신경과학 분야에서는 이런 AI가 사람의 뇌와 어떻게 비슷하고 다른지를 연구함으로써 뇌가 처리하는 지각 및 인지 기능의 본질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지만, 통증이나 감정에 기저가 되는 뇌의 메커니즘에 관한 연구는 아직 갈 길이 멀기에 AI를 활용한 모델들로 결국엔 1인칭 체험(first-person experience)인 통증과 감정에 대한 뇌의 수학적 메커니즘의 개인차를 연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이번달 12일자 온라인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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