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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으로 당한 고문... 스크린에 담긴 끔찍한 진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고 김근태 의장 수기 영화화한 < 남영동 1985 >

등록|2024.09.25 10:55 수정|2024.09.25 10:55
서울 도봉구 쌍문1,3동과 창동에 살았거나 현재 사는 주민들 또는 1980년대 한국 정치와 민주화 운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3선 국회의원이자 43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고 김근태 의장을 기억할 것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재학 시절부터 학생운동을 하면서 고난의 청년기를 보낸 김근태 의장은 1983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의 초대 의장을 역임하는 등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산증인'으로 활동했다.

1995년 초 재야인사들과 함께 민주당에 입당해 부총재를 맡으면서 정치를 시작한 김근태 의장은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도봉(갑) 지역구에 당선되면서 국회에 입성했다. 김근태 의장은 2002년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고 2004년까지 내리 3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김근태 의장은 1980년대에 당한 고문 후유증으로 20년 넘게 고생하다가 지난 2011년 12월 별세했다.

김근태 의장은 전태일 열사와 문익환 목사, 박종철 열사 등 대한민국 민주화에 큰 역할을 했던 인물들과 함께 모란공원 내 민주 열사 묘역에 안장됐다. 그리고 김근태 의장이 1980년대 중반 군부독재세력으로부터 모진 고문을 받았던 이야기는 지난 2012년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정지영 감독이 연출하고 박원상과 이경영, 김의성 등이 출연한 사회고발 영화 < 남영동 1985 >였다.

피고문자를 가장 수치스럽게 만드는 고문

▲ 가벼운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던 박원상은 < 남영동1985 >를 통해 '인생연기'를 선보였다. ⓒ 씨너스엔터테인먼트(주)


1990년대 <남부군>과 <하얀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등을 통해 1990년대 초·중반 충무로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으로 활동하던 정지영 감독은 1998년 <까>를 끝으로 신작을 선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공백기를 가진 정지영 감독은 2011년 <부러진 화살>을 통해 청룡영화상 감독상과 함께 345만 관객을 동원하며 건재를 과시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부러진 화살>을 통해 사회고발 영화의 가능성을 발견한 정지영 감독은 2012년 1980년대 중반 군부 독재시대에 자행되던 고문 사건을 정면으로 고발한 신작 < 남영동 1985 >를 선보였다. 공교롭게도 < 남영동 1985 >는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맞붙은 제18대 대통령 선거 27일 전에 개봉했다. 하지만 < 남영동 1985 >는 전국 33만 관객에 그치며 <부러진 화살>만큼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 남영동 1985 >를 감상한 관객들은 이 영화가 고 김근태 의장과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모티브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실제로 박원상이 연기한 주인공 김종태는 김근태 의장의 이름과 한 글자만 다르고 이경영이 연기한 이두한 역시 이근안이 연상되는 이름이다. 심지어 우희진이 특별 출연했던 김종태의 아내 인재은의 이름은 김근태 의장의 아내인 인재근 전 의원의 이름과 매우 흡사하다.

< 남영동 1985 >는 영화 대부분이 고문 장면으로 이뤄져 있다. 특히 김종태는 영화 초반부터 옷을 빼앗기고 대부분의 장면에서 속옷 또는 알몸 차림으로 고문을 받는다. 심지어 몇몇 장면에서는 박원상의 엉덩이가 노출되기도 한다. 15세 관람가 등급의 영화에서 굳이 그런 장면까지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는 실제 알몸 노출을 통해 수치스러움을 주기 위한 고문방법이었다.

< 남영동 1985 >의 마지막 장면은 세월이 흘러 참여 정부의 장관이 된 김종태가 감옥에 있는 이두한을 면회 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엔딩 크래디트의 자막이 올라가면서 그 시절 남영동에서 고문을 당했던 사람들의 인터뷰가 나온다. 그중에는 전·현직 국회의원을 비롯해 정치인, 회사원, 어민, 교수 등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그 시절을 매우 끔찍하게 기억했다.

'감초 연기 대가' 박원상의 인생작

▲ < 남영동1985 >는 1985년 고 김근태 의장을 체포해 고문했던 사건을 재구성한 사회고발 영화다. ⓒ 씨너스엔터테인먼트(주)


< 남영동 1985 >에서 김근태 의장을 모티브로 한 김종태 역은 박원상이 맡았다.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한 박원상은 대학 시절이던 1993년 3인조 보컬그룹 블루스라는 팀을 결성, 대학가요제에 참가해 은상을 수상했다(당시 대상을 수상한 팀은 김동률이 속한 전람회였다). 박원상은 대학 졸업 후 강신일, 이성민, 정석용, 문소리, 이희준 등 연기파 배우들을 대거 배출한 극단 차이무에 들어가 여러 연극에 출연하면서 착실하게 커리어를 쌓았다.

2000년 영화 <킬리만자로>에서 박신양의 부하로 출연한 박원상은 2002년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여자관계가 복잡한 정석을 연기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대중적으로 무명에 가까웠던 박원상은 2004년 최동훈 감독의 <범죄의 재구성>에서 통칭 '제비'로 불리는 김철수 역을 맡았다. 박원상은 <범죄의 재구성>에서 수수한 인상으로 많은 여자들에게 사기를 치는 캐릭터를 잘 소화했다.

<범죄의 재구성>을 통해 관객들에게 익숙한 배우로 떠오른 박원상은 <알포인트>에서 취사병 출신의 수색대원 마원균 병장, <댄서의 순정>에서 '국민 여동생' 문근영의 뺨을 때리는 마상두를 연기했다. 2007년 <화려한 휴가>에서는 허풍 강한 택시기사 인봉 역의 박철민과 함께 유쾌한 연기를 보여주다 도청 전투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고 전사하는 시민군 용대 역을 맡았다.

여러 영화에서 감초 연기를 많이 보여주던 박원상은 2011년 정지영 감독의 복귀작 <부러진 화살>에서 '국궁테러사건'의 용의자 김경호 교수(안성기 분)의 대리인 박준 변호사를 연기했다. 그렇게 정지영 감독과 인연을 맺은 박원상은 2012년 정지영 감독의 차기작 < 남영동 1985 >에서 김근태 의장을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 김종태 역을 맡아 온갖 고문 장면들을 직접 연기하는 열연을 선보였다.

2013년 천만 영화 < 7번 방의 선물 >에 출연한 박원상은 201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TV로 활동 범위를 넓혀 <힐러>, <동네변호사 조들호>, < W > 등 많은 드라마에 출연했다. 드라마 <연모>에서 배윤경이 연기한 소은의 아버지, <그 해 우리는>에서 최우식이 연기한 최웅의 아버지를 연기한 박원상은 지난해 고재영 중장 역을 맡은 영화 <서울의 봄>을 통해 커리어 두 번째 천만 영화에 출연했다.

이경영 만나 더욱 끔찍해진 '고문 기술자'

▲ 이경영은 < 남영동1985 >에서 '고문 기술자' 이근안을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 이두한을 연기했다. ⓒ 씨너스엔터테인먼트(주)


악역이 관객들의 미움을 받는 명연기를 보여줘야만 영화가 빛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통칭 '장의사'로 불리는 고문 기술자 이두한 역을 맡은 이경영의 연기는 눈부셨다. 당시 이경영은 2011년 5편, 2012년 6편, 2013년 5편, 2014년 9편의 영화에 출연할 정도로 다작을 하던 시절이었는데 < 남영동 1985 >는 손에 꼽을 정도로 이경영의 비중이 큰 작품이었다.

< 남영동 1985 >에서 이두한은 젠틀한 목소리로 김종태를 안심시킨 후 누구보다 잔인하고 악독한 고문으로 김종태에게 고통을 준다. 그리고 고문에 의해 진술서를 쓴 김종태가 진술을 번복하려 하자 이성을 잃고 김종태에게 협박하면서 또다시 모진 고문을 가한다. 이두한의 모티브가 된 이근안은 2008년 목사안수를 받은 후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똑 같이 일할 것"이라는 망언을 하기도 했다.

<부산행>과 <미스터 션샤인>, <슈룹> 등에서 인상적인 악역 연기를 선보였던 김의성은 < 남영동 1985 >에서도 남영동 대공 분실의 고문 기술자 중 한 명인 강과장을 연기했다. 강과장은 김종태가 고통에 허덕이는 순간에도 라디오로 프로야구 중계를 들으면서 태연함을 유지했다. 문성근은 강과장이 주도했던 조사 결과가 성에 차지 않자 이두한을 부르는 남영동 팀의 리더 윤사장 역으로 특별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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