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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교가 작사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조문학의 큰별 가람 이병기평전 15] 그의 지나온 삶과 연구성과에 대한 종합 평가였을 것이다

등록|2024.09.28 20:36 수정|2024.09.28 20:36

▲ 현제명이 작곡한 서울대학교 교가 악보. ⓒ 서울대 기록관


파란곡절을 겪으며 청절한 지식인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를 한 시인의 인상기에서 당시의 모습을 살피게 한다.

내가 처음 가람 댁을 찾은 것은 서울 계동에 있던 작은 한옥이었다.

1950년 초봄이던가 싶은데 중앙학교로 오르는 길은 눈이 다져진 빙판이었다. 건넌방인 서제는 낮인데도 어두컴컴했다. 조그마한 앉은뱅이 책상 앞에 마고자 차림에 주기가 약간 도는 불그레한 얼굴, 반백의 콧수염, 먹냄새 풍기는 벼루와 붓, 놋쇠화로, 서점처럼 사다리 모양의 서가에 층층으로 쌓인 고서더미만 아니면 당대의 대학자요 대시인이라는 풍모는 찾아볼 길 없는 소박한 시골 선비의 모습 그대로였다.

당호가 매화옥(梅花屋)일 뿐 전통적인 소규모의 서울식 한옥의 손바닥만 한 뜰에는 나무 한 그루 꽂을 데 없고, 다만 방안의 난초 분 한두 개가 그 주인을 말해 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 때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는 도무지 생각나지 않으나, 그 '소박한 시골 선비의 풍모'는 가람의 명성이 더욱 높아진 이후에도 그 댁을 수월하게 드나들 수 있는 안도감을 나에게 주었던 것이다. (주석 1)

그는 무척 부지런했다. 한글이나 민족문화와 관련한 초청이 있으면 전국 어느 곳이나 가리지 않고 출강하였다. 새나라의 국민들에게 우리글의 우수성과 민족문화의 자부심을 일깨우려는 '주시경 정신'의 발로였다. 그리고 대종교의 집회에도 열심히 참석하였다.

1949년 그에게 크게 보람 있는 일이 있었다. 서울대학 당국으로부터 〈서울대학교가〉를 작사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건립 초기이기는 하지만 이 대학 안에는 재재다사의 교수들이 있었으나, 가람에게 교가를 요청한 것은 그의 지나온 삶과 연구성과에 대한 종합 평가였을 것이다. 작곡은 현제명이다.

서울대학교 교가

가슴마다 성스러운 이념을 품고
이 세상의 사는 진리 찾는 이 길을
씩씩하게 나아가는 젊은 오뉘들
이 겨레와 이 나라의 크나큰 보람
뛰어나는 인재들이 다 모여들어
더욱 더욱 융성하는 서울대학교

단일해 온 말을 쓰는 조촐한 겨레
창조하기 좋아하는 명석한 머리
새 문화와 새 생명을 이루어 가며
즐겨 하고 사랑하는 우리의 조국
뛰어나는 인재들이 다 모여들어
온누리에 빛을 내는 서울대학교.

주석
1> 장순하, <국문학자 이병기>, <잊을 수 없는 스승들>, 27쪽, 조선일보사, 1987.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조문학의 큰별 가람 이병기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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