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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희망의 노래를 부르자

등록|2024.09.24 14:32 수정|2024.09.24 14:32
주말이다. 예상치 않은 폭우로 대전 천 변이 넘쳐 난다. 창밖엔 뭐가 그리 서러웠는지 하늘 눈물이 창문을 타고 가을 비 되어 흐른다. 평소 같았으면 일찌감치 저녁밥을 먹고 천 변을 걸었을 터인데, 걷기를 접고 하는 수 없이 핸드폰을 끌어안고 인터넷을 뒤적인다. 우연히 색 바랜 사진 한 장이 눈에 띈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구인 광고판을 목에 걸고 길거리를 헤맨 빛바랜 사진이다. 자세히 보아하니 1930년대 미국 사람들의 절망적인 모습이다.

미국도 한때 폭발적인 실업률로 의식주는커녕 피 죽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시절이 있었다. 대공황이다. 누구 할 것 없이 희망이 없어 보였다. 거리엔 걸인들로 넘치고 그나마 남아 있던 꿈들이 하나둘 사라져갈 무렵, 지폐는 길거리에 나 뒹구는 낙엽 같은 신세가 되어갈 무렵, 모두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무렵, 1931년 제임스 트루슬로 애담스(James Truslow Adams)는 저서 <미국의 서사시(The Epic of America)>에서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외친다. 모두의 꿈이 산산조각 난 듯 보이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외친 것이다.

대공황의 처참한 경제난 탓으로 곳곳에서 식량 폭동이 일어나고 있을 무렵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꾼 것이다. 남녀노소, 흑인과 백인, 경영자와 노동자, 부자와 가난뱅이가 한데 앉아있는 도서관의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시장 정책도 꿈틀거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작동되는 경제 원리에서 벗어나 '보이는 손(정부)'이 개입하는 뉴딜 정책이 혜성같이 나타난다. 국책 사업 후버 댐이 건설되고 일자리가 창출된다. 당시 미 정부는 잉여 농산물을 매입하여 물가를 조절한다. 경제 패러다임 전환으로 경제가 살아난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꿈꾸었더니 현실이 된 것이다. 대공황이 한창이던 때에 희망을 노래한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아메리칸 드림이 가당키나 한가. 모두 마주한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진흙 땅속에서 핀 연꽃이 희망으로 보이듯 암울한 시기에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표현이 미 국민의 희망의 구호가 된 것이다.

1998년 한국 역시 외환 고갈로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지원을 받아야 할 정도로 경제 위기에 몰려 있었다. 그 무렵 박세리 선수는 LPGA 메이저 대회 US 여자 오픈 대회에서 맨발의 투혼으로 우승했다. 그의 우승은 외환 위기로 절망 속에 빠져있는 전 국민에게 커다란 희망을 안겨줬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희망의 불을 피운 것이다. 그 동력으로 전 국민이 금 모으기에 동참하는 등 함께 외환 위기를 조기에 극복했다. 우리는 외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타인에게 불씨를 붙여주었다고 나의 불빛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소중한 경험도 했다.

최근 의대 정원 증원 문제로 발생한 의료 대란 해결 실마리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언론 매체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여전히 '응급실 뺑뺑이'가 계속되고 있고 환자와 응급실 사이에 구조 대원의 '전화 뺑뺑이'도 심각한 것 같다. 국민은 국민대로 위급한 상황에서 제때 진료와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발만 동동 댄다. 특히 추석 명절 때 의료 대란을 염려했지만, 그나마 걱정만큼 큰 탈 없이 일단 지나간 것 같다. 다행스럽다. 의료인의 희생 덕일 것이다. 여전히 아쉽기도 하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때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 제안으로 뭔가 풀리는가 싶더니 감감무소식이다. 이것마저 의견 통합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각자 겉으로 내세우는 구실은 국민을 위한다면서 자신이 속한 진영 의견만이 관철되기를 바란다. 왜 그럴까? 간단히 말하면 서로 간 위치와 기대치가 다르고 지난 경험의 역사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 또한 모르지 않을 터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순진하게 다시 한번 촉구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로지 국민만을 바라보는 협의체 구성을 바란다.

우리 국민은 아엠에프(IMF) 외환 위기를 조기에 극복한 경험이 있다. 의료 문제 역시 곧 원만하게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의 노래를 부르자. 대공황 속에서 제임스 애담스가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외쳤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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