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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었는데… 언니가 자꾸 신경쓰인다

[2023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30] 영화 <나의 X언니>

등록|2024.09.24 18:04 수정|2024.09.24 18:04

▲ 영화 <나의 X언니>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삶이 짓눌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동안 잘 참아왔던 시간도 점점 더 견디기 어려워지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이다. 이때의 답답함은 굳이 감내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이 현재의 문제나 상황과 부딪힐 때 더 거세게 날뛴다.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져야 하거나 원인이라고 여겨지는 대상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때. 그 탓을 주변으로 돌리고자 하면 끝이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마음이 일단 발현하고 난 뒤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현재의 모양을 아직 제대로 받아들이거나 지지할 힘이 부족한 자신이기 때문이다.

영화 <나의 X언니>에 등장하는 중학생 2학년 소희(김시은 분) 역시 그런 인물이다. 회사에 나가 일하는 엄마는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그를 찾는다. 빨래하는 일부터 밥상을 차려 먹는 것까지. 엄마가 자리를 비운 집이 필요로 하는 일은 모두 소희의 몫이다. 한 살 많은 언니 소진(김민진 분)은 그럴 때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어떤 반응도 없이 소파에 앉아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을 뿐이다. 소진에게는 장애가 있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어렵다.

02.
"제가 언니 동생인 거 보배 언니한테 절대 말하지 마세요."

조현경 감독의 지난 작품들을 보면 중심이 되는 인물은 대체로 변하지 않는다. 대신 외부적 변화나 지금 구축되어 있는 관계나 세계에 발생한 작은 균열로 인해 강한 감정적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첫 작품이었던 <첫 담배>(2020)에서는 비흡연자라는 이유로 승진의 기회를 빼앗긴 뒤 담배를 구입하게 되는 주현이 등장하고, 다음 작품인 <다박골 옥례씨>(2022)에서는 철거로 인해 30년을 넘게 살아온 공간을 떠나야 하는 옥례씨의 마음이 그려진다. 작품의 성격이나 주어진 상황은 모두 다르지만, 양쪽 모두 외부적 영향이 아니었다면 자신들이 머무는 공간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잘 나아갔을 인물들이다.

이런 경향은 이번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소희에게 친언니 소진은 들키고 싶지 않은 존재다. 특히, 학교에서 친하게 지내는 보배(여아현 분) 언니에게는 더더욱 알리고 싶지 않다. 소진과는 다르게 화장이나 패션에도 일가견이 있고 멋진 오빠들과도 어울리며 자신의 우상과도 같은 존재여서다. 실제로 영화는 어느 지점까지 소진을 집 바깥으로 내보내지 않는다. 그런 소희의 마음이 반영된 설정임이 분명하다(소희가 스스로 소진의 존재를 밝힌 뒤에야 그는 바깥에 서 있을 수 있게 된다).

문제가 생기는 것은 이때부터다. 자신의 자랑과도 같은 보배 언니가 가장 감추고 싶은 존재였던 친언니 소진의 같은 반 옆자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불편한 진실, 소희의 현실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 영화 <나의 X언니>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03.
만약 소진과 보배가 가까운 존재가 (친한 사이는 절대 아니지만) 아니었다면 소희는 분명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어느 정도의 불만을 감내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 그렇듯이 친언니 소진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엄마의 요구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보배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이상을 만들어가는 것으로도 현실에 대한 인내는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이는 <첫 담배>에 등장했던 주현이나 <다박골 옥례씨>에 놓인 옥례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변하지 않는다'는 표현을 앞서 했다.

그래서 보배의 입으로부터 소진의 뒷담화가 처음 시작되는 순간은 소희에게 균열이 시작되는 정확한 순간이 된다. 자신의 선망과도 같은 존재로부터 듣게 되는 혈육의 험담. 그것도 여성의 가장 내밀한 곳으로부터 시작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을 수치와 더러움이라 듣게 되는 장면 속에서 그는 양쪽 모두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숨기고 싶은 것과 타인이 비난하는 일 사이의 거리감이 주는 보배에 대한 분노와 따르고자 했던 대상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나 듣게 만드는 소진에 대한 짜증이다.

집으로 돌아온 소희는 그동안 자신이 견뎌왔던 시간의 무게를 언니 소진을 향해 가감 없이 내던진다. 여전히 소파 위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언니를, 지금껏 잘 견뎌왔던 언니에 대한 감정을 이제 막 시작된 균열이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때 카메라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두 사람이 아닌 정리되지 못한 채 엉망이 된 냉장고의 음식이다. 그동안 소희가 맡아왔던 일의 무게이자 그녀가 아니면 치워질 수 없는 가족의 현실을 감독은 담담히 보여준다.

▲ 영화 <나의 X언니>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04.
"그러고 보니까 닮았다."

아직 해소되지 않은 감정과 짓눌려왔던 삶의 무게를 엄마를 향해 쏟아내는 장면은 예측할 수 있는 플롯이지만, 영화가 소희의 이야기를 매듭짓는 과정은 꽤 인상적이다. 언니 소진의 존재에 대해 보배에게 직접 고백하는 장면이다. 소진의 존재나 소진과 보배의 관계, 그리고 보배가 가진 장애 학생에 대한 그릇된 태도는 소희가 어떻게 수정하거나 개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남는 유일한 선택지는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하고 이어지는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물론 자신도 어느 정도는 안다. 자신이 그런 이야기를 했을 때 보배가 어떤 태도를 보일지. 가장 가깝게 지냈던 인물에 대해, 닮고 싶어 했던 존재에 대해 그 정도도 모를 리 없다. 소희에게 이 고백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 우리 집의 모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처음으로 소진은 집이 아닌 공간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동생과 함께 하교하는 장면이다. 소희는 여전히 언니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어 한다. 어떤 선언을 하고 다짐을 한다고 해서 그렇게 곧바로 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보배는 소희의 고백 앞에서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이 닮았다며 웃는다. 마치 재밌는 일이라도 생긴 듯 친구들에게까지 알리겠다고 말한다. 자매인 두 사람이 닮은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스운 일은 더더욱 아니다. 참을 수 없는 미소가 지어지는 것은 낮잠을 청하는 자매의 누워 있는 모습마저 닮아있어서다.

이 작품 속에서 언니 앞에 들어가는 단어가 참 많이도 변했다. 어떤 단어가 놓이더라도 변하지 않는 사실 하나는 그가 나의 언니라는 것이다. 소희의 언니는 바로 소진이다.
덧붙이는 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설립하고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운영 중인 인디그라운드(Indieground)는 2024년 2월 15일(목)부터 총 18개의 큐레이션을 통해 ‘2023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선정작 92편(장편 22편, 단편 70편)을 소개/상영할 예정입니다. 열다섯 번째 큐레이션인 '막막함을 풀어 보기'는 9월 16일부터 9월 30일까지 보름간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회원 가입 후 무료로 시청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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