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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적나라하다... 영국 아이돌의 K팝 연습생 체험기

[리뷰] BBC 리얼리티쇼 <메이드 인 코리아 : 케이팝을 경험하다>

등록|2024.09.27 10:47 수정|2024.09.27 10:47

▲ <메이드 인 코리아, 케이팝을 경험하다>(Made in Korea: The K-Pop experience) 관련 이미지 ⓒ BBC


지난 8월 13일부터 영국 국영방송 BBC에서 방영하는 6부작 리얼리티쇼에 푹 빠져 있다. 제목은 <메이드 인 코리아, 케이팝을 경험하다>(Made in Korea: The K-Pop experience)다. 지역 예선 과정을 거쳐 뽑힌 다섯 명의 영국 보이그룹 멤버들이 100일 동안 K팝 연습생으로서 서울 현지 경험을 담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브리티쉬 갓 탤런트(BGT)에 나오는 한국인 아티스트들은 봐왔지만, 데뷔를 앞둔 영국 보이그룹이 서울에서 케이팝(K-Pop)을 배우는 모습을, 그것도 영국 국영방송을 통해 시청하다니 시대 변화가 실로 놀랍다.

이번 기획은 수많은 케이팝 스타들을 배출한 에스엠 엔터테인먼트(SM Entertainment)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북미법인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TV 시리즈쇼 <엑스팩터>(X factor), <갓 탤런트>(Got talent)를 기획한 전설의 TV 프로듀서가 공동 창업한 영국 엔터테인먼트 기업 '문 앤 백(Moon and Back)'과 함께 기획한 프로젝트다. 케이팝 스타일을 잘 녹여낸 영국 보이그룹을 '세계적인 스타' 로 발돋움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일반적으로 케이팝 스타는 5-6년간의 트레이닝을 거친다고 알려져 있다. 영국 보이그룹의 100일은 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지만, 영국에 없는 한국 그룹의 큰 장점을 배우고자 한다. 그들이 뽑는 케이팝의 장점은 팀워크를 통한 정확한 안무연출의 합, 아티스트의 발성 차이, 최고의 라이브 공연을 통한 관객과 아이돌 간의 팬덤 문화 등을 꼽는다.

2023년 공개 오디션을 통해 뽑힌 다섯 명의 멤버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댄스와 발레 전통교육을 받은 블레이즈, 부모로부터 어려서부터 음악 활동 영향을 받은 덱스터, 이미 쌍둥이 형제와의 700만 팔로워를 보유한 틱톡 스타 제임스, 댄싱스타인 엄마의 영향으로 일찌감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올리, 해리포터와 같은 대작 무대디자이너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무대 연극과 댄스 경력을 가진 리즈. 갓 20세 전후의 성인들로 세계적인 보이그룹을 꿈꾸는 전도유망한 영국 젊은이들이다. 이들의 그룹명은 '디어엘리스'(Dear Alice)다.

한국 연습생 트레이닝 경험한 영국 보이그룹 "지치고 힘들다"

"이렇게 할 거라면 굳이 한국에까지 올 필요 없었어."
"이런 무대는 유치원생도 할 수 있는 수준이야. 안무라고도 할 수 없어."
"음정도 못 맞추면서 무슨 가수가 되겠다는 거지? 그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거야!"

이 프로젝트에는 영국 <브리티시 갓 탤런트>의 독설가로 유명한 사이먼 코월도 울고 갈 에스엠의 인재양성센터 디렉터 윤희준이 있다. 멤버들을 탈락시킬 수 있는 권한을 쥔 그녀는, 매주 평가의 시간을 통해 팀의 개선점을 날카롭게 지적해 다섯 멤버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분명하고 솔직한 지적, 트레이닝 과정에 대한 칭찬보다는 부족한 부분에 대한 끊임없는 담금질에 영국 청년들은 크게 동요하기 시작한다. 트레이닝 과정에서 자폐증이 있어 환경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소아당뇨 증상으로 매일 주사를 맞고 쉽게 지치기도 한다. 자존감이 낮아 쉽게 좌절하기도 하고 반대로 자존감이 높아 코칭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해 힘들어하기도 한다.

▲ 케이팝 스타일로 세계 정복을 꿈꾸는 영국 보이그룹 '디어앨리스' ⓒ BBC


에스엠은 연습생들에게 채찍질만 하는 것이 아니다. 보컬 트레이너를 비롯 안무, 발성, 패션, 심리상담까지 그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다각적으로 전문화된 시스템을 통해 각 멤버들을 아낌없이 서포트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윤희준 디렉터는 '재능' 못지않게 어떤 상황에서도 한계를 극복하는 '자기 수양'과 '회복 탄력성'을 강조한다.

동서양의 문화적인 차이점도 보여준다. 영국을 비롯한 서양의 교육은 개인의 자신감을 길러내는 데 집중한다. 반면 한국은 배움에서 겸손함을 강조한다. 그렇게 때문에 작은 성취보다는 더 높은 목표에 도전하도록 매 순간을 고양하는 데 집중한다.

"이곳에는 열심히 노력한 것에 대한 칭찬이나, 격려, 보상이 별로 없어요. 내가 얼마나 이 무대를 즐겼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지요. '이번 퍼포먼스는 나쁘지 않았지만, 또 다른 점을 개선해라' 하는 다음 목표를 제시합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니 지치고 힘들어요."

한 그룹 멤버가 심리상담가와 나누는 대화 내용은, 한국의 엘리트 교육에서 오는 어려움을 잘 표현한 것 같아 인상에 남는다.

세계로 확장 모색하는 케이팝

프로그램 중간중간 쉬어가는 페이지처럼 서울의 명소들이 소개된다. 롯데타워와 그 일대, 남산타워 전경, 민속촌, 청년들의 숙소인 이태원, 홍대입구 젊은이의 거리 등 서울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의 가을 등 아름다운 자연문화환경도 매력적으로 담는다.

한국식 또래 술자리 문화에 웃고, 군대 문화 체험을 위해 멤버들이 함께하는 힘을 깨우친다. 씨름 경기에 나서는가 하면, 신내림 무당에게 사주를 보기도 한다. 해외 제작진이 한국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가 볼 수 있는 점도 흥미롭다.

▲ <메이드 인 코리아, 케이팝을 경험하다>(Made in Korea: The K-Pop experience) 관련 이미지 ⓒ BBC


회차가 거듭될수록 각 멤버들의 개인 기량의 성장과 함께 보이그룹으로서의 팀워크도 발전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잘 짜인 한 편의 성장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다.

해외 매니지먼트사 또는 음반사와 한국 연예기획사가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영미권 음반시장에서 데뷔하는 사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이브 미국법인과 미국 게핀레코드가 손을 잡고 만든 다국적 프로젝트 걸 그룹 '캣츠아이'(KATSEYE)가 지난 6월 미국 현지와 한국에서 데뷔해 활동 중이고, 제이와이피 엔터테인먼트(JYP Entertainment)와 유니버설 뮤직의 미국 라이센스 법인인 리퍼블릭 레코드는 2023년 'A2K'라는 미국 현지 걸그룹 선발 프로젝트를 진행, 'VCHA' 걸그룹을 올해 초 데뷔시켰다.

이제 케이팝은 한때의 유행을 넘어 세계적인 트렌드로의 확장을 모색하고 있다. 케이팝식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통한 신인 발굴 육성, 유니버설 뮤직과 같은 세계적 음반사 네트워크를 통한 마케팅은 서로 간의 장점을 활용한 윈윈(win-win)전략이 될 수 있다.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진화하는 케이팝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대목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와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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