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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철회하는 가족들의 속내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하고 싶은 사람들의 진심

등록|2024.09.26 09:20 수정|2024.09.26 09:20
"엄마는 나중에 혹시라도 연명치료 하지 않을 테니까, 그런 줄 알아."

"뭘, 그런 얘기를 하고 그래?"

어느 날 저녁, 밖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는지 엄마는, 퇴근하고 돌아온 내게 느닷없이 이런 말씀을 꺼내셨다. 당장은 별 얘기 아닌 척 그냥 지나쳤지만, 저녁 늦도록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자식이기 때문에, 그 한 마디 만큼은 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특히, 오래도록 유교가 이 민족의 근간이 된 나라에서 과연 자식된 도리로 이를 금세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반대로 내 자식이 그런 얘기를 먼저 꺼냈다면 아마도 크게 혼을 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 편으로는 내 욕심과 내 중심적 사고를 배제하고 냉철하게 생각해볼 필요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쉽게 수긍하기도 힘들다.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찾아서라도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자식인 내가 스스로 해야 할 도리라 여기기 때문이다.

▲ 가족들 반대로 사전연명치료의향서를 철회하는 이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 pixabay


가족 반대로 의향서를 철회하는 이들의 진심

DNR(Do Not Resuscitate, 소생거부)의 뜻을 담고 있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다. 차도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아 임종에 다다른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안락사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그리고 여기에 서명한 사람만 25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사실, 엄마는 당신을 위해서가 아닌, 자식을 위해 어렵게 꺼낸 이야기임을 잘 알고 있다. 늘 자식에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운동하고, 음식을 가려 드시고, 몸을 하나하나 챙기신다.

이것도 우연히 대화를 주고 받다 알게 된 사실이다. "엄마가 몸이 좋지 않으면 너희가 힘들잖니" 딱 그 한 마디 때문이었다.

그러다, 한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지난 5월 10일 <국민일보>에 보도에 따르면 "사전연명치료의향서를 철회하겠다"며 마음을 바꾸는 이도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자료는 <국민일보>가 보건복지로부터 입수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철회 현황'에 따른 것인데, 가벼운 마음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서명했다 철회한 이도 있지만, 가족들의 반발에 어쩔 수 없이 철회하는 이가 더욱 많다는 것이다. 가족의 말은 이렇다.

"왜 닥치지도 않은 '확정된 죽음'을 미리 받아들여야 합니까?"

이렇게 의향서를 제출했다가 철회한 건수는 2020년 469건에서, 2023년에는 925건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마지막에 철회하는 이도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올 3월부터 8월까지 남녀모두 그 수가 늘고 있다. 9월 25일 오후 5시 기준 256만 명을 넘어섰다. ⓒ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치료약이 너무 비싸도 고민... "어떻게 해야 하나"

63세 강종춘(서울 송파구)씨는 조만간 의향서에 서명할 생각이다. 그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것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죽음을 떠올리면 두려운 건 사실"이면서 "회생 가능성이 없다 해도, 막상 아프면 주변에 대한 애착이 많아져서 조금이라도 살아내려 노력하고 싶은 것이 진심이다. 가족이 더 힘든 것도 싫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정말 걱정되는 건, 치료약이 너무 비싸 가족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경우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라며 말 끝을 흐렸다.

설문 응답자 10명 중 8명 '조력 존엄사 입법' 찬성

그렇다면 해외의 경우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고 있을까. 우리나라가 환자 자신의 결정권을 우선시 한다. 반면, 해외는 의료진과 가족, 혹은 대리인이 함께 참여해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가'하는 점을 충분히 상의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친다.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흔하게 나오는 장면 중 하나가 바로, 병원에 실려온 응급실 환자에게 의사가 DNR을 확인해 연명치료를 결정하는 것이다. 1990년 '환자자기결정권'을 연방법으로 제정한 미국은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대한 논의가 오래 전부터 충분히 진행되긴 했지만 사회적 관심도 높은 편이다.

▲ 진난 2022년, 한국리서치가 전국의 만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2%가 '조력 존엄사 입법'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다. ⓒ pixabay


최근 현지 조사 결과를 보면 80대 이상 노인의 60% 넘는 수치가 무의미한 연명치료 에 대해 거부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일부 주법에서는 위임대리인 방식을 적용, 환자를 대신해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순서대로 정해 놓기도 했다.

일본의 경우는 2007년 5월, 후생노동성이 '종말기의료결정프로세스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도입, 의사가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을 때는 가족이나 대리인과 상의해 최선의 치료 방법을 논해 결정한다.

지난 4월에는 '적극적인 안락사, 존엄사, 조력사에 대한 국민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 글을 올린 청원인은 "자연재해, 질병, 사고, 유전병, 정신질환, 선천적 후천적 장애, 개개인마다 다른 환경 등 수많은 고통이 삶을 살면서 따라오게 된다"며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거나 훼손될 예정인 개개인 모두 죽음의 선택권, 적극적인 안락사, 존엄사, 조력사를 시행해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사람에게 고통 없이 영면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유를 밝혔다.

한편, 지난 2022년, 한국리서치가 전국의 만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2%가 '조력 존엄사 입법'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다. 그중 60대 이상이 86%로 가장 높았다. 반대의견은 30대로 26%로 조사됐다.

국민 10명 중 8명은 극심한 고통을 겪는 환자에게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 있는 '존엄사'에 대해 찬성하고 있는 셈이다.

한번은 모 기관 관계자와 미팅 후 점심을 함께 먹을 때가 있었다. 그때 그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저, 지난 주에 사전연명치료 거부한다고 서명하고 왔어요. 제 주변에도 이런 사람 여럿 있어요."

하지만, 나는 아직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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