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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의 마음을 홀린 서울 도심 속 계곡

수성동 계곡... 인왕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 소리가 크고 맑아

등록|2024.09.25 11:09 수정|2024.09.25 14:28

▲ 수성동계곡의 기린교. 조선시대 안평대군의 집터에 있던 돌다리로 알려졌다. ⓒ 전갑남


서울 도심에 이런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다니! 종로구 수성동 계곡이 그곳이다. 수성동 계곡은 인왕산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계곡이다. 수성동에서 '수'는 물 '수(水)', '성'은 소리 '성(聲)' 자를 쓴다. 계곡에서 흐르는 물 소리가 크고 맑아서 조선시대부터 '수성동(水聲洞)'이라 불렸다 전해진다.

잃었던 옛 수려한 경관을 되찾다

수성동은 우리 고유 화풍이라고 하는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1676~1759)이 북악산과 인왕산 경승 8경을 그려 담은 <장동팔경첩>에 속할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조선 역사지리서인 <동국여지비고>, <한성지략> 등에 '명승지'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추사 김정희가 이곳을 읊은 시를 보면 사람 마음을 홀리고도 남음이 있다.

水聲洞雨中觀瀑(수성동우중관폭)
수성동에서 빗속에 폭포를 보고​

入谷不數武(입곡불수무) 골짜기에 들어서자 몇 발자국 안가
吼雷殷履下(후뢰은리하) 발밑에 우렛소리 우르르릉
濕翠似裏身(습취사이신) 젖다 못한 산 안개에 몸을 감싸니
晝行復疑夜(주행복의야) 낮에 가도 밤인가 의심되는 도다
ㅡ 추사 김정희 <완당전접> 제9권 중 일부

풍류를 즐기는 거로 하면 빠지지 않은 세종대왕 셋째 아들 안평대군(1418~1453)은 수성궁의 '비해당(匪懈堂)'이라는 정자를 이곳에 짓고 시와 그림을 즐겼다 전해진다.

여기서 '비해(匪懈)'는 시경(詩經)에 나오는 구절인 '숙야비해(夙夜匪懈)', '이사일인(以事一人)'에서 따온 말로, 아침부터 밤까지 게으름 없이 한 사람을 섬기라는 의미이다. 정치적 야심을 품은 수양대군에 맞서 어린 조카 단종을 지키려는 의지가 읽힌다.

계곡 좌우 측 인왕산 아래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던 수성동 계곡은 1971년 옥인시범아파트 9개 동이 들어서면서 수려한 경관을 잃어버렸다. 그로부터 40년 지난 후, 2012년에 아파트가 철거되고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본래의 아름다움을 되찾게 되었다. 자연과 역사 그리고 문화를 복원하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 계곡 초입에 겸재 선생의 그림과 수성동에 대한 안내도가 있었다. ⓒ 전갑남


겸재 선생의 그림 속 다리가 눈에 띈다. 이른바 기린교이다. 계곡 초입에 게시된 그림 속 다리가 눈앞에서 보이자 사람들은 인증샷을 날리기에 바쁘다. 아름다운 경관에 아랫동네 서촌 아이들은 도시락을 싸 들고 봄, 가을에 소풍을 나와 물장구 치고 놀았을 것 같다. 수성동 계곡은 사시사철 언제 찾아도 아름답다고 한다.

도심 속 오아시스와 같은 쉼터

간밤에 비가 내려 계곡물이 많이 불었다. 수성동이란 이름값을 하려는지 물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귓가를 자극하는 계곡 물소리와 숲속에서 들리는 새소리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마침 주말이라 사람들이 많이 계곡을 찾았다. 마지막 물러서려는 여름이 아쉬운 듯 시원한 계곡에 발을 담가 더위를 식히는 사람들이 여유롭다.

▲ 수성동계곡 맑은 물에서 시민들이 물놀이 즐기고 있다. ⓒ 전갑남


계곡 주변에 멋진 소나무를 비롯하여 산사나무, 화살나무, 자귀나무 등 여러 수종이 울창한 숲을 이뤘다. 오랜 기간에 걸친 침식작용으로 인해 암반의 표면은 부드럽다. 넓적한 바위에선 선비들이 시 한 수 남기면서 풍류를 즐기고 놀았을 것 같다.

▲ 수성동계곡 주변 산책길. 걷기에 편안하다. ⓒ 전갑남


▲ 수성동계곡의 물이 작은 폭포가 되어 흐른다. ⓒ 전갑남


수성동 계곡 맑은 물에는 도롱뇽, 가재, 버들치와 같은 생물이 살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보배로운 자연이다.

수성동 계곡 아랫마을 서촌에는 '별의 시인' 윤동주가 하숙하였다는 터가 있고 천재 시인 이상의 집도 있다.

수성동 계곡은 마을버스를 타면 좀 더 쉽게 갈 수 있지만, 지하철 경복궁역에서 걸어서 25여 분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 수성동계곡에서 초소책방까지 오르면 건물 옥상에서 서울시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 전갑남


수성동 계곡 주변으로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특히, 이 길이 좋은 것은 인왕산과 한양도성을 오르는 등산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청운동 쪽으로 방향을 틀어 창의문까지 목표로 걸으면 참 좋다. 가다가 초소책방에서 잠시 들러 서울 시내를 한눈에 담고, 마지막으로 윤동주문학관을 찍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빌딩 숲과 수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서울! 복잡한 도심 속 수성동 계곡은 소소한 풍경과 편안한 쉼터로 도시의 갈증을 풀어주는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천in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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