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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 친구는 남자로 안 보인다? 이 영화가 놓친 함정

[리뷰]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등록|2024.09.26 11:38 수정|2024.09.27 11:10

[안치용의 영화리뷰 대도시의 사랑법] 게이와 미친X가 만나 동거하며 생긴 일이 영화를 퀴어영화로 설명한다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반쯤 퀴어영화라고 해두자. 퀴어영화라고 하기엔 주인공이 남녀이다. 대조적인 성격인 여남 주인공 구재희(김고은)와 장흥수(노상현)가 영화를 끌어가기에 일단 퀴어영화로는 실격이다. 퀴어영화 주인공은 남남 아니면 여여이다. 이성애가 아닌 주로 동성애에 초점을 맞춘 영화가 퀴어영화로 분류되기에 남녀 주인공이 등장하면 퀴어영화로 풀어내긴 힘들어 보인다. 영화가 보여주는 다채로운 사랑은 특정한 성적 지향을 뛰어넘어, 여러 유형의 인간적인 연결과 감정적 교류를 보여줌으로써 사랑의 보편성을 표현하고자 한다. 영화가 동성애에도 꽤 많은 비중을 할애함에도 관객은, 성적 지향과 그에 따른 갈등 같은 기존 퀴어영화의 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사랑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 등장인물들이 겪는 외로움과 단절, 아픔이 사랑의 이름으로 어떻게 극복되는지가 유머가 적당하게 버무려진 스토리를 통해 관객에게 다가간다. by 안치용 #대도시 ⓒ 안치용의 시네마 인문학


(*영화의 전개와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첫 장면이 함정이다. 추리물이나 형사물에서 범인을 공개해놓고 시작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첫 장면이 함정인 것은 영화 끝에 가서야 밝혀지는데, 이 함정은 관객에게 함정이었지만 이언희 감독에게도 함정이었음이 밝혀진다.

퀴어영화?

이 영화를 퀴어영화로 설명한다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반쯤 퀴어영화라고 해두자.

퀴어영화라고 하기엔 주인공이 남녀이다. 대조적인 성격에 성별이 다른 두 주인공 구재희(김고은)와 장흥수(노상현)가 영화를 끌어가기에 일단 퀴어영화로는 실격이다. 퀴어영화 주인공은 '남남' 아니면 '여여'이다. 이성애가 아닌 주로 동성애에 초점을 맞춘 영화가 퀴어영화로 분류되기에 남녀 주인공이 등장하면 퀴어영화로 풀어내긴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성소수자의 삶과 사랑을 그린 것 또한 사실이다. 동성애와 이성애가 모두 등장하고 성소수자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더 포괄적으로는 아웃사이더에 주목한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영화의 큰 얼개로 성적 지향의 차이를 바탕에 깔고 사랑과 관련한 더 넓은 범주의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요인을 묘사한다. 사랑과 고독, 정체성의 탐색 등 보편적 주제가 영화에서 그려진다. 정체성의 탐색은 꼭 성적 지향에 국한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다루는 대학에 입학해서 결혼하기까지 13년은, 청소년기를 벗어나 어른으로 서는 기간이다. 이 시기에 정체성의 확립을 통해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정체성을 확보하는 것인데 성적 정체성은 중요하지만 전부가 아니고 그중 하나이다. 소설로 치면 성장소설이다. 독일식으로 표현해 빌둥스로만(Bildungsroman)이란 표현이 유효한데, 성장에는 빌둥(Bildung), 즉 형성이 포함된다. 이 빌둥이 주체적인 과정임이 또한 중요하다. 이 영화에 특히 빌둥이 많이 작동한다.

영화가 보여주는 다채로운 사랑은 특정한 성적 지향을 뛰어넘어, 여러 유형의 인간적인 연결과 감정적 교류를 보여줌으로써 사랑의 보편성을 표현하고자 한다. 영화가 동성애에도 꽤 많은 비중을 할애함에도 관객은, 성적 지향과 그에 따른 갈등 같은 기존 퀴어영화의 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사랑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 등장인물들이 겪는 외로움과 단절, 아픔이 사랑의 이름으로 어떻게 극복되는지가 유머가 적당하게 버무려진 스토리를 통해 관객에게 다가간다.

▲ <대도시의 사랑법>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대조적인 캐릭터의 남녀

<대도시의 사랑법>은 전혀 다른 개성의 남녀 재희와 흥수가 한집에 살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재희는 말보다 행동이 빠르고 자유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며, 하고 싶은 건 후회 없이 성취하는 행동파이다. 사랑에 진심이다 보니 상처를 많이 받는다. 천방지축으로 극 전반을 휘젓는 재희는 영화를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이 감독이 "재희라는 인물이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고 말한 것처럼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재희의 매력이 영화를 지배한다.

가족에게도 말한 적 없는 비밀을 재희에게 들켜버린 뒤, 누구에게도 쉽게 마음을 열지 않던 흥수가 재희와 가까워지는 과정, 동거와 함께 재희와 인생의 '베프'로 거듭나는 모습이 잘 그려졌다. 사랑에 질색이고, 진지한 관계를 피하면서도 외로움에는 시달리는 보통 사람의 심리를 공감 있게 표현했다.

두 사람 사이의 근본적인 대조는, 이성애와 동성애라는 성적 지향이다. 개인적으로 어릴 때부터 많이 들은 얘기가, 여자는 친한 친구 중에 게이가 있었으면 한다는 것. 여자가 게이 남사친(냠자 사람 친구의 줄임말)을 원하는 심리는 소외의 공감과 대조를 통한 합일의 가능성을 엿보기 때문일까. 거기에 약간의 불편이 개입할 틈은 없을까.

가부장제 비판

여자 주인공 재희는 대놓고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극중에서 가부장제에 맞서는 여성투사의 면모를 보인다.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은 인물이라기보다 주체성을 자각한 인간으로 보편적인 사람다움을 추구하면서 자연스럽게 학교·직장 등 사회 전반의 성차별에 맞서게 된다.

이 영화는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현대 사회에서 여성이 직면하는 억압적 권력 구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공한다. 주인공 재희는 사랑의 굴레뿐 아니라, 사회적 차별에도 '맞다이를 떠' 자아 해방과 정체성 확립의 길을 걷는다. 영화에서 성장을 그린 측면이 더 두드러지는 쪽은 두 주인공 중 여성이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어떻게 찾고 주체적으로 어떻게 표명하는지 탐구하는 과정이 영화에 담겼다.

재희는 사랑의 대상이자 주체로서 가부장적 기대와 억압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는 힘을 발휘한다. 페미니즘 투사에 머물지 않고 삶의 전사로 나서 개인적인 자유의 추구를 넘어 사회 구조에 끊임없이 반란을 획책한다. 현대 여성이 직면한 사회적 도전을 머리띠 두르지 않은 채 담배를 꼬나물고 잔잔하게 고발한다. 퀴어 로맨스를 넘어서, 여성 주인공을 축으로 동성애에 대한 진지한 시각을 포함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이 영화가 성찰했음을 관객은 알 수 있다.

▲ 대도시의 사랑법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옥에 티는?

이 영화는 박상영 작가의 소설을 극화했다. 원작이 어떤지 모르겠으나, 이 영화의 전체적인 완성도와 관련해 아쉬움을 주는 내용은 경직성을 비판하기 위한 또 다른 경직성을 들 수 있다. 앞서 이 영화의 첫 장면이 함정이라고 말했는데, 유쾌한 이 함정은 제작진을 유쾌하지만은 않은 또 다른 함정으로 밀어 넣었다.

여자가 게이 친구를 원하는 심리의 이면에 혹시 성적 지향의 고정성이 깔린 건 아닐까. 재희와 흥수의 로맨스를 상상케 하는 '함정' 포스터에도 불구하고, 마찬가지로 영화에서 둘 사이에 어떠한 성적 긴장도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묘사된다. 우정과 애정 사이에 높은 벽을 쌓아버리고 성적 지향을 고정된 것으로 끌고 나간 전개는 이 영화의 흠이다.

이 감독이 말했듯 재희 중심으로 이 영화를 봤다면, 남성인 흥수에게 그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아무런 이성애의 감정을 느끼지 않은 건 비현실적이다. 그럼에도 흥수는 재희에게 성적 긴장을 끝내 못 느낄 수는 있다. 우정과 애정 사이의 선이 희미해지는 순간을 잠깐이라도 포착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이성애와 동성애는 확고한 성적 지향일 수도 있지만 때로 변하고 섞이기도 한다. 특히 긴밀한 유대와 신뢰, 또한 영화가 그린 것과 같은 사랑이라고 불러 좋을 감정이 있는 상황에서 그런 혼동이 배제된 건 사랑을 너무 경직되게 바라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영화에서 말하듯 네가 너인 것, 혹은 내가 나인 것이 약점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정체성은 내가 나인 것이나 네가 너인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인 것이나 네가 너인 것이 무엇인지 윤곽을 짐작하고 그 윤곽을 자신이 또는 서로에게 불편하더라도 받아들이는 태도다. 나에게 고정적인 '나'는 한번도 있은 적이 없고, 앞으로도 없다.

재희가 프랑스에 살다 온 설정도 20세기에 먹힐 만한 일종의 스테레오타입이다. 재희 같은 캐릭터가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다는 발상은 문화적 사대주의라고 할 수도 없고 애매하다.

그럼에도 <대도시의 사랑법>은 퀴어영화의 흐름을 이성애와 섞어 보편적 사랑을 논하면서 여성의 지위나 인간다움에 관한 나름의 성찰을 담았다는 점에서 잘 만든 영화로 봐도 되겠다. 재미있다.

안치용 영화평론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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