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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이 나만의 행복을 찾으련다

등록|2024.09.26 16:47 수정|2024.09.26 16:47
커피는 시를 닮았다. 커피 한 모금이 이른 아침 자주달개비를 피어나게 한다. 꽃밭의 향기를 느낀다. 커피 잔에 담긴 커피는 단지 사물에 불과하지만, 향미(香味)가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 나를 지배하는 정서가 된다.

그 향미는 내가 실존하고 있음을 일깨워주는 느낌이다. 커피는 눈을 지그시 감게 하는 그윽함이 있고 따스한 온기가 있고, 때로는 짜릿한 전율이 있다. 그쯤 되면 커피는 이미 맛을 넘어 잠자고 있던 나의 행복을 일깨워준다. 행복은 이처럼 일상에서 나오는 것인가.

오롯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먼저 인스타그램에 올린 타자의 행복과 경쟁하지 마라. 그것은 타자의 일상이 아니라 하루 중 최고의 순간일 수 있고, 일 년 중 최고의 하루일 수 있고, 의도적으로 기획이 된 행복일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그림자의 세계일 뿐이다. 기획된 행복과 경쟁해서 내가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는가.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일 뿐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주변을 둘러본다. "남들은 무엇을 하고, 뭘 가지고 있지? 나도 그걸 해야 하나?"라면서 자신의 위치를 상대적으로 확인하려 한다. 단순히 행복해지려고 한다면 쉽게 이룰 수도 있다. 다만, 타자보다 더 행복해지길 원한다면 이는 항상 힘이 든다. 남들이 더 행복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모건 하우절의 <불변의 법칙>에 따르면 행복은 기대치에 달려 있다고 했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 기대치에 이르지 못하면 행복할 리 없다. 우리는 현실을 바꾸기에는 힘들지만, 기대치는 조정할 수 있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현실의 상황을 좀 더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대치를 낮추려는 의지가 더 필요하다. 행복을 위한 제1 원칙은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삶의 질이 높아지면 질수록 행복의 기대치 또한 높아지기 마련이다.

'옛날이 좋았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곤 한다. 정말 그럴까. 옛날에는 삶의 질이 요즘보다 덜하였으며 기대치 또한 지금보다 낮았기 때문에 옛날이 더 좋았으며 행복했을 뿐이다.

그땐 점심때에 라면이나 칼국수 하나로 행복했고 비행기를 타고 외국 여행을 하지 않아도 행복했다. 다 함께 라면에 칼국수를 먹었고 다 같이 외국 여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모자라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려 남들과 비교해 본다. 유럽 여행을 다녀와도 마음이 허전하고 행복을 모르겠다. 비교하는 대상이 널려 있어 상대적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길거리를 거닐다가 한해살이풀 클로버가 가득한 곳에 이르면 행운의 상징인 네 잎 클로버를 찾아 헤매었던 기억이 있다. 발 밑 행복의 상징인 세 잎 클로버가 발밑에서 짓밟히고 있는 것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 드물다는 행운만을 찾기 위해 발 밑에서 수북이 자라고 있는 행복을 놓치고 말았다.

이제 오롯이 나만의 행복을 찾아 다시 나서겠다. 뜬구름 잡는 행운을 찾아 눈앞의 행복을 놓치거나 옆 사람과 비교하여 기대치를 한없이 높여 발 밑에서 자라고 있는 행복이나 커피 한 모금으로도 느껴보는 행복을 놓치지 않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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