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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의 심기 거스를 수 있다? 정체 모를 사람들 등장

[윤석열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입틀막 1호 사건' 2023 서울국제도서전

등록|2024.09.30 19:24 수정|2024.09.30 19:24

▲ 지난 1월 18일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전주시 덕진구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열린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입장하며 참석자들과 악수하는 동안 경호원들에게 제지당해 끌려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저는 윤석열 대통령과 악수하며 국정 기조를 바꿔야 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런데 이 순간 대통령 경호원들이 달려들어 저의 입을 틀어막고 사지를 들어 끌어내고 행사장 밖으로 내동댕이쳤습니다. 경호원들이 강제로 끌어내는 과정에서 안경을 빼앗기까지 했습니다. 이후 경호원들의 제지로 행사장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 1월 18일 진보당 전북 전주을 강성희 국회의원 기자회견

"학위 수여식 당일 저는 어떠한 위해도 가할 의도가 없었지만 쓰고 있던 안경이 날아가고 마스크 줄이 끊어지는 등 과도하게 제압당했다. … 경호원들이 문밖을 지키고 있는 별실에서 30분 동안 감금당했고 사람들을 선동할 수 있는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경찰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해 그대로 연행됐다. … 대통령을 향해 피켓을 들어 올린 게 표현의 자유, 신체의 자유를 억압할 정도의 업무방해였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 2월 19일 카이스트 신민기 석사과정 졸업생 기자회견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제1항에서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제22조 제1항에서는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함으로써, '표현의 자유' 및 '예술의 자유'에 관한 기본권을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언론·출판 및 집회에 대한 허가나 사전 검열 등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고, 예술가의 권리를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 등으로 보호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표현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는 윤석열 정부하에서 오히려 철저히 파괴되고 있고, 대통령과 대통령 배우자의 불안정한 심기에 따라 그 보호 여부가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통령 심기를 거스르는 말을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대통령 경호원들은 지역 축제 행사장에서 지역 국회의원의 입을 틀어막고 사지를 들어 강제로 퇴거시켰고, 대학원 졸업식 행사장에서도 졸업생의 입을 틀어막고 사지를 들어 강제로 퇴거시켰다.

이 정부가 신경 쓰는 것은 비단 대통령의 심기뿐만이 아니다. 지역 국회의원과 대학원 졸업생의 입이 틀어막히기 전에, 이 정부에서 가장 먼저 입이 틀어막혔던 이들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피해자였던 문화예술인들이었다. 그것도 대통령도 아닌, 대통령 배우자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의 표현의 자유

▲ 2023년 6월 18일 서울 코엑스 앞에서 '블랙리스트 실행자 오정희씨를 내세운 문체부·대통령실·대한출판문화원에 대한 우리의 입장과 이후 계획 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블랙리스트 이후


2023년 5월 말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이 후원한 '2023 서울국제도서전'이 준비되고 있을 때였다. 언론보도를 통해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사건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소설가 오정희가 '도서전의 얼굴'에 해당하는 서울국제도서전 홍보대사에 선정되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알려졌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을 비롯한 문화예술인 단체들은 대한출판문화협회와 문체부 등에 오정희를 홍보대사에서 해촉할 것을 요구하였고 언론 역시 블랙리스트 연루자인 오정희의 언론출판계 복귀에 문제 제기하는 기사들을 보도하였다. 그러나 문체부는 2023년 6월 12일 보도자료를 통하여 오정희를 포함한 6인의 작가를 서울국제도서전 홍보대사로 선정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이에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을 비롯한 문화예술인 10명은 2023년 6월 14일 서울국제도서전이 개최되던 서울 코엑스 컨벤션센터 앞에서 오정희 홍보대사 위촉에 반대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진행하였다. 기자회견 후에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던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 행사를 즐기기 위하여 입장권을 구매한 후 행사장에 입장하였다.

문화예술인들은 행사장 내에서 무리나 대오를 지어 이동하지 않았고 어떠한 구호도 외치지 않은 채 자유롭게 부스 등을 둘러보며 개막식 장소로 각자 이동하였다. 문화예술인들 중 가장 앞선 송경동 시인에게 정장을 입은 남성들이 갑자기 나타나 신분도 밝히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제지하기 시작하였다.

1954년부터 지금까지 70년 가까이 개최된 서울국제도서전은 그동안 누구나 자유롭게 참석이 가능한 열린 행사였다. 이런 사실을 알았던 송경동 시인은 정장 차림의 남성들이 개막식 입장을 가로막자 앞서 기자회견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제지당한다고 생각하여 항의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신분을 전혀 밝히지 않은 정장 차림의 남성 5명이 송경동 시인의 개막식 입장 제지를 넘어 아무런 설명 없이 소지하고 있던 물품을 빼앗고 송경동 시인의 입을 틀어막은 후 사지를 들어 일방적으로 끌어냈다. 뒤따라오다 이를 발견한 문화예술인들이 항의하자 마찬가지로 입을 틀어막고 사지를 들어 행사장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그렇게 서울국제도서전에서 1호 입틀막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행사장 출입구에는 개막식 출입이 제한된다는 안내 등이 게시되어 있지 않았고 행사장 출입 과정에서 어떠한 안내도 받은 적도 없었기에, 정체도 알 수 없는 남성들로부터 갑작스럽게 입이 틀어막혀 쫓겨나면서도 그 연유조차 제대로 알 수 없었다.

대통령경호처의 위법행위

▲ 2023년 6월 14일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이 열린 서울 삼성동 코엑스 행사장에서 송경동 시인이 경호인력에 의해 끌려나오고 있다. 이날 행사장에는 김건희 여사가 방문했다. ⓒ 블랙리스트 이후


문화예술인들은 행사장에서 쫓겨난 후에야 개막식에 대통령 배우자가 참석하기로 예정되어 있었고 정장 차림의 남성들은 대통령경호처 소속 경호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서전 개막식에 대통령 배우자가 참석한다는 사실은 보안 사항으로 소수의 주최 측 관계자만 알고 있었기에 도서전을 취재하는 언론인들이나 개막식에 출입하려던 문화예술인들 모두 전혀 알 수 없었다.

대통령경호법 제5조 제1항에서 '경호처장은 경호업무의 수행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경호구역을 지정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제2항에서는 '제1항에 따른 경호구역의 지정은 경호 목적 달성을 위한 최소한의 범위로 한정되어야 한다'라고 규정한다.

제3항에서는 '경호업무를 지원하는 사람은 경호 목적상 불가피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만 경호구역에서 질서유지, 교통관리, 검문검색, 출입 통제, 위험물 탐지 및 안전조치 등 위해 방지에 필요한 안전 활동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대통령경호처는 당시 도서전 개막식에 참여하는 대통령 배우자에 가하여질 급박한 위해를 방지하거나 제거하기 위한 최소한의 범위만을 경호구역으로 지정하여야 함에도, 그러한 상황과는 전혀 관련 없는 공간까지 포함하여 도서전 행사장 전체를 경호구역으로 자의적으로 설정했다.

또한 문화예술인들이 어떠한 범죄행위를 저지르려고 하는 등 경호 목적상 불가피하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없었음에도 개막식 행사의 출입을 막아서는 것을 넘어 입을 틀어막고 사지를 들어 끌어내는 것은 명백히 대통령경호법을 위반하는 행위로 정당한 직무집행이라 할 수 없는 위법행위다.

그런데도 대통령경호처는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어떠한 유감 표명이나 사과도 없이 정당한 경호 행위였다는 입장만을 밝혔고, 이후 국회의원과 대학원 졸업생에게 제2, 제3의 입틀막 사건이 반복해 발생했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대통령 배우자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언론과 출판,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가장 기념하여야 할 축제장에서 문화예술인들의 표현의 자유가 갈기갈기 찢겼다. 피해를 당한 문화예술인들은 대통령경호처에 대한 형사 고소 절차 등을 진행 중이고 민사 소송 역시 진행할 예정이다.

윤석열 정부는 '윤석열차 카툰 사건'을 비롯해 대통령과 대통령 배우자의 심기를 거스르는 목소리들을 모두 일방적으로 틀어막고 지운 후 가차 없는 보복을 진행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공정과 상식에 해당하는 기본권임에도, 윤석열 정부는 표현의 자유보다 대통령과 대통령 배우자의 심기를 더 앞선 기본권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주(周)나라 제10대 왕이자 폭군이었던 '여왕(勵王)'에 관한 이야기가 기재되어 있다. 여왕은 왕을 비방하는 자들을 처형하는 등 신하와 백성들에게 재갈을 물리는 공포정치를 행하였다. 여왕이 신하였던 소공(召公)에게 "어떻소? 내 정치하는 솜씨가. 나를 비방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지 않소"라고 자랑하자 소공은 여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겨우 비방을 막은 것에 불과합니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둑으로 물을 막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물이 막히면 결국 둑이 무너져 내려서 많은 이들이 다치게 되니, 따라서 물을 다스리는 자는 물을 흐르게 하여 인도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백성들이 마음 놓고 말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여왕은 소공의 충언을 듣지 않았고 결국 신하들과 백성들의 반기에 쫓겨나 타지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김상현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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