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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성폭력 피해자들 한숨 "보상 기준에 우리 없다"

현저한 신체 피해 중심의 시행령 문제... 진상규명에도 보상 지급 규정 등 모호

등록|2024.09.30 06:56 수정|2024.09.30 08:07

▲ 5·18민주화운동 성폭력 피해자들이 지난 8월 29일 오후 광주 서구 국립트라우마치유센터에서 모임 '열매'를 결성했다. 피해자 최경숙씨가 모임에 참석한 서지현 전 검사의 발언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소중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진상규명 결정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보상 신청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김복희 5·18 성폭력 피해자 모임 '열매' 대표

현저한 신체 피해 중심의 5.18 관련자 보상 기준으로는 최근 새롭게 드러난 성폭력 피해자들을 제대로 보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피해자는 물론, 광주광역시, 광주 지역 국회의원 모두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관련법 및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5·18 성폭력 피해자들은 지난해 6월 개정된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아래 보상법)'에 따라 처음으로 5·18 관련자에 포함됐다. 이후 총 26명이 지난해 7월~12월 광주광역시에 보상을 신청(제8차 보상)했다.

"법·시행령 개정해야"

보상법 제5조 제1항에 따르면, 관련자 또는 유족을 ▲ 5·18과 관련하여 사망하거나 행방불명으로 확인된 사람의 유족 ▲ 5·18과 관련하여 상이를 입은 사람 또는 그 유족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들의 법률 지원을 맡은 하주희 변호사(법무법인 율립)는 26일 <오마이뉴스>에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금 지급의 근거가 모호하다"며 "해당 규정이 성폭력 피해를 본 사람을 포함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 5·18민주화운동 성폭력 피해자들이 지난 8월 29일 오후 광주 서구 국립트라우마치유센터에서 모임 '열매'를 결성했다. 모임에 참석한 피해자, 지원자들이 맞잡은 두 손을 높이 들어올리고 있다. ⓒ 소중한


더 실질적인 문제는 보상 등급 판정의 기준을 담은 같은 법 시행령이다. 해당 시행령엔 '신체 장해등급과 노동력 상실률'에 따라 1~14급의 기준이 담겨 있는데, 성폭력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기준은 명시돼 있지 않다. 하 변호사는 "성폭력 피해에 대한 보상금 지급의 근거와 기준까지 마련하는 입법적 해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5·18 성폭력 피해자들은 모임 '열매'를 만드는 등 이 문제를 비롯한 여러 사안에 공동 대응하고 있다. 김복희 열매 대표는 과거 자신이 피해를 호소했음에도 보상 심의조차 받지 못했던 점을 언급하며 성폭력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명확한 기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씨는 26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제가 1998년 (성폭력 외) 피해로 인해 12급 판정을 받은 뒤 (성폭력 피해를 이야기하며) '등급 조정을 해달라'고 했지만, '성폭력으로는 (유형이 다르니) 등급 조정은 안 된다'고 그러더라"라며 "지난 6월 진상규명조사위의 (진상규명) 결정이 난 뒤 이번 제8차 보상 신청 때 다시 신청서를 넣어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성폭력 피해는 (피해 정도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이를 감안해서 등급 판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보상 등급 판정 시) 성폭력 피해를 유형별로 구분해 등급을 판정하는 등의 접근 방식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광주광역시 "문제 풀 의지 있다"
광주 국회의원 8인 "별도 기준 필요"

▲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이 2023년 5월 15일 오전 국립5·18민주묘지 추모탑 앞에서 헌화하고 있다. ⓒ 광주광역시


보상 심의를 주관하는 광주광역시(보상심의위원회 위원장이 강기정 광주광역시장)는 "이 문제를 풀 의지가 강하다"고 밝혔다.

박용수 광주광역시 민주인권평화국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보상심의위원회와 장해등급판정분과위원회에서 위원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것"이라며 "현 기준으로 (성폭력 피해자의) 등급 판정이 가능한지 논의해 필요하다면 (법과 시행령의) 개정을 건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8월 개최한 보상심의위원회에서 (성폭력 피해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수배, 학사징계, 해직자를 보상하기 위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의결했고 행정안전부 보상지원위원회에 건의한 바 있다"라며 "(성폭력 피해에 대해서도) 광주광역시의 의지는 명확하다"고 덧붙였다.

광주 지역 국회의원 8인(더불어민주당 소속 민형배·박균택·안도걸·양부남·전진숙·정준호·정진욱·조인철, 가나다 순)은 지난 19일부터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현재 기준으론 적절한 보상과 지원이 어렵다",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별도의 판단 기준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8인 전원은 "관련법 및 시행령 개정에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또 "국정감사에서 시행령 개정 검토 요청"(양부남), "관련 상임위 의원실과 협조"(안도걸), "시행령 개정 유도 및 성폭력 피해자의 유공자 등록 법안 발의(전진숙)", "국립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의 프로그램 개발 여부 확인"(양부남·정진욱), "제도 개선을 위한 토론회(정준호)" 등을 약속했다.

전진숙 의원은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는 현재 기준에도 신체적 부상 및 정신적 장해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말하지만 '정신에 현저한 장해가 남아 간병이 필요하거나 노무에 종사하지 못하는 것'이 정신적 장해에 대한 기준의 전부"라며 "이러한 기준 아래에서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충분히 보호받거나 보상받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한편 5·18 성폭력 피해자들은 30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영등포구 국회도서관에서 첫 증언대회를 연다. 피해자 중 4인은 얼굴과 이름을 공개한 채 증언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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