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데이비드 밀러 박사-앨런 위닝턴 기자를 통해 들어본 민간인학살

[다시 만날 그날까지 32화 -1부] David Miller & Alan Winnington의 만남

등록|2024.09.27 15:54 수정|2024.09.27 15:54

사진 1데이비드 밀러 박사가 골령골 학살지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 밀러


필자는 2024년 6월 26일 몇 개월 만에 드디어 데이비드 밀러 박사(이하 밀러)를 만났다. 설레는 마음으로 대전 골령골 학살지 옆 대전유족회 사무실로 차를 몰았다. 밀러와의 인연은 2020~2021년부터였다. 두 차례 대전위령제 참석했을 때 멀찌감치 관중석 뒤편에 서양인 한 명이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저 서양인이 왜 우리나라 민간인학살 대전위령제에 참석했을까!' 궁금했지만 그냥 스쳐 지나갔다. 그 후 대전유족회장께 여쭤봤다. 회장님 그 서양인은 누구입니까?

"아이고! 밀러 박사 유! 밀러는 대전 동구청에 국제보좌관으로 근무하잖아유! 그리구유! 대전 골령골 추모관 건립에 자문위원으로 참석하고 있어유! "

그리고 2022년 6월에 진주 위령제 행사 때였다. 진주 유족 중 하종수씨가 필자 곁에 와서 잠시 보자고 한다. 종수씨는 관중석 뒤편에 서 있는 밀러 박사를 필자에게 소개하였다. 깜짝 놀랐지만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필자는 밀러에게 대전위령제 때 멀리서 몇 차례 뵌 적 있다고 했더니 아! 예스! 엄지손가락으로 굿! 한다.

종수씨를 잠시 소개하면, 그는 외삼촌이 보도연맹원으로 학살당한 유족이었다. 영문학을 전공하여 미국에서 IT 관련회사에 근무했고 민간인 학살에 관심이 높아 밀러와 인연이 있다고 한다. 종수씨가 영어통역에 능통해 밀러에게 필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설명을 해주어 대화가 순조로웠다. 그래서 제 자료집을 두 권을 건네고 서로 명함을 주고받으며 필자에게 좋은 일 한다고 엄지손가락으로 굿! 굿! 하며 화답했다.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헤어졌다.

그 후 필자는 밀러가 한국의 민간인학살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연이 궁금해졌다. 대전유족회 골령골 위령제 전야제 날 유족회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 시간이 넘어도 오지 않아서 사무실 밖으로 나가보니 골령골 1 학살지부터 6학살지까지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을 끼고 밀러가 걸어 올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옆에는 동양인 여자와 함께 골령골을 따라 흐르는 소하천 다릿돌을 건너오고 있었다.

그 소하천 사연은 대전유족회 사무실에서 우연히 대전시민 한 사람을 만나 듣게 되었다. 대화 중 자기가 중학교 때인 1987년도 대전에 대홍수가 났는데 소하천이 범람하여 골령골 유해들이 휩쓸러 내려가서 밭과 도로가 하얗게 유해로 뒤덮었다고 한다. 또 나머지 유해는 소하천을 따라 흘러 흘러 대전천에 합류되면서 홍명상가 앞 천이 떠내려온 유골로 하얗게 뒤덮어져 있는 것을 시민들이 목격하여 경찰서에 신고했다고 한다. 군인들이 대전천에 가림막을 설치하여 시민들이 보지 못하게 한 후 유해 수거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 작은 개울을 건너오는 밀러의 모습에 감동이 밀려온다. 인사를 나눈 뒤 찻집으로 자리를 옮겨 사연을 듣기로 했다. 이제 그 사연을 펼쳐 보고자 한다.

사진2골령골 학살지 건너편 찻집에서 인터뷰하는 모습(필자,김은미(밀러 아내),밀러 ⓒ 김영희

- 밀러 박사님 귀한 시간 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네! 저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서로 웃음)"

- 밀러는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네! 저는 영국 사람입니다."

- 현재 어디서 근무하고 계십니까?

"현재는 공주대에 강사로 근무하고 있고 공주에서 거주합니다. 아참! 올봄에 한국인 예쁜 여성과 결혼했어요."

- 축하드려요. 은미(아내)씨 함께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서로 웃음)"

- 사실 통역 때문에 걱정했는데 은미씨 영어통역을 너무 잘해줘서 고맙습니다.

은미: "밀러도 그렇지만 저도 공연 예술연출가로서 민간인학살에 관심이 있어서 진주 지역에 학살지도 다녀와서 어떤 분을 만나나 궁금해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한국에는 언제 귀국하셨습니까?

"2013년에 들어왔어요."

- 한국에는 어떤 계기로 들어오게 되었습니까?

"저는 문학(시인)박사입니다.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것보다 한국이나 일본은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박사논문 준비를 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라 한국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한국에 입국해 첫 직장으로 '대전교육연수원'에서 5년간 대전광역시 교사들 연수를 맡아서 가르치면서 2014년도 박사학위를 취득했어요."

-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관련해 무슨 사연이 있으십니까?

"2014년도에 대전 계룡대 국방부·육군본부에서 축제 행사가 있었는데 제가 영어 강사로 초청받았습니다. 행사 전시장에서 사진 3장이 전시된 것을 보게 되었어요. 그 사진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 두 명과 북한군이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사진이었어요.

그 사진은 끔찍하고 잔혹하게 학살하는 장면인데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일반 대중에게 전시된 것에 놀라웠어요. 그 사진을 보고 난 후 대전 골령골 민간인학살 관련 자료를 찾기 시작했어요. '구글'에 검색하니까 미국에서 운영하는 사회주의 사이트에 '앨런 위닝턴'(아래 위닝턴)기자의 자료가 소개돼 있었어요. 위닝턴의 '난 한국에서 진실을 보았다'라는 소책자를 보게 됐어요. 소책자를 쿠팡에서 2000원에 구매했어요. (서로 웃음) 그 사이트에는 '공주 살구쟁이 학살지 사진'도 있었어요."

▲ 사진 3 "난 한국에서 진실을 보았다."(i saw the truth in korea)소책자 ⓒ 밀러


"위닝턴이 쓴 '난 한국에서 진실을 보았다'에 수록된 내용을 일부 소개하면 '대한민국의 강, 산, 자연 등 금수강산을 보면서 이런 아름다운 곳에 이념은 없다. 그리고 이념이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다른 나라는 대한민국을 이념으로 얘기한다. 생생한 학살 현장을 보면 이념이 중요하지 않다'라고 기록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이 미국의 사회주의 언론사(잡지사) 테일러 워커 편집장은 위닝턴의 생생한 학살지 장면 사진과 기사를 가공하였고, 이렇게 '딱 한 줄 미군의 학살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었어요."

- 왜 공주 왕촌 살구쟁이 학살지를 찾아갔습니까?

"구글에서 살구쟁이 학살지와 골령골 학살 사건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2015년 공주에 거주하면서 직장을 다닐 때 시내버스를 타고 다녔어요. 어느 날 우연히 버스에서 창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살구쟁이 이정표를 보게 되었어요. 너무 반갑고 놀라서 그날은 스쳤고, 다음날 살구쟁이 가는 정류장에 내려서 표지판을 보고 손에는 살구쟁이 학살지 관련된 사진을 들고 낮은 산속 길을 따라 따뜻한 봄 햇살을 맞으며 학살지를 찾아 올라갔어요.

올라가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반복해서 중얼거리면서도 매우 무서웠어요. 살구쟁이 학살지는 위치와 장소를 비교해 보니 산 능선과 나무가 1950년대 사진에 찍힌 그대로였어요. 순간 '역사는 직접 보고 느껴야 한다' '세계는 하나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사진 4 좌)1950년 7월 29일 공주교도소 좌익수가 살구쟁이 학살지로 끌려오는 모습 우)2015년 장소와 위치가 똑같음 ⓒ 밀러


그리고 표지판을 확인해 보니 '영국 픽쳐 포스터' 잡지사에서 찍은 사진이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이 잡지사가 이 사진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영국 정부가 폐간시켜버린 것을 알게 된 뒤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은 한국의 일만이 아니라 '나의 일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사진 5 2022년도 필자가 공주 살구쟁이 학살지를 다녀와서 <사진 설명> 영국 잡지사 "픽처 포스터"에 게재된 사진 ⓒ 김영희

필자는 '이것이 나의 일이다' '세계는 하나다'라는 밀러의 말에 인터뷰하는 도중 팔에 소름이 끼치면서 크게 전율을 느꼈다. 밀러를 보는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이 일을 참 잘했구나! 감동의 물결이 머릿속으로 스친다.' 그동안 힘들었던 순간들이 사르르 눈 녹는 듯 사라진다.

가해자는 물론이고 피해자인 우리나라 사람들도 외면하는 민간인학살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간하는 판에 먼 영국인이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는 순간 감동이 밀려온다. 한편 한국 국민으로서 참 부끄럽다는 생각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픈 심정이었다.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다시 인터뷰를 시작하였다.

- 밀러! 전공이 무엇입니까?

"예! 문학(시인)입니다."

역시 감성적이고 섬세하고 양심적이고 대담한 용기가 순간순간 감명을 받으면서 필자는 밀러를 만나야겠다고 결심한 것에 대한 직관을 칭찬해주고 싶었다. 사실 필자는 서양인의 만남에 경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약간 외관상으로 표정을 잘 읽을 수가 없어 걱정했다.

그리고 솔직히 표현하면 필자는 서양인(제국주의)에 대한 거부감과 외면하고 깔보는 듯한 속내가 가슴 깊이 깔려있었다. 그런 필자의 마음이 밀러를 통해 변하고 있었다. 내가 육십 평생 살면서 이렇게 감동을 주고 보람 있었던 날이 또 있을까! 싶었다.

- 밀러 정말 용기가 대단합니다. 공주 살구쟁이 학살지를 다녀와서 무슨 생각이 들었습니까?

"공주 살구쟁이 학살지를 다녀와서 2016년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관련 '콜라쥬(collage)'(주1) 작업을 시작했어요. 좌우 대칭으로 붉은색은 우파로 표현하고 파란색은 좌파로 표현하여 아래는 학살 당시 참혹한 현장 사진들을 여러 조각으로 붙여서 만든 것입니다. 콜라쥬의 의미는 '진실은 스스로 관심을 가져야 보인다. 진실은 듣는 것이 아니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콜라쥬를 작업하여 완성한 후 영국의 글래스고 대학에서 시집전시회를 했는데 그곳에서 콜라쥬를 전시했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었어요. (서로 씁쓸한 웃음) 그 후 콜라쥬를 2017년에 시 관련 사이트에 올렸더니 대전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아래 평통문)에서 골령골 다큐 촬영할 때 콜라쥬를 반영했습니다. 그 계기로 골령골 학살 현장과 인연이 되었습니다."

▲ 사진 6 좌)빨간색:우파, 파란색:좌파를 의미한다. '검은 까마귀'는 한국 속담으로 망각 잊지 말라는 의미임 '너를 해치지 못한다.는 영국 속담으로 '네가 알지 못하는 것은, 너를 해치지 못한다. 는 의미임 ⓒ 밀러

- 앨런 위닝턴(Alan Winnington, 아래 위닝턴) 기자의 부인 에스더는 어떻게 만났나요?

"위닝턴 부인 에스더는 중국인입니다. 만주사변 난징대학살(1937년 12월) 때 영국으로 피난을 가서 그곳에서 위닝턴을 만나서 결혼했습니다. 슬하에 아들 한 명을 낳았습니다.

제가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던 중 에스더 딸이 영국에서 유명한 작가로 활동하고 있어 인연이 됐어요. 먼저 딸과 통화하고 어머니 에스더와 연락하여 2018년 런던 킹스크로스역에서 첫 만남이 시작되었어요."

사진 7좌측부터 2018년 런던 킹스크로스역에서 조 위닝턴(위닝턴 아들),부인 에더스, 밀러와 첫 만난 모습 ⓒ 밀러


다음 달 밀러편 33회-2부 계속됩니다.

사진 8필자의 명함 ⓒ 김영희


〖각주〗
(주1) 콜라주(collage)는 시각 예술에서 주로 쓰이며 질(質)이 다른 여러 가지 헝겊, 비닐, 타일, 나뭇조각, 종이, 상표 등을 붙여 화면을 구성하는 기법이다. 어원은 "to glue(접착하다)"의 의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진주 단디 뉴스에도 실립니다.김영희(전)교사 한국전쟁기 창원유족회 유해발굴 조사단장 봉사자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