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자연성 살아있는 곳 싹쓸이 벌목한 대구 동구청
자연하천 동화천의 왕버들 싹쓸이 벌목 ... "강물이 원활하게 빠지게 하기 위해"
▲ 대구 동구청에 의해서 무참히 잘려나간 자연하천 동화천 왕버들 군락지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직경 60센티가 넘는 왕버들도 무참히 잘려나갔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직경이 60센티미터가 넘는 왕버들과 여러 다발로 자라나 전체 직경이 150센티미터가 넘는 왕버들도 무참히 잘려 나갔다. 주변은 이미 초토화되어 있었다. 잘린 단면엔 아직 수액이 올라와 짙게 물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피를 흘리고 있는 듯했다.
26일 주민들의 다급한 제보를 받고 찾아간 대구 동화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대구 동화천은 팔공산에서 발원해 국가하천 금호강으로 흘러드는 지류로 팔공산 골짜기를 흘러오는 특성상 대구의 마지막 자연하천이라고 평가받는 아름다운 하천이다.
▲ 화담산을 끼고 동화천이 흘러가면서 수목들이 자연스럽게 자라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동화천이 화담산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며 흘러가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화담산을 끼고 동쪽은 동화천이 서남쪽은 금호강이 흐르는 구간이다. 특히 동화천이 화담산과 바로 붙어 흐르고 있어 생태적으로 중요하고도 온전한 구간이기도 하다. 동화천은 화담산의 수목이 그대로 내려온 듯 왕버들 군락이 화담산 수목과 조화를 이뤄 아름답게 자라난 곳이라 특히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구간이다.
그런데 이 구간의 왕버들 군락이 모두 사라지게 생긴 것이다. 동화천의 가장 아름답고도 핵심적 생태공간이 사라지게 된 터라 주민의 목소리가 다급할 수밖에 없다. 이곳 주민 서효정씨는 "나무들이 잘려 나가고 있어요. 곧 모두 베어버릴 것 같아요. 좀 막아주세요"라며 다급한 요청을 보내왔다.
▲ 왕버들이 잘려나간 단면에 짙은 수액이 올라와 마치 피를 흘리고 쓰려져 있는 듯하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오후 4시경 현장을 찾았을 땐 이미 수십 그루의 왕버들이 무참히 잘려 나간 상태였다. 이날 하루 공사가 끝났는지 벌목이 잠시 중단된 상태였지만 마치 피를 흘리듯 짙은 수액이 흘러나온 나무들이 한 곳에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현장 초입인 왕산교의 공사 안내 입간판을 보니 공사 구간은 대구 동구 지묘동 1345번지 일원으로 왕산교에서 대원사까지 대략 2㎞ 구간이다. 하천 안에 자란 수목을 모두 제거하고, 호안의 법면을 정비하고, 자연석을 쌓는 공사다. 제거되는 수목은 무려 모두 579그루로 나와 있다.
▲ 대구 동구청이 내건 공사 안내 입간판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이날은 100 그루 이상 잘린 듯했고, 아직 잘리지 않은 나무도 많이 남아있었다. 자세히 확인해 보기 위해 벌목 현장과 아직 수목이 남아있는 구간으로 들어가 봤다. 예상대로 아름드리 왕버들 100 그루 이상은 이미 무참히 잘렸고 나머지 구간은 원시 자연성이 살아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그 구간으로 들어가 보니 마치 숲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시원하고 경관 또한 무척 아름다웠다. 곳곳에서 수달과 삵, 너구리와 고라니 같은 야생동물 발자국이 목격되고 강물 속엔 물고기도 많았다. 조그만 웅덩이마다 다슬기와 재첩, 우렁이 같은 저서생물 또한 많아 생태적으로 무척 건강한 곳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생태적 온전성이 살아있는 동화천의 핵심 생태공간에 싹쓸이 벌목이 단행된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물길와 왕버들 군락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생태적 온전성이 뛰어난 곳으로 생태자연도 1등급지에 해당할 구간으로 보였다. 이런 곳에 굴착기가 들어와 강바닥을 마구 헤집고 수목을 모두 제거해버리면 생태적 온전성은 일거에 사라지게 된다. 생태적 균형이 무너지며 '녹색 사막'과도 같은 공간으로 변해버리게 되는 것이다. 주민들은 이를 걱정한 것일 터이다.
▲ 수달과 삵 등 무수한 야생동물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야생동물들의 주된 서식처로 볼수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물고기뿐 아니라 다슬기와 재첩, 우렁 같은 저새생물도 그득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대구 동구청의 궁색한 변명
모두 둘러본 후 동구청 건설과 하천 담당계에 전화해 동화천 중에서도 가장 생태적으로 잘 보전된 곳에 싹쓸이 벌목을 단행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담당자는 "(왕산교 위 지묘동 쪽 강변에 놓인) 산책로와 체육시설 등이 해마다 물에 잠겨 피해를 입고 있어서 하류에 수목들을 제거해 강물이 원활하게 빠지게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원래 하천의 영역에 산책로를 만들고 운동시설을 들인 것부터가 잘못일 것인데 근본구조를 개선하기보다는 하천 수목을 제거하는 손쉬운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확인해 봤지만 벌목이 이루어질 구간은 하천 폭도 좁지 않아 수목이 있더라고 그것이 강물을 정체시켜 상류에 피해를 입게 한다는 담당자의 설명은 궁색해 보였다.
하천은 특성상 구불구불 흐르며 폭이 넓은 구간도 있고 좁은 구간도 있게 마련이라 그 특성에 맞게 택지들을 조성해야 하지만 택지부터 조성해 놓고 하천의 구조를 그에 맞추는 식으로 정비사업을 하다 보니 이런 무리한 공사를 강행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 공사 구간 전경. 앞에 보이는 동화천 전 구간이 공사 구간으로 동화천을 끼고 아파트와 택지들이 우후죽순 들어와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동화천을 다라 좌우로 빼곡이 들어선 아파트와 택지들... 수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는 것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동화천을 따라 우후죽순 택지와 아파트를 조성한 것부터가 도시계획적으로 무리한 것으로 이런 곳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살도록 한 것부터가 문제로 보인다. 택지는 하천과 떨어진 곳에 조성하고 하천 주변은 나대지나 여유 공간으로 남겨두는 것이 맞는데 그 안에까지 사람들 들어와 살도록 만든 도시계획부터가 잘못인 것이다.
이런 근본적이고도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아름드리 왕버들 수목 제거라는 단순한 방법을 택한 것은 임기응변적인 단순 처방일 뿐으로 나무들이 다시 들어와 자라면 이런 작업들은 효과가 전혀 없이 무위로 돌아가고 온전한 생태계만 망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임기응변적인 방법으로 하천 생태계를 도외시하는 생태 무지 하천정비사업에 대한 비난이 드높다. 지난 20년 이상을 물·하천운동을 해오고 있는 환경운동연합 이철재 전문위원은 다음과 같이 동구청의 행태를 비판했다.
"요즘은 생태하천과 같이 일부러 돈을 들여서 자연하천을 만드는 시절인데 멀쩡히 살아있는 자연하천인 동화천을 망치는 이같은 짓은 참으로 어리석은 정책이다. 더구나 이 기후위기 시대에 하천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공간인데 인간의 관점만 생각한 것으로 주민 표를 의식한 단체장의 매표행위가 아닌가 싶다."
▲ 일부 나무가 무참히 잘려나갔지만 아직 많은 나무들이 온전히 남아있다. 저 나무들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아름드리 왕버들이 무참히 잘려나갔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멀리서 이 소식을 접한, 식물 백과사전인 <한국식물생태보감> 저자 김종원 전 계명대 교수 또한 다음과 같이 동구청을 비판했다.
"놀라운 짓이다. 아주 용감하다. 용감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겠다. 지혜라고 없는 이르자면 사색하는 사람이기를 늘 잊고 사는 사고방식에 오염된 사람들이 벌인 짓이거나, 아니면 일을 벌여서 분배해야 할 눈먼 돈이 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지식인들과 한통속이 되어 하천의 홍수 방지 등등의 이유를 들면서 '녹색 세탁(green wash)'하는 사기 카르텔의 작동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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