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이충재 칼럼] 한동훈, 이대로면 서서히 죽는다

한 대표 취임 두 달, 무늬만 차별화...김 여사 문제 등 '독대' 않고도 할 말 하는 결기 필요

등록|2024.09.27 06:50 수정|2024.09.27 06:56

▲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10.16 재보궐선거 후보자 추천장 수여식에 참석해 입을 앙다물고 있다. ⓒ 남소연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취임 두 달을 지켜보며 가장 궁금한 대목은 윤석열 대통령과 진짜 차별화할 의지가 있느냐다. 그의 모호한 언행과 갈지자 행보는 '무늬만 차별화'란 의구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윤 대통령에 맞서 실정을 바로잡기보다는 '차별화'라는 상징을 내세워 차기 대선 주자로서 입지를 다지려는 전략만 돋보여서다.

'빈손 만찬'을 초래한 독대 논란만 해도 그렇다. 속 좁고 옹졸한 이미지를 각인시킨 윤 대통령의 독대 거부는 그 자체로 한심하지만, 한 대표가 그토록 독대에 집착하는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 독대란 형식부터가 사정이 급한 사람이 무언가를 얻기 위해 간청하는 자리다. 지금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똥을 어쩌지 못해 손을 내밀어야 할 사람이 누군가. 윤 대통령에게 불리한 판을 바꿔놓은 한동훈의 정치적 미숙함과 조급함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의정갈등'과 김건희 여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선 독대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납득하기 어렵다. 온 국민이 다 아는 최대 현안을 굳이 두 사람이 밀실에서 얘기해야 할 이유가 뭔가. 이 시점에서 윤 대통령에게 던질 메시지는 명확하다. 의사들을 설득하기 위해 한 발 물러서라는 것과 김 여사 문제를 결자해지 자세로 풀라는 것일 게다. 중요한 건 이런 조언과 경고를 한 대표가 공개적으로 할 수 있느냐에 있지, 독대 성사 여부에 있지 않다.

여당 대표에게는 하루에도 몇 번씩 공개 발언의 기회가 있다. 여당 출입기자들은 종일 당 대표의 동정과 발언에 주목한다. 윤 대통령에게 간언할 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다. 이번 만찬에서 대통령실이 한 대표 발언 기회를 원천차단했다고 하지만 아이스라테를 주문한 윤 대통령에게 "감기 기운이 있으신데 차가운 걸 드셔도 되겠느냐"고 말한 걸 보면 강단과 의지가 있었는가 싶다.

한 대표는 이번 말고도 여러 차례 독대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더 의아하다. 윤석열과 김건희, 한동훈은 지난해까지 거의 '한 몸'처럼 움직였다. 누구보다 서로의 약점과 내밀한 사정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혹시 한 대표의 독대 요청이 이와 관련된 게 아닐까 의구심이 든다. 만일 독대 과정에서 이를 공유하고, 덮으면서 화해를 시도하려 했다면 그게 더 심각하다.

한동훈에게 남겨진 두 가지 길

한동훈에게 차별화 의지가 없다는 건 이미 '채 상병 특검법' 공수표에서 확인됐다. 그의 말대로 "달리 위기를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다면 자신이 약속한 '제3자 추천 특검법'을 발의했어야 한다. 당내 반대 세력을 설득하거나 굴복시킬 방안도 없으면서 국민에게 흰소리를 한 건 자격미달이다. 이래서야 어느 국민이 한동훈이 한 말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한 대표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윤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다수의 국민은 그런 것을 차별화라고 여기지 않는다. 윤석열과 한동훈은 역시 '운명공동체'라는 확신만 굳혀줄뿐이다. 지금 한 대표는 어줍잖은 차별화로 되레 윤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끼어 양쪽에서 손가락질 당하는 형국이다.

한 대표에겐 두 가지 길이 있다. 돌아가는 상황으로 짐작할 때 윤 대통령은 '한동훈 고사작전'을 시작했다. 당 연찬회에 불참하고, 독대도 거부하고, 사사건건 공격한다. 한동훈을 '왕따'로 만들어 무릎을 꿇게 만드려는 속셈이다. 이대로라면 한 대표는 천천히 달궈지는 가마솥 개구리처럼 서서히 죽어갈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이 무너지기 전에 한동훈이 먼저 고꾸라질 판이다.

한 대표가 난국을 돌파하려면 윤 대통령과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강한 결기가 요구된다. 그에겐 윤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인 '김건희 특검법' 재의결에 필요한 8표를 모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 있다. 당 대표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한동훈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다. 그걸 실행에 옮기는 건 한동훈 몫이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