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시' 충무로의 상징 대한극장, 이른 작별이 아쉽다
9월 30일까지 개관 예정이었지만, 미리 영업 종료... 공연장으로 탈바꿈 예정
한국 영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지명은 어떤 곳일까. 부산국제영화제로 최근 떠오른 부산광역시를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충무로를 이야기하는 이들이 가장 많을 것이다.
과거 충무로에는 극장도 영화사도 많았다. 국도극장과 스카라극장, 명보극장 등 충무로에는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영화관들이 즐비했다. 그 가운데 1958년 개관해 올해까지, 그야말로 한국 영화사의 중심에 서 있던 대한극장이 있다.
여러 의미가 있던 대한극장이 영업을 종료했다. 9월 30일까지 개관할 예정이었던 대한극장은 8월 중 마지막 상영을 마치고 공연장으로 바뀌기 위한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멀티플렉스 시대, 유일하게 살아남아
이른바 극장이 영화의 배급을 담당했던 시기의 충무로는 전성기를 누렸다. 그 중심에 대한극장이 있었다. 2000석에 달하는 좌석을 보유한 대한극장은 <벤허>, <사운드 오브 뮤직>,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 당대 최고의 영화들을 상영했다.
이후 '멀티플렉스' 시대가 시작됐다. CGV를 보유한 CJ엔터테인먼트(현재 CJ E&M), 롯데시네마를 품었던 롯데엔터테인먼트가 영화의 배급을 맡았다. 그 결과 국도극장은 1999년 문을 닫고 호텔 건물로 변했다. 2006년 스카라극장이 문을 닫았지만, 대한극장은 '멀티플렉스' 시대에도 살아남았다.
이후 대한극장은 2000년 극장의 문을 닫고 재건축에 나섰다. 단관 영화관으로 지어졌던 건물을 11층짜리 영화관 건물로 확장했다. 상영관은 8개로 늘었고, 지하철 충무로역과 지하에서 연결하는 통로까지 생기며 다른 극장들이 멀티플렉스에 밀릴 때 대한극장은 몸값을 올렸다.
접근성이 좋아지고 환경이 쾌적해지자 대한극장을 찾는 수요가 늘었다. 영화 시사회가 열린 것이다. 전성기 대한극장에서는 하루에만 서너 건의 언론 시사회, VIP 시사회가 있었다. 박찬욱 감독 작품 <올드보이>,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시사회를 통해 대한극장에서 처음 공개됐다.
당시 주변에 위치한 명동, 동대문의 멀티플렉스가 '상영관 독점' 논란에 휩싸였지만, 대한극장은 달랐다. 몇 개의 상영관에서 독립영화나 해외 예술영화, 재개봉 영화를 상영했다. 이러한 영화를 보려고 대한극장을 찾는 관객도 많았다.
코로나19의 악몽
2010년대는 대한극장의 마지막 전성기였다. 독립영화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한극장에 대한 인기도 높아졌다. 영화 전문 잡지인 <맥스무비>와 협업해 저렴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티켓을 상시 판매한 전략도 성공적이었다.
2017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옥자>도 대한극장의 마지막 전성기에 한몫했다. <옥자>가 넷플릭스 공개작이라는 이유로 CGV, 롯데시네마 등 멀티플렉스에서 상영을 거부하자 대한극장을 비롯한 독립극장들이 <옥자>를 상영했다. 상영 당시 <옥자>를 보려고 많은 관람객이 대한극장을 찾았다.
대한극장은 봄과 가을 저녁, 건물 옥상에서 <라라랜드>나 <비긴 어게인> 등 도시의 밤과 어울리는 영화를 상영하는 야외 상영 행사도 열었다. '루프탑 상영회'를 비롯해 관람객을 끌어오기 위해 여러 이벤트를 열었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부터 대형 쇼핑몰과 멀티플렉스가 연계되자 시사회 풍속도도 바뀌었다. 국내 영화를 포함해 해외 배우들이 찾는 시사회가 대형 쇼핑몰과 연계된 멀티플렉스에서 자주 열리기 시작했다. 대한극장은 시사회 개최에서의 경쟁력을 점점 잃어갔다.
그렇지만 남녀노소가 모두 찾는 극장으로서의 대한극장이 가진 정체성은 여전했다. 2010년대 후반 저녁 대한극장에서는 블라인드 시사회가 종종 열렸다. 주변 대학교의 '과 잠바'를 입고 찾은 대학생과 바로 앞 회사에서 퇴근한 직장인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노년층 관람객을 위해서는 상영시간표를 매주 인쇄해 붙여놨고, 영화에 대한 설명이 담긴 프린트를 매표소에 비치해 두기도 했다. 모든 세대를 아우르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극장가를 덮치면서 대한극장은 다른 극장들보다 더 침체기에 빠져들었다. 특히 도심에 있었던 대한극장은 재택근무·재택수업과 맞물려 직격탄을 맞았다. 8개의 상영관 중 위층에 있는 상영관은 아예 영사기가 돌아가지도 않았을 정도였다.
그래서 2022년에는 가장 큰 규모의 상영관이었던 300석 규모의 상영관을 E스포츠를 위한 경기장으로 개조하기도 했다. 2023년에는 월요일에 휴관하는 등 자구책을 찾기도 했다. 하지만 폐관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굿바이 대한극장
그러던 대한극장이 2024년 폐관했다. 아쉬운 건 많은 영화팬들이 대한극장에 '마지막 인사'를 건네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초 폐관일로 예정된 9월 30일보다 이른 8월 말께 대한극장은 영업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극장은 이제 공연장으로 모습을 탈바꿈할 예정이다. 이제는 필동 거리나 을지로의 음식점, 술집 한편에서 자리한 영화감독, 영화배우들의 사인으로 충무로가 영화의 도시였다는 걸 확인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충무로역 지하에는 영화의 흔적이 남아 있다. 대종상영화제를 주최하는 한국영화인총연합회가 충무로역 환승통로에 조성한 '영화의 길'이다.
서울시에서 '시네마테크'를 목표로 하는 서울영화센터를 충무로에 개관해 충무로 영화의 명맥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서울영화센터 역시 개관 일정이 차일피일 미루어지면서 아쉬움 역시 큰 상황이다. 언제쯤 충무로에서 다시 영화를 만날 수 있을까.
과거 충무로에는 극장도 영화사도 많았다. 국도극장과 스카라극장, 명보극장 등 충무로에는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영화관들이 즐비했다. 그 가운데 1958년 개관해 올해까지, 그야말로 한국 영화사의 중심에 서 있던 대한극장이 있다.
멀티플렉스 시대, 유일하게 살아남아
▲ 66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대한극장. ⓒ 박장식
이른바 극장이 영화의 배급을 담당했던 시기의 충무로는 전성기를 누렸다. 그 중심에 대한극장이 있었다. 2000석에 달하는 좌석을 보유한 대한극장은 <벤허>, <사운드 오브 뮤직>,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 당대 최고의 영화들을 상영했다.
이후 '멀티플렉스' 시대가 시작됐다. CGV를 보유한 CJ엔터테인먼트(현재 CJ E&M), 롯데시네마를 품었던 롯데엔터테인먼트가 영화의 배급을 맡았다. 그 결과 국도극장은 1999년 문을 닫고 호텔 건물로 변했다. 2006년 스카라극장이 문을 닫았지만, 대한극장은 '멀티플렉스' 시대에도 살아남았다.
이후 대한극장은 2000년 극장의 문을 닫고 재건축에 나섰다. 단관 영화관으로 지어졌던 건물을 11층짜리 영화관 건물로 확장했다. 상영관은 8개로 늘었고, 지하철 충무로역과 지하에서 연결하는 통로까지 생기며 다른 극장들이 멀티플렉스에 밀릴 때 대한극장은 몸값을 올렸다.
접근성이 좋아지고 환경이 쾌적해지자 대한극장을 찾는 수요가 늘었다. 영화 시사회가 열린 것이다. 전성기 대한극장에서는 하루에만 서너 건의 언론 시사회, VIP 시사회가 있었다. 박찬욱 감독 작품 <올드보이>,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시사회를 통해 대한극장에서 처음 공개됐다.
당시 주변에 위치한 명동, 동대문의 멀티플렉스가 '상영관 독점' 논란에 휩싸였지만, 대한극장은 달랐다. 몇 개의 상영관에서 독립영화나 해외 예술영화, 재개봉 영화를 상영했다. 이러한 영화를 보려고 대한극장을 찾는 관객도 많았다.
코로나19의 악몽
▲ 2000년대 초반 분위기가 물씬하게 느껴졌던 대한극장의 로비 모습. ⓒ 박장식
2010년대는 대한극장의 마지막 전성기였다. 독립영화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한극장에 대한 인기도 높아졌다. 영화 전문 잡지인 <맥스무비>와 협업해 저렴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티켓을 상시 판매한 전략도 성공적이었다.
2017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옥자>도 대한극장의 마지막 전성기에 한몫했다. <옥자>가 넷플릭스 공개작이라는 이유로 CGV, 롯데시네마 등 멀티플렉스에서 상영을 거부하자 대한극장을 비롯한 독립극장들이 <옥자>를 상영했다. 상영 당시 <옥자>를 보려고 많은 관람객이 대한극장을 찾았다.
대한극장은 봄과 가을 저녁, 건물 옥상에서 <라라랜드>나 <비긴 어게인> 등 도시의 밤과 어울리는 영화를 상영하는 야외 상영 행사도 열었다. '루프탑 상영회'를 비롯해 관람객을 끌어오기 위해 여러 이벤트를 열었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부터 대형 쇼핑몰과 멀티플렉스가 연계되자 시사회 풍속도도 바뀌었다. 국내 영화를 포함해 해외 배우들이 찾는 시사회가 대형 쇼핑몰과 연계된 멀티플렉스에서 자주 열리기 시작했다. 대한극장은 시사회 개최에서의 경쟁력을 점점 잃어갔다.
그렇지만 남녀노소가 모두 찾는 극장으로서의 대한극장이 가진 정체성은 여전했다. 2010년대 후반 저녁 대한극장에서는 블라인드 시사회가 종종 열렸다. 주변 대학교의 '과 잠바'를 입고 찾은 대학생과 바로 앞 회사에서 퇴근한 직장인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노년층 관람객을 위해서는 상영시간표를 매주 인쇄해 붙여놨고, 영화에 대한 설명이 담긴 프린트를 매표소에 비치해 두기도 했다. 모든 세대를 아우르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극장가를 덮치면서 대한극장은 다른 극장들보다 더 침체기에 빠져들었다. 특히 도심에 있었던 대한극장은 재택근무·재택수업과 맞물려 직격탄을 맞았다. 8개의 상영관 중 위층에 있는 상영관은 아예 영사기가 돌아가지도 않았을 정도였다.
그래서 2022년에는 가장 큰 규모의 상영관이었던 300석 규모의 상영관을 E스포츠를 위한 경기장으로 개조하기도 했다. 2023년에는 월요일에 휴관하는 등 자구책을 찾기도 했다. 하지만 폐관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굿바이 대한극장
▲ 충무로에 남은 영화의 흔적은 충무로역 환승통로에 남은 '충무로 영화의 길' 정도다. ⓒ 박장식
그러던 대한극장이 2024년 폐관했다. 아쉬운 건 많은 영화팬들이 대한극장에 '마지막 인사'를 건네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초 폐관일로 예정된 9월 30일보다 이른 8월 말께 대한극장은 영업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극장은 이제 공연장으로 모습을 탈바꿈할 예정이다. 이제는 필동 거리나 을지로의 음식점, 술집 한편에서 자리한 영화감독, 영화배우들의 사인으로 충무로가 영화의 도시였다는 걸 확인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충무로역 지하에는 영화의 흔적이 남아 있다. 대종상영화제를 주최하는 한국영화인총연합회가 충무로역 환승통로에 조성한 '영화의 길'이다.
서울시에서 '시네마테크'를 목표로 하는 서울영화센터를 충무로에 개관해 충무로 영화의 명맥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서울영화센터 역시 개관 일정이 차일피일 미루어지면서 아쉬움 역시 큰 상황이다. 언제쯤 충무로에서 다시 영화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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