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친일재산 추적기
현재까지 공시지가 700억원대 미환수 친일재산 파악
▲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작성된 구 토지대장 ⓒ 충북인뉴스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친일반민족행위자(아래 친일파)가 후손에게 남긴 재산을 추적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매력이 있습니다. 중독성도 강합니다. 친일파 그들이 후손에게 남긴 막대한 재산과, 후손들이 떵떵거리며 사는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역사가 응징할 것이라는 기대심이 솟구칠때면 희열이 느껴집니다.
저는 시간이 날 때면 친일파들의 재산을 찾고 있습니다. 아니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 찾고 있습니다.
저의 마적단 취재수첩에는 지금까지 찾아낸 친일파들이 후손에 물려 준 재산 목록이 기록돼 있습니다.
자랑 좀 하자면 그 액수가 700억 원이 넘습니다. 시가가 아니라 공시지가입니다. 건물평가액은 빠져 있고 토지에 대한 공시지가입니다. 시세로 치자면 2000억 원 정도 되겠지요.
당연히 이 토지는 환수되지 않은 토지입니다.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 금액이니 시간이 지나면 얼마나 될지 저도 궁금합니다.
친일파들의 재산을 어떻게 추적하냐구요?
별거 없습니다. 그냥 들이대는 겁니다. 그것도 무식하게 말이죠.
▲ 일제 강점기 시절 작성된 구 토지대장 ⓒ 충북인뉴스
▲ 일제 강점기 시절 작성된 구 토지대장 ⓒ 충북인뉴스
먼저 인터넷 검색 등 사전 작업을 통해, 특정 친일파의 땅이 있을 법한 지역을 물색합니다.
대상지가 물색되면, 구청이나 군청으로 갑니다. 해당지역 일제 강점기 시절 작성된 구 토지대장을 한 장 한 장 전수를 눈으로 보며 기록해 둡니다.
보통 한 리(里나) 동(洞 )단위에 토지와 임야 필지가 보통 300~1000필지 정도 됩니다. 이것을 넘는 곳도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1910년부터 1919년 까지 작성한 토지조사부도 있습니다. 시·군별로 정보공개를 청구해서 확보한뒤 친일파들이 보유한 토지내역을 확인합니다.
그 다음 단계는 토지이동을 추적하는 거죠. 토지와 임야대장을 통해 친일파와 현 소유자간의 관련성을 확인하는 겁니다.
이를 위해서는 토지 등기부등본을 떼기도 하고, 토지대장을 뗍니다. 모두가 돈입니다.
구 토지대장을 열람할 경우 필지 하나 당 300원이고, 등기부등본은 한 필지당 700원입니다.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 그동안 경험을 종합하면 한 시간에 1000필지 정도 구 토지대장을 봤더라구요.
이번주에는 청주시 청원구청과 흥덕구청에 들러 토지대장을 살폈습니다.
성과가 있었냐구요? 네! 있었습니다. 흥덕구청에서 청주시 지동동에 친일파가 후손에게 물려준 토지 한 필지를 찾았습니다.
면적은 300여 제곱미터 정도에 공시지가는 1000만 원 정도 되는 땅입니다.
겨우 그 정도냐구요.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하나 하나 찾다보면 큰 금액이 됩니다.
친일파의 가계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혹은 묘비에 나와 있는 후손들의 이름을 모아 친일파의 가계도를 작성합니다.
나중에 친일파의 가계도만을 모아 책을 하나 펴내야 겠습니다.
▲ 일제강점기 시절 작성된 구 토지대장 속지 ⓒ 충북인뉴스
가계도를 파악하면서 정말 친일파의 후손들이 떵떵 거리고 잘 사는 걸 확인했습니다. 장관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과학기술의 아버지가 되어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습니다.
원래 이 작업은 제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국가가 해야될 일입니다.
2005년 제정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구성됐었죠.
2006년부터 2010년까지 4년정도 활동해 친일파가 후손에게 남겨준 재산을 조사해 국가에 귀속시켰죠.
하지만 해방이후 구성된 반민특위 먀냥 조사위원회도 4년 정도만 활동하고 해산됐습니다.
5년 한시적으로 더 연장할수 있었는데 이명박 정부가 그냥 중단시켜버렸죠.
조사위원회가 해산되면서 친일재산을 조사해 환수하는 일은 법무부로 이관됐습니다.
그런데 법무부가 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조사위원회 해산이후 법무부가 재산을 환수한 사례는 세 사람정도 손가락 개수와 비슷합니다.
저는 바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친일재산 귀속법에 명시된 조사위원회가 부활 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굳이 제가 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2010년 조사위원회가 펴낸 백서 <친일재산 조사, 4년의 발자취>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친일재산 환수과정이 잘 나와 있습니다.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정보에 대한 권한이 있고, 국가가 확보하고 있는 토지 현황 시스템에 접근 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효율적입니다.
저처럼 권한 없는 민간인이 직접 눈으로 토지대장을 일일이 확인하는 그런 무식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조사위원회가 재가동 돼야 합니다. 왜냐구요? 조사위원회가 활동한 4년이란 시간을 매우 짧았습니다.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조사위원회 활동을 깍아내리려는 의도는 아닙니다만 한 가지만 말해 볼께요. 토지 조사위원회가 일제강점기 작성된 토지조사부를 조사했는데 민영휘가 소유한 토지 면적을 100여만 평 정도라고 발표했더라구요.
웃기는 소리입니다. 제가 충북지역 6개 시·군의 토지조사부를 살펴보니 이곳에서만 100만 평이 넘습니다.
제가 현재까지 확보한 친일파 후손 토지 목록 중 100% 환수대상 토지라고는 장담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저 같은 무지랭이가 무식한 방법으로 찾아 낸 토지만 해도 어마어마합니다.
그만큼 친일파들의 환수되지 않은 토지가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거죠.
다행히 이 작업에 참여해 주시는 분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습니다. 법무법인 '온리'의 이성구 변호사가 친일청산재산환수마적단에 들어와 주셨습니다.
이강일(민주당·청주상당) 국회의원이 조사위원회를 부활하는 친일재산귀속법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기로 했습니다.
민주노총충북지역본부가 친일재산환수 캠페인을 공동으로 진행해주기로 결정했습니다.
미약하지만 이렇게 시작하다보면 결과가 나올겁니다. 미완에 그친 해방공간의 반민특위와 노무현정부 시절 조사위원회처럼 중단되지 않는 여정이 시작될 걸니다.
이렇게 한 주가 지나갑니다. 저는 주말에도 사무실에서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확보한 일제강점기 토지조사부와 눈씨름을 이어가겠습니다.
아 참! 한가지 더 첨언합니다. 제가 조사해 세상일 공개한 것중 지금까지 공시지가 6억원 정도의 토지가 국가에 귀속됐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확보한 공시지가 700억 원대의 토지는 조사위원회가 부활하면 가지고 있는 모든 자료를 제출할 겁니다.
그 이전 상당산성에 남아 있는 아직 환수되지 않은 민영휘 후손들이 보유한 공시지가 6억 원 상당의 토지에 대해서는 시범적으로 법무부에 국가귀속 신청을 할 예정입니다.
국가귀속 신청은 우리 독자와 시민들의 서명을 받아 함께 제출하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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