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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빈 집'... 지역 사회는 골병 든다

[리뷰] KBS 시사고발 <추적 60분>

등록|2024.09.29 12:18 수정|2024.09.29 12:18

▲ KBS <추적 60분>의 한 장면. ⓒ KBS



'빈 집'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2023년 통계청의 주택총조사에 따르면 빈 집은 현재 전국에 걸쳐 무려 153만호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빈 집 문제가 본격화된 2010년 이후 13년만에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이미 전국의 지자체마다 폐가가 된 빈 집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은 지 오래 됐다. 도심 곳곳에서는 재개발-재건축 계획이 틀어지며 방치된채 흉물이나 슬럼가로 변해버린 빈 집들이 적지않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최근에 빈 집들은 왜 이렇게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며 그 의미는 무엇일까.

9월 27일 방송된 KBS 시사고발 <추적 60분>에서는 '소리없이 번진다, 빈집 팬데믹' 편이 그려지며 최근 지역사회와 공동체를 흔들고 있는 빈집 확산의 문제점을 조명했다.

빈집 확산의 심각성

서울, 인천, 의정부 등 수도권 도시 지역에서는 한때 재개발 열풍이 불었다가 사업 자체가 무산되면서 빈집들이 생겨났다. 노후화된 빈집들은 사유재산이기에 함부로 철거하기도 쉽지 않다. 이렇게 방치된 빈집들이 동네의 '슬럼화'를 진행시키며 우범지대로 변질되기도 쉽고, 지역사회와 공동체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전문가인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개발예정구역으로 지정이 되면 그 안에서는 주택을 개량하는 등의 사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되면 그집은 더 살기 어려워지고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설명하며 "그러면 빈집이 되는데 개발 계획이 무산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러면 그 지역사회가 망가진다"고 진단했다. 이어 최 소장은 "멀쩡하게 살수 있는 집들이 도시를 잘살게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황폐화시킨다"고 빈집 확산의 문제점을 우려했다.

전국에서 가장 빈집이 많은 지역은 부산으로 지난해 통계청 조사 결과 약 11만 4천호의 빈 집이 존재하며 현재도 계속 확산중인 것으로 확인했다. 고령화와 저출생, 일자리 부족 등 여러가지 복합적인 문제들이 겹치며 젊은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도 빈집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부산 영도구의 한 노후화된 아파트에는 갈곳없는 고령의 주민들만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어쩔수없이 거주하고 있었다. 한때 조선소가 번창했던 한 마을에도 젊은 직원들이 모두 떠나고 이제는 노인들만이 남아있었다.

부산 영도구 봉산마을에서는 원래 빈집 증가세를 막기 위해 지자체와 주민들이 힘을 합쳐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섰다. 봉산마을은 빈집 재생사업을 추진했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8팀의 새 입주자까지 나왔다. 하지만 무허가 건축물이 많다보니 수익 사업이 제한되었고, 빈집 재생사업으로 들어온 입주자들도 생계를 해결할 방법이 막막하여 다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까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 봉산마을 주민협의회장은 "외부 입주자들이 정착하면 마을에 생기도 불어넣고 힘든 일도 같이 해나가기를 기대했다. 세월이 지나고 나서 겪어보니까 그분들의 소득보장이라는 면들에는 소홀했던 것 같다" 고 아쉬워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빈집 확산에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고령화와 인구구성, 일자리 문제가 복합적으로 담겨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개인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결코 해결할수 없기에, 지역적 특성에 맞는 세심한 정책과 지원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도시재생 전문가인 신병윤 동의대 건축학과 교수는 "예전엔 빈집을 철거하고 재생하여 사람들을 유입시키면 문제가 다 해결될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는 주민들이 그조차 제대로 관리하거나 이용하기 힘든 나이가 되어버렸다. 이것이 요즘 보고 있는 현장의 절실한 모습"이라고 심각성을 지적했다.

정책적 노력들

대한민국은 2018년부터 뒤늦게나마 빈집관리를 위한 각종 관련법이 제정되고 있다. 또한 각 지방자치단체는 빈집 문제 해결을 위해 저마다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펼치고 있었다. 인천광역시 중구는 빈집 정비 후 3년간 공공용 활용에 동의하는 빈집에 한해 철거 후 주차장, 주민쉼터 등을 조성하였다.

문제는 빈집 철거 시 토지에 대한 재산세 부담 등으로 빈집 소유주들의 참여가 저조하다는 것. 빈집을 철거하고 건축물이 없는 '나대지' 상태가 되는데 이렇게 되면 부과되는 재산새가 4배 가까이 증가한다. 정비사업에 동의한 경우에는 재산세를 60% 정도 감면해주지만 공공용지로 활용되는 경우에 한정되어있다. 현장 공무원들은 빈집 소유주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하여 공공용으로 쓰이는 기간만으로 재산세를 완전히 감면해주는 등, 보다 큰 혜택을 통한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전라남도 강진군에서는 농촌의 빈집을 리모델링 하여 저렴한 월세로 집을 빌려주어 농촌 생활 인구를 늘리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강진군에는 현재 34채의 빈집이 리모델링되었고 97명이 이주했다. 실제로 농촌의 빈집 정비사업으로 인해 한시적으로 거주하러 내려왔다가, 환경에 만족하여 아예 정착까지 결심하는 젊은 사람들도 있었다.

또한 귀촌을 꿈꾸는 젊은 세대들중에는 지자체 정책과 별개로 직접 빈집을 매입하기 위하여 정보를 찾는 상황도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수도권에서 거주하다가 고향인 경북 상주로 귀촌한 조민근 씨는 "시골의 부동산 매물은 정보를 찾기가 힘들다. 살짝만 외곽으로 나가도 방치된 매물도 많다. 빈집에 관련된 정보가 지자체 홈페이지에 정리되어 있다면 집을 구하는 사람들이 찾기가 쉬울 것 같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빈집소개 전문 유투버인 김경만 씨도 "시골에 빈집 구하는 분들이 많다. 국가가 해줘야할 일은, 빈집의 자료와 시골집을 구하려는 사람들과 연결해주는 '플랫폼'이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일정 부분 시골의 빈집문제도 해결할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빈집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대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빈틈이 많다는 평가다. 일례로 행정안전부는 '세컨드 홈' 제도를 시행하며 1가구 1주택자가 공시가격 4억원 이하 인구감소지역의 주택을 추가매입해도 주택수에 미포함시키는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경북 예천같은 지역은 인구감소지역에서 제외되면서 빈집 매입자들이 주택 매수 혜택을 받을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했다.

또한 농어촌과 도시별로 빈집과 관련된 전담부처가 각기 달라서 대처가 중구난방인 것도 문제로 지적받고 있다. 정책의 사각지대를 줄이고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하여 빈집문제를 전담할 부처를 일원화해야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보다 앞서 빈집 확산 문제를 겪었던 미국과 일본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자동차 산업 쇠퇴로 어려움을 겪던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시에서는 빈집 전수조사에 나섰고, 과감하게 철거를 선택했다.

다른 국가들의 해결책

해결책은 연방정부의 예산과 기금으로 건물 철거비용을 마련하고, 개인주택은 소유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이었다. 소유주들은 철거비용을 부담하는데 반발했지만, 시에서는 사유재산에 대한 비용은 개인이 부담해야한다는 원칙을 굽히지 않았다. 진통끝에 대대적인 빈집 철거는 강행되었고, 10년 사이 시의 70%에 이르는 빈집들이 사라졌으며, 빈집발생률은 무려 90%로 감소하기에 이르렀다.

관광도시인 일본 교토시의 빈집재생정책은 관광객 유입에 맞춰져 있다. 교토에는 전통 목조주택도 빈집으로 방치되면서 연간 5백호가 철거되고 있다. 이렇게 철거되는 빈집들을 숙박 시설로 리모델링해 숙소 부족 문제를 해소한다. 그리고 해당 숙박업소에는 20년에 이르는 넉넉한 임대기간을 보장하여 리모델링에 들인 비용만큼 충분한 수익을 낼수있게 해주는 구조다.

교토시는 기존의 빈집 정책들이 주로 방치된 빈집의 노후화로 주변의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만 중점을 뒀다면, 최근에는 빈집을 재생시켜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쪽으로 활용하는 게 지역활성화로 이어질수 있다는 관점으로 바뀌었다. 또한 시에서는 집을 비워두면 세금을 부과하는 '빈집세'를 2026년부터 도입할 예정이다.

이밖에 오노미치시에서는 지자체와 시민단체가 함께 손을 잡고 해당 지역의 개성을 최대한 살려서 관광지로의 리모델링과 체계적인 지원 정책을 바탕으로 빈집재생정책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빈집재생 시민단체 대표는 "옛날에는 자동차가 없어도 모두 그렇게 살지않았나. 불편한 부분도 있겠지만 반대로 그런 부분을 그 마을의 개성으로 살려놓는 것이다. 그래야 (외부인들이) 일부러라도 찾아와 줄수 있는 곳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밝히며 발상의 전환을 강조했다.

여기서 미국과 일본의 빈집 정책에 공통점이 있다면, 정책을 세우기 전에 빈집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통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현행법상 통계청과 국토교통부, 한국부동산원 등 조사기관과 행정주체별로 빈집의 집계기준이 제각각 달라서 기본적인 통계의 신뢰성부터가 떨어지고 있는게 현실이다.이에 행정부는 지난8월 국토교통부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를 아우르는 '범정부 빈집정비 통합지원 TF'를 출범시키며 구체적인 대책마련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체계적인 '빈집 실태조사'부터가 문제해결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지금까지의 빈집문제가 '잔잔한 파도' 정도에 불과했다다면, 앞으로 수도권에서 벌어질 동시다발적이고 집단적인 빈집문제가 나타날 경우에는, 그야말로 거대한 '쓰나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이 경고하는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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