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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 차로 200km 동행... 프랑스에선 일상입니다

[목수정의 바스티유 광장] 이산화탄소 배출 줄이는 등 장점 많은 '카풀' 블라블라카

등록|2024.10.01 18:32 수정|2024.10.01 18:32

▲ 블라블라카 이용자의 차 ⓒ 위키미디어 공용


지난 봄, 친구가 버섯 재배와 퍼머컬처(Permaculture: 지속가능한 유기농업)를 실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시골집에 놀고 있는 땅에 감자를 심어 뜻밖의 수확을 거두기도 했고, 파리 집의 작은 정원에 깻잎을 심어 가을까지 따 먹으며 텃밭의 재미를 알아가던 터에 농사의 경험을 확장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법했다. 대뜸 함께 갈 것을 결정했다.

그런데 정작 날짜가 다가오자,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가 가야 할 장소는 파리에서 북쪽으로 236km 떨어진 노르망디 지역의 깡촌이었다. 지역 구석구석을 다니는 완행 열차(TER)를 타고도 1시간을 더 차로 들어가야 한다. 집에 있는 차는 남편이 몰고 시골집으로 가버렸고, 함께 가자는 친구 역시 차가 없다. 그런데 친구는 느긋했다. "블라블라카(Blablacar)로 가면 돼".

블라블라카는 프랑스에 있는 카풀사이트다. 그런 게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내가 가려는 그 깊고 깊은 시골에 마침 그 날짜에 가려는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했더니,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너, 블라블라카 한 번도 이용 안해봤구나?"

그녀의 경험에 따르면, 블라블라카로 갈 수 없는 곳은 없었다고 한다. 운전자의 행선지와 나의 목적지가 일치하지 않더라도, 운전자가 동행자 편의를 위해 조금 돌아가 주는 걸 거절한 경우가 자신의 경험으론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관대하고 너그러우며, 안되는 게 없는 세계가 (심지어 프랑스에) 있다고?

믿기 어려웠지만, 친구는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 아무 문제 없을 것임을 장담했다. 그녀는 나처럼 50대의 가녀린 체구를 가진 프랑스-알제리계 여성이다. 그녀에게 유쾌하고 안심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었다면, 내게도 그러지 않으리란 법이 없을 터였다.

나의 첫 블라블라카 체험

그리하여 지난 6월, 나의 첫 블라블라카 체험이 시작되었다. 친구는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날 떠났고, 나는 사정상 다음날 아침 일찍 출발해야 했다. 블라블라카 사이트에 가보니 과연 오전 6시반, 노르망디로 가는 남자가 있었다. 계산이 맞다면, 나는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9시에 목적지에 당도할 수 있다.

'베스트 드라이버'라는 라벨을 달고 있고, 사용자들로부터 평점 5/5점을 받은 그를 신뢰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다만 계약이 성사되기 전, 나는 그의 이동 경로로부터 10km가량 떨어진 나의 목적지로 데려다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흔쾌히 동의했다. 나는 즉각 그가 제시하는 비용인 15유로를 사이트에서 카드로 지불했고, 다음날 지하철역 앞에서 그를 만났다.

사진 속에서보다 10년 정도 나이 들어 보였고, 약간 더 경직되어 보였지만, 운전자는 예의발랐고 친절했다. 아직 어둑한 이른 아침, 낯선 길을 낯선 남자와 동행한다는 두려움은 짐과 함께 짐칸에 넣어두고 그의 차에 올랐다. 그날은 마침 노르망디 상륙 작전 80주년이 되던 날이었다. 그는 기념 행사에 참여하러 노르망디 해변으로 가는 중이라 했다.

전직 경찰인 그는 "제 권리만 요구할 줄 알고 의무는 깡그리 잊고 사는 인간들을 상대하는 게 너무 지겨워서" 경찰직을 그만두고, 지금은 경찰 학교의 교수가 되었다고 했다. 늘 집회 현장에서 시민들을 막아서는 방해꾼, 권력의 하수인으로만 바라보던 경찰을 처음으로 그들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공감되는 부분이 없지 않았다. 일상적 질서와 법규에 있어서, '법은 어기라고 있는 줄 아는 것 같다'는 것이 파리시민들에게서 받은, 때론 통쾌하고, 때론 쇼킹한 인상이었기에.

내 이름을 어떻게 읽는 거냐고 물어, '수정'이라고 하자, 그는 흠칫 놀라며, 자신의 어린 시절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 이름이 '민정'이었다고 또렷한 한국어 발음으로 말했다. 내 언니 이름이 민정이라고 알려줬더니 그는 이 믿을 수 없는 우연을 어찌해야 하나 더욱 놀라는 눈치였다.

한국 여자들에게 아주 흔한 이름임을 알려주며 그를 진정시켰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이집트에 가서 살았고, 거기 있는 국제학교에 다니면서 한국 외교관 자녀였던 친구 민정을 만나 단짝이 되었다고 했다. 지금은 소식이 끊겼지만. 그는 잠시 회상에 젖는 듯했다. 그 역시 한국에 대해 많은 것을 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던 끝에 2시간 반이 훌쩍 지나갔고, 그는 나를 보슬비 내리는 농장 앞에 내려 주었다.

"블라블라"는 우리말 "와글와글"과 비슷한, 수다 떠는소리를 표현한 의성어다. 나 홀로 차 몰고 먼 길 가지 말고, 낯선 사람들끼리 만나서 와글와글 수다 떨면서 여행하라는 의미가 이 장난스러운 작명에 담겨 있다.

나와 나의 첫 블라블라카 운전사였던 사람은 이 사이트 창업자의 주문대로 두시간 남짓, 기탄없이 떠들면서 서로가 모르는 세계에 대해 들려주고, 낯선 세계에 대한 담장을 조금 허물며 다른 세계를 이해할 수 있었다.

파리로 돌아올 땐, 양상이 좀 달랐다. 우리를 태운 차에는 나와 친구, 그리고 또 다른 동승자가 차를 가득 채웠다. 앞에 두 청년이 앉았고, 뒷좌석에 사흘간의 열정적 배움의 시간 끝에 녹초가 된 나와 친구가 지친 몸을 싣고 앉았다. 차 안엔 수다 대신 음악이 흘렀고, 우리는 모두 파리의 1호선 지하철역에서 내려,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파리가 종착점일 때면 적당한 지하철역에 내려주는 것이 공통의 룰이었다. 그 또한 나쁘지 않았다.

민족 대이동 속에 탄생한 스타트업

▲ 블라블라카 CEO 프레데릭 마젤라가 프랑스 파리에 있는 본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5.4.17. ⓒ AP/연합뉴스


카풀제도에 대한 기존의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인상을 불식시켜 준 첫 경험 이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떻게 이런 제도가 이토록 잘 안착될 수 있게 된 건지 궁금해졌다. 하여, 그들의 길지 않은 발자취를 살펴보았다.

때는 2005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당시 29살이던 프레데릭 마젤라(Frédéric Mazzella)는 명절을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 부모님이 계시는 프랑스 남서 지방, 방데로 가는 기차표를 구입하려 했다. 크리스마스 한 달 전이었지만, 이미 모든 표는 매진된 상태였고, 그에게는 차가 없었다.

결국, 다른 지방에 사는 여동생의 차를 어렵게 얻어 타고 부모님께 가는 길, 고속도로에서 그는 수많은 나 홀로 차량들을 목격한다. 이 많은 나 홀로 차량들이 서로의 옆자리를 채워서 갈 수 있다면 서로에게 이득일 텐데, 왜 이걸 가능케 해주는 서비스가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파리의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후,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IT관련분야의 석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프랑스로 돌아와 인시아드(INSEAD)에서 경영학 석사(MBA) 코스를 밟으며 다방면에서 경험과 지식을 쌓았다. 블라블라카를 설립하기 전, 미우주항공국(NASA)에서 과학 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다양한 학문적 배경과 경험을 가진 그는 성탄절에 부모님 댁으로 향하던 꽉 막힌 고속도로 안에서 이 일상의 불편을 해결할 멋진 방법을 찾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당시에도 이미 프랑스에는 장거리 카풀제 사이트는 존재했다. 에꼴 폴리테크닉에 다니는 공학도 뱅상 카론이 2004년에 만든 코부와튀라즈(covoiturage.fr)가 그중 하나였다.

회원들의 자발적 참여로 운영되던 이 카풀 사이트는 적당한 대중교통도, 차도 없을 때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긴 하였으나, 이런저런 잡음을 종종 빚곤 했다. 운전자의 태도가 썩 단정하지 않다거나, 동승자가 내릴 때가 되어서야 현금이 없다고 하며 지불을 미루는 등, 불편한 경험들이 종종 발생한다는 이야기들을 적잖이 들을 수 있었다.

새로운 집을 짓는 대신, 있는 집을 쓸만하게 고쳐 쓰기로 한 프레데릭 마젤라는 친구 두 사람과 함께 스타트업 회사를 차리고 인시아드(INSEAD)로부터 6만 유로를 지원받아 코부와튀라즈를 사들여 기존의 단점을 보완하기 시작했다.

사용자 리뷰, 각 멤버의 사진, 약력 등이 포함된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사용자들이 서로를 미리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져 갔고, 그 결과 2008년 말 이들의 사이트는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회원을 확보한 카풀 사이트가 되었다. 2009년에는 영역을 스페인까지 확장했고, 2011년에는 영국, 독일까지 진출했다.

매년 사업 영역은 점점 확대 됐지만, 재정적으론 여전히 안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2012년 온라인 예약 서비스를 통해 먼저 승객이 사이트에 결제를 하고, 운전자는 이후 자신의 몫을 지급받으며, 사이트가 20%의 수수료를 가져가는 최종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구축되면서 이들은 비로소 2013년에 이르러 창업자금 4만 유로를 갚을 수 있었다.

이후 서유럽, 남유럽, 동유럽은 물론, 발칸반도 국가들로 네트워크를 확장한 데 이어, 2014년엔 우크라이나, 러시아에 진출했고, 2015년엔 인도, 멕시코, 2016년엔 브라질까지 발을 뻗었다.

2021년말 통계로 블라블라카는 22개국, 1억 명 이상의 회원을 가진 세계 최대의 카풀사이트로 성장했다. 프랑스에서만 그 사용자가 2000만 명을 넘어서는데, 이는 프랑스 성인의 2/5가 이 사이트의 이용자임을 의미한다.

급증하는 카풀제 이용자들을 맞이하기 위해 전국 곳곳엔 이들이 서로를 만나 탑승하게 하는 주차 공간들이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블라블라카가 빠른 시간 내에 카풀 시장 90%를 점하는 독점적 강자가 되면서 발생한 문제들도 적지 않다.

공룡이 된 블라블라카의 그늘

첫 번째 문제는 공존해오던 군소 카플사이트들의 몰락이다. 전국 단위의 카풀 사이트 뿐 아니라 특정 지역내에서 무료로 운영되던 카풀 사이트들도, 점점 블라블라카의 회오리 속에 흡수되어가는 추세다. 각 지역공동체 입장에서 보면, 공룡에 의해 단란한 지역의 네트워크가 훼손될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4월 6일 자 <르몽드>에 따르면 블라블라카는 카풀제도를 강화하는 방식을 통해 에너지 절약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선정되어 2012년부터 정부로부터 연간 수만 유로에 달하는 정부 지원의 혜택을 받는 주요 기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반적 상식과 달리 과연 이들이 이 정도의 정부 지원을 받을 만큼 생태보호에 큰 기여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저널리스트 파비앙 지니스티는 자신의 저서 <블라블라카와 세계, 숨겨진 이면(BlaBlaCar et son monde: Enquête sur la face cachée du covoiturage)>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블라블라카 승객의 69%가 기차 이용자에서 블라블라카 이용자로 전환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지적하며, 블라블라카의 놀라운 성공은 결국 훨씬 더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인 철도의 미래를 위협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가장 안전하고 빠른 장거리 대중교통인 철도의 치명적 단점은 그들의 노선이 상대적으로 단조롭단 사실이다. 나의 경우에도, 파리집에서 시골집이 있는 부르고뉴에 가기 위해선 2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가까운 역에서 내린 뒤, 마중 나온 남편의 차를 타고 다시 30분을 달려야 시골집에 도착할 수 있다. 블라블라카의 신세계를 발견한 후엔, 기차역보다 더 가깝게 우리 시골집을 지나는 운전자가 있을 때 망설임 없이 블라블라카를 이용한다. 비용은 블라블라카가 철도보다 조금 더 싸다.

프랑스 철도공사(SNCF)는 이용자의 불편에 아랑곳하지 않고, 채산성 낮은 노선들을 차례로 폐쇄해 버렸다. 시골집 앞에도 도보 10분 거리에 철도역이 있었지만, 70년대에 문을 닫았다. 몇 년 전엔 있던 철로마저 철거해 버렸다.

철도의 미래는 카풀 제도가 나타나 빈 좌석을 채워 달리기 훨씬 이전, 철도공사 스스로가 위협한 셈이다. 철도가 제공해 주는 노선이 단순해지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차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프랑스인의 75-80%가 장거리 이동 시 승용차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줄일 수 있는 카풀

▲ 프랑스의 카풀 차량 주차장 표지판 ⓒ 위키미디어 공용


2019년 블라블라카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평균 3.5명의 승객이 블라블라카 차량에 탑승하며, 이는 평균 1.3명이 탑승하는 일반 승용차에 비해 3배 가까운 수치다. 블라블라카 이용자들의 평균 동승 주행거리는 239km다. 이들의 카풀 시스템 덕에 3대의 차가 239km를 달리는 대신 한 대의 자가 달린 셈이다.

블라블라카가 대중에게 각광받으며 급성장한 원인 중 엔 기후 위기 시대를 사는 공동체 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생태적 실천이란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거기에 더해, 운전자 입장에선 기름값·고속도로 통행료에 보탤 수 있는 돈을 받으며 장거리 여행에서 말동무를 얻을 수 있기도 하다. 승객 입장에선 저렴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는 장점 외에, 열차를 이용했을 때보다 좀 더 목적지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점이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각 운전자는 자유롭게 자신의 비용을 제시할 수 있다. 비슷한 거리임에도 운전자에 따라 10유로에서 25유로까지 다양한 비용이 제시된다. 승객은 운전자에 대한 신뢰도와 시간대, 비용, 출발/도착지의 근접성 등을 고려하여 차를 선택한다.

6월에 첫 시승한 이후, 지금까지 10여 차례 블라블라카를 이용했던 나의 경우,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세계에 대해 2시간씩 이야기하게 되는 즐거움에 기대를 갖고 매번 블라블라카를 타게 된다.

운전자와 둘이 가게 되는 경우, 혹은 운전자와 나, 다른 손님이 동승하게 되는 경우엔 차 안에서 흥미로운 대화가 이어지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부부나 친구들이 이미 앞 좌석에 동승한 상황에서 뒷좌석에 탄 경우, 그들 간의 대화가 주를 이루게 되고, 그럴땐 책장을 조용히 넘기며 여행 시간을 보낸다.

프랑스 저작권협회에서 일하는 직원, 평생 간호사로 일해왔고 은퇴해서도 요양원의 치매 노인들 곁에서 그들의 정신 건강을 유지시키는데 일상을 바치고 있다는 남성 간호사, 보트 피플 출신의 부모에게서 태어난 베트남계 피아니스트... 그들은 모두 자신의 삶에서 펼쳐지는 남모를 얘기들을 내게 들려줬고, 나 역시 그들이 잘 알지 못하는 한국인으로서의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남자든 여자든, 노인이건 젊은이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아시안이든 자신의 차에 생판 모르는 사람을 태우고 장거리를 여행하겠다고 마음 먹은 사람들에게는 '열린 마음'과 '인간에 대한 보편적 믿음'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여기에서 수치로는 계량화되지 않지만, 이 카풀 시스템이 이뤄내고 있는 사회적 통합과 연대감 구축이란 또 다른 성과가 드러난다.

한국 도입을 막는 현행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블라블라카의 독점 비율이 커지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단점보다 좋은 점이 훨씬 많은 이 시스템을 지켜보며, 최근 '추석'이라는 민족대이동의 몸살을 지나온 한국 사회의 현실을 떠올렸다. 한국에도 이처럼 장거리 카풀을 연결해 주는 사이트가 나오면 좋지 않을까? 출퇴근 카풀이 한 때 유행했었던 것처럼, 이 또한 안전장치들을 잘 갖추도록 설계해놓으면 우리 삶이 조금 더 편해지지 않을까? 삶이 더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창립 18주년을 맞아, 이제 막 성인이 된 블라블라카는 지난해 2억 5300만 유로의 매출을 기록하면서, 이를 통해 동시에 200만 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소시켰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국에 도입된다면 편의에 더해, 강력한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을 터이다. 프랑스 환경에너지국(ADEME)에 따르면 장거리 카풀 제도의 보편화는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12%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상상의 현실화를 막는 걸림돌이 있다. 대한민국의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 81조는 개인이 소유한 자가용 승용차를 유상 운송이나 대여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단, 출퇴근 시간만은 가능하다는 단서와 함께. 세계적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는 장거리 카풀을 제도적으로 막는 이 법률은 어떤 근거에서 비롯된 것일까? 시대의 요구에 맞추어 재검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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