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인 줄 '알면서' 저질렀다는 가해자는 없다"
27일 강남역 딥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 말하기대회
▲ 딥페이크성범죄OUT공동행동에 참여한 시민들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강남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딥페이크성범죄 OUT 공동행동에 시민들이 참여했다. ⓒ 서울여성회
▲ 구호를 외치는 시민들"딥페이크 성범죄, 국가도 공범이다!" 공동행동에 참여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서울여성회
서울 강남역은 매주 금요일이 되면 분노한 시민들의 목소리로 가득 찬다. 금요일 오후 7시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진행되는 딥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의 말하기대회는 27일로 5회차를 맞이했다. 약 130명가량의 시민들이 모여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국가의 근본적인 해결 대책을 요구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말하기대회 바로 직전, '딥페이크 처벌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딥페이크 사건이 터진 지 한 달이 지난 지금에서까지 꾸준히 목소리 내고 국가에 책임을 물은 여성들과 시민들이 함께 일구어낸 것이다. 하지만 갈 길이 아직 남아있다.
"누군가 카톡으로 영상을 보내면 자동 다운로드돼서 본다.", "고의라는 것을 더 명확하게 집어넣어야 불필요한 수사 대상이 확대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시청한 자를 처벌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다운로드해서 우연히 본 것까지 다 처벌해야 되느냐."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알면서'를 넣어서 이 법안을 통과시켜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
애초에 왜 '알면서'가 이토록 중요한 사안이 되었던 것일까. 이는 우리 사회가 아직도 가해자중심적임을, 국회가 피해자의 고통보다 가해자의 의도를 더욱 중요시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다.
▲ 발언하는 서울여성회 박지아 성평등센터장박지아 서울여성회 성평등센터장이 여는 발언으로 성착취 근절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국회와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 서울여성회
박지아 서울여성회 성평등센터장은 "오랫동안 성폭력 사건을 다루면서 '알면서도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가해자를 본 적이 없다"며 알았든 몰랐든 가해자의 의도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딥페이크 성범죄를 막기 위해 처벌을 확대하려는 법안에 굳이 '알면서'를 넣으려던 의원"들을 비판하며 이는 국회가 "아직도 딥페이크 성범죄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여성의 일상이 성폭력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불안감이 어떤 것인지를 절대 모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규탄했다.
구멍투성이 개정안...정부와 국회의 '의지 부족'에 대한 비판도
▲ '알면서' 넣자고 한 국회의원 규탄한다공동행동에 참여한 시민이 딥페이크 처벌법 조항에 '알면서'를 넣어 가해자의 의도를 기준으로 삼자고 했던 국회의원들을 규탄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 서울여성회
이번 딥페이크 처벌법이 국회에서 처리되며 빠지게 된 것 중 하나는 경찰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발견한 경우 직접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에게 피해물 삭제·차단을 요청하는 '응급조치' 신설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경유해야만 삭제·차단조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보다 신속하고 빠른 대응을 위해 피해자들이 가장 먼저 신고를 접수하는 경찰에 권한을 더욱 확대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업무부담 과중'을 이유로 경찰청에서 반대의 의견을 내었고, 국회 여성가족위원회가 이를 수용하며 '응급조치' 신설은 무산되었다. 경찰과 국회의 '의지 부족'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 "보여주기식 입법 말고 근본적 대책을 세워라"발언에 참여한 20대 여성 이수정 씨가 N번방에 이어 이번에도 드러난 국가와 정부의 의지부족을 규탄하고 있다. ⓒ 서울여성회
20대 여성 이수정씨는 이에 대해 "5년 전 N번방이 딥페이크 성범죄로 돌아왔듯이, 몇 년 뒤 더 심각한 피해로 돌아오지 않도록 지금 정부와 국회의 역할을 계속 지켜보고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5년 전 'N번방'때도 결국 소수의 가해자들만 처벌받고 국회는 가해자들이 빠져나갈 구멍투성이로 방치했던 것에 대해 언급하며, 이것이 똑같이 반복되지 않도록 행동해야 한다고 목소리 내었다.
앞서 발언한 박 센터장은 "딥페이크 성범죄물에 확산을 막기 위해 긴급한 삭제를 포함한 모든 조치를 가능케 하는 법과 예산이 필요"하며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디지털 성범죄를 사전에 예방하고 즉시 해결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글로벌 스탠다드'를 젠더폭력 해결에 적용하라"공동행동 참여단체인 국제전략센터의 황정은 사무처장이 발언하고 있다. ⓒ 서울여성회
또한, 한국과 상반되는 해외 정부들의 단호한 대처와 규제로 인한 효과도 언급되었다. 공동행동 참여 단체인 국제전략센터 황정은 사무처장은 해외에서는 "빅테크 기업들이 성착취물 방치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며 광고 수익을 올리고 있는 만큼 불법 콘텐츠 유통에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주요 국가들은 빅테크 기업에 대한 법적의무를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황 사무처장은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27개 주 정부에서 딥페이크를 규제하는 법안을 마련했고, 영국은 빅테크 기업에 아동 안전을 위협하는 콘텐츠가 게재된 사실을 알고도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으면 경영진 개인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온라인 안전법을 지난해 제정했다"며 윤석열 정부의 '글로벌 스탠다드'를 젠더폭력 해결에 적용하라고 촉구했다.
'여자어'와 '남자어'를 가르치는 학교 성교육
20대 여성 예진씨는 어느 날 동생에게서 듣게 된 충격적인 성교육의 현실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었다. 동생이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았다 하길래 무엇을 배웠느냐고 묻자 "남자는 직설적으로 말하고, 여자는 빙빙 돌려 말한다"는 '남자어'와 '여자어'의 차이에 대해 배우고 왔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난소가 무엇인지,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단어는 들어보았는지 물었을 때 동생이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을 보며, "제대로 된 성교육과 성평등 교육이 공교육에서 이루어지길 희망한다"고 이야기하였다.
딥페이크 사건이 터진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지금, 매주 이루어지고 있는 투쟁의 의미와 방향성에 대한 목소리도 나왔다. 앞서 발언한 예진씨는 "저는 제가 정말 세상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매주 시위를 나오는 제 모습을 스스로 발견하고, 마음 속 깊이에서는 누구보다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발언하였다.
사회주의정당건설연대 여성해방운동 형성 김민재 사업팀장은 이날 "딥페이크 사건을 두고 (가해자들)'갱생 불가능한 것 아니냐, 이들을 모두 감옥에 넣으면 과연 갱생가능하겠냐'라고 막막하고 절망적이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다"며, 이 절망을 끊어낼 방법은 "애초부터 여성의 몸이 남성과 같은 의미를 갖지 못하는, 여성의 몸이 성적 대상으로 취급되는 문화 자체에 대한 변혁"이라고 외쳤다. 그러면서 "여성 억압적 문화를 그 근본 원인까지 추적하여 완전히 철폐하기 위한 싸움을 끝까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금 새롭게 만들어가는 여성운동의 양상은 이전보다 발전된 형태로 만들어가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지금 그때보다 한발 더 나아간 지점에 서 있다"며, "앞으로 딥페이크 성폭력에 맞선 우리의 투쟁은 여성억압적 문화를 완전히 철폐하기 위한 투쟁으로, 우리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딥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 소속 단체인 '대학생 공동행동'을 제안해 활동하고 있는 심규원 서울지역대학 인권연합동아리 건국대학교 지부장은 "딥페이크 성범죄가 대학에서 이루어지고"있음에도 "대학은 수수방관으로 이 문제를 일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딥페이크 대응을 위한 관계자들과의 차담회에서 디지털기기 과몰입을 막을 수 있게 하겠다"라는 발언을 비판하며 교육부의 젠더관점 인식 제고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대학생 공동행동은 돌아오는 주부터 대학 당국의 무대응과 교육부의 안일한 대처를 규탄하기 위해 대학가를 순회하며 대학생 오픈 마이크를 진행할 예정이다(딥페이크 성범죄 OUT 대학생 공동행동 신청은 기사 하단의 링크를 통해 신청 가능).
▲ 딥페이크 성범죄 OUT 대학생 공동행동딥페이크 성범죄 OUT 대학생 공동행동의 참여단위들이 27일 강남역 공동행동에 함께 모였다. ⓒ 서울여성회
지워야 할 건 우리 사진이 아니라, 성착취 사회구조!
이날 시민들은 연대공연을 통해 현장에서 연결되기도 했다. 예술공동체 마루의 강효준씨는 517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을 추모하는 자작곡 '촛불을 밝혀라'와 함께, "지난주 공동행동에 참석한 후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자작곡을 만들게 되었다"며 이날 딥페이크 성범죄를 규탄하는 내용의 노래인 "지워야 할 건"을 처음 공개했다.
▲ 함께 노래부르는 시민들딥페이크 성범죄를 규탄하는 내용의 노래를 시민들이 함께 부르고 있다. ⓒ 서울여성회
지워야 할 건 우리 사진이 아니라
지워야 할 건 성착취 사회구조
지워야 할 건 우리 사진이 아니라
지워야 할 건 구조적 성차별
지워야 할 건 우리 사진이 아니라
지워야 할 건 여성 능욕문화
지워야 할 건 우리 사진이 아니라
지워야 할 건 무책임한 국가
이어서 참가자들의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딥페이크 성범죄 방지법'이 여가위, 방심위, 국회 본회의까지 논의되고 통과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들을 규탄하는 내용이었다.
참가자들은 "피해 고통보다 가해자 의도 중시한 국회의원 규탄한다!" "딥페이크 삭제 '긴급조치' 거부한 국회를 규탄한다!" "성적 수치심 강요하는 성폭력특별법 즉각 개정하라!" "보여주기식 입법 말고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딥페이크 성범죄 문제 해결을 국회에 촉구하는 강도 높은 목소리를 냈다.
▲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참여자들‘딥페이크 성범죄 방지법’이 여가위, 방심위, 국회 본회의까지 논의되고 통과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들을 규탄하는 내용의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 서울여성회
▲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참여자들‘딥페이크 성범죄 방지법’이 여가위, 방심위, 국회 본회의까지 논의되고 통과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들을 규탄하는 내용의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 서울여성회
무더운 여름날 시작되었던 공동행동 이어말하기는 어느덧 초가을에 진입하고 있다. 국가와 정부에서 이제야 딥페이크 성범죄 대응과 관련한 법안들을 속속 발의 및 논의하는 상황에서, 이제는 두 눈 크게 뜨고 시민들이 이들의 역할을 잘 견인해야 할 시점이다. 반소매를 입었던 참여자들이 하나둘 얇은 겉옷을 입음과 동시에, 딥페이크 성범죄 규탄 투쟁 또한 새로운 국면으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이에 공동행동은 10월 5일 토요일 오전 10시, 대방역 서울여성플라자에서 "딥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 중간결산 : 돌아보고 나아가기"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의 투쟁의 성과를 확인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집담회를 개최한다.
▲ 딥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 중간결산 집담회딥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에서 지금까지의 투쟁의 성과를 확인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집담회가 10월 5일 토요일, 대방역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진행된다(신청폼은 기사 하단) ⓒ 서울여성회
공동행동은 10월 4일에도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말하기대회를 이어갈 계획이다.
* 딥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은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강남역에서 말하기대회를 이어갑니다.
[딥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 소식 보기]
서울여성회 인스타그램 @seoulwom
서페대연 인스타그램, 트위터 @seoulfemi
[딥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 단체/개인 참여신청]
https://bit.ly/deepfakeout
[딥페이크 성범죄 OUT 대학생 공동행동 단체/개인 참여신청]
https://bit.ly/deepfakeout_univ
[딥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 중간결산 : 돌아보고 나아가기 집담회 참여신청]
https://bit.ly/deepfakeout_con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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