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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 열린 대구퀴어문화축제, 꺾이지 않았다

집회장소 옮겨 축제 열고 퍼레이드... 기독교단체 반대 집회 열었지만 충돌 없어

등록|2024.09.28 19:27 수정|2024.09.30 10:53

▲ 28일 오후 대구에서 열린 '제16회 대구퀴어문화축제'. ⓒ 조정훈


경찰이 장소를 제한하면서 반발하다 우여곡절 끝에 장소를 변경한 대구퀴어문화축제가 28일 대구 중구 반월당 네거리 인근 달구벌대로에서 무지개꽃으로 피어났다.

대구퀴어문화축제조직위는 28일 오후 달구벌대로 반월당에서 수성교 방향으로 3차선 도로에서 '꺾이지 않는 퍼레이드'의 슬로건을 내걸고 대구퀴어문화축제를 진행했다.

당초 경찰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무대가 설치될 지하철 2호선 반월당역 12번 출구 일대 도로의 통행을 제한하고 주최 측의 행사 개최에 협조하기로 했으나 도로 통제는 11시가 넘어서야 시작됐다.

또 집회 신고 구역인 3개 차로 안에 경찰 버스와 순찰차, 안전 울타리 등을 설치하자 주최 측이 반발해 경찰과 대치했다. 이 과정에서 주최 측 관계자들이 안전 펜스를 몸으로 밀어내면서 충돌했고 경찰은 일방적으로 집회 제한 통고를 하기도 했다.

경찰과의 대치 끝에 1시간가량 늦은 낮 12시 35분께 주무대와 현장 부스가 설치됐고 예정됐던 행사도 뒤로 밀렸다.

▲ 28일 오후 대구에서 열린 '제16회 대구퀴어문화축제'. ⓒ 조정훈


▲ 28일 오후 대구에서 열린 '제16회 대구퀴어문화축제'. ⓒ 조정훈


▲ 28일 오후 대구에서 열린 '제16회 대구퀴어문화축제'. ⓒ 조정훈


현장 부스는 성소수자단체와 성소수자가정, 인권단체, 전교조 등 시민단체, 진보당과 정의당 등 진보정당, 원불교, 성공회 등 종교단체 등이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퀴어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두르거나 얼굴 등에 타투를 하기도 하고 각 부스에서 다양한 이벤트에 참여하기도 하는 등 축제를 즐겼다.

외국에서 온 원어민 강사들은 '성소수자 학생 여러분, 원어민쌤이 당신을 응원합니다'라고 쓴 손피켓을 들고 참가자들과 함께 축제에 동참했다.

미국에서 왔다는 어스틴(27)씨는 "한국은 아주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인종 차별, 학교에서의 성차별과 성적 지향, 이주민들에 대한 차별에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국에 와서 특히 대구와 같은 보수적인 도시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는 것을 알았을 때 와보고 싶었다"며 "동료 강사들과 함께 와 학생들에게 우리가 당신의 친구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함께 거제도에서 대구에 왔다는 박아무개(18)씨는 "생각보다 할 것도 많고 볼 것도 많고 멋있는 분들도 많았다"면서 "이번에 처음 왔지만 혐오스러운 것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다양성 있는 모습들을 보고 내년에도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 28일 오후 대구에서 열린 '제16회 대구퀴어문화축제'. ⓒ 조정훈


▲ 28일 오후 대구에서 열린 '제16회 대구퀴어문화축제'. ⓒ 조정훈


성공회 민김종훈(자캐오) 신부는 "퀴어는 한국 사회에서 끊임없이 핍박을 당하고 배제당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퀴어축제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로서 당연한 일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자캐오 신부는 "공공성이라는 것은 단순한 기계적 중립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들어올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며 "홍준표 대구시장을 비롯해 대구 경찰의 행태는 굉장히 공공적이지 않고 어떤 특정한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뭔가 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오후 5시부터 열린 무대 행사에서는 퀴어축제의 장소를 제한한 경찰과 법원, 대구시를 성토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김민준 영남지역 성소수자 지지모임 대표는 "일상 속에서 성소수자들은 존재를 들어내지 않아도 혐오 발언을 듣고 살고 있다"며 "퀴어축제는 성소수자가 언제나 어디에서나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다양성을 알리기 위해 개최됐다"고 말했다.

홍희진 청년진보당 대표는 "뉴스를 통해 대구의 험난한 상황을 접할 때마다 분노하며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며 "대구의 퀴어퍼레이드를 지켜낸 우리야말로 공공의 인권의식 향상과 민주주의의 수준을 높이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우리의 존재 자체가 저항이고 운동이자 투쟁"이라며 "지금 당장은 홍준표 시장과 혐오세력이 기승을 부리는 것처럼 보여도 끝까지 살아남아 빛나는 존재로 기억되자"고 강조했다.

배진교 대구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장은 "경찰이 (대중교통전용지구의) 1개 차로로 축제를 제한해서 장소를 옮기게 됐다"며 "그런데도 다시 장소를 제한하고 공권력으로 탄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즐기겠다는 의지와 소수자의 자긍심을 담아 축제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배 위원장은 "우리의 축제는 경찰이 이야기하는 집회처럼 가만히 앉아서 대기를 하거나 발언을 듣는 축제가 아니다"라며 "대구시와 경찰이 모든 행정력, 공권력을 동원해 축제를 방해하고 나섰지만 우리들은 이 공간에서만큼은 자유롭고 안전하게 축제를 즐겼으면 한다"고 했다.

무대행사를 마친 이들은 반월당네거리에서 중앙대로, 국채보상로, 공평로, 봉산육거리를 돌아 다시 반월당네거리로 돌아오는 약 2.5km 구간을 행진했다.

기독교단체 등 3000여 명 퀴어 반대 기도회 등 열어

▲ 28일 오후 대구 중구 반월당네거리 인근 달구벌대로에서 대구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는 기독교단체가 퀴어반대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 ⓒ 조정훈


▲ 28일 오후 대구 중구 반월당네거리 인근 달구벌대로에서 대구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는 기독교단체가 퀴어반대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 ⓒ 조정훈


퀴어축제가 열리는 동안 보수단체와 기독교단체들로 구성된 '대구퀴어반대대책본부'는 반월당네거리 현대백화점 맞은편에서 3000여 명이 모여 집회를 열고 퀴어축제를 반대했다.

참가자들은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동성애는 인권이 아니라 죄입니다" 등의 구호를 외치고 통성기도를 하는 등 예배 의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일부 참가자 중에는 아빠와 딸이 함께 참석해 '차별금지법 반대, 평등법(동성애) 반대'가 적힌 피켓을 들고 서서 눈을 감고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김영환 사무총장은 "우리는 사람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를 반대한다"며 "하나님이 주신 성을 바꾸고 동성끼리 결혼하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동성애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모습을 본 자캐오 신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마음이 아프고 성소수자나 함께하는 시민들에게 너무 죄송하다"며 "퀴어를 반대하는 분들이 어떤 특정한 (성서의) 문자적인 해석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자기들 입맛대로 결정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 28일 오후 대구 중구 반월당네거리 인근 달구벌대로에서 대구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는 기독교단체가 퀴어반대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 ⓒ 조정훈


▲ 28일 오후 대구 중구 반월당네거리 인근 달구벌대로에서 대구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는 기독교단체가 퀴어반대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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