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응급실 진료대란에 창원서 서울까지 전화 "코로나 때도 이 정도는..."

[이영광의 '온에어' 326] MBC < PD수첩 > 이규찬 PD

등록|2024.09.30 07:27 수정|2024.09.30 07:27
의대 증원 문제를 둘러싼 의정 갈등이 7개월째 지속되면서 '응급실 뺑뺑이'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지난 24일 MBC < PD수첩 >에서는 '환자 표류: 응급의료체계는 붕괴하는가' 편이 소개됐다. 방송에선 권역응급의료센터, 권역외상센터, 2차 병원 지역응급의료센터 등 다양한 의료기관의 응급의료 현장을 밀착 취재한 내용이 담겼다.

취재 뒷이야기가 궁금해 25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해당 회차 연출한 이규찬 PD를 만났다. 다음은 이 PD와 나눈 일문일답 정리한 것이다.

"정부-의료현장 인식에 너무 큰 괴리 있어"

▲ 의정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29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 응급실 진료 지연 안내문이 놓여 있다. ⓒ 연합뉴스


- 응급의료 체계에 대한 취재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 PD수첩 >에서 의료 공백과 관련한 아이템을 다룬 건 이번이 세 번째예요. 의료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응급의료가 무너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죠. 지금 시점에서는 '응급의료 체계'를 중심으로 의정 갈등 상황을 짚어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또 정부와 의료 현장의 인식에 너무 큰 괴리가 있기도 해서 먼저 의료 현장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도 했죠."

- 7월 응급실에 늦게 도착해 사망한 엄아무개씨 사건으로 방송이 시작되던데, 구성 의도가 궁금합니다.
"'응급실 뺑뺑이'의 많은 사례가 이미 뉴스로 보도됐어요. 그렇지만 가장 익숙한 사례부터 이야기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엄씨 같은 경우는 너무 안타까운 사례이기도 하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의 면면이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경우이기도 했어요."

응급 환자는 처음에 괜찮아 보일지라도 언제 어떻게 상태가 악화될지 몰라요. 그래서 가능한 한 빨리 응급 처치를 하고 치료를 받는 일이 중요하다는 게 상식이에요. 엄씨 같은 경우 처음에 의식이 명료했지만 10개 병원에서 응급실 수용이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으며 시간이 흐르고 마지막 병원에 도착할 때쯤에는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어요."

- 유족들을 인터뷰하기도 어려웠을 것 같아요.
"이번에 인터뷰를 해주신 분들이 다 그랬던 것 같아요. 물어보지 않아도 일상에서 계속 그때 생각이 떠오르고 괴로울 테니까요. 항상 인터뷰할 때 죄송한 마음이 한편에 들어요.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방송을 하고 나면 다른 때보다 더 힘든 것 같아요. 그럼에도 이야기해 주시는 분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이런 문제가 누군가에게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 예전에도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있었다고 하잖아요.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어떤가요?
"'응급실 뺑뺑이'는 예전에도 있던 문제예요. 하지만 이송 현장, 의료 현장에 있는 분들은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다고 해요. 심지어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도 발열 환자와 관련해서만 그런 일을 겪었지 지금처럼 전반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고도 했고요. 지금은 어느새 익숙한 뉴스가 돼버렸잖아요."

- 방송을 보니 경남 창원에서 서울에 있는 병원까지 전화가 온다던데.
"맞아요, 그런데 구급대원들은 이미 지방에서 수도권 지역의 병원까지 이송 문의를 하는 게 그렇게 듣기 어려운 이야기가 아닐 거라고 했어요."

- 창원에 있는 환자가 서울까지 가려면 그만큼 시간이 걸리니 위험할 것 같아요.
"맞아요. 응급인데 굉장히 먼 곳의 병원으로 가야 하니, 응급상황에 가장 중요한 빠른 이송과 처치를 어느 정도 포기하는 거죠.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 거고요."

"의료대란 총체적 문제, 응급실 통해 드러나는 듯"

▲ 이규찬 PD ⓒ 이규찬 제공


- 직접 응급실에 가봤을 때 현장이 어땠나요?
"지금 겉으로 보이는 응급실의 모습은 병원마다 많이 달라요. 환자가 많이 몰리는 곳도 있지만 반대로 텅텅 비어 있는 응급실도 있죠. 이전 같으면 수용 가능했던 수의 환자를 받지 못하니까 텅 빈 침대들이 많음에도 환자를 받지 못하는 풍경이 펼쳐져요. 침대만 있을 뿐 응급환자를 치료하지 못하니까요."

- 교수나 전문의가 응급실과 외래를 오가는 것 같던데, 전공의가 없어서 그런 건가요?
"교수나 전문의가 언제나 올 수 있는 상태로 항상 대기하고 있는 건 아닌 거잖아요. 응급실에서 어떤 환자가 발생하면 전공의가 먼저 가서 환자를 살펴보는 경우가 많아요. 외래 진료를 보거나 수술하는 교수가 갑자기 멈추고 내려올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전공의의 빈자리를 기존의 전문의가 모두 메꾸고 있는 거죠. 환자 입장에서도 전문의가 급한 수술을 하고 있다면 결정이나 처치가 늦어질 수밖에 없어요."

반대로 한 병동에서 갑자기 심정지 환자가 발생한 경우가 있었는데, 응급실에서 근무하고 계시던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응급처치하려고 급하게 병동으로 올라갔어요. 그런데 혼자 응급실에 근무하고 있던 의사가 그렇게 가게 됐을 때 응급실에 응급 환자가 동시에 온다면 또 봐줄 의사가 없는 거죠."

- 총체적 문제네요.
"사실 단순히 의사가 없다는 말로도 그 안의 시스템이 충분히 설명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응급실은 병원의 게이트키퍼 역할을 한다고 하거든요. 응급 환자가 도착하면 응급실에서 빨리 진단하고 처치해서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환자를 보내는 역할을 해야 하는 건데 배후 진료과에 의사가 없으면 그 환자를 보낼 수가 없는 거예요.

전공의가 떠났을 때 단순히 응급실에 전공의가 없는 정도의 타격을 받는 게 아니고 정형외과에 전공의가 없고 외과의 전공의가 없고 그러면 그 과들이 다 타격을 받았던 게 누적돼서 응급실은 더 큰 타격을 받는 거예요. 지금 의료대란의 총체적 문제가 사실 응급실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도 같아요."

- 이게 의정 갈등으로 인한 거잖아요. 의사 증원에 대해 의사들이 반대할 것은 누구나 예상 가능했던 일이죠. 따라서 정부가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증원 발표를 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옵니다.
"지금 장기화되고 있는 사태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와 책임이 있겠지만 어쩔 수 없이 제1의 책임은 정부에게 있는 것 같아요. 이 정도의 정책을 밀어붙여야 했다면 다음에 벌어질 일도 치밀하고 냉정하게 분석해서 대처 방안을 미리 생각해 뒀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추석 응급실 대책으로 정부가 내놓은 게 경증은 동네병원 가고 중증만 응급실 가라는 거였죠. 그러면서 '전화할 수 있으면 경증'이라고 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처음 응급상황일 때 경증인지 중증인지 정확히 구분할 수 없다는 거예요. 심지어 전문가도 어느 정도 오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판단하는데 환자는 불안할 수밖에 없죠. 확실한 경증, 중증 말고 그사이에 판단이 어려운 환자들이 특히 문제가 돼요."

- 정부는 추석연휴가 끝난 뒤 '큰 혼란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여러 노력으로 걱정했던 만큼의 응급실 대란은 없었다고 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방식으로 버틸 수는 없을 거예요. 그다음의 대처 방안을 생각해야 하는 것 같아요."

"의료의 중심엔 환자 있어야"

▲ 방송 한 장면 ⓒ MBC


- 개인적으로 4기 암 진단을 받고 14일 사망한 환자의 동생 이야기가 절절하게 다가오더군요.
"너무 가슴 아팠어요. 정말. 당시에도 긴 시간 눈물을 멈추지 못하셨고 저 역시도 너무 가슴이 아팠는데 인터뷰 후에 누나분의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는 갑자기 멍해졌어요."

- 제일 가슴 아팠던 게 마지막 말인 것 같아요. 아무 문제 안 삼을 테니 치료만이라도 받게 해달라고 했잖아요.
"동생분의 이야기가 사실 저희가 말하고 싶었던 거고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었어요. 동생분은 방송을 통해 혹시라도 누나가 치료받을 기회가 기적적으로 생긴다면 하는 마음도 있다고 하셨거든요. 여러 가지 정책적인 부분, 이해관계, 갈등 요소들이 있지만 환자의 목숨보다 우선시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다른 어떤 명분도 그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 취재하며 느낀 점 있을까요?
"좋은 의료 시스템이란 건 환자가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반드시 전제돼야 하는 것 같아요. 특히 제때 치료받아 살릴 수 있던 응급환자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은 대다수 국민이 동의하는 부분일 거예요. 전공의에 과도하게 의존했던 것 등 기존 의료 시스템에도 여러 문제가 있었던 것도 맞아요. 시스템상 취약했던 부분들을 묵혀뒀다가 이번 의료 공백 장기화로 가장 취약한 곳부터 무너지면서 이전에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다시 이야기되는 걸지도 몰라요. 하지만 어떤 정책 부분, 이에 대한 반대 모두 가장 중심에는 환자가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적어도 의료와 관련해서는요."

- 취재했는데 방송에 못 담은 게 있나요?
"많아요. 특히 응급의료 체계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했어요. 응급의료 체계 역시 기존의 문제가 있었는데 이번 의료 공백으로 인해서 그 문제가 부각됐다고 볼 수 있거든요. 시스템은 단기간에 고칠 수가 없어요. 시스템을 쌓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에 애초에 설계부터 섬세하게 접근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현장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는 게 우선이라 생각되더라고요. 때문에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보다 너무 못하게 돼 아쉬워요."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