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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웅석봉 아래 흘러오는 경호강 꺽지 설화

산청 지리산 둘레길 6코스의 역사 문화 탐방 여행

등록|2024.09.30 09:27 수정|2024.09.30 09:27

▲ 산청 수철 마을 정자 ⓒ 이완우


먼 길을 걸으면 마음은 단순해진다. 수없이 반복되는 걸음이 산줄기 따라 강물 따라 흘러갈 뿐이다. 9월의 마지막 주말, 지리산 둘레길 6코스 구간에는 가을 햇살이 한결 청량했다. 지리산 둘레길은 산줄기는 강 물결과 쉽게 어울리고, 이 길을 걷는 사람은 어느덧 산과 강이 펼쳐내는 자연의 호흡을 닮아간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동북 방향으로, 직선 거리로 10km 가깝게 수철마을이 있다. 이곳에서 경호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풍현마을의 성심원까지 12km의 구간이 지리산 둘레길 6코스 구간인데, 지리산의 동쪽의 웅석봉 산자락을 멀리 휘돌아 흐르는 경호강 물결을 따라 걷는 길이다.

지리산 둘레길 6코스를 다시 작은 세 구간으로 나누면, 첫째 구간은 수철마을에서 수철천 개울을 따라 경호강까지 논길이고, 둘째 구간은 경호1교를 건너 경호강을 따라 산청읍 시가지를 보며 걷는다. 셋째 구간은 내리교를 건너 경호강을 왼쪽에 두고 성심원까지 걷는 길이다. 결국 지리산 둘레길 6코스의 개요는 수철천(작은 개울)을 따라 경호강을 찾아가고, 이 경호강의 강변길을 따라 걷는 구간이다.

수철마을에서 경호1교까지를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둘레길은 수철마을을 출발하여 논길을 걸어 지막마을과 평촌마을을 지나, 59번 국도를 가로질러 대장마을을 거쳐 간다. 경호강의 경호1교까지 4.1km의 수철천을 왼쪽에 두고 둘레길이 이어진다.

지막마을은 맑고 깨끗하게 흐르는 수철천의 풍부한 수량을 활용하여 한지(닥종이)를 만들던 곳이다. 지막마을 옆 숲이 우거진 계곡에 '자연동천(紫烟洞天) 춘래대(春來臺)'라는 글씨가 파인 커다란 바위가 있다. 남명 조식(1501~1572)이 제자들과 머물렀던 유적지이다.

평촌마은은 옛날에는 진주군 삼장면 지역이었다. 평촌마을을 지나 금서농공단지 앞에서 지리산 대원사 방면 가는 길인 59번 국도를 만난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10km 위치의 대원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삼장사라는 큰 절이 삼장사지 삼층 석탑 하나만 남아 있다. 삼장사의 암자였던 대원암이 현재의 지리산 천왕봉 등정의 중간 거점인 대원사이다.

대전통영고속도로 산청IC를 벗어나는 59번 국도는 지리산 가는 길이라고 할 만하다. 삼장면의 대원사 계곡으로 오르면 하봉, 천왕봉에 이른다. 삼장면의 중산리 계곡으로는 법계사 장터목을 거쳐서 천왕봉에 이른다. 시천면의 거림 계곡은 철쭉으로 유명한 세석고원으로 오른다. 지리산 동편 계곡이 울창한 산청 삼장면과 시천면은 남명 조식의 역사와 설화가 곳곳에 전해온다.

둘레길은 대장마을을 거치고 수철천 건너 금서농공단지를 바라보며 수철천을 건너서 대전통영고속도로 교각인 경호강2교 아래를 지났다. 수철천이 흘러들며 경호강을 만났고 ,둘레길 걸음은 경호1교에서 잠시 멈추었다.

▲ 산청 경호강 ⓒ 이완우


경호강은 산청에서 진주의 진양호까지 32km의 남강 물길을 이르는 말이다.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경호강 물줄기는 남원 운봉고원의 람천이 흘러내린 함양 임천강의 물결과 만나고, 지리산 천왕봉 아래 중산리 계곡의 시천천과 대원사 계곡의 덕천천이 모여든 덕천강과 함께 진주 진양호에서 흘러든다. 남강은 진주에서 의령, 함안을 흘러 창녕에서, 강원 태백에서 발원한 낙동강 본류와 만나서 부산 을숙도에서 남해로 흘러든다.

경호1교에서 내리교까지 3.0km의 둘레길은 경호강의 여유로운 물결을 따라가며 걸었다. 경호1교를 넘어 경호강을 건너면 경호강을 오른쪽에 두고, 산청읍을 왼쪽에 두고 둘레길이 이어진다. 경호1교 지난 둘레길은 경호강을 따라 큰 활모양을 그리면서 고속도로 아래를 두 번 지난다.

산청 지역에서 경호강은 대전통영고속도로, 남해 진주에서 산청을 거쳐 함양 거창으로 이어지는 3번 국도와 거의 나란히 흐른다. 어느덧 경호강을 바라보며 걷는 수려한 강변의 풍경은 웅장한 웅석봉의 산줄기를 마주한다.

둘레길에서 바라보는 웅석봉 산자락은 가파른 산의 형태가 빙하에 침식된 히말라야의 고봉 같다. 천왕봉에서 시작한 산줄기가 중봉 하봉을 거쳐 왕등재, 깃대봉을 거쳐 높이 솟아오른 곰바위산(웅석봉)은 지리산 태극종주의 깃대봉이기도 하다.

▲ 산청 경호강과 웅석봉 풍경 ⓒ 이완우


지리산에 심취한 사람들 사이에 전해오는 바람이 있었다. 지리산 천왕봉에 한번 올라보면,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25km의 종주를 꿈꾸고, 지리산 주능선 종주를 성취하면 이제는 지리산 서북쪽의 운봉고원 덕두산부터 천왕봉에 오르고 중봉을 거쳐 지리산 동쪽의 웅석봉까지의 80km의 지리산 태극종주를 꿈꾸게 된다고. 국립공원의 법정탐방로 제도 시행으로 지리산 중봉에서 웅석봉에 이르는 일부 구간이 비법정탐방로가 된 지금은 지리산 태극종주는 전설처럼 이야기된다.

둘레길이 이어지는 경호강은 민물고기 쏘가리와 꺽지가 지리산의 기상을 닮아 힘차단다. 쏘가리와 무척 닮은 꺽지는 덩치는 작지만 부성애가 강하고, 돌고기의 탁란(托卵)조차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맘씨 좋은 물고기란다. 꺽지가 크기는 작아도 아가미에 검은 무늬가 선명하고, 등지느러미가 당차서 몸통을 움켜잡으면 순간적으로 등지느러미를 빠짝 세워서 잡는 손을 날카롭게 찔러 상처가 나기도 한단다.

경호강의 꺽지는 지리산 자락에서 노년을 보낸 남명 조식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온다.

남명 조식(1501~1572)과 퇴계 이황(1502~1571)이 내기를 하였다는 얘기다. 경호강의 꺽지를 회를 쳐서, 먹고 그것을 다시 뱉어내서 살리는 시합이었다. 퇴계가 꺽지를 한참 씹다가 강물에 뱉어내었다. 꺽지가 살아났는데 눈이 한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꺽지의 형태가 정상이 아니고 힘없이 물결에 떠내려갔다. 남명이 꺽지를 한참 씹다가 뱉어냈다. 꺽지가 역시 살아났다. 그런데 남명이 살려낸 꺽지는 두 눈이 온전하며 나머지 형태도 정상이었고, 강물을 힘차게 거슬러 헤엄쳐 올라갔다.

▲ 산청 내리 마을 웅석봉 타일 큰 그림 ⓒ 이완우


실제론 남명과 퇴계가 직접 만난 적이 없었는데도 이런 설화가 민간에 전승되었다. 이 이야기는 우화처럼 함축적이다.

남명은 유학자로서 책을 뚫고 현실로 나아갔다. 남명과 퇴계가 세상을 떠난 후 20년 후에 임진왜란이 닥쳤다. 남명의 정신과 학풍을 이은 남명의 제자들은 의병을 일으켜 진주대첩 등 많은 전투에 참여하였고, 왜군의 보급로 차단 및 후방 교란 등의 의병 활동으로 왜군의 전략에 많은 타격을 주었다.

請看千石鍾 (청간천석종)
非大扣無聲 (비대구무성)
爭似頭流山 (쟁사두류산)
天鳴猶不鳴 (전명유불명)

수십 톤 무게의 종을 쳐 보세요.
웬만큼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지요.
(내가) 어찌하면 두류산(지리산)과 다투어,
하늘이 울려도 오히려 소리 나지 않을까?

남명이 쓴 이 한시는 '저 지리산처럼 하늘이 때려도 울지 않고 버틸 수 있길 기대하고 있다'는 남명의 높은 기상을 스스로 보여 준다. 지리산 천왕봉 아래 웅장한 자태의 웅석봉, 경호강의 등지느러미 날카로운 꺽지와 의로움을 바탕으로 실천적인 남명 조식이 함께 이 지역의 인문지리를 이루고 있다.

성호 이익(1681~1763)은 <성호사설>에서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을 나란히 두고 서술하였다. 퇴계가 소백산 아래에서 태어나고, 남명이 두류산 동쪽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모두 영남 땅으로, 상도(上道: 경상좌도)에서는 인(仁)을 숭상하고 하도(下道: 경상우도)에서는 의(義)를 주장하여 유학의 교화와 기개 그리고 절조가 넓은 바다와 높은 산과 같았다.

내리교에서 한밭마을과 바람재를 거쳐 성심원까지 4.9km의 둘레길을 걸었다. 경호강의 흐름을 왼쪽에 바라보고 강변 코스로 걷는다. 내리교에서 바람재는 선녀탕을 거쳐 가는 지선 6.8km의 산길 코스도 많이 걷는 코스이다.

▲ 산청 성심원 ⓒ 이완우


▲ 산청 성심원 마당의 나룻배 ⓒ 이완우


경호강을 건너는 다리 너머로 풍현(바람재) 마을의 사회복지 시설이며 천주교 종교 시설인 성심원이 가깝게 다가왔다. 60여 년 전에 지리산 웅석봉 자락 경호강이 흐르는 외딴곳으로 진주 한센인 마을 구생원에서 경호강을 따라 올라 이주해 온 60여 명의 한센인들은 흙을 파고 짚을 썰고, 돌을 날라 자립하는 마을을 만들었다. 성심원은 소외된 '육지 속의 섬'으로, 경호강을 나룻배 타고 건너야 했다.

현재 이곳 성심원에는 우리나라의 마지막 한센인 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1980년대에 백신 보급으로 한센병 완치가 가능해지면서 국내에서는 새로운 환자가 더 이상 생겨나지 않는다. 경호강변의 성심원에서 가장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보금자리를 흘러가는 강물 옆에 서서 하염없이 바라본다.

지리산 둘레길 6코스는 경호강을 따라가면서 바라보는 웅석봉과 경호강 꺽지 설화가 인상적이었고, 경호강의 여유롭고 무심한 흐름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산줄기 따라 강줄기 따라 얼마나 더 걸으면 저 산줄기처럼 저 강 물결처럼 맑아지고 그만큼 여유로워질까? 지리산 둘레길 7코스, 산청 풍현 마을 성심원에서 웅석봉 능선을 넘어서 운리 마을까지 13km의 먼 길이 계속 펼쳐져 있었다.

▲ 산청 경호강 옆 지리산 둘레길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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