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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극우로 결집한 프랑스, 녹색당은 역대 최다 의석

[녹색정치 리포트] 2024년 창당 40년 맞은 프랑스 녹색당(하)

등록|2024.10.02 11:42 수정|2024.10.02 11:49
[녹색정치 리포트] 2024년 창당 40년을 맞은 프랑스 녹색당(상)에 이어

극우 대통령과 제1야당을 막은 프랑스 공화전선
비례대표제 선거제도, 국민투표 안을 들고 나온 극우

2017년 대선 당시, 엠마누엘 마크롱은 중도를 자청하며 전진(EM, 현 마크롱 대통령 정당인 르네상스의 전신)을 창당해 대선에 도전했다. 그리고 1차 투표에서 기성 제도권 정당을 대표하는 사회당과 공화당 후보를 이기고 23.9%를 얻어 1위로 2차 투표(결선투표)에 진출했다. 마크롱과 함께 2차 투표에 오른 다른 후보는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Marine Le Pen)이었다.

올랑드 대통령의 경제부 장관을 역임했던 마크롱이 당을 뛰쳐나와 신당을 창당해 대권을 노리는 동안, 르펜은 유럽연합 탈퇴, 국제무역협정 파기, 이민 제한과 난민 송환, 이슬람 반대 등을 말하며 사회·경제적으로 불안한 유권자들의 표를 모으고 있었다. 결국 2002년 때처럼, 공화전선(Front Républicain: 극우 세력의 집권 저지를 위해 우파와 좌파가 이념적 차이를 넘어 전략적 선거동맹을 맺는 경우)이 발휘됐다.

당선 직후 마크롱 대통령은 "나를 지지해서가 아니라 극우를 막기 위해 표를 준 것을 잘 안다"며 "이제는 한 진영이 아니라 만인의 대통령으로서 모두를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대통령이 된 마크롱은 2022년에도 좌파, 중도 진영의 표를 받아 재선에 성공했다.

작년 극심했던 연금개혁 통과를 지나, 임기 7년 차인 마크롱 대통령은 올해 최고 위기를 맞았다.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정당 르네상스(Renaissance)는 14.6%를 득표해, 31.1%를 득표한 국민연합의 반도 못 미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의회를 해산하고 3주 후 총선을 통해 국민들에게 재신임을 받겠다고 했다.

대통령 측근조차 예상하지 못한 조기 총선이었다. 총선 준비를 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생태-좌파 진영은 2년 전 총선에서 만들어진 신민중생태사회연합(NUPES)을 다시 소환했다. 녹색당(EÉLV)과 좌파 정당들은 재빠르게 '신인민전선'(NFP)이라는 이름으로 선거동맹을 꾸렸다.

'인민전선'(FP). 88년 만에 다시 등장한 이름이었다. 1930년대 독일과 이탈리아를 비롯해 파시즘이 판을 치는 유럽 상황에서 프랑스 좌파 정당들은 1936년 총선에서 '인민전선'을 구성해 전체 610석 중 과반 이상인 386석을 차지하며 프랑스 최초의 좌파 정권을 구성한 바 있다.

녹색당 상드린 루소(Sandrine Rousseau)는 파리 제9선거구에 신인민전선 후보로 나서면서 말했다. "당을 하나로 만들자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유권자를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2024년 6월 30일 총선 1차 투표에서 과반 이상 득표로 당선된 녹색당 상드린 루소프랑스 녹색당 내에서도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경제학자이자 파리 13구 국회의원인 상드린 루소(Sandrine Rousseau)의원은 이번 총선 1차 투표에서 52.13%로 당선이 확정됐다. 2차 투표를 앞두고 “국민연합을 막고, 신인민전선이 이길 수 있는 날이 5일 남았습니다”고 유권자들을 독려했다. ⓒ 상드린 루소 의원 페이스북


위기의 유럽, 기후보다 극우가 더 문제?
선거동맹 속 역대 최대 의석을 배출한 프랑스 녹색당

2024년, 유럽의 상황이 1930년대와 무엇이 다를까. 2022년 이탈리아는 극우 정당 이탈리아의형제들(FdI)의 조르지아 멜로니(Giorgia Meloni)가 총리가 되었고, 2024년 독일의 극우 정당 독일을위한대안(AfD)은 최근 독일의 튀링겐주 선거에서 32.8% 득표율을 기록하며 1위로 전체 의석 중 3분의 1 이상(88석 중 32석)을 차지했다. 프랑스에서 극우 세력은 꾸준히 성장해 제1야당을 넘보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난 6월 실시된 총선 1차 투표에서 국민연합이 주도하는 극우 선거동맹은 가장 높은 득표율과 당선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2차 투표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주도하는 앙상블(Ensemble)과 신인민전선의 후보들이 당선되어, 간신히 국민연합이 과반을 넘거나 제1당이 되는 것을 막았다. 신인민전선을 주도한 굴복하지않은프랑스(LFI)의 장뤼크 멜랑숑(Jean-Luc Mélenchon) 대표는 의회 내 좌파 진영을 끌어모아 193석으로 제1야당을 꾸렸다.

▲ 2024년 7월 7일(현지시간) 프랑스 좌파 연합 내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의 장뤼크 멜랑숑 대표가 파리 시내에서 총선 2차 투표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뒤 양팔을 번쩍 치켜들고 있다. ⓒ 연합뉴스


2024년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총선) 결과녹색당은 신인민전선 선거동맹을 통해 28명으로 역대 가장 많은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신인민전선을 주도한 굴복하지않은프랑스의 멜랑숑 대표는 의회내 좌파 진영을 끌어모아 193석으로 제1야당을 꾸렸다. ⓒ 손어진


이번 총선에서 녹색당은 신인민전선 선거동맹을 통해 역대 가장 많은 수의 국회의원을 국회로 보냈다. 28명이었다. 다른 좌파 정당과 마찬가지로 녹색당도 국민연합과 같은 극우 정당의 확대를 심각한 정치 사회 위기로 인식하고 있다. 국민연합의 다문화주의와 이슬람 반대, 이민 제한, 이주민과 난민 송환 확대 주장은 녹색당과 전면적으로 대치된다. 게다가 국민연합의 기후 정책은 녹색당과 가장 차별되는 부분이다.

1984년 창당 이후 녹색당의 총선 결과지난 40년 동안 프랑스 녹색당은 결선투표제라는 선거제도 하에서 좌파 정당들과 선거동맹을 통해 선거에 참여하고 있다. 최초 의석을 배출한 1997년 총선 이후 2017년 총선을 제외하고 계속해서 국회의원을 배출하고 있다. ⓒ 손어진


국민연합은 프랑스가 에너지 자립을 달성하고 탄소 배출을 감소시키기 위한 방식으로 핵발전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현재 프랑스는 대규모 핵발전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으며, 환경과 경제적인 이유로 핵발전 확대가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르펜은 풍력과 태양광과 같은 재생에너지원의 확대에 반대하며, 특히 풍력 발전은 자연 경관을 해친다고 비판한다. 탄소세, 유류세와 같이 환경 오염에 대한 책임을 부과하는 세금이나 규제에 반대하며, 파리 기후협약과 같은 국제 기후 협정이 국가의 주권을 훼손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 녹색당이 말하는 주요 환경, 기후 의제들이 프랑스 주요 정치권에서 잘 다뤄지고 있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오랫동안 좌파 진영을 지지하는 파리 시민 카린 오클레르(25)는 최근 몇 년 동안 "프랑스 정치가 너무 엉망이다. 말도 안 되는 극우랑 싸우랴, 신자유주의자인 마크롱과 싸우느라, 환경 의제는 계속 뒷전이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매년 전 세계적으로 열리는 9월 글로벌기후파업 시위 날 프랑스에서 열리는 기후 시위는 옆 나라 독일에 비하면 조용하다. 대신 마크롱 퇴진을 외치는 시위는 주말마다 진행된다.

공화전선으로 막지 못한 극우의 지지율

이번 총선에서 공화전선으로도 막지 못한 것은 국민연합의 득표율이다. 국민연합은 1차 투표에서 29.26%, 2차 투표에서 32.5%로 모든 정당 중 가장 높은 득표율을 지지했다. 여기에 르펜은 바르니에 총리에게 내각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비례대표제 도입, 사회 주요 의제들에 대한 국민투표를 제안했다. 득표율과 의석률 간 비례성 확보, 직접민주주의. 언뜻 듣기에 좋은 말들처럼 들리지만, 위험한 함정일 수 있다. 만약 비례대표제하에 이번 총선이 치러졌다면 국민연합은 126석보다 많은 187석(전체 577석 중 32.5%)을 차지했을지 모른다.

현 상황에서 국민연합이 비례대표제를 밀어붙이면 프랑스 녹색당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한국과 같이 비례대표제를 실시하지 않은 국가에서 소수 정당들이 비례대표제 도입을 요구하는 것과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국민연합의 요구대로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었을 때 프랑스 녹색당은 어떻게 선거에 참여하게 될 것인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좌파 선거동맹이 등장할 게 될 것인가, 다른 비례대표제 국가들처럼 단독으로 참여하게 될 것인가.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리고 프랑스의 극우는 더욱 치밀해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녹색정치연구소와 캠페인즈에도 실립니다. 녹색정치연구소는 '녹색정치'를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소로, 녹색정치의 개념과 해석, 동향과 전망, 전략과 대안을 제시하고자 설립되었습니다. (홈페이지: <a href="https://greenpolitics.kr/" target="_blank" class=autolink>https://greenpolitics.k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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