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일상에 들이닥친 낯선 것의 정체, 어떻게 느낄 것인가

[안지훈의 3인칭 관객 시점] 초현실적 설정 돋보이는 국립극단 연극 <간과 강>

등록|2024.09.30 13:21 수정|2024.09.30 13:21
2020년 차범석희곡상을 수상한 동이향 작가의 <간과 강>이 국립극단의 프로덕션 하에 무대에 올랐다. 지난 27일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한 <간과 강>은 일상적 공간에서 마주하게 되는 낯선 상황들을 통해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고 있다.

초현실적인 요소들이 대거 등장하고, 뚜렷한 서사 구조보다는 이미지와 직관적인 상상력에 의존한다. 대사는 단문들로 구성됐지만, 쉬운 듯 쉽지 않다. 이처럼 <간과 강>은 기존의 연극 문법을 충실히 따르진 않기 때문에 단번에 모든 것을 이해하고자 하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관객이 상상력을 동원하는 것이 중요한 작품이기 때문에 충분히 상상하고 해석하는 관람 태도가 필요하다. 자신이 꽂히는 특정 장면이나 대사, 인물에 초점을 두고 흐름을 이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익숙하지 않으면 새롭게 봐야 한다.

▲ 연극 <간과 강> 공연사진 ⓒ 국립극단


우리 앞에 낯선 것이 닥쳐온다면

집, 한강 다리, 지하철역 등 일상적 공간이 <간과 강>의 배경이 된다. 이런 일상에 갑자기 비일상적 소재들이 들이닥친다. 집 안에 싱크홀이 생기고, 어디선가 인어가 발견된다. 일상적 사고의 영역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금세 적응한다. 이것이 보통의 사람들이 세상을 사는 방식이다. 특이한 징후가 나타나도 이를 두고두고 생각하지 않고 적응해버린다. 무뎌지는 것이다. <간과 강>에서 'L'과 'O'는 부부 사이인데, O가 습관처럼 말한다는 L의 지적에 O는 머뭇거린다. "습관이 아닌 말을 찾고 있다"면서.

낮처럼 더운 밤, 전염병의 위협,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인어 등 연극 속 풍경은 종말은 연상케 한다. 등장인물들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종말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에 무뎌진 사람들에게선 그렇다 할 문제의식을 발견하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은 O처럼 생각하고 말한다. 그래서 새로운 대상이 등장해도 기존의 틀로 이해하려 하는데, 기존의 틀로는 당연히 이해할 수 없으니 무뎌지는 걸 택한다.

환경 파괴와 기후 위기에 대한 지적에 오래 전부터 있었고, 최근에는 민주주의의 위협에 대한 우려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다수 사람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이런 세태를 보면 <간과 강>의 이야기는 분명 2024년 오늘에 관한 이야기다.

▲ 연극 <간과 강> 공연사진 ⓒ 국립극단


한편, 연극에 등장하는 '의사'는 유일하게 전문가적 권위를 가진 인물이다. 낯선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고도의 감각이 필요한데, 의사는 그 감각을 지워 무뎌지게 하는 상징적인 존재처럼 보인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을 느끼는 L은 약을 먹으면 몽롱해진다고 말하지만, 의사는 몽롱한 것에 곧 적응될 것이라고 답한다. 엄청 아픈 치료도 마취를 통해 감각을 마비시키면 된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모름지기 전문가라면 새로운 대상을 바라볼 새로운 틀을 제시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익숙한 것마저 낯설게 보는 시각이 전문가에겐 요구된다. 그런데 <간과 강> 속 의사는 이런 이상적인 전문가의 모습과 완전히 상반된다. 이 지점에서 질문하게 된다. 이 시대의 전문가들의 모습은 어떤지, 과연 제대로 된 진단을 내리고 있는지.

이처럼 <간과 강>은 일상에서 드러난 거대한 공허를 통해 새로운 감각과 인식의 틀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부부로서 L과 O의 이야기, 무언가에 열렬하게 빠진 소년의 이야기, L의 첫사랑 V가 인어가 되어 나타나는 결말까지, 이야기의 파편들을 통해 연극은 완성된다.

송인성·강현우·최정우·지춘성·김시영·유재연·구도균·신강수·성원이 전 배역 원캐스트로 출연하며, 공연은 10월 19일까지 이어진다.

▲ 연극 <간과 강> 공연사진 ⓒ 국립극단

덧붙이는 글 연극 <간과 강>에는 폭력적인 장면과 선정적인 묘사가 포함돼 있습니다. 칼로 찌르는 장면, 피를 튀기는 장면, 물고기 눈알을 확대한 영상 등이 등장하니, 사람에 따라 관람 시 불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