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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에 관한 수필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조문학의 큰별 가람 이병기평전 18] 고아한 우리 말의 맛과 멋이 풍긴다

등록|2024.10.01 17:56 수정|2024.10.01 17:56

▲ 가람 이병기 선생 동상 ⓒ (주)CPN문화재방송국


난초를 좋아한 그는 여러 수의 시조에 이어 난초에 대해 수필도 썼다. 수필 솜씨 역시 시조에 못지 않다는 평이 따른다. 고아한 우리 말의 맛과 멋이 풍긴다.

"수필에 있어서도 국문학자로서 탁월한 사학자('진단학회' 창립회원, 저서)로서의 달관과 시인으로서의 영감이 어우러져 수상적인 수필(에세이)과 수상적 수필(미셀러니)의 양면을 함께 이룬 한국 수필의 개척자의 한 분으로 태생의 신선한 감각과 묘사로서 새로운 경지를 열으셨고, <가람문선>에 실린 25편 외에도 수많은 발표가 있었다." (주석 1)

1958년에 쓴 수필 <난초>의 일부를 살펴본다.

(전략) 지금 5년 전 1951년 7월 하순에 고경선 군이 청주비자림서 캐었다는 풍란 한 등걸을 가져왔다. 이 풍란은 세엽(細葉) 대엽(大葉) 두 가지인데 그 자웅(雌雄)이라 한다.

비자나무 색은 등걸에 생태(生苔)를 입히고 풍란을 착근케 하였다. 세엽은 웅(雄)이고 대엽은 자(雌)이다. 그때 고경선 군이 이러한 풍란을 10여 등걸 갖다가 동지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러나 다 죽었고 겨우 나의 풍란만 무성하여 지난 6월에 그 웅이 꽃이 피었고 올 6월에도 꽃이 피었다.

잎이 빳빳하고도 오히려 영료하다
썩은 향나무 껍질에 옥같은 뿌리를 서려 두고
청량(淸凉)한 물기를 머금고 바람으로 사노니

꽃은 하얗고도 여린 자연(紫煙) 빛이다
높고 조촐한 그 품이며 그 향(香)이
숲속에 숨겨 있어도 아는 이는 아노니.

하고 읊었으나, 요즈음에도 풍란화 밑에서 그 향을 맡으며 원고를 쓰며 향취를 마시며 이 노래를 다시 읊었다. 건란도 다섯 데나 솟아 그 꽃과 향을 반겨 보았으나 그건 오히려 평범하되 이 풍란만은 퍽 기이하고 고상하다. 꽃도 긴 꽃수염이 드리웠고 향보다 더 청렬하다.

범어사 또는 호남제산의 춘란은 잎이 속되고 일경일화로되 향도 있는 듯 만 듯하다. 이왕 중국춘란을 심어 보았는데 그건 일경일화로서 퍽 아담하고 향도 향욱하였다. 그런데 춘란은 건란보다 재배하기가 더 어렵다. 온도 또는 습도 관계로 겨울을 나기며, 봄에 꽃피우기가 온실 장치가 아니면 퍽 어렵다.

이렇게 심기 어려운 난초들을 우리 나라에선 매란국죽이니 여입지란지실(如入芝蘭之室)이니 하는 한자의 교양을 받아 가지고 일찍 중국서 종종 난초를 이식하였으나 그 재배법을 몰라 거의 다 죽이고 말았으며 지금도 그러하여 내가 난초재배한지 30여 년에 이걸 달라는 이는 많았으나 주어도 기르는 이는 없었다.

이도 또한 오도(悟道)다. 오도를 하고서야 재배한다. 재작년 소공(素空) 댁에 핀 춘란의 방열한 향을 맡아 보았다. 이게 도림산에서 온 것이라 한다. 남 즉 고대흥사지(古大興寺址)수림간에 춘란이 발아한 것을 김구광(金句光)이 마침 지나다가 발견하였고, 그 뒤 남해군 서문 밖 대복사주지 김계월이 도림산에서 이 난초를 캐다 실어 소공께 분초(分草)하였다. 이건 우리 춘란 중 가장 진기하다.

나는 이걸 도림란이라고 칭호하였으며, 나도 한 포기 얻었던 바 잘 자라며 명춘 쯤은 꽃도 볼 듯하다. (주석 2)

주석
1> 박병문, <가람 이병기 선생의 인간과 학문과 예술>, <얼음장 밑에서도 물은 흘러>, 137쪽, 한국학회, 1993.
2> <전북대학보>, 1955년 7월 10일.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조문학의 큰별 가람 이병기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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