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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에게 보낸 윤 정부의 마지막 선물?

[박민중의 폴리팁스] '자위대 한반도 상륙' 노리는 일본, 유사시 '양해각서' 근거로 삼을 수도

등록|2024.10.04 12:15 수정|2024.10.04 12:15
한국은 물론 국제 정치를 보면 의아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정치를 바라보는 작은 'tip'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기자말]

▲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9월 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환담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지난 9월 6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체결한 '자국민 대피 상호협력 양해각서'의 내용이 심상치 않다.

대통령실 보도자료를 보면, 윤석열 대통령과 퇴임을 앞둔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12번째 정상회담은 눈에 띄는 결과물이 없는 듯하다. 기시다 총리가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해 "지난 2년 간의 한일관계 발전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양국관계 발전"을 당부하는 정도로 보인다.

국내에서는 9월 한일 정상회담을 두고 여러 말이 난무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에서는 "왜 국민 세금으로 기시다 총리의 이임 파티를 해주느냐"라며 대통령실을 향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부었다. 이와 달리 일본 언론들은 이번 기시다 총리의 방한을 두고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하기도 했다. 기시다 총리의 방한을 두고 일본의 산케이신문은 한국 정부가 일본의 오랜 숙원이었던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UNESCO) 등재를 동의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함이라고 보도했다.

자국민 대피 상호협력 양해각서, 호사카 유지 교수도 '우려' 표명

그런데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양해각서 하나를 체결했다. 양국이 체결한 양해각서는 <한일 제3국 내 재외국민보호 협력 각서>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보도자료에서는 짧게 설명이 되어 있다.

"아울러, 양 정상은 오늘 양국 외교당국 간 「한일 제3국 내 재외국민보호 협력 각서」가 체결된 것을 환영하며, 이를 통해 제3국 내 위기 상황 시 양국 간 협력을 보다 강화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대다수의 언론은 '양국이 제3국에서 위기 발생 시 상호 간 자국민 안전을 지키는 체제를 구축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지난해 4월 아프리카 수단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했을 때 한국 정부가 마련한 버스로 일본인 여러 명이 대피한 것,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당시 한국군 수송기에 일본인 45명이 탑승해 탈출한 사례를 제시했다. 앞으로도 양국이 제3국에서 이 같은 위기가 발생하면 서로 자국민의 안전을 지켜준다는 것이다.

▲ 이번 한일정상회담에서 체결된 한일 ‘제3국 내 재외국민보호 협력 각서’ 관련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내용이다. ⓒ 일본외무성


그런데 한국 대통령실의 보도자료와 달리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는 이번 양해각서 내용을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일본 외무성에 따르면, 이번 양해각서는 두 개의 조항으로 이루어졌다. 두 번째 조항이 실제 핵심 내용인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2. "이 양해각서에 근거해 양국은 평상시 위기관리 절차, 훈련 및 연습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비상시 제3국에서의 대피 계획을 포함한 위기관리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고, 제3국에서 자국민을 대피시키기로 결정한 경우 상호 지원 및 협력하고, 고위급 논의 및 의견 교환을 실시한다."

이 조항에서 유심히 살펴봐야 하는 부분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시기를 평상시(in times of peace)와 비상시(in times of emergency)로 구분했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제3국에서 자국민을 대피시키기로 결정한 경우 상호 지원 및 협력'을 명문화했다는 점이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비상시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한국의 '위기관리 절차, 훈련과 연습에 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제도적 권한이 발생하게 된다. 또한 이 조항에서 명시한 제3국을 북한으로 상정해 보자. 한반도 유사시 일본이 한국 정부를 향해 한국 내 공항이나 항만을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호사카 유지 교수(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 소장)는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번 양해각서에 대해 "평상시와 비상시를 막론해 한일 양국이 위기관리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게 되었다"라며 "그뿐만 아니라 제3국에서의 대피계획을 '포함한' 모든 대피계획, 즉 한반도 유사시와 같은 상황에서 제3국이 아닌 남한에서 일본인들이 일본으로 대피하는 경우에까지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분석했다.

나아가 지난 2014년 북일 스톡홀름 합의 때 확인한 내용은 당시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은 5명이 생존해 있고, 이 외에 추가로 2명이 더 생존해 있다는 점이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은 이러한 사실을 활용해 한반도 유사시 북한 재류 일본인을 구출하는데 한일 간 군사 협력을 정당화할 것"이라며, 이후 "남한 재류 일본인 구출을 위한 한일 간 군사협력으로 자연스럽게 확대 적용될 수 있는 내용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결국 일본은 한반도 유사시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이번 양해각서를 자위대를 부산항에 입항시킬 수 있는 제도적 근거로 내세울 수도 있다.

일본 양해각서에 담긴 속내

▲ 2023년 5월 30일 다국적 해양차단훈련 ‘이스턴 앤데버23’에 참가하는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 하마기리함이 욱일기의 하나인 '자위함기'를 게양한 채로 부산 남구 백운포 해군작전기지에 입항해 있다. ⓒ 김보성


과연 이러한 해석이 지나친 것일까? 일본 정부는 지난 2015년부터 지속적으로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대피'를 명분으로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상륙의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노력했다. 2015년엔 박근혜 정부를 상대로, 2018년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시도했다. 심지어 일본 정부는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미국과의 정상회담에 '한반도 유사시 주한 일본인 대피 방안'을 의제로 설정하려고까지 했다.

2015년 10월 1일자 <한국일보> 기사 제목은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대피 협의 한국에 요구'다. 당시 일본< 아사히 신문>을 인용한 <한국일보>는 일본 정부가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가 한국 내 공항이나 항만 사용이 제한될 경우 일본인 구출작전 실행이 어렵다는 이유를 들면서, 일본 자위대의 한국 진입 근거를 구체화하려고 노력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아베 정부는 한국 정부에 한반도 유사시 한국 내 일본인 대피방안을 협의하자고 제안했지만, 한국 정부가 이에 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년 후, 일본 정부는 다시 한번 기회를 엿본다. 2017년 9월 5일 자 <뉴데일리> 보도 제목은 '아베, 한반도 유사시 주한 일본인 6만 명 대피 추진'이다. 당시 일본 닛케이 아시아 리뷰 신문을 인용한 <뉴데일리>는 "북한의 핵실험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일본 정부가 한국에 거주 또는 체류 중인 일본인 6만 명의 대피 계획을 세우는 중"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은 일본과 대립각을 세우던 문재인 정부 시기다. 이에 일본 정부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

2017년 11월 5일 한국일보 기사 제목은 <한반도 유사시 주한 일본인 대피 방안도 미일 정상 테이블에>다. 일본의 아베 정부가 미일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유사시 주한 일본인 대피 방안을 논의하려고 계획했다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당시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의 요구에 전혀 응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아베 신조 총리가 미국을 활용하려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었다. 실제 <요미우리 신문> 보도에서 당시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 측이 일본과의 협상에 적극 나서도록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 '중일마(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 논란을 불러일으킨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지난 8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해당 발언에 대해 "일본의 마음을 다스리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김 차장은 또 '윤석열 대통령도 뉴라이트인가'라는 질문에 "대통령께서는 아마 뉴라이트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고 계실 정도로 이 문제와 무관하다"고 답했다. ⓒ 남소연


이러한 배경을 고려할 때, 일본이 이번 양해각서를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상륙을 위한 제도적 토대로 삼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무리일까? 껍데기는 '양해각서'이지만, 실제 내용은 일본 정부가 오랫동안 추진했던 안보정책인 것은 아닐까?

그런데 해당 양해각서를 먼저 추진한 것은 윤석열 정부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차장은 지난 10월 6일 "우리 측이 먼저 한일 간 공조를 제도화하자고 제안한 사항"이라며 "세계 각지에서 정정 불안이 이어지는 가운데 재외국민보호협력 각서는 양국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제도적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이라고 말해 물의를 빚었던 김 차장이, 과연 양해각서에 담긴 '일본의 마음'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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