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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 사업장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이상한 징후들

[그 정보가 알고 싶다] 중대재해 판결문이 드러낸 '예고된 죽음들'

등록|2024.10.02 11:37 수정|2024.10.02 11:37

▲ 2022년 6월 29일, 민주노총대전지역본부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대전운동본부가 대전지방검찰청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무력화 시도 중단과 삼표산업 최고 책임자 구속 기소를 촉구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햇수로 3년이 지났지만, 노동자들의 안전에 대한 위협은 여전히 심각하다. 일터에서의 사고나 질병으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2022년에는 2223명, 2023년 2016명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하루에 5~6명의 노동자가 생을 달리하는 셈이다.

법이 과연 엄정하게 적용되고 있는지 의구심을 품게 되는 장면들도 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래 사망사고가 1건 이상 발생한 사업장이 1288개에 달하는데, 그 중 재판에 넘겨진 곳은 62곳, 선고까지 이어진 경우는 23건에 불과하다. 재해 발생후 검찰 기소까지 이어지는데 걸린 기간도 평균 455일로, 1년을 훌쩍 넘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기업의 법적 책임을 묻는 과정이 한없이 늘어지다 보니, 중대재해처벌법이 사고를 예방하는 규제로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하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중대재해 사건에 대한 수사와 기소, 재판 등의 과정에서 과연 기업의 규모나 사건 유형과 무관하게 법에 따른 논리적이고 일관적인 처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중대재해 사건들과 관련한 자료를 모으고, 비교하고, 분석하는 작업이 이어져야 한다.

얼마 전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진 연구자, 활동가, 언론인, 법조인 등이 모여 '중대재해 감시센터'를 만들기로 했다. 이들은 고용노동부의 중대재해 조사의견서, 검찰의 공소장, 법원의 판결문 등 중대재해 사건과 관련한 자료들을 수집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금까지 17개의 판결문과 25개 공소장, 2건의 불기소 이유서 등을 모아 분석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중대재해의 구조적 문제점을 드러내고자 한다.

▲ 중대재해 감시센터가제작 중인 중대재해 정보공개 데이터베이스 ⓒ 중대재해 감시센터


'예고된 죽음'의 반복

중대재해 감시센터가 수집한 자료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형 사고 이전에 항상 작은 사고들이 있다는 '하인리히의 법칙'이다.

'SPC 불매 운동'으로 이어졌던 SPL 평택공장 사건이 대표적이다. 2022년 10월 15일 새벽, 홀로 교반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혼합기에 팔이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해당 사업장에서는 이미 사고 발생 이전 3년 동안 12건의 '기계 끼임 사고'가 발생했다. 그 원인 역시 '설비 작동 중 손 투입'이었다. 탈착식 덮개가 아닌 밀폐형이나 연동형 덮개를 설치하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진단도 이미 나와 있었다. 연동형 덮개 설치, 2인 1조 작업, 작업 안전표준서 마련 등 예방 방안이 충분히 제시되었음에도, 이를 미룬 것이 중대재해로 이어진 것이다.

2022년 1월 29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틀 만에 발생해 '1호 사고'로 알려진 삼표산업 채석장 붕괴 매몰 사고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 토사 균열과 붕괴, 트럭 전복 사고 등 대형 사고로 이어질 징후가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삼표산업은 생산량 증대 목표 달성을 이유로 작업을 강행했다. 안전에 눈감고 이윤만 바라본 삼표산업의 욕심으로 3명의 노동자가 유명을 달리했다.

이러한 패턴은 다른 사고 사례에서도 반복된다.

1. 2022년 3월 30일 삼성포장 공장에서는 골판지 가공 기계에 작업복이 끼어 노동자가 사망했다. 이미 유사한 사고로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기계 가동 중 정비 작업과 관련한 협착 사고가 5회 발생했음에도 똑같은 사고가 반복됐다.

2. 2022년 4월 20일 전남 광양시 현대스틸산업 공장에서는 지게차로 옮기던 4톤 금속 파이프가 굴러 떨어져 신호수 작업을 하던 하청 노동자가 사망했다. 석 달 전 안전보건 위험성 평가를 통해 지게차 작업 중 협착 사고 위험에 대해 개선 조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음에도, 시정 조치 없이 작업하다가 사망에 이르렀다.

3. 2022년 5월 26일 신성산업 울산공장에서는 블로우 성형기 작동 중 스크랩 제거 작업하다가 협착 사고가 발생했다. 이미 1년 전부터 안전점검 대행 기관으로부터 사고 위험성을 반복적으로 지적받았고, 동종 업계의 동일 사고 내역을 확인하여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사고 발생을 방치했다.

4. 2023년 5월 26일, 창원의 한 오피스텔 신축 공사현장에서 벌어진 추락 사고도 마찬가지다. 판결문에 따르면 상운건설은 이미 18차례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고, 대표이사 역시 동종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안전대 미지급, 충분한 높이의 안전난간 미설치, 추락 방호망 미설치 등 기본적인 안전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모두 사전 경고나 유사 사고 발생 이력이 있었음에도 안전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중대 사고로 이어진 케이스다.

▲ 네팔 국적 이주노동자가 기계에 협착한 엠텍 공장 사건 판결문의 일부. ⓒ 중대재해 감시센터


위험은 더 낮은 곳으로 향한다

중대재해 감시센터의 분석에 따르면, 고용 환경이 취약한 이들의 중대재해의 위험성 역시 높다. 재해자의 고용 형태가 확인되는 28건의 사건 중 19건은 일용직이거나 하청/계약직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재해를 당한 사건이었다.

이주 노동자 역시 재해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2022년 7월 14일, 경남 양산의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인 엠텍 공장에서 벌어진 사고가 대표적이다. 네팔 국적 이주노동자가 다이캐스팅 기계 청소 작업에 투입되었다가 금형 사이에 머리가 끼어 숨진 끔찍한 사건이다.

이미 안전 점검을 위탁한 업체가 다이캐스팅 기계의 방호장치가 파손되어 사고 위험성이 높다는 보고를 여러 차례 했음에도 엠텍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안전점검 내용이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도 않았고, 외국인 노동자인 재해자는 그 위험성을 제대로 교육 받지 못했다. 건설 현장에서 재해를 당한 이주노동자들도 많다. 시너지건설, 성무건설, 성지종합건설 등 공사 현장에서는 중국 국적 이주 노동자들이 연달아 목숨을 잃었다.

▲ 2024년 6월 30일 오후 경남이주민센터의 '화성 아리셀 화재 참사‘ 추모식. 아리셀 참사는 "위험의 이주화"를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 경남이주민센터


이처럼 중대재해 사건에 대한 공소장과 판결문만 모아봐도 현재 발생하는 중대재해 사고들의 패턴이 어떠한지, 무엇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 분명한 교훈을 확인할 수 있다. 작은 사고라도 철저하게 기록하고, 사례를 공유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큰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 노동자에 대한 제대로 된 안전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니, 이들에 대한 안전교육과 보호에 더욱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사실 역시 분명해졌다.

더 많은 정보공개가 필요하다

만약 더 많은 자료를 모으고, 비교하고, 분석한다면 보다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 제시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중대재해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운 현재 상황에서는 쉽지 않다. 각 중대재해 사건의 사건번호를 알아야 판결문 열람이 가능한데, 지금은 이것조차 제대로 알기 어려워 알음알음 판결문을 구해 공유하는 실정이다. 언제, 어느 사업장에서 어떤 사고가 일어났는지와 같은 기본 정보부터 '기업 명예 훼손', '피의사실 공표' 등을 이유로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는 국회의원의 자료 제출 요구에도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기업의 명예와 신용이 훼손될 수 있고, 수사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사유다. 근로복지공단 역시, 올 해 국정감사를 위해 제출한 자료에서 산업재해 다발 사업장의 이름을 모두 가렸다. 역시 "사업장명이 공개될 경우 산재 처리를 잘한 기업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다.

매일 5~6명의 노동자가 세상을 떠나는 비상 사태에서, 정부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역할은 고용노동부, 검찰, 법원 등 여러 기관에 쪼개져 있는 중대재해 정보를 모으고, 정리하고, 분석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정부만 자료를 꽉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민간에서 촘촘하게 사례를 분석하고, 현장의 안전 실태를 모니터링 할 수 있도록 기업, 노동조합, 시민사회, 연구자 등 다양한 주체들과 자료를 공유하고, 개선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 2023년 4월 27일 산재사망대책마련 공동캠페인단이 2023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 기자회견을 열어 고용노동부의 정보 비공개를 규탄했다. ⓒ 이희훈


하지만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이 매일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부는 너무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자료를 공유하고,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보다는 우선 책 잡힐 일을 피하자는 식이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은 결코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중대재해 감시센터의 활동은 정부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이정표가 되고 있다. 정부는 투명한 정보 공개와 적극적인 예방 대책 수립을 통해 노동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시민사회와 협력하여 중대재해의 실태를 정확히 분석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예고된 죽음'을 방관하지 않고, 모든 노동자가 안전한 일터에서 일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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