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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장의 전쟁... 탁주는 탁주로 불렸으면"

[인터뷰] 자연이 준 재료로만 술 빚는 '추연당' 이숙 대표의 이유 있는 고집과 바람

등록|2024.10.04 10:11 수정|2024.10.04 13:37

▲ 여주시 가남읍 금당리에 위치한 추연당은 여주 쌀로 빚은 전통주를 만들어낸다. ⓒ 김예령


"산업화를 추구하는 양조장과 전통을 이어가려는 양조장의 전쟁인 거예요. 말하자면 소리 없는 전쟁, 총칼 없는 전쟁이죠."

여주에서 작은 양조장 '추연당'을 운영하는 이숙 대표는 최근 정부가 발의한 주세법 개정안을 두고 이같이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7월 인공 향료와 색소를 첨가한 술도 주세법상 '탁주'로 인정하겠다는 개정안을 발표했다. 입법 취지는 전통주 산업 활성화와 새로운 제품 개발 촉진이다. 현행법은 녹말을 포함한 재료, 누룩, 물, 당분, 과일·채소류, 그리고 특정 첨가제(아스파탐 등)만이 '탁주'로 인정된다. 이 외의 첨가물과 인공 색소를 포함하면 해당 제품은 '기타주류'로 분류되며, '막걸리' 또는 '탁주'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향료와 색소가 첨가된 막걸리의 세금 부담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예를 들어, 750㎖ 제품의 출고가가 1000원일 때, 현행 '기타주류'로 분류되면 과세표준의 30%인 246원이 세금으로 부과된다. 그러나 개정안에 따라 같은 제품이 '탁주'로 분류되면 종량세가 적용돼 세금은 33원으로, 약 7분의 1 수준으로 낮아진다.

이숙 대표는 "인공 첨가물이 들어간 술이 '탁주'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다면 전통적인 우리 술이 도태될 위험이 있다"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번 개정안이 전통주 산업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규모 양조업자들과 전통문화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와 같은 우려는 양조업계 전반으로 퍼지면서 논쟁이 확산됐다.

류인수 한국가양주연구소장과 한국술산업연구소는 지속적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며 지난 9월 국회를 찾았다. 지난 8월 작은양조장협의회는 "비교할 수 없는 자본을 가진 일부 생산업체가 인공 첨가물을 사용한 저가의 대량 생산 제품에 '탁주'라는 이름과 세금 혜택을 얻게 되고 소규모 양조장은 경쟁에서 밀려나 생존의 위협을 받을 것"이라며 반대 성명문을 냈다. 이들은 인공 향료와 색소가 들어간 술이 전통주의 상징인 '막걸리' 또는 '탁주'라는 이름으로 달고 출시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정부의 전통 보호는 모순

▲ 추연당 이숙 대표는 인공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고 전통 누룩으로 빚어 손막걸리 '백년향'을 만들어낸다. ⓒ 김예령


"인공 색소나 향료를 넣었다고 잘못됐다는 게 아니에요. 단지 탁주는 탁주로 불렸으면 하는 바람이죠."

이 대표는 쌀과 누룩 외에 그 어떤 첨가물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빚어 오랜 전통 방식을 고수한다. 또한 지역 쌀을 사용해 지역 경제에도 기여한다. 거기다 시골의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이 어우러진 술에서는 자연 그대로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만드는 탁주 '백년향'도 삼양주 주조 방식으로 80일에 걸쳐 빚어낸다. 이 대표는 전통과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며 빚은 우리 술은 법적으로 철저히 보호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막 걸러 마신다'는 뜻으로 지어진 막걸리는 만들기도 쉽고 가격도 저렴해 고려 시대부터 현대까지 대표적인 '서민의 술'로 꼽혔다. 막걸리는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인의 삶과 애환을 담아온 전통주다. 또한 오랫동안 중요한 의식과 행사에서 빠지지 않는 상징적 술이다. 제사, 축하, 애도와 같은 중요한 의식은 물론, 건물 준공이나 신차 구입, 개업 등의 현대식 행사에서도 여전히 사용될 만큼 깊은 역사적 가치와 전통을 지니고 있다.

정부도 전통주의 가치를 인정했다. 2021년 6월 15일 국가유산청(당시 문화재청)은 '막걸리 빚기'를 국가무형유산 제144호로 지정하며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공인했다. 주류 업계도 제도에 따라 그 양상을 달리한다. 2015년 소규모 주류 제조 및 판매 면허가 막걸리를 포함한 전통주로 확대되었다. 그 이후 소규모 양조장도 막걸리 생산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2017년 막걸리의 전성기를 불러왔다.

2019년 <농업인신문> 보도에 따르면, 식품산업통계정보(aTFIS)는 과거 탁주의 소매 시장 규모가 2015년도 약 3000억 원대에서 2017년에는 약 356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4.4%나 늘었다고 발표했다. 성장세의 주요 원인은 ▲제품력 향상 ▲농식품부의 전통주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 ▲전통주의 온라인 판매 허용 등으로 꼽혔다. 이때 감미료를 넣지 않은 프리미엄 막걸리가 온라인 판매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막걸리 양조장 중 시장 점유율이 높은 곳 중 하나인 배상면주가의 '느린마을 막걸리'는 인공 감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쌀 함량을 늘려 맛의 순수함과 퀄리티를 살렸다. 고창 지역의 쌀로 빚어진 이 프리미엄 막걸리는 당시 4년 연속 평균 15%의 매출 상승률을 보였다.

전통주 제조 업계는 이번 주세법 개정안으로 인해 가양주 문화가 인공 첨가물이 들어간 '유사 막걸리'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막걸리, 이제 세계의 술이다

인공 첨가물이 들어간 막걸리를 전통주로 인정할 수 있을까? 이 대표는 프랑스 와인 이야기를 꺼냈다. 프랑스 와인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전통주다. 이 대표는 프랑스 와인이 전 세계 와인 시장에서 약 20%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17세기부터 국가 차원에서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다양한 관리 시스템과 법적 규제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AOC 인증 체계가 그 중 하나다. 그는 프랑스 정부 산하 기관인 INAO(국립 원산지 명칭 통제연구소)가 1935년에 이 제도를 도입해 와인의 고유성과 지역성을 보호한다고 말한다. 특정 방식으로 생산된 와인만이 AOC 명칭을 사용할 수 있도록 엄격하게 규제하고 재배 지역, 포도 품종, 재배 방법, 양조 과정까지 세부적으로 관리된다.

이러한 규제의 목적은 단순히 전통을 보호하는 데만 있지 않았다. 이 대표는 전통과 품질을 일관되게 보장함으로써 '프랑스 와인은 곧 품질'이라는 글로벌 이미지를 구축하고자 했다고 해석했다. 덕분에 프랑스 와인은 대규모 수출로 이어져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고품질 전통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만약 프랑스에서 인공 첨가물이 들어간 와인을 전통 와인으로 부른다면 AOC 규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며, 법적 제재는 물론 시장에서 신뢰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는 짐작한다.

"전통 방식으로 만든 술이 세계 시장에서 주목 받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전통주 산업의 발전 아닐까요?"

이 대표는 정부가 전통주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도록 장기적인 시각에서 법적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단기적인 세금 혜택과 대량 생산이 아닌, 세계 무대에서 철저한 제조 관리와 품질을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프랑스 와인처럼 우리 전통주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활성화의 길이라고 말한다.

그는 전통주 산업이 공장형 생산 방식이 아닌, 전통 제조법을 지키고 보호하는 일로부터 시작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량 생산을 통한 시장 확대는 역으로 전통주 수출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 시장에서 전통주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세제 지원, 연구 개발 지원, 철저한 품질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정부의 일이라고 강조한다.

우리 전통은 오랜 시간 동안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깊은 역사를 함께 지켜왔다. 이숙 대표를 비롯한 많은 전통주 양조장이 오랜 세월 정성을 다해 빚어낸 술엔 우리의 문화와 역사적 가치가 담겨 있다. 이러한 전통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선, 정부가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소규모 양조 업자와 대중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

전통주는 공장의 일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의 일입니다

▲ 추연당으로 가는 길. 여주 논밭에서 벼가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 김예령


지난달 25일 이숙 대표가 일하는 곳인 여주시 가남읍 금당리에 위치한 추연당을 찾았다. '추연당'은 맛있는 음료 '추(䣯)' 자에 인연 '연(緣)'자를 써 '맛있는 음료로 인연을 맺은 집'이라는 뜻이다. 이 대표는 2018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일가친척도 없는 여주에 내려와 작은 양조장을 시작했다. 그가 이곳에 자리 잡은 이유는 오직 여주의 맛 좋은 쌀 때문이었다. 그는 지역 쌀로 탁주, 약주, 증류주 등을 빚으며 우리 쌀 소비 촉진과 가양주 문화, 전통주의 매력을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그는 12년 전부터 국내외를 돌아다니며 끊임없이 우리 술과 전통을 연구해 왔다. 궁중 다과, 폐백 음식, 전통 떡, 음료, 차 등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분야가 없다. 그가 2012년 처음 전라도에서 처음 접한 전통 막걸리의 맛은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이 대표는 늘 집에서 막걸리를 빚으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랐다. 할머니가 큰 독에다 빚으시던 막걸리 소리가 마치 빗소리 같았다는 이 대표는, 그 모습이 어린 시절의 소소한 낙이었다고 회상한다.

"여주에 살면서부터 잡생각이 사라졌어요. 술은 늘 '나만 바라봐'라는 느낌이거든요. 집중해서 술을 빚다 보면 힘든 일도 어느새 잊혀요."

술은 자연과 환경 조건에 매우 예민해, 잠시라도 방심하면 맛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같은 술이라도 계절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여름에는 산미가, 겨울에는 단맛이 더 두드러진다. 이렇게나 까다로운 술을 이숙 대표가 12년 넘게 빚어온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치유는 단순히 약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발견하고 그것이 자연과 어우러질 때 저절로 찾아온다고 생각해요. 전통주는 공장의 일이 아닌 자연과 사람의 일입니다."

▲ 이 대표는 고요한 양조장에서 술 빚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 김예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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