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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노동자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책이 나왔습니다] 책 <목사님의 택배일기>를 쓰기까지

등록|2024.10.02 17:40 수정|2024.10.02 17:40
작년 5월쯤 <오마이뉴스>에서 갑자기 목사와 운동가로 살아온 사람으로 내가 택배 일을 하게 된 이야기를 연재로 써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기독교 언론도 아니고, 한 번도 아니라 매주 연재로 이런 글을 써달라는데 의아했지만, 오히려 써가면서 내가 이 글을 써야 할 이유를 더 분명히 느끼게 되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사람이 살면서 뜻밖의 위기를 만날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함께 공유하고 싶은 것이었다. '누군가의 일'은 늘 '누구나의 일'일 수 있으니 말이다. 나부터가 그랬다. 30년 동안 목사로, 사회운동가로 살면서 보람과 이름도 얻으며 나름 잘 살아온 줄 알았다.

그런데 나이 50이 접어들 때 돌연 결코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깊은 늪에 빠졌다. 살아온 인생도 허망하고, 살 의욕도, 앞으로 살아갈 목표로 완전히 잃어버렸다. 말이 목사지 하나님에 대한 원망도 켜켜이 쌓여갔다.

그때 친구이던 택배 점장에게 전화를 받았다. "이럴 때일수록 멍하니 앉아 복잡한 생각에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한다. 아무 생각 없이 땀 흘리며 몸만 쓰다 보면 어느새 정신이 차려진다." 큰 부담은 됐지만, 하늘의 전보처럼 들려 며칠 후 바로 출근했다.

다시 잘 살려고 시작한 일

▲ 목사님의 택배일기 - 택배 상자 들고 가리봉동을 누빕니다, 구교형 (지은이) ⓒ 산지니


돌아보면 그때 내가 택배로 나오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나는 더 깊은 나락에 떨어져 어쩌면 인생을 완전히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만나본 모든 택배 동료들도 그랬다. 그들 중 누구도 이 일을 처음부터 기쁘게 선택한 사람은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성공하고 편안한 인생을 꿈꾸지만, 살다 보면 누구나 뜻밖의 위기를 만난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그때 그저 살려는 욕구만으로 선택하는 일 중 하나가 택배다. 그래서 신종 인생막장이다.

그런데 인생의 밑바닥에서는 '내가 왕년에 누구였는데' 하는 거품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빨리 걷어낼수록 좋다. 내가 노숙인 쉼터 시설장 시절(2017~19년), 입소인 중에는 '왕년에' 학원장, 큰 식당 사장, 총학생회장, 명문대 출신, 육사 교관 등 다양한 모습으로 한가락 했던 분도 많았다. 대부분 이제 '왕년에'를 잊고, 현재 주어진 상황에 충실하게 살았지만, 그들 중에는 노숙인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스스로 외톨이로 사는 분도 있었다.

나 역시 택배 초년병 시절, 퇴근 후 고객과 불편하게 통화하는 걸 옆에서 듣던 딸이 내가 전화를 끊자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고객과 전화하면서도 여전히 '내가 목사인데' 하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아. 나는 아빠가 목사일 때도 좋았지만 지금 택배기사로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가족들 부양하는 모습도 굉장히 멋진데." 그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부끄럽다.

그러나 바닥을 살수록 삶의 의미와 목표를 다시 찾는 건 매우 중요한 것 같다. 그때 가족은 우선적일 것이다. 우리 동료들도 대개 그렇다. 매일 400여 개를 배송하며 우리 터미널에서도 늘 배송순위 5위 안에 드는 50대 동료는 늘 끙끙대면서도 배운 게 없어 고생한 자신과 다르게 외아들만은 잘 길러보겠다고 10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킨다.

그러나 힘들 때는, 그저 지금을 잘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나도 그랬다. 그때 나는 몸도, 마음도 죽을 만큼 힘들었다. 다른 데도 아니고 하필 가리봉동에 배치되었을 때, 마치 보이지 않는 손(내겐 하나님)이 일부러 더 깊은 벼랑으로 끌고 가는 듯했다. 그때 나는 매일 그날만 버텨내는 걸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수개월이 지나니 일도 수월해지고 어느새 마음에 넉넉한 여유와 서서히 차오르는 힘을 느꼈다. 그래서 인생이 막막하고, 힘든 분을 만나면, 나는 이제 아무 생각 없이 힘든 육체노동을 해보도록 진심으로 권한다. 벼랑 끝 외길에서 만나 뜻밖의 고난은 인생이 주는 뜻하지 않은 기회일 수도 있다고 믿게 되었다.

"혹시 지금 인생 막장을 경험하고 있는가? … 내 경험을 들어 말한다면, 인생의 위기가 닥치고 의욕이 떨어지고 길이 안 보일 때 육체노동을 권한다."(215쪽)

둘째는 아무래도 내가 목사라는 것과의 관련성이다. 신문사에서 내게 요청한 것도 택배 일의 소개를 넘어 목사로서 택배를 하며 느끼는 조금 다른 시선을 소개하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연재 제목도 <목사가 쓰는 택배 이야기>로 정해주었고, 이번에 나온 책 제목도 <목사님의 택배일기>(산지니)가 되었다.

투잡, 쓰리잡이 낯설지 않은 시대에 목사가 택배하는 게 무슨 특별한 일인지 싶지만,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의미일 수 있겠다는 걸 일하면서 실감했다. 기왕에 택배 일을 시작했으니 내겐 돈 버는 것 외에 나만의 역할과 의미를 스스로 부여해 보았다. 그것은 '주변 기사들에게 조금이나마 기쁨이 되는 좋은 동료가 되자'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 우리는 배송 나가기 전 3~4시간 가량을 함께 물품 정리하며 어울린다. 우리는 서로의 물건을 찾아 던져주며 이런, 저런 농담을 하고, 전날 진상 고객 욕도 하고, 괜히 가서 어깨를 탁치며 장난도 친다.

그리고 나는 누구에게나 먼저 인사하고, 가끔 밤빵, 호빵, 건빵 등을 잔뜩 사서 나눠주거나, 2~3주일마다 100원짜리 동전을 바꿔 놓고 누구나 가져가, 자판기 커피를 맘대로 먹도록 했다. 가끔 식사하러 가면 일부러 밥값을 내기도 했다.

▲ 주변 기사들에게 조금이나마 기쁨이 되는 좋은 동료가 되자고 다짐했다. ⓒ 구교형


나는 정말 그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즐거웠다. 주변 동료들도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일부러, 먼저 목사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언젠가부터 동료들은 나를 목사로 봐주기 시작했다. 목사라는 사람이 자신과 똑같이 힘든 일을 하면서도 동료로 함께 잘 어울리니 괜히 힘이 되는 것 같았다.

업무로 바쁜 중에도 가끔 잠깐씩 인생과 신앙에 대한 상담과 기도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이들이 버림받은 인생 막장에 던져졌다는 생각 대신, 나를 보며 바로 여기에 하나님이 함께 있다는 표시로 느껴지기를 바랐다.

어느 날은 옆 동료가 보이지 않아 찾아보니 운전석에 앉아 끙끙 앓고 있었다. 마침 같은 기독교인이었기에 옆에 앉아 손도 잡고 머리도 만져주고 기도도 하며 10분 정도 이야기하고 나왔다. 그런데 그날 저녁부터 나도 아프기 시작했다. 코로나에 옮았다. 2021년 5월이다.

올 여름, 그 대단한 더위에 나는 동료들이 자주 떠올랐다. 나는 택배를 비롯한 이 땅 곳곳의 노동 현장과 그 일꾼들의 숨 막히는 현실과 애환을 가급적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 가까운 동료들에게도 책 출판 소식조차 알리지 못했다.

동료들은 여전히 남아 매일 힘겹게 일하는데, 나는 그 현장을 혼자서 도망쳐 나와서 마치 택배로 평생 살아온 사람처럼 책을 낸 것처럼 보일까 괜히 부끄럽고, 미안해서다. 그 마음과는 별개로, 진심으로 그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힘겨워하는 젊은 세대에게 응원이 되길

한편 연재가 한창인 어느 날,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부산의 한 출판사에서 연재를 마치는 대로 출판하고 싶다는 거였다. 전화를 끊고 그 출판사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인문 사회 분야를 전문으로 재야의 숨은 고수들의 깊이 있는 책들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올해 여름 출판되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 나는 또 다른 연락을 받았다. 내 연재를 읽고 큰 감명이 되었다며 얘기를 나누고 싶다는 20대 청년이었다. 그리고 그 청년을 통해 지금도 또 다른 몇몇 2030 청년들을 만나고 있다. 만날 때마다 20년 안팎의 나이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우리는 만날 때마다 함께 잘 먹고, 신나게 떠들고, 서로의 삶을 힘껏 격려한다.

그러면서 나는 이런 글을 써야 할 새로운, 세 번째 이유를 발견했다. 힘겨웠지만 뜻깊었던 내 작은 경험과 기록이 치열한 압박과 불투명한 전망에 찌들어 힘겨워하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부모 세대의 애정담은 응원이 되길 소망한다.

지난 9월 26일에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200여명의 학생들 앞에서 고생 속에서도 길을 찾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감사했다. '총알배송/당일배송/새벽배송'이 일상화되고, '손님(소비자)은 왕'이라는 시대는 정말 우리를 위한 세상일까?

얼마의 값만 지불하면 얼마든지 갑이 되는 소비의 천국은, 다시 옷만 갈아입으면 바로 내가 을이 되어 진상 고객들 앞에서 억지 웃음을 지어야 한다. '아프면 쉬세요' 공익광고를 들으면서도 몸이 부서지지 않는 한 출근해야 한다.

그래서 '사회적 개선 없는 각자도생은 우리를 끝없는 노동기계로 만드는 악순환이 될 것'이라고 나는 아직 젊은 그들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한 인터넷 서점에 내 책을 읽고 올리신 어느 분의 소감을 덧붙인다.

이 책은 인문서이다! 바쁜 택배 현장도 사람과 사람이 얽히고 어우러지는 인간 공동체이다. 택배 1개당 800원 남짓 박한 수입에, 열악한 근무환경에, 쉼없이 시간에 쫓기는 그림자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이 일을 포기 못하는 그들만의 사연이 있다. 그리고 그 헛헛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토닥여주는 끈끈한 정이 있다.

인생 막장의 위기에 처한 목사님의 숨을 트이게 한 고마운 택배일. 성직의 경계를 뛰어넘어 노동과 땀에서 배워가는 인간이해. 택배, 육체노동을 누가 남의 일이라고 했던가. 어느 날 상황이 바뀌면 원하든 원치 않든 나 또는 내 자녀의 삶이 될 수도 있다. 음지에서 사회를 든든히 떠받치고 있는 노동자들은 기계나 수단이 아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차별적 시각, 대하는 태도에 대한 반성과 진지한 감수성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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