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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보건소장 진술 오락가락, 판사 "무슨 말이냐"

[이태원 참사 공판기] 도착시각 36분 앞당긴 허위 보고서 지시 혐의

등록|2024.10.02 20:17 수정|2024.10.02 20:17

▲ 최재원 용산구 보건소장이 지난 2022년 12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참사 국정조사특위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이태원 참사 현장에 30분 이상 일찍 도착했다고 보고서를 허위 기재하게 한 혐의로 기소된 최재원 용산구 보건소장이 2일 부하 직원에게 그런 일을 시킨 적이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최 소장이 본인 도착 시간을 직접 써서 보여주며 보고서를 수정하라고 시켰다는 부하 직원의 증언에 대해서도 최 소장 측은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최 소장은 이날 서울서부지법 형사1단독 마은혁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공전자기록위작·행사 사건 재판에서 마지막 피고인 신문을 받으며 이같이 대답했다. 최 소장은 '박기덕 보건의료과장에게 보고서 초안 구석에 도착 시간 등을 적어준 일이 없나'라는 판사 질문에 "전혀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앞서 하급자인 박 과장은 법정에서 최 소장이 A4용지로 된 '이태원 사고 관련 출동결과보고서' 초안 문서에 자신이 이태원 참사 당일인 2022년 10월 29일 오후 11시 30분에 도착했다는 내용을 볼펜으로 손수 적어가며 수정을 지시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후 이 보고서를 포함해 총 5건의 보고서(▲이태원 사고 관련 출동결과보고서 2022.10.30 ▲핼러윈데이 이태원 사고 관련 출동 및 근무보고서 2022.10.30 ▲이태원 사고 관련 보건소 신속대응반 출동결과 보고 2022.10.31 ▲국회의원 요구자료 답변서 2022.11.4 ▲현장응급의료소 운영일지 2022.11.14)에 모두 최 소장의 도착 시각이 오후 11시 30분으로 기재됐다.

하지만 이는 최 소장의 실제 이태원 참사 현장 도착 시각보다 36분 앞당겨진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최 소장은 2022년 10월 29일 오후 10시 55분경 모바일 상황실 카톡 메시지를 통해 참사를 최초 인지하고 오후 11시 25분 자택에서 출발했다. 이후 오후 11시 46분 녹사평역 하차, 오후 11시 54분 용산구청 당직실에 도착해 민방위복을 입은 뒤 신속대응반 부하 직원들과 함께 구급차를 타고 이튿날(2022년 10월 30일) 오전 0시 6분에 참사 장소에 도착했다. 이태원 참사는 2022년 10월 29일 오후 10시 16분 발생했다.

최 소장 측 변호인은 "(박기덕 과장 외에) 다른 문서 작성자 5명 중 최 소장으로부터 최 소장의 도착 시간을 들었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라며 "박기덕 과장의 진술은 신빙성이 전혀 없다"고 했다.

진술 오락가락… 재판장 "보고서 봤다지 않았나"

▲ 지난 2022년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 ⓒ 권우성


그간 최 소장 측은 실제 이태원 참사 현장 도착 시각이 당일 오후 11시 30분이 아니라 익일 0시 06분이라는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않아왔다. 하지만 이날 최 소장 측 변호인은 "'23시 30분경 현장 도착'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사고 현장은 협의의 '사고 장소'가 아니라 이태원 일대 전체를 얘기하는 것"이라며 "(최 소장은)그렇게 (직원들이)기재한 것으로 인식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 소장이 이태원 주변에 있었으므로 허위가 아니라는 취지의 주장이지만, 일부 보고서에는 "23시 30분 보건소장 최재원 개별적으로 도착 및 현장 지휘"라며 최 소장이 '현장 지휘'까지 했다는 내용도 명시돼있어 설득력이 떨어진다.

최 소장은 이날 진술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여 재판장에게 지적을 받기도 했다. 최 소장은 피고인 신문 과정에서 "저도 당시에 '오후 11시 30분 보건소장 현장 도착' 이걸 보고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는데, 그 시간에 이태원 근처에 있었고 전화로 지시를 내렸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고, 너무 큰 사고가 났기 때문에 그런 세세한 것들 하나하나 직원들한테 지적하는 것은 직원들을 괴롭히는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문 말미 이와 관련한 재판장의 확인 질문이 이어지자 최 소장은 "사실 보고서를 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이에 재판장은 "아까 피고인(최 소장)이 오후 11시 30분에 도착한 걸로 돼있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고치는 건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 같다고 진술했었지 않나"라며 "그럼 그 보고서를 보신 것 아니냐. 보고서를 봤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건 무슨 얘기냐"고 짚었다. 재판장은 "(참사 직후) 당시에 (박희영)용산구청장의 현장 도착시간 등이 문제가 됐는데, 그런 상황이 있고 나서 (보고서)수정이 이뤄진 것인가. 전후 관계가 어떻게 되나"라고도 질문했지만, 최 소장은 "정확히 기억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최 소장 측 변호인은 최 소장이 굳이 현장 도착 시간을 36분 빨리 허위 기재할 유인이 없다고도 했다. 최 소장 측 변호인은 "36분 일찍 도착했다고 피고인이 문책을 피하거나, 또는 36분 늦게 도착했다고 피고인이 문책 받을 상황이었나"라고 말했다. 이에 최 소장은 "그 당시 저는 용산구 (보건소)신속대응반이 최대한 빨리 도착했다고 생각했다"고 발언했다.

최 소장이 참사 당시 '재난의료 컨트롤타워'였던 점을 감안했을 때, 무책임한 발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 및 법률지원 TF의 강솔지 변호사는 재판 직후 <오마이뉴스>와 만나 "최 소장은 현장 응급의료소장으로서 책임과 지위가 있는 자였다"라며 "최 소장의 현장 도착 시각은 당시 의료대응 체계가 얼마나 신속하게 구축됐는가와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참사 직후에도 사회적 논란이 되고 언론 취재의 대상이 됐다. 이제 와서 최 소장이 도착 시간을 허위로 기재할 만한 동기나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보건복지부의 '재난응급의료 비상대응매뉴얼'에 따르면, 최 소장은 이태원 참사 당시 현장 응급의료대응 책임자로서 환자를 분류하고 응급처치, 환자 이송을 지휘해야 할 책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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