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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악쓰던 남편, 그렇게 1년 지나니 달라진 것들

어느 50대 부부의 건강한 몸 만들기 위한 고군분투기... 함께 필라테스 중입니다

등록|2024.10.08 20:53 수정|2024.10.08 20:53
50대에 들어서니 내 몸이 이상한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나날이 불어 가는 체중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는데, 다시 무릎이 시큰거린다.

식사를 할 때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 습관이 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무릎을 굽었다 펼치는 모양새가 로봇처럼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키보드를 오래 쳤다 싶으면 여지없이 손목이 아파온다. 앉았다 일어나면 우두둑 소리에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나보다 남편은 더 심각했다. 손목에서 발목으로 허리, 무릎, 발바닥, 어깨로 붙어있는 모든 관절이 아프다고 얘기했다. 아프니 운동을 하지 못하고, 운동을 못하니 근육이 빠지면서 점점 더 통증이 심해졌다. 악순환이었다.

▲ 남편은 관절 통증을 호소했다(자료사진) ⓒ tomspentys on Unsplash


처음엔 당혹스러웠던 고통은 나중엔 공포로까지 다가왔다. 알 수 없게 시작된 관절 통증으로 인해 남편은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1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알게 된 남편 병명은 '강직성 척추염', 척추에 염증이 생겨 관절의 움직임이 둔해지는 병이다.

약으로 통증을 줄이지만 완치되지 않기에, 매일 근력운동과 스트레칭으로 유연성을 높이는 것이 필수다. 남편은 평소 운동이라면 질색하는 편인데, 운동 좀 제발 하라는 신의 계시인가 싶었다.

함께 재활운동을 시작하다

​ "재활운동으로는 필라테스가 좋다는데 한 번 해볼까? 나는 다이어트를 할 테니 자기는 재활 운동 어때?"
"해 볼까? 둘이 하면 덜 심심하고 좋을 것 같아."

남편과 나는 집 근처 필라테스를 찾아 듀엣 수업을 등록했다. 운동은 '장비 덕'이라고 해 각자 레깅스와 발바닥에 올록볼록 젤리가 붙어있는 토슈즈를 장만했다. 입고 거울을 보니 울퉁불퉁 튀어나온 뱃살, 구부정한 모습의 여인이 서 있다. TV에서 보던 탄력 있는 젊은 여인들과는 상반되는 몸뚱어리다.

필라 선생님은 수업을 시작하기 전 줄자가 붙은 벽 앞에 나와 남편을 세우더니 이리저리 돌리며 진단했다. 골반이 틀어지고 등이 굽었고 어깨가 말렸다는 참담한 결과다. 인바디 측정 결과는 말할 것도 없었다.

부부의 필라테스다리스트레칭 ⓒ 김경희


나는 코어의 힘을 기르고 남편은 유연성을 높이는 것에 중점을 두고 레슨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 결과는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누적된 결과일 테다. 조금 편하고 싶어 누워있었고, 맛있는 걸 참지 못해서 먹었을 뿐인데... 시작 첫 날, 민망함과 부끄러움이 스쳐 얼굴이 화끈거렸다.

​필라테스의 호흡은 흉식호흡으로, 코로 공기를 천천히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뱉어야 한다. 공기가 들어가면서 갈비뼈가 확장되고 배가 볼록 나오다가 내쉴 때는 부풀린 고무공을 쥐어짜내듯 쉿 소리를 내며 내뱉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배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데, 이래서 속근육이 생기는 건가 싶다.

"머리에서 허리까지 꼬챙이를 꽂았다고 생각하고 숙이세요. 머리끝을 잡고 뽑아올리듯, 키카 큰다고 생각하고 더더더 늘리세요."
"악~~"
"마지막 5초 남았어요!!! 5, 4, 3, 2, 1, 그만~ "
"으으으~~ 윽~ 휴우!!! "

필라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몸에 붙은 주요 근육을 하나하나 느끼며 힘을 줬다 풀며 사용하는 법을 익혀갔다(몰랐던 근육은 왜 그리도 많은 건지!). 선생님의 지령에 맞춰 호흡과 자세를 잡아가며 짧아지고 굳어진 근육들을 늘려줬다. 등과 날갯죽지, 어깨뼈가 따로 움직인다는, 전엔 몰랐던 놀라운 인체의 신비를 알게 되었다.

부부의 필라테스다리 스트레칭 ⓒ 김경희


동시에 내 몸이 정말 '몹쓸 몸'이었다는 걸 절감했다. 하체 운동을 할 때 다리 뒤에 붙은 고무줄이 끊어질 것 같았다. 허벅지가 활활 불에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끝나고 나면 다리는 그저 내 몸에 붙어있기만 할 뿐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코어 운동을 할 때는 등과 허리를 바닥에 바싹 붙인 상태에서 다리를 들었다가 내렸다 한다. 얼마 하지도 않았는데 배와 다리가 경련이 일듯 덜덜덜 떨렸다. 마지막 5초 카운트다운이 왜 그리 오래 걸리는 건지. 거의 숨이 넘어가는가 싶을 때 끝이 났다. 입을 악물어가며 견디고 난 후에는 진땀이 났다.

옆에서 악다구니 비명 소리를 지르는 남편이 보였다. 일그러진 얼굴에 고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동지애가 느껴지면서 한편 측은했다. 우린 둘 다 한 동작이 끝나면 선생님이 또 뭘 시키려나 왈칵 겁이 났고, 해내고 나면 안도했다.

선생님이 제발 나를 그만 봐주고 남편을 봐줬으면 했다. 구토가 올라오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리면, '잠시 물 마시고 사탕 물고 오세요'란 선생님의 말은 마치 어둠 속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잠깐의 달콤함을 누릴 새도 없이, 얼른 들어오라는 말이 얼마나 아쉬웠던지 모른다.

​안 아픈 몸은 당연하지 않은데...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부부의 필라테스와이드 스쿼드 ⓒ 김경희


운동이 끝나고 너덜너덜해진 몸을 이끌고 집까지 가는 길이 멀기만 했다. 두 몹쓸 몸은 집에 오면 소파에 털썩 기대앉아 허기와 갈증을 달랬다. 땀 흘린 후 마시는 애플 사이다와 맥주 한 모금은 거의 생명수였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번쩍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오늘도 그 힘든 걸 견뎌냈음에 같이 박수를 치고 딱 그만큼 좋아졌기를 기도했다. ​

​4개월차 접어든 5월초, 남편은 "캠핑에 도전해 볼까?" 물었다. 30분 거리에 있는 캠핑장으로 가볍게 떠나보기로 했다. 작년 봄을 마지막으로 멈췄던 것을 재개하는 신호탄이었다. 그동안 내 몫이던 운전을 이번엔 남편이 하기로 했다(그간 나에겐 운전이 꽤나 스트레스였다, 사고가 날까 무서워서다).

얼마 전엔 주차를 하다 뒷좌석을 긁어서 더 소심해졌다. 마음 편하게 운전대를 홀라당 넘겼다. 그렇게 도착, 남편은 행여 손목이 다칠세라 손목 보호대를 끼고 조심조심 텐트를 쳤다. 노래를 들으면서 고기를 굽고 맥주를 마시다 야전 침대에 누워 낮잠을 청하기도 했다. 지난 1년 동안 이런 사소한 것들을 하지 못해 꽤 우울했는데, 다시 이런 여유를 다시 누릴 수 있다는 게 꿈만 같다.

어디 그뿐인가. 산책할 때 15분 정도 지나면 집에 가자고 했던 남편은 이제 30분 이상 걷는 것이 가능해졌다. 컨디션이 좋은 날엔 1시간도 걷는다. 지난주엔 광명 동굴 코스를 거뜬히 완주했다. 발바닥과 무릎에 온 신경을 쓰느라 나뭇잎 초록이 진해지는 것도, 찬란하게 빛나는 핑크빛 벚꽃도 전혀 즐기지 못했는데 이제는 풍경을 눈에 담고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또 내 헐렁한 살가죽만 남은 팔과 다리에 근육이 붙기 시작했다. 신혼 시절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힘을 주면 탄탄한 근육이 선명하게 보인다. 신발도 푹신하고 별로 이쁘지 않은 기능성 운동화에서 예쁜 디자인의 스니커즈를 신을 수 있게 됐다. 내게도 눈에 띄는 변화가 하나 생겼다. 책상다리를 할 때 제대로 잘 펴지지 않았던 무릎이 이젠 거의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워졌다.

일상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 필라테스를 하지 않는 비는 날에 헬스장에 간다. 거의 매일 신음 소리를 앓으며 폼롤러를 굴리며 스트레칭을 한다. 조금만 게으름을 피우는 날이 계속되면 여지없이 빨간 불이 들어오기 때문에 무서워서 할 수밖에 없다. 쓸만한 운동법을 발견하면 서로에게 공유한다. 운동과 건강이라는 키워드가 부부의 공통 관심사에 추가되었다.

그렇게 하기를 1년, 이제 조금 쓸만한 몸, 안 아픈 몸이 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쓸만한 몸은 삶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운동을 시작하던 첫날 우린 집에 오는 길에 "우리가 한 번에 좋아지진 않을 거야. 정말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좋아질 거야"라며 서로를 위로했다.

하루에 단 몇 분, 짧은 시간이지만 꾸준히 들이는 시간만큼 서서히 좋아지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 무조건 예쁘고 탄력 있는 몸매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삶이 불편하지 않도록 필요한 일상 동작들을 큰 무리 없이 해낼 수 있는 몸이 되길 바랄 뿐이다.

숨 쉬듯 당연하게 했던 것들이 불가능해지는 순간부터 지금껏 정의해온 행복의 기준이 달라졌다. 돈을 많이 벌었으면, 직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를, 해외여행을 아무 걱정 없이 다녀왔으면 바랐던 것들이 건강을 잃어버리는 순간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당연하지 않은 당연한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이걸 지금이라도 깨닫고 누릴 수 있어서 더없이 감사하다.

50대, 이젠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천천히 달래가며 정성 들여 가꿔야 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오늘도 쓸만한 몸을 만들기 위해 꾸역꾸역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오늘의 운동을 채우고 내일의 운동을 채우고 채우다 보면, 혹시 또 아는가? 몇 년이 지나면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마라톤을 뛰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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