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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가 장손의 고충 토로하던 후배, 이 영화 봤을까

[리뷰] 영화 <장손>

등록|2024.10.04 09:42 수정|2024.10.04 09:42

▲ 영화 '장손' 스틸 이미지 ⓒ ㈜인디스토리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대학 시절, 술이 불콰해지면 낡은 레코드판처럼 매번 똑같은 고충을 토로하는 후배가 있었다. 처음엔 술버릇인가 싶어 다들 꺼렸는데, 듣노라니 공감이 되어 위로 삼아 그의 등을 토닥여주곤 했다. 허구한 날 신세타령만 늘어놓던 그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명문가의 장손이었다. 그의 하소연은 이런 식이었다.

"오늘도 부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장손이라는 걸 한시도 잊지 말고 몸가짐을 바로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네요. 이럴 거면 왜 굳이 공부해서 서울로 대학 진학을 했을까 싶기도 해요."

그는 '대를 이어야 한다'는 미래가 정해져 있어, 어렵사리 공부해 적성에 맞는 전공을 찾아 대학에 올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애초 가문에 얽매여 스스로를 위한 즐겁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존재"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댔다.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다는 체념으로 읽혔다.

졸업 후 그가 굴지의 금융사에 취직했고, 오랫동안 사귀어온 후배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몇 다리 건너서 들었다. 서로 연락이 끊겼지만, 우리 모두 50대 중반에 접어든 지금 그가 여전히 서울에 사는지, 아니면 시골 종갓집으로 터전을 옮겼는지 괜스레 궁금했다.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그의 아내가 서울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여서 적잖은 갈등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스물둘, 아들의 장담

▲ 영화 '장손' 스틸 이미지 ⓒ ㈜인디스토리


명문가 장손의 스트레스를 호소하던 그 후배가 떠오른 건, 추석 명절 연휴에 맞춰 개봉한 영화 <장손>을 보고서다. 영화는 3대 대가족이 모인 제삿날, 가업인 두부 공장과 관련해 청천벽력 선언을 한 장손(長孫)의 이야기를 담았다. '연극계의 대모' 손숙 배우(할머니 말녀 역)가 출연한다고 해 오래전부터 별렀던 작품이다.

영화를 함께 본 아들 녀석은 "저렇게 제사를 지내는 집은 적어도 저희 세대 이후론 단 한 곳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스물두 살인 아들은 '온갖 음식을 장만해 상다리 휘어지도록 제사상에 올리는' 모습은 다음 세대에서 더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장담했다. 당장 아무런 의미도 없는 허례허식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제사가 유형문화재로 등재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아마도 아이의 예측대로 될 것이다. 그 어떤 가문이든 제사는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내려온 관습적인 의례일 뿐이다. 조선 시대처럼 '주자가례'(주자가 유가의 예법 의장에 관해 상술한 책 - 기자 말)가 임금의 명령에 버금 가는 제도적 권위를 지닌 때라면 모를까, 어차피 제사는 후손들이 결정할 '선택'의 문제가 돼버린 까닭이다.

영화 속에서도 지극 정성으로 제사를 모시는 건 다 후손들 잘되라고 하는 거라는 대사가 나오지만, 이를 믿는 청년 세대는 없다. 제사라는 관습을 이용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기성세대의 얄팍한 술책이라며 눈 흘기는 이들도 있다. 이들의 '삐딱함'이 얄미울지언정 딱히 반박하기도 뭣하다.

솔직히 제사는 온 가족이 모여 조상의 음덕을 기린다는 것 말고는 다른 사회적인 의미를 찾기가 어렵다. 본디 성리학적 명분론이 사회를 옥좼던 시절, 양반가마다 스스로 명문가임을 내세우기 위한 연례행사였다. 이것이 평민층의 신분 상승 욕구와 맞물려 시나브로 퍼졌고, 오늘날 반드시 계승해야 할 고유의 전통 풍습인 양 자리 잡은 것이다.

당장 우리 부부도 오래전부터 아이들 앞에서 유언 삼아 제사상을 차리지 말고, 무덤을 만들지도 말라고 당부한 터다. 어차피 무덤을 벌초하기도 녹록지 않을 뿐더러 타인의 손에 관리를 맡겨야 한다면 애초 멀쩡한 땅을 헐어 만들 이유도 없다. 지구상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게 맞다고 본다.

허전한 마음

▲ 영화 '장손' 스틸 이미지 ⓒ ㈜인디스토리


아이의 말에 십분 공감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 건 어쩔 수 없다. 아이는 영화 속 장손인 성진(강승호 분)의 시각에서 영화를 이해했지만, 나는 '영락없는 꼰대' 할아버지 승필(우상전 분)의 아들이자 'MZ 세대' 장손의 아버지인 태근(오만석 분)이 주인공처럼 여겨졌다. 같은 세대라서인지 그의 행동과 대사 하나하나에 빙의됐다.

그는 종갓집의 하나뿐인 아들로서, 오로지 가업을 잇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포기한 채 매일 아버지의 등쌀에 치여 사는 중년이다. 가업인 두부 공장의 대표지만, 어디까지나 '바지 사장'일 뿐이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중재는커녕 끊임없이 분란을 일으키며 '낀 세대'의 고통과 비애를 보여주는 캐릭터다.

할아버지 앞에선 아들 성진을 향해 가업을 이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아버지로서 속마음은 복잡하다. 묵묵히 가족을 위해 희생해 온 자신의 삶을 알아달라는 듯 애꿎은 아들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여동생과 매제가 타고 온 고가의 외제 차를 부러워하는 모습은 이후 전개될 갈등의 복선이다.

태근의 아내이자 종갓집 며느리인 수희(안민영 분)는 한결같이 아들 편이다. 제사와 가업 계승이라는 장손의 역할보다 아들의 성공과 행복을 바랄 뿐이다. 아들 앞에서 시누이 혜숙(차미경 분)과의 갈등을 표출하는 대목에서는 결국 부모 세대가 모두 세상을 떠나면 가족관계도 이내 소원해질 거라는 걸 암시한다.

나 또한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의 가치관이 극명하게 충돌하는 상황에서 부딪치고 깨지는 '범퍼'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여서일까. 제사를 모시라면 손사래를 치면서도 제사를 허례허식이라며 매몰차게 대하는 게 못내 서운한 양가적 감정을 아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했고, 누군지도 모르는 조상을 기린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말에 더는 대꾸하지 않았다.

올해 30대 중반인 오정민 감독의 생각이 영화를 보는 내내 궁금했다. 영화 제목을 복선인 양 '장손'이라고 붙였으니, 분명 가업과 제사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말미에 밝힐 것이라 봤다. 장면마다 '남존여비'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공산국가 베트남' 대사와 '대구 번호판 택시' 소품을 활용해 제사와 보수성을 엮지만, 그것만으로 감독의 의도를 읽어내는 건 섣부르다.자막이 올라갈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감독은 되레 말없이 관객을 향해 '과연 장손은 가업을 잇고 제사를 모시게 될까요? 또, 여러분의 선택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 듯하다.

사족. 오래된 흑백 영화처럼 장면마다 호흡이 긴 데다 러닝타임이 두 시간도 넘는 작품이지만, 쉽게 몰입할 수 있었던 건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력 덕이다. 중고등학생 자녀가 있다면, 짬을 내 함께 볼만 한 가족 영화다. 다만 한 가지 옥에 티라면, 죄다 경상도 사투리인 데다 등장인물의 대사가 다른 배경음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차라리 자막 처리를 해줬다면 좋았을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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