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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대 안으로 훅 들어온 진상 손님의 잊을 수 없는 말

27번 찔린 마트종사자 뉴스 보며 떠오른 기억, 자주 '정중함의 갑옷'을 입습니다

등록|2024.10.07 14:08 수정|2024.10.07 14:08
지난 5월 한 20대 남성이 50대 여성 마트 종사자를 27차례나 칼로 찌르는 사건이 있었고, 최근 1심 판결(징역 7년)이 나왔다는 보도를 봤다. 계산원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오인에서 비롯한 행동이었단다. 나는 이 기사를 보며 오히려 손님이 계산원을 하찮게 여기고 깔보고 있었다는 걸 느꼈다.

이 극단적인 비극이 아니고서라도 '겨우 계산원 따위가'라는 인식은, 지금껏 일해온 계산원 경력 도합 10년 동안 나 또한 익숙하게 경험해왔다. 누구는 이 일을 한심하게 여기고 누구는 동정하겠으나, 이런저런 모멸감을 안긴 손님의 언행은 쉽사리 잊기 힘들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경악할 정도로 경우 없는 손님, 그러니까 시쳇말로 '진상'이라 부르는 인물이 등장한다. 사람들의 이목을 붙잡아야 하니까 극적으로 묘사한 거겠지 싶다가도 현실에서 그런 손님을 보면 저게 과장이 아니구나, 오히려 순화한 거구나 싶다.

'이게 안 될 리가 있느냐' 다짜고짜 소리 지르던 손님

마트에서 일하기 전 나는 잠깐 테마파크 기념품점에서 일한 적이 있다. 작달막한 중년 남성과 늘씬한 몸매에 화장품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젊은 여성이 팔짱을 끼고 매장에 들어왔다.

남자는 넥타이까지 갖춘 양복 차림, 여자는 허벅지가 드러나면서 딱 붙는 원피스 차림에 하이힐을 신고 있어서 활동적인 테마파크와는 영 어울리지 않았다. 둘은 으레 연인들이 하듯 다정한 애정 행각을 벌였고 매장 안 직원들은 다들 한 번씩 그들에게 눈길을 주었다.

이내 여자가 본인보다 더 큰 곰 인형을 골랐고 두 팔로 겨우 껴안은 채 계산대로 왔다. 남자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나에게 건넸는데, 두세 번 해봐도 결제가 되지 않았다. 잔액이 부족한 건 아니었고 카드 회사 점검 시간에 걸린 것이었다. 가끔 있는 일이어서 매뉴얼대로 정중하게 다른 결제 방법을 권유해 드렸다.

▲ 테마파크 기념품점 ⓒ 에버랜드


그런데 남자는 '이게 안 될 리 없다'며 대뜸 언성을 높였다. 강경한 태도에 다시 시도하는 시늉이라도 해봐야 할 것 같아서 재차 결제를 해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정확한 해결 방법을 알아보고자 손님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 재빨리 점장님을 찾아갔다.

대답을 듣고 나서 다시 계산대로 돌아왔을 때 일이 터졌다. 자리를 비운 건 겨우 2-3분 남짓이었는데 남자 손님은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사람을 왜 이렇게 기다리게 하느냐'고 매장이 다 울리도록 고함을 쳤다. 거기에 이어서 하는 행동이 가관이었다. "내가 이깟 인형도 못 살 것 같아? 현금으로 주면 될 거 아니야!"라면서 지갑에서 지폐 뭉치를 꺼내 계산대에 집어던지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남자의 행동이 너무도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이어서 나는 눈앞의 광경을 믿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남자는 자신이 얼마나 능력 있는 사람인지 아느냐며 쉴 새 없이 쏘아붙였다. 결국 점장님이 나오셔서 사태를 마무리했는데, 그 날의 장면은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잊히지 않았다. 그 남자는 어디서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느낀 걸까? 내가 어떻게 했어야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내가 겨우 정리한 결론은, 그런 사람일수록 더 깍듯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상대를 무안하게 해서는 안 된다. 힘에 굴복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욕망을 간파한 기술이다. 그렇다. 상대는 스스로를 귀빈이라 생각하고 대우 받고 싶어 한다. 그러니 이에 맞춰 예의로 무장해서 상대해야 한다. 상식 밖의 손님 앞에서 정중함은 나를 지키는 일종의 갑옷이다.

▲ 상식 밖의 손님 앞에서 정중함은 나를 지키는 일종의 갑옷이다.(자료사진) ⓒ dre0316 on Unsplash


드라마나 영화처럼 손님이 반말한다고 똑같이 반말하고, 돈을 던진다고 똑같이 던지면 자칫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실엔 우연히 지나가다 불의의 상황을 목격하고 화려한 언변과 재력과 권력으로 위험에 빠진 직원을 구해주는 상관이 나타날 일이 없다. 사이다 같은 속 시원한 결말을 기대할 수 없다면 우리가 갈고 닦아야 할 기술은 체하지 않고 고구마를 먹는 법이다.

"아, 여기는 술집이랑은 또 다른가?"... 고객들의 은근한 성희롱

하지만 늘 예의가 정답인 것만은 아니다. 이런 상황은 어떨까.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편의점에서는 손님과 접촉을 최소화하고자 손님이 카드를 내밀면 직접 받지 않고 카드리더기에 직접 넣어 달라고 부탁했다. 어떤 분들은 리더기의 어느 쪽에 카드를 꽂아야 하는지를 못 찾아 리더기 근처에서 손이 방황했다.

그럴 땐 내가 직접 투입구를 손바닥으로 가리키며 알려 드렸다. 하지만 워낙 틈이 좁아서 그런지, 나이 드신 분들은 그곳이 막혀 있다고 생각하고 카드를 꽂기를 망설이셨다. 그래서 "여기 틈이 있어요. 여기 넣으시면 돼요"라고 말씀드렸는데 한 손님이 카드를 밀어 넣으며 지금 생각해도 믿지 못할 말을 했다.

"허허, 틈에다 넣는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좀 그러네."

▲ 상점마다 다른 카드 리더기 ⓒ 김아영


손님은 상기된 얼굴로 내 얼굴을 힐끔거렸고 나는 그 눈길을 최대한 외면하며 무언으로 손님을 보냈다. 이럴 때 웃으면서 예의 차리는 건, 내 경험상 최악이다. 뭐라고 하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그만이지만 같은 손님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면? 일을 관둬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커진다.

어떤 손님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에게 하이파이브를 하자며 손을 들어올렸다. 당시 어리숙했던 나는 처음엔 뭣도 모르고 어정쩡한 웃음과 동작으로 허공에 하이파이브를 해주었다. 아마 이 미적지근한 대처가 화근이었나 보다.

그는 다음 날은 나에게 이름을 물었고, 그 다음 날은 내 개인 전화번호를 달라며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내가 안 된다고 하자 "아, 여기는 술집이랑은 또 다른가?" 하고 너무나 크게 다 들리는 혼잣말을 했다.

내가 이후 친절을 걷어내고 무표정으로 대하자 그때부터는 나에게 먹을 걸 사주며 환심을 사려 들었다. 맛살, 핫바, 요거트 등을 하나씩 들이대며 "이거 좋아해?" 하고 묻기 일쑤였다. '싫다'는 내 대답과 상관없이 그는 매번 자기가 집은 걸 계산대로 가져왔고, 내가 안 먹는다고 하면 자기가 먹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계산이 끝나고 나면 꼭 두고 갔다.

안 받겠다고 가져가시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가까이 가기도 싫은데 그걸 억지로 그 사람 주머니에 넣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손님이 돌아가면 나는 그가 남기고 간 것을 다 버렸다. 그러다 어느 날에는 마음먹고 단호하게 "어차피 놓고 가셔도 다 버려요"라고 말했더니, 그제야 사주는 걸 멈췄다.

▲ 은근히 성희롱을 하는 고객들이 있다. 그런 이들에게 웃으면서 예의 차리는 건, 내 경험상 최악이다.(자료사진) ⓒ 김아영


나는 그가 그만 오기를 바랐지만, 아무리 냉랭하게 대해도 그는 계속해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돌발 행동을 보였다. 갑자기 계산대 안으로 들어와서 내 옆에 바짝 붙어 서는 게 아닌가. 나는 뒷걸음질치며 나가라고 경고했다. 급한 마음에 "여기 CCTV로 점장님이 다 보고 계세요"라는 말까지 튀어나왔다. 그 말 때문인지 마침 들어온 다른 손님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아쉬운 듯 뒤돌아섰다.

이후로도 실랑이는 계속되었고 나는 바짝 긴장한 채 긴급신고 버튼 위치를 수시로 확인했다. 새로 들어온 손님도 심상찮은 분위기를 눈치 채고 곁눈질로 상황을 살폈다. 마음 같아선 대놓고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문제의 손님이 나에게 직접 해코지를 한 것도 아니고 욕설을 내뱉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선량해 보이는 20대 남성이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힘이 되었다.

하지만 안심은 오래 가지 않았다. 새 손님이 볼일을 마치고 편의점을 나갔다. 단 둘이 매장에 남는 상황이 되자 온몸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상상은 점점 최악으로 치달았고,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나 내적 갈등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문밖을 봤는데, 좀 전에 나간 손님이 그대로 서 있는 게 아닌가.

누군가 기다린다기보다는 계속 이쪽 상황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나와도 눈이 두어 번 마주쳤다. 나는 손님을 상대하면서 밖을 힐끗거렸고 그는 문밖을 서성대며 한참 고민하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없었다. 처음엔 원망했지만 이내 인정했다. 내가 엿본 망설임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선량한 시민이었다.

언젠가 나도 익명의 손님이 되리라

▲ 무방비 상태로 매순간 불특정 다수를 상대해야 하는 계산원 ⓒ 김아영


이 정도면 충분하다. 충격으로 뇌리에 박힌 손님들을 다 열거할 생각은 없다. 그런 사람들의 언행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분노를 유발했다. 그런 감정을 굳이 공유할 필요는 없을 테다. 생각해 보면 그런 사람들은 백 분의 일, 아니 천 분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진정 곱씹어야 할 손님들은 어떤 인상도 남기지 않고 떠난 분들이다. '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라는 금언을 실천하듯 바람처럼 스쳐간 수많은 손님들이야말로 매일매일 되새기며 감사해야 할 분들이 아닌가.

진정한 배려는 상대방이 모르게 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니 나 또한 손님들이 해주는 배려를 무심코 받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인간성이 상실된 사회라고 해도 대부분 사람들은 기본적인 양심을 장착한 보통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는 점을 매일 되새기다 보면, 마음은 더 튼튼해지지 않을까. 나 또한 어디서든 손님이 되었을 때는 존재감 없는 익명이 되어야지 그렇게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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