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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윤석열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블랙리스트 사건 대법원 환송판결과 사면의 의미

등록|2024.10.14 07:03 수정|2024.10.14 07:03

▲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7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 유성호


윤석열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 시절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내며,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 문건 등을 통해 밝혀진 바와 같이 문화예술인들의 블랙리스트 작성에 깊숙이 관여한 의혹이 있는 유인촌을 또 한 번 문체부 장관에 임명하였다.

유인촌 장관은 각종 언론에서 이명박 정부 당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존재하지 않았고 그런 일이 일어나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2017년 7월부터 2018년 6월까지 활동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가 발간한 백서에 의하면, 유인촌 장관은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년 2월부터 2011년 1월까지 문화부 장관으로 재임할 무렵 문화예술기관장 25명을 표적 감사를 통해 사퇴 압박을 가해 스스로 물러나도록 하거나 거부하는 경우 해임을 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인해 피해를 본 영화배우 문성근, 방송인 김미화 등이 이명박 전 대통령,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블랙리스트 손해배상소송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23년 11월 이명박 대통령 등이 정부에 비판적인 특정문화계 인사들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방송계 등에서 퇴출한 행위는 헌법에 반하는 방법으로 예술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한 것으로 보아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특정이념·사상 배제하라는 청소년 영화교육?

▲ 영진위의 '차세대 미래관객 육성사업 운영 용역’ 제안 요청서 내용 중 일부 ⓒ 연합뉴스


유인촌은 문체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언론 등을 통해 문화예술계에 블랙리스트 사건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수차 공언했다. 그러나 지난 3월 말 공개된 문체부 산하 영화진흥위원회가 시행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차세대 미래관객 육성사업'의 용역 제안 요청서엔 정치적 중립 소재, 특정 이념·사상 배제가 명시돼 있다. 사업 대상인 영상물 등에 정치적 소재나 특정 사상, 이념을 배제하라는 것이다.

영화를 포함한 모든 예술작품은 작가의 일정한 가치관에 근거하여 창작된다. 특정 이념이나 사상이 포함되지 않은 영화나 작품은 있을 수가 없다. 정치적 중립성 소재, 특정 이념·사상을 배제하라는 것은 영화의 다양성과 예술의 자유를 근원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다. 이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자행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또 다른 형태로 실행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치적 중립, 특정 이념, 사상이란 추상적 용어는 애매하여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해당 영화나 교육프로그램이 집권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에 반하는 경우 특정 이념 및 사상을 지향하는 것으로 판단되어 배제될 것이 명확하다.

민주주의란 의사 결정시 시민권이 있는 대다수나 모두에게 열린 선거나 국민정책투표를 이용하여 전체에 걸친 구성원의 의사를 반영하고 실현하는 사상이나 정치사회 체제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자의적 잣대로 정부에 비판적인 영화나 교육프로그램을 정치적 중립에 반하거나 특정 이념이나 사상을 추구한다고 배제하는 것은 청소년들에게 국가가 추가하는 정책, 사상이나 이념만을 일방적으로 주입·강요할 우려가 있다. 용역사업의 대상자들인 미래세대인 청소년들의 양심의 자유의 본질적인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이다.

정부가 미래세대인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의견이나 사상 등을 접하지 못하도록 막고, 정부가 추구하는 일방적인 정책이나 이념·사상만을 강제로 주입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가로막아 우리 사회를 권위주의 시대로 회귀시킬 수 있다.

이러한 영화진흥위원회의 조치는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를 위해, 추운 겨울 광화문 광장에서 천막농성을 하며 힘들게 얻어낸 성과물인 예술인권리보장법 제8조 제2항에서 규정한 '정부로 하여금 문화예술인들의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예술지원 사업에서 차별을 금지하도록 한 것'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이것이 왜 직권남용이 아니란 말인가

▲ 박근혜 정부의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지난 1월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7일 설 명절을 앞두고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 대해 특별사면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단행하기에 앞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자신이 한 블랙리스트 행위에 대해 잘못을 인정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특별사면을 받은 후에도 자신이 자행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행위에 대해 어떠한 사과도 없었다. 참회 없는 용서로는 화해와 치유를 이룰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정부 시절 김기춘이 주동이 되어 자행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헌법이 규정한 예술의 자유, 표현의 자유, 평등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위법한 행위로 인정하였다. 그런데 대법원은 김기춘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직권남용을 인정하였으나 직권남용죄의 성립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였다. 직권남용이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그 아래 공무원 등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때'에 성립한다.

대법원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문체부 공무원을 통해 산하기관인 예술위·영진위·출판진흥원 소속 공무원에게 지원배제 등을 지시한 일련의 행위 등은 공무원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각종 명단을 송부하는 행위, 공모사업 진행 중 수시로 심의 진행 상황을 보고하는 행위에 대해선, 기관의 의사결정과 집행은 다른 공무원, 부서 또는 유관기관과의 협조 또는 의견교환을 거쳐 이루어지는 것이 통상적이므로 이러한 협조 또는 의견교환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령상 의무 없는 일로 볼 수 없다고 하였다.

대법원은 ▲행정기관의 의사결정과 집행은 다양한 준비 과정과 검토 및 다른 공무원, 부서 또는 유관 기관 등의 협조를 거쳐 이루어지는 것이 통상적이며 ▲ 이러한 협조 또는 의견교환은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필요하고, 상하 기관, 감독기관과 피감독기관의 사이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으며, ▲이러한 관계에서 일방이 상대방의 요청을 청취하고 자신의 의견을 밝히거나 협조하는 등의 요청에 응하는 행위를 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다른 공무원이나 유관기관 임직원으로 하여금 어떠한 일을 하게 한 때에, 그가 한 일이 형식과 내용 등에 있어 직무범위 내에 속하는 사항으로서 법령 그밖에 관련 규정에 따라 직무수행과정에서 준수하여야 할 원칙이나 기준, 절차 등을 위반하지 않는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령상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기춘이 문화예술사업의 보조금 지원명단에서 배제하기 위해 문화예술인 명단 송부를 요구하는 행위는 예술위·영진위·출판진흥원의 사업에 대한 정당한 감독권의 행사를 위한 것이 아니다. 문화예술인이 정치적 성향이나 정부에 비판적인 활동을 하였다는 등의 이유로 이들을 정부의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기 위하여 선별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대법원은 형식적 법실증주의에 입각하여 각종 명단을 송부하게 하는 행위, 공모사업 진행 중 수시로 심의 진행 상황을 보고하게 하는 행위와 보조금 지원 배제지시를 실행하기 위한 행위를 구별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들의 지원배제를 위한 목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이루어진 일련의 행위로 상호 불가분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행위가 직권남용이 되지 않는다면 유태인 학살 명단을 작성하여 상부에 보고하고, 이를 실행한 행위 중 학살자 명단 작성 행위에 대해선 '직권남용에 해당하는 범죄행위가 되지 않는다'는 상식에 반하는 이상한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다.

블랙리스트 사건이 이 땅에서 사라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현재 이명박 정부하에서 자행된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서는 진상규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이유로 과거의 상처를 그대로 둔다면 언젠가는 그 상처가 곪아 터지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블랙리스트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이명박 정부에서 자행된 블랙리스트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여 진실을 밝혀야만 이 땅에서 블랙리스트 사건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공정과 상식을 외치며 집권을 하였으나, 정부가 추구하는 이념이나 정책에 반대하거나 대통령을 비판하는 국민의 입을 틀어막고 이들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문화예술인들이 마음껏 사상과 의견을 표출할 수 없는 사회에서는 다양한 창작도 이루어질 수 없고 문화예술도 꽃피울 수 없다. 지금이라도 블랙리스트 특별법 제정을 통해 감추어진 진실을 규명하고 문화예술인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 주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법무법인 상록 강신하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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