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에 진로 바꾼 그의 고민, 나는 축복했다
어느 날 받은 메일 한통에서 시작된 이야기
며칠 전, 30대 중반의 청년에게 한 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이후 답장을 써내려가며 느꼈던 생각을 꾹꾹 눌러 담은 글입니다. 누구나 자기관리를 잘 하면 100세까지도 건강히 살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서른 살이 지나면 뭔가 새롭게 시작하기 늦은 나이라 치부하며 기회를 주길 망설입니다. 당사자는 뒤늦게 하고 싶은 일이 생겨도, 망설이고 고민해야 합니다.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경험이 적은 20대 초반에 나머지 80년의 삶을 결정 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시대의 떠밀림도 너무나 가혹합니다. 언제나 누구라도 또 다른 기회를 잡을 수 있고,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
▲ 독자에게 받은 한 이메일.자신을 '30대 중반'의 구직자로 소개한 그의 고민은, 비단 한 사람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100세 인생, 젊은 세대가 부족하다 외치는 사회적 목소리 속에서도 우리는 왜 30대가 되면 새로운 도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일까. ⓒ 김관식
며칠 전, 휴일 저녁. 오후 9시가 넘었을 무렵 누군가로부터 메일을 한통 받았다. 휴대폰 화면을 슬쩍 밑으로 쓸어내렸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잡지기자 클리닉'을 읽고 메일 드립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새롭게 진로선택을 해야 되는 상황, 그리고, 관련 경험이 없는 와중에 뒤늦게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취업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포트폴리오는 어떤 식으로 준비해야 하는지 등 몇 가지 질문을 덧붙였다.
내용으로 봐서 이미 마음을 굳힌 것 같았다. 그래야 할 수 있는 질문이었으니까. 특히 메일 마지막에 "제게 추가로 조언해주실 부분 있으면 해달라" 하고 당부하는 표현이 눈에 띄었다.
모래시계가 갈수록 타들어 가는 기분. 그 마음은 당사자가 제일 잘 안다. 조언 한 마디라도 듣고 싶은 그 마음, 일분 일초 애타게 기다릴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에 바로 짧은 답장부터 보냈다.
"메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궁금한 것을 질문하고 답을 찾으려는) 순환작용이 필요해 책을 썼습니다. 내용을 정리해서 월요일에 답변드려도 될는지요"
흔쾌히 감사하다며 기다리겠단다. 하지만 월요일에 다른 업무를 하느라 답신을 보낼 시간을 깜빡했고, 이틀 후 퇴근 시간이 지나서야 답장을 보내게 됐다.
<잡지기자 클리닉>이라는 책이 2013년에 초판이 나왔고, 벌써 10여년이 훌쩍 넘었다. 그 사이 많은 후배를 보며 상담하고 느꼈던 것을 토대로 이야기하고자 했다. 한국잡지교육원에서 수강하는 이는 대부분 잡지/신문 기자를 꿈꾸나, 홍보/마케팅에 관심이 있거나 글쓰기를 위해 참여하는 이도 있다. 대학 졸업을 앞둔 이부터 이미 사회생활 2, 3년차도 있고, 언론고시나 방송 아나운서를 준비하던 이도 있다. 해외서 유학하고 취업을 위해 뛰어든 이도 있고, 지방에서 매일 버스와 기차로 오가며 꿈을 키우는 이도 있다. 연령도 20대 초반부터 30대 중후반까지 다양하다.
▲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정기간행물 등록 현황.2024년 10월 2일 기준, 잡지는 2016년부터 계속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인터넷신문도 꾸준히 늘고 있다. ⓒ 문화체육관광부
한편으론, 현실적인 취업 현황과 산업 이야기도 솔직히 전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잡지시장이 녹록치 않은 현실 속에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함은 자명한 일이지만, 어느 산업이든 마찬가지 아닐까. 방법을 찾지 못해 헤매는 것 같지만, 꾸준히 종이 매체나 신문이 늘고 있는 것을 보면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산업이 있나 싶기까지 하다.
새로 시작한다는 건 어쩌면 기회와 가능성의 문제다. 다만, 3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적잖이 걱정될 것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면접까지 끌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때, 그 매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역할, 기사를 보며 추가 기획하면 더 좋을 부분, 콘텐츠를 확장하기 위한 방안, 내 기사의 차별화 방안 등을 사전에 준비하고, 포트폴리오에서도 이에 대한 코멘트를 달아 면접관이 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접근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이는 습관이다.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쓰기 위한 글은 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해야 한다. 포트폴리오와 자기소개서는 일기가 아니라 엄연히 상대를 위한 글이니 말이다.
그러면서 어떤 인생이든 한두 번의 기회는 꼭 온다는 말도 덧붙였다. 경력을 쌓아 원하는 매체사로 점프하는 것이 제일 현실적이라는 얘기를 건넸다. 그리고 기회를 잘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회를 잡을 만한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 거인의 어깨에 올라탈 일이 생기면 올라타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회사도 오래도록 함께 일할 수 있는 이를 원하는 곳도 있으며, 나이를 떠나 함께 팀워크를 발휘하며 소통할 수 있는 인재도 필요로 하는 매체도 많다고 했다. 때문에 앞으로 60세까지 일한다 가정하면 25년 정도 필드에서 뛰어야 하니까, '저 였으면 당분간 준비에 전념했을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금 시도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로 남을 것이고, 1년 동안 준비해보고 안 되면 미련이라도 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또, 처음부터 대단한 곳을 가기는 어렵겠지만 자존감 지켜가며 잘 버텨낸다면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곤 말미에 이렇게 한 줄 덧붙였다.
"저도 잘 버티고 있습니다."
▲ 두 번째 보내준 메일.적잖이 고민한 시간이 느껴지는 메일이었다. 30대 중후반에 이르렀지만, 이제라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얼마든지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시기라고 믿는다. ⓒ 김관식
한 시간 후 회신이 왔다.
"장문의 글을 4, 5번 내리 읽었는데 눈 앞이 잠깐 흐려졌습니다. (중략) 사실 살면서 제 진로에 대해 항상 고민과 걱정이 많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앞으로 잘만 나아가는 것 같은데 저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제 자신을 많이 원망하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여기저기 돌고 돌아 지금은 정말 원하는 분야를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전심전력 다하고 싶습니다."
여기저기 돌고 돌아서 자신이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고 했다. 처음 내게 메일을 보냈던 9월 26일은 그에게 참으로 고되고 고민스러웠던 날이 아니었을까. 다시 생각하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는 데서는 분명 박수 받아야 한다.
다만,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이런 조언 아닌 조언을 해줄 대단한 위치에 있는 이가 아니다. 메이저 매체를 다녔던 것도 아니고, 잡지와 사보, 신문사를 거쳐오며 20년 가까이 버텨왔던 터였다. 그리고 나 역시 시간을 돌려보면 그와 같은 처지였다. 두세 번 다른 일을 해왔고 서른 살이 다 돼서 지금의 이 일을 찾았다는 것.
그랬기에, '실력을 쌓고 주변과 소통하며 버티는 요령'이라면 백 번이라도 얘기해 줄 수 있다. 딱 그 정도까지다. 또, 내가 선택의 갈림길에서 겪었던 것, 회사와 소통하며 반성했던 것, 선배와 어울리며 지켜야 했던 것이라면 또 얼마든지 쏟아낼 수 있다.
▲ 늦게 맞은 그의 새로운 길이지만 나는 축복했다. ⓒ Pixabay
그는 30대 중반의 청년이다. 많은 이가 이런 고민을 지금도 하고 있지 않을까. 100세 시대라고 말한다. 그런데 사회에서는 '일할 수 있는 젊은 친구가 부족하다'고 말하고, 모 대기업은 '30대가 신입인데 잘 할 수 있을까?' 하고 염려부터 쏟아낸다.
야구라는 스포츠도 1군 등록일수를 계산해 일정 기간을 채우지 못하면 2군에 오래 머물렀더라도 첫 1군에서 괄목할 만한 성적을 올리면 올해의 '신인상'을 수여한다. 공무원 시험도 소방과 경찰 등 특수분야는 40세까지, 이외 7~9급까지는 응시제한 상한선을 없앴다. 나이를 깨고 어느 분야든 새로운 인재를 위해 문을 개방하지 않았나. 그럼에도 아직 우리 사회는 30대면 '새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 아냐?' '그 나이에 뭘 새로 시작해?'라고 고정된 관념부터 피워올린다.
30대도 한창 젊은 나이다. 요즘은 모두 고스펙에 자기관리가 철저해 그 세대만의 젊음과 끼가 오히려 나이와 상관 없이 필요한 무기가 된다. 숫자로 점철된 나이로 이들을 제단하기보다 누구나 언제든 새로 시작할 수 있도록 기회와 시간을 주는 사회적 제도와 장치가 필요하다. 그래야 사회가 건강하게 순환한다. 비록 나이라는 숫자로 가려졌지만 그 이면에 꿈틀대고 있는 실력과 잠재된 끼에 가중치를 줄 수 있는 기성 세대의 안목과 반성도 요구된다.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니 종종 메일로 소식을 전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들은 20여 년 전의 내 모습이다. 그랬기에 자신 있게 얘기해주고 싶다.
"한번 도전해봅시다. 분명 당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테니.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이를 잡을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 해보시죠!"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글쓴이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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