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도와주쇼"... 얼떨결에 전통혼례 참여했습니다
전통혼례 보고 국악공연, 체험 프로그램 진행하는 영광 매간당 고택
▲ 매간당 고택 삼효문. 대문과 정려를 함께 둔 2층 모양의 누각이다. ⓒ 이돈삼
한낮 마을이 고요하다. 길에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마을 앞 들판에선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마을길을 따라 해찰하는데, 관광버스가 보인다.
고택 앞이다. 고택 안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어 들려온다. 사람이 많이 모인 것 같다. 솟을대문 안으로 들어가니, 왁시글덕시글하다.
"예?"
"잠깐이면 돼요."
고택체험 프로그램으로 전통혼례식을 하는데, 기럭아범 역할을 할 사람이 없다는 말이었다. 잠깐이면 된다는 말에 거절 못 하고, 이끄는 곳에 따라 들어갔다. 한쪽에서 한복으로 갈아입고, 삿갓을 썼다.
얼떨결에 전통혼례식에 참여했다. 기럭아범은 신랑 앞에서, 나무로 깎은 기러기를 두 손에 들고 들어가 신부 어머니한테 전달하는 역할이었다. 전통혼례가 끝나고 축하공연도 이어졌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 매간당에서의 전통혼례. 고택체험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진행됐다. ⓒ 이돈삼
고택 마루에서 보고 듣는 국악공연도 근사했다. 가야금 연주음이 처마 끝을 타고 넘실댔다. 메마른 내 가슴도 금세 감성으로 채워졌다. 프로그램 참가자들도 하나같이 흥겨워했다.
지난 9월 28일 영광 매간당 고택에서다. 조선 후기 상류층 집인 매간당 고택은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전라남도 영광군 군남면 동간리에 있다.
전남종가회 영광지부가 국가유산청과 지자체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영광고택체험 프로그램은 전통혼례와 공연 외에도 보자기를 활용한 이효재의 인문학, 고택 산책, 지역관광으로 짜여졌다. 고택에서 하룻밤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추억을 만들어준다.
고택 곳곳에 스민 흥미로운 이야기들
▲ 전통혼례 뒤풀이로 준비된 모싯잎송편. 모싯잎송편은 영광에서 맛보는 별미다. ⓒ 이돈삼
▲ 매간당에서 진행된 이효재의 보자기 인문학. 체험 참가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 이돈삼
매간당 고택에 스민 이야기도 흥미롭다. 고택은 연안김씨 직강공파의 종택이다. 1868년 매간당 김사형(1830-1909)이 지었다. 안채 상량문에 집을 지은 날짜가 적혀 있다. '매간당 고택'으로 이름붙은 이유다. 집도 옛모습을 간직하고 보존이 잘 돼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규모도 크다. 가장 눈에 띄는 게 삼효문이다.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한 대문이다. 네 개의 기둥 위에 세 개의 정려를 올렸다. 대문과 정려를 함께 둔 2층 모양의 누각이다. 전국에서도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문의 기둥도 다듬지 않은 아름드리 나무를 그대로 썼다. 자연미가 묻어난다.
2층은 알루미늄 새시로 둘러싸여 있다.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안에 '三孝門(삼효문)' 현판이 걸려 있다. 연안김씨 집안의 효자 김진(1599-1680), 김재명(1738-1778), 김함(1760-1832)의 효를 기리고 있다. 현판 글씨는 흥선대원군의 큰아들 이재면이 썼다.
▲ 삼효문에 걸린 정려. 김진과 김재명, 김함의 효를 기리고 있다. ⓒ 이돈삼
김진은 70살에 색동옷을 입고 부모를 즐겁게 했고, 부모상 땐 3년간 죽으로 연명했다고 전한다. 김재명도 부모상 때 시묘살이를 했다. 그의 효성에 호랑이도 감복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김함은 한겨울에 두꺼비를 구해 부모 병을 구했다고 한다.
대문은 집안의 전망대이기도 하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자리다. 누렇게 채색되고 있는 마을 앞 들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다른 쪽으로는 집안이 훤히 보인다. 집안은 뒷산을 배경으로 두르고 북쪽을 향하고 있다.
▲ 삼효문에서 내려다 본 매간당 고택 사랑채. 매간당(梅澗堂), 익수재(益壽齋), 구간재(龜澗齋) 3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 이돈삼
▲ 유생복을 입은 고택체험 참가자들이 매간당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이돈삼
고택은 사랑채와 안채, 중문채와 아래채, 서당, 사당, 곳간채, 마굿간 등으로 이뤄져 있다. 사랑채 앞에 정원이 있다. 7칸 사랑채는 1898년에 지어졌다. 매간당(梅澗堂), 익수재(益壽齋), 구간재(龜澗齋) 3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매간당은 김사형, 익수재는 김혁기, 구간재는 김종관의 호다. 집과 주인이 '한몸'이다.
매간당은 산속 매화를 가리킨다. 소박하지만 지조 지키며 살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익수재는 나이 들수록 더 밝고 건강하게, 구간재엔 거북이처럼 매사 신중하게 행동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 서당 마루의 물벼루. 종이가 귀하던 시절 먹벼루 대신 쓰였단다. ⓒ 이돈삼
▲ 고택 사당. 매간당 고택의 자존심이다. ⓒ 이돈삼
서당도 독특하다. 대청을 가운데에 두고 동재와 서재로 이뤄졌다. 동재는 어린이, 서재는 어른들 공부방이다. 바닥에 온돌을 깔았다. 대청마루에 주먹만한 크기로 움푹 들어간 '물벼루'도 별나다. 물을 담아두고 붓끝에 찍어 마룻바닥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데 쓰였다. 종이가 귀하던 시절 이야기다. 서당 앞 연못에 반영돼 비치는 가을하늘도 아름답다.
조상을 모신 사당도 뒤편 경사진 곳에 그대로 있다. 고택의 자존심이다. 중문채를 지나 만나는 ㄷ자 모양 안채도 멋스럽다. 안채는 큰방, 정지, 정지방, 대청, 작은방으로 이뤄져 있다. 큰방은 안방마님의 생활 공간이다. 맏며느리의 출산이 허락되는 방이다. 하지만 지금 보수공사를 하고 있다.
一자 모양의 아래채, 민가에서 보기 드문 목욕간도 있다. 뒤뜰 담장 밖에 호지집도 있다. 옛날에 집안일을 돕는 사람이 살던 집이다. 고택의 넉넉한 살림살이를 짐작할 수 있다.
▲ 매간당 고택 돌담. 뒤편 호지집과 숲속 산책길로 이어진다. ⓒ 이돈삼
▲ 마을 숲속 산책길. 대나무와 소나무 어우러지고 길섶에 수국이 자란다. ⓒ 이돈삼
고택 돌담을 따라 만나는 숲길 산책도 여유를 선사한다. 숲에는 소나무와 대나무가 어우러져 있다. 나무의 두 가지가 붙은 연리지도 애틋하다. 길섶은 지난 여름 수국으로 화사했던 꽃길이다.
마을은 임진왜란 전에 형성됐다고 전한다. 16세기 중엽 연안김씨 김영이 군수로 부임한 숙부를 따라와 정착했다. 이후 김인택이 옮겨와 살면서 연안김씨 집성촌이 됐다. 대대로 전해온 교지, 관복, 호패 등 유물이 전해진다.
동간리는 지금 동편, 오강, 서편 3개 마을로 이뤄져 있다. 매간당은 동편, 동간1구에 속한다. 서편은 불갑천변에 자리하고 있다. 천변을 따라 소나무가 줄지어 있다. 느티나무 세 그루가 드리우는 그늘도 넓다.
▲ 불갑천변에 자리한 동간리 서편마을. 오래된 나무가 멋스럽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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