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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밤마다 요강 찾은 진짜 이유를 알았다

[안지훈의 3인칭 관객 시점] 피오의 계속되는 연극 도전, <나와 할아버지>

등록|2024.10.07 14:45 수정|2024.10.07 14:45

▲ 연극 <나와 할아버지> 공연사진 ⓒ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연극 <나와 할아버지>가 3년 만에 돌아왔다. 작품을 쓰고 연출을 맡은 민준호가 겪은 실제 이야기를 수필처럼 풀어냈다. 할머니의 잔소리가 싫어 매일 티격태격하는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간섭이 싫어 방문을 자물쇠로 잠근 할머니, 그리고 멜로 드라마를 쓰고 싶은 작가 준희까지, 세 사람은 소박하지만 의미있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김승욱, 오용, 양경원이 이번에도 '할아버지' 역에 캐스팅되었고, '준희' 역에는 차용학과 신현수, 표지훈(피오)이 캐스팅되었다. 올해에만 세 편의 연극에 출연하는 등 공연 무대에 활발히 임하고 있는 표지훈이 눈에 띈다. 정선아, 박보경, 서예화는 '할머니'를 연기한다.

여기에 <나와 할아버지>에는 '준희'가 한 명 더 등장한다. 바로 수필의 작가로서 한 번씩 등장해 서술자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이다. 대사가 없을 때는 무대 장치를 움직이거나 효과음을 내며 깨알같은 재미를 준다. 극중 '작가'라는 배역명으로 존재하는 이 캐릭터에는 길은성, 김종현, 문경초가 캐스팅되었다.

<나와 할아버지>는 11월 24일까지 인터파크 서경스퀘어 스콘(구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2관에서 공연된다.

드러나는 차이, 계속되는 갈등

연극은 등장인물 간의 쉽사리 좁혀지지 않는 차이를 묘사한다. 할머니는 준희에게 연신 할아버지 욕을 해댄다. 할아버지와 마주친 할머니는 쉬지 않고 잔소리를 하고, 할아버지도 이에 지지 않고 언성을 높인다. 둘은 오직 자기 할 말만 하고, 둘의 말이 뒤섞여 관객은 노부부의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만큼 둘의 견애 차이는 심각하고, 크고 작은 갈등 역시 멈추지 않는다.

연극은 세대 차이 역시 보여준다. 준희와 할머니가 무릎 통증을 두고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데, 아마 세대 간 의사소통 방식이 달라 생기는 문제일 테다. 이는 할아버지와 준희의 대화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내비게이션은 틀렸다며 자신의 주장을 앞세우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른 준희를 나무란다. 오늘날 노년층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을 그대로 무대에 구현해 놓은 것 같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나타나는 차이는 이뿐만이 아니다. 식당에서는 식당 주인과 손님이 정치 성향을 두고 사소한 말다툼을 하고, 시골 마을에서는 '빨치산' 같은 원색적인 단어가 오가기도 한다. <나와 할아버지>에 등장하는 차이와 갈등은 모두 일상적인 공간에서 나타나는 것들이다. 공적 영역에서의 거창한 갈등이 아닌, 살아가면서 가까운 사람들과 겪는 갈등의 이야기다.

▲ 연극 <나와 할아버지> 공연사진 ⓒ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그래서 관객은 각자의 경험을 연극에 투영할 수 있다. 필자 역시 말문이 트였다 하면 한국전쟁에 참전한 이야기와 어린 시절 동네에서 자신의 위상이 어땠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극중 할아버지를 보고 필자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학창 시절의 무용담, 젊은 시절의 자신의 대담함을 설명하고,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적당히 대꾸하다 어디론가 살아지는 필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런 갈등의 양상을 보면 누군가에게 명확히 원인이 있는 경우는 드물다. 대체로 다른 의사소통 방식 탓에 불편함을 느끼고, 그래서 거칠게 나가는 것일 테다. 그러다 그마저도 안 되면 소통을 단절해버린다. 소통이 하지 않으니 서로를 더 모르게 되고, 오해는 쌓여간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소통 부재'의 단면이다.

대면하고 대화하는 실천

준희는 대화도 잘 안 통하는 할아버지와 여행길에 나선다. 꼭 찾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할아버지의 부탁을 들어줌과 동시에 자신이 쓰고자 하는 멜로 드라마의 소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기 때문이다. 물론 할머니는 그런 준희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설상가상으로 할머니의 병세가 악화된다.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사람을 계속 찾아다닌다.

연극은 계속해서 차이와 갈등을 보여주는데, 이 여행길은 그 차이와 갈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잔잔한 교훈을 제시한다. 이전까지 준희는 할아버지의 사소한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왜 요강을 쓰시는지, 왜 밤에 작은 등을 가지고 주무시는지.

그런데 여행길에서 할아버지와 하룻밤을 보내고 나니 준희의 의문은 모두 풀렸다. 전쟁으로 인해 한쪽 다리를 잃은 할아버지는 새벽에 의족을 끼고 화장실까지 가는 것이 어려워 요강을 사용했던 것이고, 마찬가지로 전등 스위치를 누르러 가는 것이 힘들어 작은 등을 사용했던 것이다.

▲ 연극 <나와 할아버지> 공연사진 ⓒ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이러한 사실들을 왜 이제서야 알게 됐는지, 준희는 되돌아본다. 대면하지 않았고, 대화하지 않았으니 몰랐던 것들이다. 곧이어 준희는 할머니의 병세가 악화되고 있음에도 할아버지가 여행길에 오른 간절한 이유를 몸소 느끼게 된다.

물론 가족들은 할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대면하고 대화하지 않았으니 당연하다. 그래서 여행길에서 돌아온 할아버지의 뒷모습에 대고 한숨을 쉬거나 원망의 말을 내뱉는다. 이를 본 준희는 이렇게 회상한다. 할아버지는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고 변명하고 싶은 나이가 되었는데, 아무도 할아버지에게 질문하지 않는다고.

이때 객석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관객은 자신과 가족을 돌아보고, 부모나 그 윗세대를 생각한다. 연극은 잔잔하게 흘러가지만, 이야기가 주는 여운은 결코 얕지 않다. 그리고 관객에게 실천할 것을 주문한다. 대면하고 질문하고 대화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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