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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재산,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친일로 얻은 '충청도 제일갑부' 김갑순 재산 추적기

등록|2024.10.04 17:22 수정|2024.10.04 17:22

▲ 충남 공주시 반죽동에 위치한 '나태주 골목길' 전경 ⓒ 충북인뉴스

▲ 충남 공주사 반죽동에 위치한 '나태주 골목길' 전경. 인근에 친일반민족행위자 김갑순의 옛 집터가 있다. ⓒ 충북인뉴스


충남 공주시 옛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제민천길을 걷다 보면 '나태주 골목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골목길에는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을 비롯해 여러 시들이 골목길 담장에 피어있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골목길은 공주시 반죽동 160-3번지에 있습니다. 나태주골목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반죽동 245번지에는 나태주 시인 만큼 유명했던 인물이 살던 집이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악명이 높은 쪽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지요.

바로 대한민국 정부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인정한 김갑순(창씨:金井甲淳/1872~1961)이 살던 집입니다. 그가 살던 집터에는 수해 전까지 '일제 강점기에 충청도 제일 갑부로 알려진 김갑순의 옛집 터'라는 안내판도 설치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2일 방문했을 때는 안내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 충남 공주시 반죽동 245번지. 김갑순이 살았던 옛 집터다. (사진=김남균 기자) ⓒ 충북인뉴스

▲ 김갑순이 살았던 공주시 반죽동 옛 집터 전경. (사진=김남균 기자) ⓒ 충북인뉴스


김갑순은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옮긴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하고 대전에 대규모로 부동산을 매입해 부자가 됐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죠.

그는 이완용, 윤치호 등과 사돈을 맺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세 번이나 지내는 등 노골적으로 친일행위를 벌였습니다.

1949년 1월 당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아래 반민특위)에 의해 체포됐지만, 친일파 대다수가 그렇듯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풀려났습니다.

'조상 땅 찾아주기 사업'의 최대 수혜자가 된 김갑순의 후손

친일행위를 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을 만큼 운이 좋았던 김갑순뿐만 아니라, 그 후손들도 운이 좋았습니다.

'조상땅 찾아주기 사업'은 1990년 충청남도가 제일 처음으로 시작한 사업입니다. 후손들이 파악하고 있지 못한 토지를, 지자체가 파악해 돌려주는 사업인데 취지 자체는 좋은 사업이었습니다.

그런데 1996년 경 이 사업 덕택에 김갑순의 손자가 충남 공주시 금학동을 비롯해 156필지 11만3883㎡를 찾아갔습니다. 이어 김갑순의 후손은 다시 2000년대 들어 공주시와 세종특별자치시 일대 99필지, 2만701㎡를 찾아갑니다. 임시정부를 계승한 대한민국 정부가 친일파의 후손에게 땅을 찾아 돌려준 것이죠.

후손에게 찾아준 토지는 255필지, 국가환수토지는 16필지+α

2005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아래 친일재산귀속법)이 제정되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친일파들이 후손에게 물려준 땅을 되찾는 사업에 착수합니다. 2006년 '조사위원회'가 구성돼 2010년까지 재산환수 사업을 진행했는데요.

당연히 이전에 대한민국 정부가 김갑순의 후손들에게 찾아줬던 땅들은 환수대상입니다. 단 러일전쟁이 시작된 1905년부터 해방을 맞은 1945년 8월 15일 사이 김갑순이 취득한 재산에 한해서입니다.

그럼 대한민국 정부는 몇 필지를 환수했을까요? 255필지 중 절반이라도 환수했을까요? 아쉽게도 확인된 것은 16필지입니다. 그리고 환수한 토지 중 제3자에게 매각을 한 것은 이 통계에 빠져 있으니 추가로 더 있긴 하겠지요.

친일파의 재산, '풀꽃처럼' 자세히 보아야 보입니다. 그래서 지난 3일 '친일청산·재산환수 마적단'이 그 땅을 찾으러 공주시로 갔습니다.

공주시청에 들러 구 토지대장을 열람했습니다. 공주시의 경우 일제강점기부터 작성된 부책식 토지대장은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해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1970년대부터 작성된 '카드식' 토지대장을 열람하기로 했습니다. 우선 공주시 금학동의 토지대장과 임야대장을 열람했는데요. 총 17권입니다. 한 번에 들지 못할 정도로 많은 양이죠. 시 '풀꽃'처럼 한장 한 장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았습니다.

▲ 필자가 지난 2일 열람한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 구 토지대장및 임야대장 (사진=김남균 기자) ⓒ 충북인뉴스

▲ 김갑순이 소유했던 토지. 이 토지는 친일재산으로 분류돼 2008년 국가에 귀속됐다. ⓒ 충북인뉴스


열람료는 꽤 비쌉니다. 토지대장 한 권당이 아니고 토지대장에 기입된 필지 하나 당 300원입니다. 이날 열람한 토지 총 필지는 2000필지가 조금 넘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어갑니다.

성과가 있었냐구요? 네, 있었습니다. 금학동 소재 한 필지를 찾았습니다. 면적은 245㎡, 공시지가는 1200만 원 정도 됩니다. 겨우 요것 밖에 안 된다고 하실수도 있겠죠. 예단은 금물입니다. 이제 금학동 하나만 본 것이니까요.

앞으로 시간을 내서 틈틈이 공주시 토지대장을 살펴볼 겁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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