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임 후 더욱 바쁜 일정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조문학의 큰별 가람 이병기평전 24] "갈외도 저희는 도적이 맘 속에도 있느니."
▲ 가람 이병기 선생 생가 ⓒ (주)CPN문화재방송국
66세가 되는 1956년 3월 30일 정년으로 전북대학 교수와 문리과대학장에서 물러났다. 현직에서는 퇴임했으나 업무는 더욱 많아졌다.
4월 1일 신학기에 중앙대학 교수로 발령이 나고, 서울대 문리대와 대학원에서 강의를 맡게 되었다. 그리고 퇴임 후에도 전북대 강의를 계속하였다. 더러는 사양했으나 강의를 듣고자 하고 사람(학교)이 많았다.
10월에는 전주시내 중고등학교 교사들에게 한글창제와 관련한 강의, 11월에는 한국외국어대학이 주최한 〈왕조실록에 나타난 세종대왕의 성자〉를 발표하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이 즈음에 쓴 것인지, 그의 작품에 <내 한 생(生)>이 있다.
내 한 생(生)
한몸에 지은 짐이 너무나 무거웠다.
그 짐을 다 버리고 이리저리 오고 가매
새로이 두 어깨 밑에 날개 난 듯하고나
쌀값은 높아가며 양화(洋貨)는 범람하고
거리 거리에 자동차 트럭 버스
이것이 서울특별시 새 풍경이로고나
늙어 가면서도 술잔은 놓을 수 없고
늙어 가면서도 연필은 던질 수 없다
분필과 술잔으로나 내 한생을 보낼까. (주석 1)
그의 학문적 열정은 나이가 들어도 식지 않았다. 시조 이외에 시가문학의 모든 양식에 대해 관심을 갖고 꾸준히 탐구하였다. 이 분야 주요 논문을 살펴본다.
토별가(兎鼈歌)와 신오위장(申五衛將), <문장>, 1940
지리산가와 춘향전, <지리산>, 1951.
시가문학, <국어문학>, 1953
정읍사의 고찰, <국어문학>, 1953
정석가(鄭石歌), <전북대학보>, 1954
시가문학의본질 - 종류·어원·형태규정, <전북대학보> ,1954
동동(動動)과달거리, <국어문학>, 1954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의 한 고찰, <한글>, 1955
극가와 소설, <전북대학보>, 1955
가악사초(歌樂史草), <국어문학>, 1955~1956
별사미인곡과 속사미인곡에 대하여, <국어국문학>, 1956. (주석 2)
나이가 들면서 노욕과 노추에 빠지는 경우를 흔히 지켜본다. 젊어서는 괜찮았는데 나이 먹고 늙어가면서 과거 자신의 행적을 짓밟거나 역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치인이나 관료뿐만 아니라 학자·언론인도 다르지 않다.
시류를 잘 타서 권력·돈·명예까지 꿰차는 자들이 출세자가 되고, 자신의 분야 뿐만 아니라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서, 이를 추종하는 아류가 줄을 선다. 지식인의 부패타락은 그 사회(국가)의 패앙의 길이라 했다.
가람은 정년을 하고도 난을 키우고 술을 마시며 오로지 학문(학술)연구와 강의에 매진하였다. 생활비를 아껴 수집해온 각종 자료(사료)를 아낌없이 대학에 기증하고, 제자들과 값 싼 술집을 즐겨 찾았다. 명성이 따르면서 정계와 관변의 유혹이 있었으나 이제까지의 삶의 길을 한치도 바꾸지 않았다. 부패 타락한 권세가들의 벼슬을 닭 벼슬 보듯 하였다.
팽자울
그의 집 앞으로는 지나가는 것도 두렵다
겹겹이 둘러 둘러 가시성을 쌓았노니
지금도 안치(安置)를 받을 무슨 죄를 지었을까
홍수 맹수보다 음험한 이 세상에
팽자울은 커녕 철옹성인들 믿으리오
갈외도 저희는 도적이 맘속에도 있느니. (주석 3)
가람의 많은 시조 작품 중에서 이만큼 신랄한 사회비평 또는 풍자의 작품을 만나기 어렵다. 주위에 쥐 한 마리 얼씬하기 어렵게 가시성을 쌓고 사는 고관을, 옛 귀양살이 처소에 위리안치 시킨 것에 비유한다. 마지막 구절을 다시 본다.
"갈외도 저희는 도적이 맘 속에도 있느니."
주석
1> <가람 시조선>, 73쪽.
2> 최승범, 앞의 책, 148쪽.
3> <가람문선>, 61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조문학의 큰별 가람 이병기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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