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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익분기점 못 넘은 '천만 후보' 영화, 아쉬운 점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1960년대 배경의 순수한 멜로 드라마 <쎄시봉>

등록|2024.10.07 12:09 수정|2024.10.07 12:09
지난 2012년 3월 <불신지옥>을 만들었던 이용주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건축학개론>이 개봉했다. 전작과 달리 정통 멜로였던 <건축학개론>은 개봉 당시만 해도 크게 주목 받는 영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건축학개론>은 아름다운 스토리와 배우들의 신선한 연기, 이용주 감독의 매끄러운 연출이 조화를 이루면서 전국 411만 관객으로 기대 이상의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건축학개론>의 가장 큰 매력은 배우 엄태웅과 이제훈이 승민, 한가인과 배수지가 서연을 연기했던 2인1역의 캐스팅이었다. 각자 현재와 과거의 캐릭터를 연기한 4명의 배우는 영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관객들을 설레게 했다. 특히 과거의 서연을 연기한 배수지는 <건축학개론>이 데뷔 첫 영화였음에도 청순한 매력을 뽐내면서 단숨에 '국민 첫사랑'으로 떠올랐다.

사실 2인1역은 한 배우가 두 가지 캐릭터를 연기하는 1인2역만큼 자주 나오진 않지만 다른 매력을 가진 두 배우가 하나의 캐릭터를 소화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상당히 쏠쏠하다. 2015년 설 연휴에 개봉한 이 영화 역시 두 명의 배우가 한 캐릭터를 연기한 2인1역 캐릭터가 많이 등장했다. 김윤석과 김희애, 한효주, 정우, 강하늘, 장현성, 진구 등이 출연했던 김현석 감독의 음악 멜로 <쎄시봉>이었다.

▲ 1960년대와 2010년대를 넘나든 영화 <쎄시봉>은 전국 171만 관객으로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 CJ ENM


과거의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복고영화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그 때가 좋았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물론 그 시절이 지금보다 살기 어려웠을 순 있지만 아름다웠던 추억들이 있었기에 사람들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젊은 시절을 그리워한다. 하지만 그리웠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순 없어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아름다웠던 과거를 떠올릴 수는 있다. 과거를 배경으로 한 복고 영화들이 꾸준히 만들어지는 이유다.

2000년대 초반 복고 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은 2002년 연말에 개봉했던 류승범의 주연 데뷔작 <품행제로>였다. <품행제로>는 1980년대 중반 문덕고를 배경으로 황당한 영웅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싸움짱' 박중필의 이야기를 그린 코믹 학원물이다. 하지만 단신으로 수십 명을 단숨에 물리쳤다는 '전설'과 달리 중필은 전학생 상만(김광일 분)과의 마지막 대결에서 지극히 현실적인 싸움을 보여준다.

2008년에 개봉한 <고고70>은 <후아유>와 <사생결단>을 연출했던 최호 감독의 4번째 장편영화로 하늘이 어두웠던 만큼 낭만이 더욱 절실했던 1970년대 밤무대에서 활동하던 밴드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주인공 조승우와 신민아 외에도 노브레인의 원년 멤버 차승우가 기타리스트 만식 역을 맡았고 조승우와 친분이 있는 뮤지컬 배우 최민철과 홍광호도 각각 트럼펫과 섹소폰 주자 동수와 준엽을 연기했다.

남자들의 대표 복고 영화가 <품행제로>라면 여성들의 대표적인 복고 영화는 2011년에 개봉해 736만 관객을 동원했던 <써니>였다. <써니>는 여고 시절 '써니'라는 모임을 결성해 몰려 다니던 여학생들이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후 시한부 판정을 받은 춘화(진희경/강소라 분)에 의해 다시 뭉친다는 내용의 영화다. <써니>는 심은경을 비롯해 강소라, 천우희 등 신예 여성 스타를 대거 배출하기도 했다.

박보영과 이종석, 이세영 등이 출연한 2014년작 <피 끓는 청춘>도 1982년 충청도를 배경으로 고등학생들의 풋풋한 사랑과 성장을 그린 영화였다. <피 끓는 청춘>은 겨울방학과 설 명절이 겹친 성수기에 개봉했음에도 <수상한 그녀>라는 다크호스를 만나는 바람에 167만 관객으로 간신히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는데 만족했다. 그래도 충청도 토박이 출신 박보영의 사투리 연기는 일품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손익분기점도 넘지 못한 천만 영화 후보

▲ <쎄시봉> 개봉 당시 2~30대 젊은 나이였던 배우들은 1960년대의 음악과 감성을 잘 표현했다. ⓒ CJ ENM


최근에도 음악을 들으면서 술을 마실 수 있는 음악다방 형태의 술집들이 운영되고 있지만 1980년대까지는 오직 '음악 감상'을 위한 찻집이나 술집들이 꽤 많이 운영됐다. 심지어 신당동의 떡볶이 가게에서는 DJ가 손님들의 신청곡을 받아 틀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몇몇 유명한 음악감상실에서는 아마추어 가수들이 직접 라이브 공연을 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쎄시봉'이었다.

1963년 서울 서린동에서 개업했던 한국 최초의 대중음악 감상실 쎄시봉은 당시 유행하던 팝음악을 듣기도 하고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의 라이브 공연을 볼 수도 있었다. 당시 쎄시봉을 통해 송창식과 윤형주, 김세환 같은 유명 가수들이 배출됐고 방송인 이상벽과 윤여정 배우 등은 '쎄시봉'에서 사회를 보기도 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그들의 이야기가 김현석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 <쎄시봉>에는 송창식(조복래 분)과 윤형주(강하늘 분), 이장희(장현성/진구 분), 조영남(김인권 분)이 본명으로 출연했고 김세환은 단역으로 잠깐 등장했다. 영화 속 실질적인 주인공 오근태(김윤석/정우 분)와 민자영(김희애/한효주 분)은 각본을 함께 쓴 김현석 감독에 의해 가공된 인물이다(단 영화 마지막에 주인공의 모티브가 된 인물에 대한 감사의 메시지가 자막을 통해 언급된다).

<쎄시봉>에서는 조영남의 <딜라일라>와 송창식의 <담배가게 아가씨>,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트윈폴리오의 <웨딩케이크> 같은 그 시절 명곡들을 젊은 배우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을 수 있다. 실제로 <쎄시봉>은 그 시절의 노래들을 그대로 쓰기 위해서 저작권료로만 무려 6억 원을 지불했다. 미국 민요 <할아버지의 시계>를 번안한 <백일몽>은 김현석 감독이 직접 가사를 썼다.

<쎄시봉>은 애절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은 스토리와 아름다운 음악, 옛 시절의 향수를 자극할 수 있는 흥행 요소를 두루 갖춘 영화로 개봉 당시 '천만 영화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네이버 관람객 평점 및 평론가, 기자 평점 등에 따르면<<쎄시봉>은 젊은 관객들에게는 전개가 느리고 장년층 관객들에게는 젊은 배우들의 분량이 지나치게 길다는 비판을 받으며 전국 171만 관객으로 300만에 달하는 손익분기점을 넘는 데는 실패했다.

짧지만 강렬했던 김희애의 호연

▲ 중년의 민자영을 연기한 김희애는 짧은 분량에도 품격 있는 연기로 영화에 깊이를 더했다. ⓒ CJ ENM


<쎄시봉>의 히로인 민자영 역은 젊은 시절을 한효주, 중년 시절을 김희애가 연기했다. 젊은 민자영은 재미있고 자상한 근태와 연애 했다가 돈 많은 교회 오빠와 결혼하는 나쁜 여자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중년의 근태와 재회한 자영은 과거 쎄시봉 친구들을 마약 혐의로 팔아넘긴 근태가 대마초 혐의로 수사를 받던 자신을 구하기 위해 한 일이라는 걸을 알게 되고 후회와 미안함에 눈물을 흘린다.

<상속자들>과 <미생>을 통해 유망주로 떠오르던 강하늘은 <쎄시봉>에서 윤동주 시인의 6촌 동생이자 1960~70년대 미남 가수로 활동했던 윤형주의 젊은 시절을 연기했다. 영화 속에서 윤형주는 혜성처럼 등장해 자신의 아성을 위협한 송창식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갑자기 팀에 합류한 근태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윤형주는 영화 후반 근태가 방송을 펑크 내자 송창식과 듀오 트윈폴리오를 결성했다.

장현성과 진구는 천재 싱어송라이터로 불리던 이장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특히 근태는 자영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이장희가 만든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자신이 만든 노래인 것처럼 속여서 불러줬는데 이장희는 이 점에 대해 전혀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만든 노래 <그건 너>를 오근태가 부를 수 있게 도와주는 등 근태와 자영의 연애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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