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은 좋았는데... 아쉬운 건 관객 위한 '노력'
[김성호의 씨네만세 848] 16회 DMZ국제다큐영화제 <추락하는 별에서 나오는 불꽃>
실험영화라 불리는 장르가 있다. 기존 영화의 관습, 이를테면 문법과 구성을 깨뜨리고 새로운 양식을 탐구하는 작품을 실험영화라 이른다. 말 그대로 영화로 실험을 한다는 뜻이겠다. 통상의 영화가 관객이 기대하는 것을 기대하는 방식으로 전달하곤 한다면, 실험영화는 관객이 기대하는 것을 판판이 깨뜨려 나간다. 그리하여 혹자는 '실험영화란 관객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실험하는 것'이라 말하는 것일 테다.
누군가는 실험영화의 가치에 의심을 표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실험영화 중에선 관객이 영화의 가치를 도무지 어디서 찾아야 할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종일 붉고 하얀 섬광만 나온다거나 두시간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카메라를 멈춰두고 똑같은 풍경만 찍는다거나 하는 영화를 보고서 '이야 이것 참 걸작일세'하고 말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심지어는 관객 대부분이 쿨쿨 코를 골며 자고 나오기도 하니, 실험영화라는 게 대체 관객을 위한 것이기는 하냐는 비판도 가능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영화엔 존재가치가 있다. 낯설게 하는 것, 형식을 파괴하는 일의 유익함은 예술과 문화부문에서 익히 확인된 바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수치로 환산되고, 인기가 곧 돈이 되는 세상에서 예술과 영화 또한 관객에게 더 다가서려 안달하게 되기 마련이다. 관객에게 먹히는 작품이 정답처럼 여겨지기에 관객이 원할만한 것을 찾아 아예 떠먹이다 시피 건네고는 한다. 그저 떠먹이는 것에서 그치는 것도 아니다. 더 자극적인 장르와 소재에 골몰하여 마침내는 영화예술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는 돌아보지 않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먹히는 방식만을 되풀이하다 마침내는 새로운 무엇에게 완전히 패퇴하고 마는 것이다.
영화의 경계를 확장하려는 낯선 시도
한때는 참신했던 홍콩영화가 어떻게 몰락하여 이제는 알아보는 이 없는 것이 되고 말았는지를 우리는 안다. 또 한 시절 잘 나갔던 르네상스 사조 예술과 그 이후 등장한 인상파 화가들이 어떻게 팔리지 않는 신세가 되었는지 또한 한다. 몰락하는 많은 문명, 국가, 기술, 장르들이 왜 그와 같은 운명을 맞이했는지가 실험영화를 배제하려는 시각과 따로 있지 않다.
영화라는 매체, 카메라란 도구, 영상과 음향의 결합이며 연기와 연출의 역할까지를 실험영화는 실험한다. 그로부터 영화예술이 나아갈 수 있는 영역을 탐구하고, 때로는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기도 하는 일이다. 관객의 예상을 뒤엎고 기존 문법을 파괴함으로써 매체, 또 장르 안에서 혁신을 꾀하는 것이 바로 실험영화의 가치가 된다.
올해로 제16회를 맞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꾸준히 실험영화를 선보이는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추락하는 별에서 나오는 불꽃>은 익스팬디드 섹션 단편부문에 묶인 작품이다. 올해 이번 섹션에 초청된 11편의 작품 가운데 하나로, 명칭 그대로 '확장'이라는 개념 아래 충실한 작품들을 가려 뽑았다 전한다. 각기 미술과 사진, 음악, 그래픽 디자인, 뉴 미디어 등 다채로운 소재를 적극 활용해 제작한 영화들로, 기존 영화의 경계를 적극 넓혀나가는 시도가 인상적이다.
외계와 지구, 인간과 불가해한 존재 사이
<추락하는 별에서 나오는 불꽃>은 낯선 사진의 연속으로 묶인 영상이다. 주차장에 문 열린 차 한 대가 서 있고, 그 안엔 운전자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다. 그저 잠든 것인지 술이나 마약에 취한 것인지를 알 수 없는 가운데서 영상은 주차장을 넘어 아파트 단지와 떨어지는 별, 온갖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비춘다.
거의 없다시피 한 대사와 사건들 사이로 지속되는 건 영상과 음향이다. 명멸하는 빛의 영상 가운데 등장하는 사진은 익히 우리가 아는 어느 물체들을 보여준다. 아파트와 같은 익숙한 대상부터 인간의 팔뚝, 거기에 눌린 어느 자국들과 그 이후 보이는 움직이는 액체, 의식을 잃은 인간의 모습까지가 사람을 마취시키는 향정신성 물질이 아닌가 의심케 한다.
영화의 시놉시스를 보면 여태껏 본 적 없는 외계의 존재가 지구에 당도하는데, 그가 인간을 납치하며 인간을 물체로 변형시키기도 한다고 적혀져 있다. 도통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이야기는 외계의 존재가 인간세계를 부유하며 현실과 가상을 오가는 과정을 펼쳐낸다. 외계의 존재가 인류를 마침내 제 것으로 만들어가는 듯도 보이는데, 인간은 제가 삼켜지는 줄도 알지 못하며 엉망진창 지금처럼 살아간다.
현대 건축과 권력구조로부터 얻어낸 착상
감독은 영상예술가로 알려진 로스 맥페슬이다. 시대의 무력감과 종말론 등을 파고드는 작품을 찍어 왔다는데, <추락하는 별에서 나오는 불꽃> 또한 그와 작품군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감독이 직접 적었다는 글에선 '현대 건축이 보이지 않는 권력 구조를 만들고, 강화하고, 실행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탐구한다'고 그 의도를 적어 놓기도 하였다. 과연 건물이 등장하긴 하는데, 그것이 권력구조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나는 영화를 졸지 않고 보고도 제대로 설명해낼 수가 없다.
이렇다 할 서사라는 게 없이 이어 붙은 사진과 명멸하는 화면, 음향만이 지속되는 작품이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아파트의 모습이 부동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짐작하게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권력구조 등의 함의를 영화가 제대로 짚어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감독은 '건물들이 주체가 되지만, 물리적인 UFO는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며 '영화적 틀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서, 내 이전 작품들이 탐구해 온 다양한 주제와 현대적 이슈들을 이 영화에서 확장했다'고 적고 있다.
관객에게 다가서려는 창작자의 노력은 아쉬워
또 한편으로 '죽음 충동, 세계화, 그리고 디지털이 인류와 문화에 미치는 영향 등이 포함되지만, 이런 항목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고도 부연한다. 말하자면 다루는 것은 많은데 어느 이슈 하나를 진득하게 파고들지는 않는 작품이다. 파고든다 해도 그 방식은 일반 관객이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이 작품이 말하는 확장, 그것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될 테다. 이 영화가 말하는 주제, 이를테면 물질과 권력구조, 욕망 따위의 것들에 대해 이제껏 다뤄지지 않은 방식과 형식으로 그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제껏 없는 무엇이라면 영화의 세계에 있어 나름의 존재가치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것이 감독과 영화제가 말하는 확장이라면 이 영화가 일부나마 그에 기여했다 말하는 것도 틀린 이야기는 아닐 테다.
다만 아쉬운 건 관객에게 다가서려는 노력이다. 실험영화이며 확장을 의도한 것은 물론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겠으나, 꼭 그만큼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작품을 마주한 이에 대한 책임감도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관객에 대한 영화인의 존중이고, 확장을 하면서도 관객에게 감흥을 안기려는 노력인 것이다. <추락하는 별에서 나오는 불꽃>이 과연 그런 노력을 다하였는가. 나는 감히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는 것이다.
누군가는 실험영화의 가치에 의심을 표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실험영화 중에선 관객이 영화의 가치를 도무지 어디서 찾아야 할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종일 붉고 하얀 섬광만 나온다거나 두시간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카메라를 멈춰두고 똑같은 풍경만 찍는다거나 하는 영화를 보고서 '이야 이것 참 걸작일세'하고 말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심지어는 관객 대부분이 쿨쿨 코를 골며 자고 나오기도 하니, 실험영화라는 게 대체 관객을 위한 것이기는 하냐는 비판도 가능하겠다.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포스터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영화의 경계를 확장하려는 낯선 시도
한때는 참신했던 홍콩영화가 어떻게 몰락하여 이제는 알아보는 이 없는 것이 되고 말았는지를 우리는 안다. 또 한 시절 잘 나갔던 르네상스 사조 예술과 그 이후 등장한 인상파 화가들이 어떻게 팔리지 않는 신세가 되었는지 또한 한다. 몰락하는 많은 문명, 국가, 기술, 장르들이 왜 그와 같은 운명을 맞이했는지가 실험영화를 배제하려는 시각과 따로 있지 않다.
영화라는 매체, 카메라란 도구, 영상과 음향의 결합이며 연기와 연출의 역할까지를 실험영화는 실험한다. 그로부터 영화예술이 나아갈 수 있는 영역을 탐구하고, 때로는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기도 하는 일이다. 관객의 예상을 뒤엎고 기존 문법을 파괴함으로써 매체, 또 장르 안에서 혁신을 꾀하는 것이 바로 실험영화의 가치가 된다.
올해로 제16회를 맞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꾸준히 실험영화를 선보이는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추락하는 별에서 나오는 불꽃>은 익스팬디드 섹션 단편부문에 묶인 작품이다. 올해 이번 섹션에 초청된 11편의 작품 가운데 하나로, 명칭 그대로 '확장'이라는 개념 아래 충실한 작품들을 가려 뽑았다 전한다. 각기 미술과 사진, 음악, 그래픽 디자인, 뉴 미디어 등 다채로운 소재를 적극 활용해 제작한 영화들로, 기존 영화의 경계를 적극 넓혀나가는 시도가 인상적이다.
▲ 추락하는 별에서 나오는 불꽃스틸컷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외계와 지구, 인간과 불가해한 존재 사이
<추락하는 별에서 나오는 불꽃>은 낯선 사진의 연속으로 묶인 영상이다. 주차장에 문 열린 차 한 대가 서 있고, 그 안엔 운전자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다. 그저 잠든 것인지 술이나 마약에 취한 것인지를 알 수 없는 가운데서 영상은 주차장을 넘어 아파트 단지와 떨어지는 별, 온갖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비춘다.
거의 없다시피 한 대사와 사건들 사이로 지속되는 건 영상과 음향이다. 명멸하는 빛의 영상 가운데 등장하는 사진은 익히 우리가 아는 어느 물체들을 보여준다. 아파트와 같은 익숙한 대상부터 인간의 팔뚝, 거기에 눌린 어느 자국들과 그 이후 보이는 움직이는 액체, 의식을 잃은 인간의 모습까지가 사람을 마취시키는 향정신성 물질이 아닌가 의심케 한다.
영화의 시놉시스를 보면 여태껏 본 적 없는 외계의 존재가 지구에 당도하는데, 그가 인간을 납치하며 인간을 물체로 변형시키기도 한다고 적혀져 있다. 도통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이야기는 외계의 존재가 인간세계를 부유하며 현실과 가상을 오가는 과정을 펼쳐낸다. 외계의 존재가 인류를 마침내 제 것으로 만들어가는 듯도 보이는데, 인간은 제가 삼켜지는 줄도 알지 못하며 엉망진창 지금처럼 살아간다.
▲ 추락하는 별에서 나오는 불꽃스틸컷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현대 건축과 권력구조로부터 얻어낸 착상
감독은 영상예술가로 알려진 로스 맥페슬이다. 시대의 무력감과 종말론 등을 파고드는 작품을 찍어 왔다는데, <추락하는 별에서 나오는 불꽃> 또한 그와 작품군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감독이 직접 적었다는 글에선 '현대 건축이 보이지 않는 권력 구조를 만들고, 강화하고, 실행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탐구한다'고 그 의도를 적어 놓기도 하였다. 과연 건물이 등장하긴 하는데, 그것이 권력구조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나는 영화를 졸지 않고 보고도 제대로 설명해낼 수가 없다.
이렇다 할 서사라는 게 없이 이어 붙은 사진과 명멸하는 화면, 음향만이 지속되는 작품이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아파트의 모습이 부동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짐작하게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권력구조 등의 함의를 영화가 제대로 짚어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감독은 '건물들이 주체가 되지만, 물리적인 UFO는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며 '영화적 틀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서, 내 이전 작품들이 탐구해 온 다양한 주제와 현대적 이슈들을 이 영화에서 확장했다'고 적고 있다.
▲ 추락하는 별에서 나오는 불꽃스틸컷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관객에게 다가서려는 창작자의 노력은 아쉬워
또 한편으로 '죽음 충동, 세계화, 그리고 디지털이 인류와 문화에 미치는 영향 등이 포함되지만, 이런 항목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고도 부연한다. 말하자면 다루는 것은 많은데 어느 이슈 하나를 진득하게 파고들지는 않는 작품이다. 파고든다 해도 그 방식은 일반 관객이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이 작품이 말하는 확장, 그것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될 테다. 이 영화가 말하는 주제, 이를테면 물질과 권력구조, 욕망 따위의 것들에 대해 이제껏 다뤄지지 않은 방식과 형식으로 그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제껏 없는 무엇이라면 영화의 세계에 있어 나름의 존재가치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것이 감독과 영화제가 말하는 확장이라면 이 영화가 일부나마 그에 기여했다 말하는 것도 틀린 이야기는 아닐 테다.
다만 아쉬운 건 관객에게 다가서려는 노력이다. 실험영화이며 확장을 의도한 것은 물론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겠으나, 꼭 그만큼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작품을 마주한 이에 대한 책임감도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관객에 대한 영화인의 존중이고, 확장을 하면서도 관객에게 감흥을 안기려는 노력인 것이다. <추락하는 별에서 나오는 불꽃>이 과연 그런 노력을 다하였는가. 나는 감히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a href="https://brunch.co.kr/@goldstarsky" target="_blank" class=autolink>https://brunch.co.kr/@goldstarsky</a>)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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