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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담양에서 캠핑은 처음이지

텐트 밖은 대숲

등록|2024.10.07 16:08 수정|2024.10.07 16:08
광주광역시에서 학교 다니는 둘째를 보러 다니다 보니 올해 전라도에 자주 간다. 원주 집에서 학교까지 자가용으로 네 시간쯤 걸리는데 대중교통으로 오가기는 쉽지 않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맞는 옷가지를 챙겨서 전하러 다녀오기로 했다. 때마침 4일이 재량휴업일이라서 3일부터 2박 3일 동안 남도 여행을 하기로 했다.

이번엔 캠핑을 계획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중단했던 캠핑을 아내와 함께 다시 하려고 얼마 전에 텐트를 새로 샀다. 광주에서 가까운 이름난 야영장은 모두 예약이 끝나 있었다. 한참을 검색해서 담양에 있는 야영장을 겨우 찾았다. 담양과 어울리는 대나무 숲이 있다는 소개에 꽂혀서 서둘러 예약했다. 모처럼의 캠핑이라 기대가 됐지만 날짜가 다가오면서 슬슬 걱정이 생겼다. 1박이 4만 원으로 저렴해서 좋았는데 안 좋은 후기가 보이니까 오히려 걱정거리가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숲이 다른 소소한 단점을 덮어주는 곳이다. 이른바 요즘 말로 '갬성 터지는 캠핑장'이다. 신조어나 외래어를 쓰기를 즐기진 않지만 '감성'과 '갬성'은 따로 써야 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야영'과 '캠핑'도 그렇다.

대통밥을 담을 만큼 굵은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강원도에선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대숲에서 화롯불을 피우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였다. '감성'보다는 '갬성'으로 수식하고 싶다. 분위기 때문일까? 신혼이거나 이제 막 시작하는 연인처럼 보이는 이들이 많았다.

▲ 텐트 밖은 대숲 ⓒ 박영호


▲ 대숲 ⓒ 박영호


첫날은 텐트를 치고 나서 메타세콰이어 길을 걸었다. 옛날에 왔을 때는 겨울이라 조금 쓸쓸한 풍경이었다. 요즘처럼 푸른 잎이 무성한 모습이 더 좋다. 단풍 들었을 때 풍경도 궁금해진다.

메타세콰이어 길은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담양의 명소이다. 설명을 보니 1972년에 처음으로 24번 국도에 메타세콰이어를 가로수로 심기 시작했다고 한다. 개발되면서 잘려나갈 위기를 맞았는데 뜻있는 이들이 나서서 지켜냈다고 한다. 쓸모없어 보이던 가로수가 지금은 어떤 개발보다 더 높은 가치를 만들고 있다. 새옹지마다.

▲ 메타세콰이어길 ⓒ 박영호


▲ 호남기후변화체험관 유리는 태양광 발전을 한다. ⓒ 박영호


▲ 오른쪽에 있는 진흙길은 맨발로 걷는다 ⓒ 박영호


잘 몰랐는데 담양은 군데군데 잘 가꿔진 메타세콰이어 길이 있다. 아침마다 야영장 건너편 마을인 월산 초등학교 앞길을 걸었는데 삼백 미터쯤 아름드리 메타세콰이어가 늘어선 풍경이 참 좋다. 옆으로 넓은 도로가 새로 난 까닭인지 차도 사람도 거의 다니지 않아서 편하게 즐길 수 있다. 마지막 날 빵집 찾다가 지나친 길도 메타세콰이어가 아주 멋지게 잘 자라고 있었다.

▲ 마을에 있는 메타세콰이어길 ⓒ 박영호


▲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사이로 보이는 논 ⓒ 박영호


▲ 꽃무릇 ⓒ 박영호


이튿날은 '순천만 국가정원'을 다녀왔다. 죽녹원과 소쇄원은 지난번에 돌아보았으니 건너뛰기로 했다. 순천은 한 시간이나 더 남쪽으로 내려가야 하지만 갑자기 가보고 싶어졌다. 며칠 전에 '순천만 국가정원'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기도 했고 순천이야말로 강원도에서 좀처럼 발걸음하기 어려운 곳이라 이참에 둘러보고 싶었다.

'순천만 국가정원'은 워낙 넓어서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야 하는 곳이다. 사전 조사나 준비 없이 갔으니 관람차도 스카이큐브도 못타고 오로지 걷기만 했다. 한바퀴 둘러보고 나니 세 시간쯤 걸렸다. 넉넉하게 잡는다면 하루 일정이 맞을 듯하다. 사람이 만든 정원이니 당연하겠지만 너무 인공적이라 조금 아쉽다. 남문 가까운 곳에 홍학이 거닐고 있는 연못은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풍경처럼 보였다.

▲ 네델란드 정원 ⓒ 박영호


▲ 순천만 국가정원 ⓒ 박영호


▲ 순천만 국가정원 남문 ⓒ 박영호


▲ 홍학이 날지 않는 까닭은? ⓒ 박영호


순천만 습지에서 해넘이도 보고 싶었으나 다음을 기약하고 숯불에 구울 조개와 새우를 사서 서둘러 담양으로 돌아왔다. 순천에서 수산물을 사려면 역전시장을 찾아야 한다. '순천 수산시장'으로 검색해서 찾아갔더니 '아랫장'인데 모두 문을 닫았다. 알고 보니 2일과 7일에 열리는 오일장이다. 윗장도 있는데 5일과 10일에 열린다고 한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역전시장이 있어서 들렀다. 여기도 파장이라 대부분 문을 닫고 있었다. 하마터면 헛걸음할 뻔했는데 마음씨 좋은 주인아주머니가 마지막이라며 덤을 넉넉하게 담아 주셨다. 전화위복이다.

▲ 화로에 굽는 조개와 새우 ⓒ 박영호


▲ 밤 풍경 ⓒ 박영호


워낙 계획 없이 움직여서 내가 쓴 여행기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 그러나 높고 푸른 가을 하늘 사진을 보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오전엔 느릿느릿 시골길을 걷다가 밤을 줍고 저녁엔 화로에 둘러앉아 밤을 구우며 감성을 나누는 캠핑이면 더욱 좋겠다.

이번 여행으로 둘째와 조금 더 가까워져서 행복하다. 금상첨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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