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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시 민간인 집단학살 현장을 찾아서

경기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 불법적 국가폭력 현장 답사 진행

등록|2024.10.08 12:50 수정|2024.10.08 12:50

▲ 1995년 당시 금정굴 피학살자 유족들이 중장비를 동원해 발견한 유품들 사진들이 금정굴 바로 옆에 을씨년스럽게 천그림으로 걸려있다. ⓒ 경기민주시민교육협의회


2016년 이래 매년 경기도를 무대로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해 온 경기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상임대표 최재숙)에서 '전쟁과 평화 그리고 민주시민' 프로그램으로 지난 10월 5일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집단학살 현장인 강화도와 고양 금정굴을 찾는 현장학습을 진행하였다.

최재숙 상임대표는 강화도로 가는 버스 안에서 "이번에 프로그램의 목적은 최근 세계적 전쟁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는 시기에 경기도에서 그동안 모르고 있거나 무관심했던 불법적인 민간인 집단학살 지역을 직접 발굴하고 체험해서 시민교육 차원에서 전쟁과 국가폭력의 잔인성과 불법성을 의제로 담론화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푯말도 없고 안내판 글자조차 탈색된 추모공원

당일 오전 9시 경기도 일대 신청자를 서울 대한문 정문에서 태우고 출발한 버스가 제일 먼저 향한 곳은 강화도 사슬재였다. 버스 안에서 남인우 평화기행 해설사는 사슬재는 한국전쟁 중 학살당한 민간인 322명의 위패가 있는 추모공원이라고 말했다.

1기(2006~2010년)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1.4후퇴 전후로 강화 교동도 등에서 군경과 지역특공대가 지역 민간인 430명 이상을 불법적으로 학살한 사건을 규명하면서 이곳에 희생자들을 기렸다고 한다. 조사 보고서는 남편이나 아들이 월북자라는 이유로 부녀자, 노인, 어린아이와 심지어 갓난아이까지도 아무런 법적 절차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희생당했다고 밝히고 있다.

버스는 좁은 산길을 올라가다, 작은 공터가 나오자 멈춰 섰다. 해설사는 손가락으로 사슬재라며 계단이 쭉 올라가 있는 작은 언덕을 가리킨다. 우리는 계단을 올라가기 위해 언덕을 천천히 걸어서 이동했다. 그런데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손으로 쓴 간이 푯말이 뽑혀 그대로 누워있고, 안내판은 아예 햇빛에 바래 글씨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322명의 억울한 영혼의 추모공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부끄럽고 황당하기까지 했다. 묘지의 가운데쯤에는 '조용표, 조용직 부인, 조용직 3녀, 조용직 딸'이라는 돌 위패가 나란히 누워있다. 온 가족이 몰살당했다는 끔찍한 비극의 현장을 그대로 보는 순간이었다.

▲ 231명의 신원이 묻혀있는 사슬재 입구의 간이 푯말조차 뽑힌 채로 방치된 채로 누워있다. ⓒ 경기민주시민교육협의회


▲ 231명의 신원이 묻혀있는 사슬재에 대해 알리는 안내판은 글자가 하얗게 바래서 문구 자체를 알아볼 수 없다. ⓒ 경기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


우리 일행은 다음 이동 장소로 이동하기 전에 바로 근처에서 점심 식사 후 바로 갑곶 민간인 학살 현장으로 향했다.

우람한 전쟁박물관과 초라한 민간 학살지

크고 널따랗게 잘 조성된 전쟁박물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우리는 그 옆길을 따라 구 강화대교 방향의 언덕을 올라갔다. 가는 길 바로 옆에 있는 천주교 갑곶성지 정문을 지나치면서 더 올라가니 철조망으로 다리 난간을 설치한 구 강화대교가 보였고, 그 옆에 갑곶 선착장 집단 양민 학살지라는 표지만이 서있다. 수백 명의 무고한 양민이 불법적으로 죽은 현장인데 사슬재보다 더 초라하다 못해 그냥 방치 상태다.

잘 보이지도 않는 표지판만 수풀에 가려져 있고 주변에 학살이나 억울한 죽음과 관련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고한 학살로 인한 불법적 국가폭력에 대한 책임이나 구천을 떠돌 억울한 영혼과 이방인으로 살아남은 가족에 대한 위로의 흔적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대법원 확정 판결로 이곳의 집단학살이 불법적인 것으로 확정되었음에도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건너편의 위용도 당당한 전쟁박물관과 망각의 황폐한 현장이 비교되니 허망하고 씁쓸하다. 사람을 죽이는 전쟁은 엄청난 돈을 들여 과장하여 기리는 반면, 전쟁으로 억울하게 죽은 사람에 대해선 망각하는 기억상실증이다.

자료에 의하면 1951년 1월 6일에서 8일까지 3일간 저녁에 10여 명씩 갑곶 나루터와 옥계 갯벌에서 피해자들을 바다를 향해 세워 놓고 뒤에서 총을 쐈단다. 또, 면 단위 특공대들은 양민들을 야산으로 끌고 가 구덩이에 넣고 청솔가지로 덮은 뒤 흉기로 난타해 학살했다고 한다.

갑곶 나루터와 옥계 갯벌에서 희생된 사람은 남자 45명, 여자 15명 정도에 어린아이도 있었다. 그 후 1월 말에서 2월 초에 걸쳐 해안에서 300여 명을 학살했다고 한다. 수장된 시신은 수습도 못했고, 야산에서 학살당한 경우만 일부 시신을 수습했다.

그중 60여 명은 노인·여성·갓난아기였다. 그 후의 학살은 부역하고 피란했다가 다시 들어온 강화 주민들이었다고 한다. 2012년, 법원은 학살 피해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에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집단 양민 학살 7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가슴에 담고 힘겨워하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국가의 노력이 없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고양의 금정굴을 향해 다시 버스는 출발했다.

▲ 컴컴해 보이지 않는 철창살 안은 수직굴인 금정굴. 국가폭력의 불법성으로 유가족이 국가배상을 판결을 받았지만, 그 현장은 70년이 지난 아직도 봉쇄되어 있다. ⓒ 경기민주시민교육협의회


아직도 금정굴에선 영혼에 대한 집단학살이

금정굴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은 1950년 10월 고양경찰서장 지휘로 경찰과 우익단체 회원이 북한군 부역 혐의자와 가족을 집단 살해해, 금정굴에 매장한 사건이다.

국군의 고양, 파주지역 수복 이후 경찰은 부역 혐의가 있는 자와 부역 혐의로 행불 또는 도피한 자의 가족을 연행한 후, 각 지서 및 치안대 사무실, 창고 등에 구금하였다가 고양경찰서로 이송한 다음 3~7일간의 조사를 거쳐 10월 6일부터 10월 25일까지 20여 일에 걸쳐 학살을 자행했다.

희생자들은 심사받는 줄 알고 금정굴 아래 공터에 모여 있다가 경찰의 지시로 5~7명씩 현장으로 올라갔으며 한 번에 20~40명씩, 많게는 47명까지 끌려갔다고 한다. 부역 혐의자들의 가족도 학살의 대상이 되었고 이들의 재산도 경찰에 의해 탈취되었다.

연행자들은 수직굴인 금정굴 벼랑에 입구를 바라보며 꿇어 앉혀진 후 경찰 5명이 등 뒤에서 조준 사격을 했다. 양손이 묶인 희생자들은 총격과 함께 17m 깊이의 굴 안으로 떨어졌다. 이때 5명 중 누구 하나가 총에 맞지 않았더라도 옆 사람과 함께 있었기에 굴 속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저는 그 소식을 듣고 억울하지만, 아버님이 시신이나마 수습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즉시 작은아버지와 함께 동네 어른들 7명과 금정굴로 달려갔습니다. 밧줄을 이용해서 작은아버지가 내려갔다 오시더니 그냥 피비린내 나고, 생명이 덜 끊어져 살려 달라고 악을 쓰는 사람, 팔이 떨어진 사람들로 가득 차고 작은 굴에 많은 시체가 겹쳐있어 아버지를 찾을 수가 없어, 그냥 올라왔다고 합니다." (이○순 진술, 2006.5.25.)

1995년 9월 유족들이 먼저 합동위령제와 함께 유해 발굴 작업을 진행했다. 당시 장비를 동원해 계속 파 내려가자, 유골이 나오기 시작했고 MBC 등 언론이 이를 보도했다. 두개골 조각과 정강이뼈 머리카락, 신발 등 유품 70여 점이 발굴되었다. 탄피의 수를 근거로 최소 170명 이상으로 판단된다는 게 당시의 기록이다.

천이 다 낡은 검은 천막이 대충 쳐져 있는데 사람들이 안을 아예 보지도 못하게 입구를 철창으로 치고 천막으로 꽉 막아 놓았다. 마치 중죄인들의 가혹한 감옥처럼. 그 철조망에는 많은 추도의 리본이 허상처럼 달려있다. 2005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출범되면서 2006년에는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금정굴 사건에 대해 경찰 책임 하의 불법 학살로 인정했으며 고양경찰서에서도 유감과 애도의 뜻을 표명하고 법원도 금정굴 유족에게 국가 배상을 판결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금정굴은 봉쇄되어 있고 국가폭력의 역사적 현장이 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현대사에 아직도 정권의 야만성과 잔인함이 관통하고 있는 현장이 바로 금정굴이 아닌가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민들레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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