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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라법' 계기된 헌재 결정, 유류분 제도 개선을 주문하다

[광장에 나온 판결] 2019~2024 헌법재판소 특집 판결비평① 민법 유류분 제도에 대한 일부 위헌 및 헌법불합치 결정

등록|2024.10.08 11:23 수정|2024.10.08 11:23
헌법재판소는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로 불립니다. 1987년 헌법개정을 통해 법률이나 국가 공권력의 작용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판단하는, 국민 기본권 보호의 역할을 부여받았기 때문입니다. 지난 6년간 유남석·이종석 소장을 거치며 헌법재판소는 다양한 결정을 내려왔습니다. 과연 시민들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한 결정이었을 까요? 2024년 10월, 헌법재판소에서는 소장을 포함한 3명의 재판관이 교체됩니다. 이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헌법재판소의 주요 결정을 선정해 〈2019~2024 헌법재판소 특집 판결비평〉을 진행합니다. 변화의 시기, 과거 결정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헌법재판소에 요구되는 사회적 기대를 담아봅니다.[기자말]
첫 번째 특집 판결비평은 "유류분 제도에 대한 일부 위헌 및 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해 다룹니다. 유기나 학대를 저지른 상속인에게도 유류분을 인정해 왔던 현행법이 상식에 맞지 않다고 설시하며, 소위 '구하라법(지난 9월 통과)' 민법 개정의 계기가 된 결정입니다. 하지만 헌법불합치 선고된 유류분 관련 조항 일부는 아직 개정이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국회가 더 빨리 움직여야 할 때입니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제완 교수가 비평했습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이종석(소장), 이은애, 이영진, 김기영, 문형배, 이미선, 김형두, 정정미, 정형식 2024. 4. 25. 선고 2020헌가4등

상속인과 피상속인 의사를 모두 존중하기 위한 '유류분 제도'

사람이 사망하면 그 재산에 대하여 상속이 이루어진다. 누가 어떤 순서에 따라 재산상속인이 되는지, 같은 순위의 상속인이 여러 명 있어서 공동으로 상속이 이루어지는 경우에 각각의 지분이 어떻게 되는지 등에 관하여는 모두 민법에 상세한 규정을 두고 있으며, 따라서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사람이 사망하면 이와 같이 민법에 정한 바에 따라 재산상속이 이루어진다.

문제는 피상속인이 사망 전에 생전 처분으로 또는 유언으로 민법과 달리 처분하는 경우이다. 즉, 생전에 상당 부분 재산을 상속예정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나 공익법인 등에 증여하거나, 유언으로 상속인의 순위나 지분에 대해 민법과 달리 정하는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은 경우 민법의 규정을 존중할 것인지 또는 재산의 권리자인 피상속인의 의사를 존중할 것인지가 문제 된다.

이에 관하여 우리 민법은 절충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피상속인의 의사를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상속인에게 최소한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는데, 이것이 유류분 제도이다. 유류분 제도란, 피상속인이 증여 또는 유증으로 자유로이 재산을 처분하는 것을 제한하여 법정상속인 중 일정한 범위의 근친자에게 법정상속분의 일부가 귀속되도록 법률상 보장하는 민법상 제도를 말한다. 현행 민법상 직계비속이나 배우자가 상속하는 경우에는 법정상속분의 1/2, 형제자매가 상속하는 경우에는 1/3을 유류분권으로 인정하고 있다.

학대 등 저지른 상속인까지 유류분 인정? 상식에 반해

이번에 헌법재판소에서는 위 대상결정에서, 유류분제도 자체가 위헌은 아니지만, 형제자매가 상속인이 되는 경우에게까지 유류분을 인정한 현행 민법규정을 위헌이라고 선언하였다. 나아가 유류분 산정에 관한 몇 가지 규정에 관하여는 위헌은 아니지만 헌법불합치라고 선언함으로써 입법부에 대하여 헌법에 합치하는 내용으로 법제를 개선할 것을 요구하였다.

우선, 유류분 결격에 관한 것으로, 피상속인을 장기간 유기하거나 정신적ㆍ신체적으로 학대하는 등의 패륜적인 행위를 일삼은 상속인에게까지 유류분을 인정하는 것은 일반국민의 법감정과 상식에 반한다고 설시하였다. 같은 취지에서, 기여상속인에 대하여는 유류분에서도 우대하여야 한다는 취지로 설시하였다. 즉, 현행 민법상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하거나 피상속인의 재산의 유지 또는 증가에 특별히 기여한 공동상속인(이른바 '기여상속인'이라 한다)에 대하여 우대를 하고 있는데(제1008조의2 참조), 유류분 판단에 있어서도 같은 법리를 준용하도록 하지 않은 것도 현저히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한편, 유언이 아니라 생전처분으로 증여를 통하여 미리 처분한 것까지 유류분 산정 시 포함하도록 한 규정에 관하여는 합헌이라고 보았다. 유류분제도는 피상속인의 증여나 유증으로 인해 법정상속분이 침해된 경우 그러한 증여나 유증이 이루어진 개별적ㆍ구체적인 사정에 관계없이 유류분권리자로 하여금 상속재산의 일정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법적으로 취득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유류분권리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데에 그 의의가 있으므로, 피상속인이 생전에 증여를 통해 상속재산을 감소시키는 경우 유류분권리자의 보호를 위해 위와 같은 증여재산의 가액을 산입하여 유류분을 산정하도록 하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변화한 재산 관리 관행 반영한 헌재 결정

우리가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살핌에 있어서는 유류분 제도가 가지는 양면성에 주목하여 균형감을 가지고 판단하여야 한다. 자기가 이룬 재산에 대하여 생전처분에 의하든지 유언에 의하든지 이를 자기 뜻대로 처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헌법상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 재산은 명의자 개인의 재산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배우자를 포함하여 온 가족이 함께 노력하여 이룬 것일 수도 있고, 오래전부터 이어 내려온 가산(家産)으로서의 성격을 가질 수 있는데, 그 명의가 현재 자기에게 있다는 이유로 자의적 처분을 무제한 인정하기도 어렵다.

이에 우리 민법에서 1977년 유류분 제도를 도입할 당시 정당성이 인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제도 도입 이후 50년 가까이 지나면서 우리 사회의 현실, 특히 가산(家産) 개념과 부부간 재산 관리 관행 등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온 가족이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을 가장(家長) 개인 명의로 하는 경우가 드물게 되었고,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상태에서 2순위 상속인인 형제자매에게 상속시키지 않고 공익법인 등에 기부하거나 유증하는 것을 비정상이라고 보지 않는다.

헌재 결정 전까지 법 개정 방치한 국회, 직무유기 비판 피할 수 없어

필자로서는 형제자매에까지 유류분을 확대한 것이 위헌이라고 본 대상결정의 결론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며, 유류분 결격과 기여분의 반영 등을 포함하여 법제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부분에 관하여도 수긍한다. 돌이켜보면, 헌법재판소는 우리나라의 가족법제의 개선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대표적으로, 호주(戶主)제도에 대하여 헌법불합치를 선언하여 민법 개정을 이끌어 낸 것을 들 수 있다.

여기에 필자로서 부연하고자 하는 점은 입법부의 역할이다. 호주제 폐지 당시에도 그러하였듯이 우리 국회는 가족제도 관련 구습(舊習)을 폐하고 선진화하는 데에는 적극적이지 못하다고 늘 주저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미 시민사회와 학계에서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가 이루어졌고, 그 법제가 불합리하여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 관하여 수긍하면서도, 일부 수구적 집단의 반대를 이유로 법 개정이 지지부진하였던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번 유류분 사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국회의원들로서는 선거에서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일지 모르나, 이와 같은 사안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날 때까지 방치한 것은 국회의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번 헌법불합치결정의 후속 입법을 수행함에 있어서는 국회가 국민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참여연대 홈페이지와 슬로우뉴스에도 실립니다.이 글의 필자는 김제완 교수(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민법),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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