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주택가서 얻은 빵 한조각, 마음의 촛불이 켜졌다
공간을 통해 얻는 희망... "몰랐을 때가 좋다"지만 그럼에도 낭만은 있다
칼칼한 싸늘함이 햇살과 함께 등장했다가 묵직한 공기가 어둑한 구름과 함께 겹쳐 내리는 조금은 스산한 오후다. 도심 한편에선 축제로 북적대고 농촌은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여행하기 좋은 계절답게 각종 패키지 상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화면에 비추인 낭만적인 풍경에 홀려 카드를 긁고, 고지서가 나오면 후회도 한다. 그래도 여전히 믿고 싶어한다. 그게 낭만이었다고.
사실, 매력적인 도시환경이 삶의 질에 매우 중요하지만, 사회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시각적인 환경이 삶에 미치는 영향은 1%도 안 된다. 리처드 세넷도 '눈의 양심'에서 보이는 것은 매우 미미하고, 중요한 것은 사람과의 사회적 상호작용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보이는 그 1%에 엄청난 가치를 두고 많은 투자를 한다.
"젊었을 때는 낭만이 있었지. 그런데 '답정너'라는 세상에서 부딪치고 겪어보고 살아보니 낭만이라는 단어를 잊은 지 오래야!"
한 지인의 말이다.
"몰랐을 때가 낭만이지, 알면 더 이상 낭만은 없어"
답정너,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는 신조어를 생각하면 이건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현실을 생존해내는 게 더 어렵다. 그래서일까, 잠시라도 고단함을 잊기 위해서인지 낭만적인 거리, 문화, 공연, 각종 토크쇼를 찾는지도 모른다. 낭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철딱서니 없어 보여도, 그럼에도 우리는 낭만을 찾는다.
그래서,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그래서'로만 이어진다면 그것은 너무 빤한 산문이 될 것이다. 어차피 뜻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다. 내 몸이라 해도 한해 한해 예전 같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가는 대로 자꾸 해야 한다. 삶은 시(時이)기 때문이다.
내게는 서툰 한국말로 '언니 언니!' 하면서 따르는 에쁜 동생같은 친구가 하나 있다. 1년 전 요즘, 베트남 달랏에서 만나 알게 된 친구다.
꿈많은 그녀의 이름은 메이(May), 베트남어로 구름이라는 뜻이다. 여행 중 머물렀던 호텔에는 저녁을 먹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다들 관광으로 바쁘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레스토랑에는 대부분 나 혼자였고, 그 덕분에 메이와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얼마 전부터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며 그림을 문자로 보내주는데 스케치를 보니, 말은 안해도 마음 고생을 하는 것 같다. 뭐라고 끄적이고 싶은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프론트에서 궁금한 것이 참 많은 나의 질문에 일일이 응대해 주었던 푸(Phou)도 최근 달랏을 떠나 고향 무이네(Mui Ne)로 돌아왔다고 안부를 전해왔다. 소설을 쓰겠다고 말이다. 낭만이 없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낭만을 잊고 사는듯한 주변인들. 그리고 그럼에도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는 오늘의 청춘들을 생각해본다.
하루 12시간 일하고 뛰어다니는 베트남 청춘들의 꿈
작은 체구에 양손으로 산더미 같은 접시를 들고 바삐 뛰어다니는 메이는 영국에서 호텔 관광을 더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하루 12시간 근무를 하고 나면 집에 가기 전 꼭 쑤언흐엉 (Xuan Huong Lake)호수를 들러 두 세 시간 걷는다.
그렇게 걸으면 스트레스와 현실의 구름이 사라지고 어느새 마음이 충만해진다고 했다. 달빛, 별빛, 그리고 호수에 이는 바람으로 말이다. 메이의 리츄얼인 셈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렇게 몇 시간을 걷고 또 걸으며 앞날을 그려본다고 했다. 10남매 중의 막내인 메이에게는 부모와 떨어져 사는 고달픔과 그리움이 잔잔히도 베여 있지만, 그녀에게는 이 호수가 가족이자 마음을 기댈 곳이었던 것 같다.
오늘은 고단해도 내일은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 확신 그것이 그 나이의 낭만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여행하던 때, 어느 날엔 메이가 20대 현지인들이 가장 많이 간다는 카페에 나를 데려갔다. 오토바이가 밤새도록 다니는 길 앞에 조그마한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다. 밤하늘은 언제나 푸근하고 차분하다. 모두가 하나같이 도로 쪽으로 테이블을 놓고 반짝반짝 빛나는 네온사인 너머 저 하늘을 바라본다.
자정이 넘어도 꺼질 줄 모르는 불빛과 북적거리는 그들의 모습은 한편 아련하기도 했다. 꿈을 꿀 수 있고, 이루어질 수 있을 거라 믿을 수 있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낯선 사람에게 건넨 빵... 그 안에 담긴 마음
처음 마주한 달랏의 도시 풍경은 참 이국적이고 세련되었다. 화려한 건물 사이로 난 좁은 골목에는 또 다른 세상이 있었다.
화려한 저택과 살기 팍팍해 보이는 집들이 섞여 있고, 그 사이로 한 소녀가 자기 몸보다 더 큰 대바구니를 오토바이에 싣고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뭐라고 말을 하면서 말이다.
고급주택에서 중년의 한 여성이 나오니 소녀가 봉지에 한가득 담아 건넨다. 좇아가서 보니 바구니에는 반미라고 부르는 빵이 한 가득이었다.
언어가 되지 않으니 백만 동 지폐를 주며 빵을 달라 했다. 그러니 소녀는 씩 웃으면서 그저 빵 두 개를 내 손에 쥐여준다. 지켜보던 여성이 곧바로 소녀의 손에 돈을 쥐여주고는 나에게 '꼬레아?'라고 하셨다.
말을 다 이해 못해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소녀가 빵값을 받지 않으니, 아주머니가 대신 내준 것 같았다. 반짝, 촛불이 켜졌다. 그렇게 그들에게 받은 따뜻한 마음의 촛불은 앞으로도 꺼지지 않을 것만 같다.
그 무거운 통을 싣고 온종일 비탈길을 오르내리는 생활은 모르긴 몰라도 얼마나 고되겠는가. 그녀가 준 빵은 그저 간식으로 배를 가볍게 채울 단순한 주전부리가 아니라 그녀의 삶이자 꿈의 씨앗이었을 것이다.
삶은 시(時)라서, 누려야 한다
'젊을 때는 다 그래'라고 하지만, 낭만이 청춘의 전유물은 아니지 않은가. 인생이 20대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인생은 꿈꾸는 자의 것이며 누리는 자의 것이 아니겠는가. 날이 추워지면 마음도 구운 오징어마냥 오그라든다. 뜨거워도 추워도 밤하늘의 별은 여전히 빛나고 태양도 변함이 없다.
고단하고 답이 정해져있는 듯한 삶이 앞을 가로막지만, 그런 절망적인 생각을 말끔히 씻어줄 수 있는 공간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적어도 눌려있는 꿈들이 꿈틀꿈틀 살아 솟구치도록.
12시간 동안 접시를 나른 메이가 달빛에 고단함을 씻어내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듯 말이다. 며칠 짜리 도떼기시장 같은 북적거리는 축제장도 좋지만, 언제나 갈 수 있는, 그리고 머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각자의 낭만을 찾게, 낭만을 누릴 수 있게 말이다. 그것이 도시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진정한 힘이 아닐까.
화면에 비추인 낭만적인 풍경에 홀려 카드를 긁고, 고지서가 나오면 후회도 한다. 그래도 여전히 믿고 싶어한다. 그게 낭만이었다고.
"젊었을 때는 낭만이 있었지. 그런데 '답정너'라는 세상에서 부딪치고 겪어보고 살아보니 낭만이라는 단어를 잊은 지 오래야!"
한 지인의 말이다.
"몰랐을 때가 낭만이지, 알면 더 이상 낭만은 없어"
답정너,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는 신조어를 생각하면 이건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현실을 생존해내는 게 더 어렵다. 그래서일까, 잠시라도 고단함을 잊기 위해서인지 낭만적인 거리, 문화, 공연, 각종 토크쇼를 찾는지도 모른다. 낭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철딱서니 없어 보여도, 그럼에도 우리는 낭만을 찾는다.
그래서,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그래서'로만 이어진다면 그것은 너무 빤한 산문이 될 것이다. 어차피 뜻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다. 내 몸이라 해도 한해 한해 예전 같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가는 대로 자꾸 해야 한다. 삶은 시(時이)기 때문이다.
▲ 달랏의 풍경바오다이(Bao Dai Summer Palace)궁으로 가는 길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달랏의 시가지다. 근사한 유럽식 건축물들이 즐비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있는 그대로의 지역민의 삶을 볼 수 있다. ⓒ 김은아
내게는 서툰 한국말로 '언니 언니!' 하면서 따르는 에쁜 동생같은 친구가 하나 있다. 1년 전 요즘, 베트남 달랏에서 만나 알게 된 친구다.
꿈많은 그녀의 이름은 메이(May), 베트남어로 구름이라는 뜻이다. 여행 중 머물렀던 호텔에는 저녁을 먹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다들 관광으로 바쁘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레스토랑에는 대부분 나 혼자였고, 그 덕분에 메이와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얼마 전부터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며 그림을 문자로 보내주는데 스케치를 보니, 말은 안해도 마음 고생을 하는 것 같다. 뭐라고 끄적이고 싶은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프론트에서 궁금한 것이 참 많은 나의 질문에 일일이 응대해 주었던 푸(Phou)도 최근 달랏을 떠나 고향 무이네(Mui Ne)로 돌아왔다고 안부를 전해왔다. 소설을 쓰겠다고 말이다. 낭만이 없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낭만을 잊고 사는듯한 주변인들. 그리고 그럼에도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는 오늘의 청춘들을 생각해본다.
하루 12시간 일하고 뛰어다니는 베트남 청춘들의 꿈
작은 체구에 양손으로 산더미 같은 접시를 들고 바삐 뛰어다니는 메이는 영국에서 호텔 관광을 더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하루 12시간 근무를 하고 나면 집에 가기 전 꼭 쑤언흐엉 (Xuan Huong Lake)호수를 들러 두 세 시간 걷는다.
그렇게 걸으면 스트레스와 현실의 구름이 사라지고 어느새 마음이 충만해진다고 했다. 달빛, 별빛, 그리고 호수에 이는 바람으로 말이다. 메이의 리츄얼인 셈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렇게 몇 시간을 걷고 또 걸으며 앞날을 그려본다고 했다. 10남매 중의 막내인 메이에게는 부모와 떨어져 사는 고달픔과 그리움이 잔잔히도 베여 있지만, 그녀에게는 이 호수가 가족이자 마음을 기댈 곳이었던 것 같다.
오늘은 고단해도 내일은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 확신 그것이 그 나이의 낭만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 메이의 안식처가 되는 쑤언흐엉 호수쑤언흐엉 호수의 밤이다. 일을 마치고 밤이 되면 호수 주변을 몇 시간 걷고 또 걷는다. 가슴이 트이고, 머리가 맑아진다. 몸은 고단해도 꿈만은 더욱 또렷하게 해주는 그녀의 호수다. ⓒ 김은아
여행하던 때, 어느 날엔 메이가 20대 현지인들이 가장 많이 간다는 카페에 나를 데려갔다. 오토바이가 밤새도록 다니는 길 앞에 조그마한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다. 밤하늘은 언제나 푸근하고 차분하다. 모두가 하나같이 도로 쪽으로 테이블을 놓고 반짝반짝 빛나는 네온사인 너머 저 하늘을 바라본다.
자정이 넘어도 꺼질 줄 모르는 불빛과 북적거리는 그들의 모습은 한편 아련하기도 했다. 꿈을 꿀 수 있고, 이루어질 수 있을 거라 믿을 수 있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낯선 사람에게 건넨 빵... 그 안에 담긴 마음
처음 마주한 달랏의 도시 풍경은 참 이국적이고 세련되었다. 화려한 건물 사이로 난 좁은 골목에는 또 다른 세상이 있었다.
화려한 저택과 살기 팍팍해 보이는 집들이 섞여 있고, 그 사이로 한 소녀가 자기 몸보다 더 큰 대바구니를 오토바이에 싣고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뭐라고 말을 하면서 말이다.
▲ 반미(빵) 바구니를 실고 달리는 소녀여리디 여린 소녀가 몸보다 더 큰 대바구니에 가득 담은 반미를 실고 온종일 빵을 판다. 소녀가 지나갈 시간을 아는지 곳곳에 아주머니들이 문 앞에 나와 반미를 사갔다. ⓒ 김은아
고급주택에서 중년의 한 여성이 나오니 소녀가 봉지에 한가득 담아 건넨다. 좇아가서 보니 바구니에는 반미라고 부르는 빵이 한 가득이었다.
언어가 되지 않으니 백만 동 지폐를 주며 빵을 달라 했다. 그러니 소녀는 씩 웃으면서 그저 빵 두 개를 내 손에 쥐여준다. 지켜보던 여성이 곧바로 소녀의 손에 돈을 쥐여주고는 나에게 '꼬레아?'라고 하셨다.
말을 다 이해 못해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소녀가 빵값을 받지 않으니, 아주머니가 대신 내준 것 같았다. 반짝, 촛불이 켜졌다. 그렇게 그들에게 받은 따뜻한 마음의 촛불은 앞으로도 꺼지지 않을 것만 같다.
그 무거운 통을 싣고 온종일 비탈길을 오르내리는 생활은 모르긴 몰라도 얼마나 고되겠는가. 그녀가 준 빵은 그저 간식으로 배를 가볍게 채울 단순한 주전부리가 아니라 그녀의 삶이자 꿈의 씨앗이었을 것이다.
▲ 소녀의 빵반미라고 부르는 빵이다. 우리 돈으로 800원에서 1000원 정도면 살 수 있다. 빵이 눅눅하지 않게 마를 깔고 대바구니를 골판지로 감쌌다. ⓒ 김은아
삶은 시(時)라서, 누려야 한다
'젊을 때는 다 그래'라고 하지만, 낭만이 청춘의 전유물은 아니지 않은가. 인생이 20대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인생은 꿈꾸는 자의 것이며 누리는 자의 것이 아니겠는가. 날이 추워지면 마음도 구운 오징어마냥 오그라든다. 뜨거워도 추워도 밤하늘의 별은 여전히 빛나고 태양도 변함이 없다.
고단하고 답이 정해져있는 듯한 삶이 앞을 가로막지만, 그런 절망적인 생각을 말끔히 씻어줄 수 있는 공간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적어도 눌려있는 꿈들이 꿈틀꿈틀 살아 솟구치도록.
12시간 동안 접시를 나른 메이가 달빛에 고단함을 씻어내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듯 말이다. 며칠 짜리 도떼기시장 같은 북적거리는 축제장도 좋지만, 언제나 갈 수 있는, 그리고 머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각자의 낭만을 찾게, 낭만을 누릴 수 있게 말이다. 그것이 도시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진정한 힘이 아닐까.
▲ 호수의 아침긴 밤이 가고, 아침이 밝아온다. 그래서 언제나 새롭게 또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 김은아
덧붙이는 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분들께 작은 위로와 사랑의 마음을 나눠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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