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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대출 원금, 집주인이 은행에 돌려주게 하자"

시민단체들 '전세개혁' 방안... "집값 대비 전세가 상한 두고, 점차 전세 줄여야"

등록|2024.10.08 16:04 수정|2024.10.10 11:20

▲ 참여연대가 8일 서울 종로구 사무소에서 '안전한 전세 만들기, 전세 개혁 방안 발표'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언제까지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까 조마조마해야 할까? 보증금 내려고 은행에서 받은 전세대출은 세입자를 거치지도 않고 곧바로 집주인에게 갔는데, 왜 나중에 전세대출을 갚아야 하는 건 집주인이 아닌 세입자여야 할까?

이런 답답함을 덜기 위해 전셋값을 주택가격의 일정 비율(60~70%)을 넘지 않도록 규제하고, 전세대출의 이자는 기존처럼 세입자가 내되, 원금은 집주인이 상환하도록 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내 전세·준전세 보증금 전체 규모는 총 1058조 원(2022년 기준, 한국경제연구원 추정), 전체 전세대출 잔액은 162조 원(2023년 6월 기준, 금융감독원)에 달한다.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한국도시연구소 등 시민단체들은 8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전한 전세 만들기'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전세사기가 사회 문제가 되면서 지난해 6월 국회에서 전세사기특별법이 제정돼 지금까지 총 2만 2000여 명이 피해자로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사후 피해 구제에만 머물러 있을 뿐 전세사기 자체를 없앨 제도 개선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세가, 집값의 60~70% 넘지 않게 상한선 둬야"

"과거와 달리 전세대출과 그와 관련된 보증이 전세 가격을 상승시키고 있다. 그렇게 전세가가 오르면 집값이 오르고, 그러면 다시 또 전세가가 오르는 악순환을 겪는다. 그러다 주택 경기 변동으로 집값이 하락하면 전셋값도 하락하는데, 이는 단순히 값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살고 있는 세입자들이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태로 연결된다." - 임재만 세종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

시민단체들은 먼저 은행 등 금융기관의 무분별한 전세대출과 정부기관의 과도한 전세보증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차인 보호를 위해 확대된 정부기관의 전세보증이, 은행 등 대출기관들로 하여금 '도덕적 해이'를 불러 위험 부담 없이 마구 전세대출을 늘리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주택보증공사(HUG)가 전세금 반환요청을 받아 집주인 대신 세입자에게 지급한 대위변제액은 2019년 2836억 원에서 2023년 3조 5540억 원으로 급증했다. 임재만 세종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 구매의 금융화를 넘어, 주택 임대에 있어서도 금융이 크게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전세사기 문제가 확대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임 교수는 "과거 1990년에도 전셋값이 급등해 사회 문제가 되자 금융기관에서 전세자금 대출을 시작했다가, 대출이 지나치게 급증하자 몇 개월 후 대출 기준을 크게 높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민단체들은 전세가가 주택가격의 60~70%를 넘지 않도록 하는 전세가율 상한제를 제안했다. 이들은 "현재 다가구 주택이나 빌라에선 전세가가 집값과 거의 유사하게 붙어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되면 집값이 떨어질 때 전세보증금보다도 낮아져 깡통전세나 역전세가 되는 문제가 있다"라며 "임대차계약 당시 전세가율 상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외국의 경우 대부분 보증금 규모가 3~4개월 치의 월세 수준"이라며 "최근엔 전세보증금 중 대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전세에도 주택 거래 때의 LTV(주택담보대출비율)처럼 부채비율 상한제도를 두는 방안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전세대출 원금, 세입자 아닌 집주인이 갚게 하자"

▲ 지난 5월 29일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정부로 이송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공포를 촉구했다. ⓒ 유성호


시민단체들은 전세대출의 원금 상환 의무를 지금처럼 세입자가 아닌 집주인에게 지우는 방안도 제시했다. 현재로선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않는 경우, 전세대출을 받은 세입자가 별도의 자기 돈을 마련해 은행 등 금융기관에 전세대출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다. 애초에 금융기관에서 임대차계약을 보고 전세자금 대출을 내주고, 그 돈은 집주인에게 가기 때문에, 매월 이자는 세입자가 내더라도 계약 만료 시 원금은 집주인이 상환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임 교수는 "전세대출은 사실상 원금 상환과 이자 지급의 원천이 상이하다는 점에서 주택담보대출 등 일반 대출과 다른 특징이 있다"라며 "전세대출을 받는 경우에는 원금 상환 의무와 이자 납부 의무를 분리해야 한다"고 했다. 임 교수는 "이렇게 하면 전세대출을 받는 임차인도 안심할 수 있고, 임대인 입장에서도 임차인에게 전세보증금을 대출 받는 거나 금융기관에 대출 받는 거나 다를 게 없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국내에선 원금과 이자의 분리를 생소하게 보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다수에서 원금·이자 분리제도를 도입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국고채에 대해서는 시행하고 있다"고 했다.

시민단체들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들이 1년 6개월에서 2년 정도 걸리는 민사소송까지 가지 않더라도 보증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임대차의 등기를 의무화하고 이에 따라 임차인에게 경매청구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내놨다. 이강훈 변호사는 "임차인의 보증금을 보호하려면 임대차의 물권화를 강화해야 한다"라며 "보증금을 지급하거나 증액할 때 임대차 등기가 동시 이행되도록 규정하면 가능해진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임대차 계약 도중 집주인이 타인에게 집을 팔 경우, 이를 임차인에게 사전에 고지하고 동의를 얻는 것을 의무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 변호사는 "보증금 반환 능력이 없는 소유자에게 주택을 떠넘기고는 기존 임대인이 쏙 빠져나가는 '바지 임대인' 문제를 막기 위해서는 임차인에게 사전 고지하는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라며 "임차인이 임대차계약 관계의 승계에 대해 동의서를 제공하거나, 보증금 반환이 안전한 주택 매매에 대해서만 양수인이 보증금 반환채무를 인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전세는 정말 월세보다 쌀까"

시민단체들은 장기적으로는 전세를 줄여가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체 전세보증금이 1000조 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당장 전세를 일거에 폐지하기는 어렵지만, 전세 수요를 월세 수요와 자가 수요로 나눠 해소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전세 수요 중 자가 수요는 자가 소유 촉진 정책으로, 임차 수요는 저렴한 공공·공적 규제를 받는 민간 월세 수요로 대체해 나가야 한다"면서 "월세 임차인에게 월세 세액공제, 주거급여(소득보조), 주택바우처(월세보조) 등 임대료 보조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들 대부분 전세가 월세보다 싸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그럴까? 개별적으로는 그럴지 몰라도,사회 전체로 봤을 땐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전세가 경제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전세가 활성화되고, 전세대출도 늘고, 전세보증도 늘고, 그렇게 전세 수요가 증가하면, 전셋값이 오르게 된다. 전셋값이 오르면, 소위 '갭투자' 가 활성화되고, 집값이 오른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잘 생각해 보면, 전세로 사는 사람들의 최종 목적지는 '내 집 마련'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렇게 전세에 머무르는 동안, 전체적으로 전세가 활성화되면 될수록, 결국엔 내가 사고 싶은 집값이 오른다는 모순에 빠진다. 그럼 결국 집을 사지 못하고, 계속 전세에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주거 하향을 하지 않는 이상 전세대출을 더 많이 받아야만 같은 수준의 주거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세대 중 대출을 많이 받아 전세로 사는 비중은 많아지는데, 정작 주거 상향은 이뤄지지 않는 현실을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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